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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

주은총목사의 천국과 지옥

by 주은총목사 2023. 8. 20.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천국과 지옥

(16:19-31)

 

어느 노인의 고백

어느 저녁 무렵, 한 노인과 그의 손자가 호숫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령, 계절은 왜 바뀌며, 여자들은 왜 지렁이를 싫어하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마침내 손자가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나요 ?

 

" 그 노인은 잔잔한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얘야, 나는 이젠 점점 하나님 이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단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바로 이 노인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점점 하나님을 선명하게 바라보며,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대화 하면서 천국 생활을 준비한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로 날을 거듭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영원한 운명은 언제 결정이 되는가?

 

오늘 성경의 주제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성경은 내세를 가르칩니다. 그것을 심각한 진리로 가르칩니다. 그것은 영원한 운명을 주제로 하는 결코 우리가 피해 가서는 안 되는, 피할 수도 없는, 피해서도 안 될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의 상태는 죽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예요. 죽을 때 결정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결정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결단을 하느냐, 그것이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9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처소. 다시 말하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영원한 세계 어떤 곳일까요? 누가복음 16장에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해 줍니다. 그곳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즉시로 가는 곳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소위 죽는 순간, 즉시로 가는 곳. 그것이 영원한 세계이죠.

 

누가복음 1922절에 보시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라고 말을 합니다. 보통 죽었다고 말 하면 기독교의 가장 단순한 설명은 이런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 분리되서 어떻게 되는가요? 영혼과 육체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저 상공을, space를 계속 떠도는 것으로... 구천을 우리의 영혼이 떠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즉시로 어딘가로 갑니다. 어디로 가느냐?

 

여기 23절에 보시면 부자는 어디로 갔습니까? '저가 음부에서..' 바로 음부라는 곳으로 갔죠. 이 음 부라는 곳은 본래 영어에서 <하데스> 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하데스. Hades.하데스라는 곳은 가장 쉽게 신학자들의 정의를 빌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입니다. 음부와 지옥의 차이는 종이한 장의 차이이죠. 그것은 마치 '유치장과 교도소의 차이'로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곳입니다. 부자가 꽤꼬닥 하는 즉시, 즉각적으로 이 부자는 음부로 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지 나사로는 어디로 갔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라고 기록하죠.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로마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장차 동서남북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리고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어디에 앉는 다구요? 천국에 앉으려니와..그랬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간 곳.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함께 간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대표적인 조상이 누군가요? 아브라함이죠.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이 갔던 천국.

 

그 천국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눈을 감는 즉시, 죽는 즉시로 가는 곳 그곳이 바로 영원한 세계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죽은 다음 떠돌다가 한참을 있다가 도착하는 어떤 곳이 아니라 내가 생명이 이 땅에서 떠나가는 그 순간 즉시로 가야 하는 곳입니다.

 

1.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 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2.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하소서

 

3.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하소서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하소서

 

4.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하소서

아멘

 

 

부는 하나님의 선물을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5:19)

 

성경에 한 부자가 나옵니다. 그러나 부자의 이름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땅에서 호의호식한 부자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것은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실, 부는 하나님의 선물을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5:19)

 

사실 부자가 누리는 부 자체가 죄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넘치는 부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가난한 거지 나사로에게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에 부자의 잘못이 있습니다.

 

부자의 돈을 매개로 찾아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첨을 하였죠. 일반적으로 부자는 자신의 부귀가 스스로의 뛰어난 노력에 대한 대가로 주어진 것이라 믿으며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무능과 게으름탓이라고 돌려버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부자는 점점 더 특권의식과 교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갈파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수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부자는 재물만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무관심한 죄 때문에 정죄를 받았습니다.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를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였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부 자체는 악이 아니요. 인간이 피해야 할 죄도 결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부를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사용할 때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할 것입니다.

 

이 부자는 왕같이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대기업체 회장 딸이나 오너, 그들의 아내가 어떤 비싼 고가의 메이커를 입으면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다들 부러워하고 흠모하죠.

 

이 부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의복은 자색옷과 고운 베옷이었습니다. 자색옷은 조개 피로 염색한 것인데 당시에 왕이나 귀족들만이 입던 매우 비싼 옷이었습니다. 고운 베옷은 애굽산 세마포로 무척 값비싼 옷이었습니다. 즉 자색옷은 겉옷, 고운베옷은 속옷이었는데 두 가지 모두 극히 값진 의복이었습니다.

 

16:14에 나오는 루디아는 자색옷을 파는 상인이었죠. 바로 고가의 명품을 취급하는 옷 장사였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를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지요.

 

부자는 매일 잔치를 베풀어 주연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초호화판 세상 연락을 즐겼던 부자의 종말을 보면서 근신과 절제의 경건한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았지만 나사로는 가진 것 하나 없이 구걸하면서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구걸할 뿐만 아니라 헌데를 앓으며 부자의 대문에 누워 있었습니다. 거지들이 부잣집 대문에 누워 있는 것은 오늘날도 중동지방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나사로의 삶은 호화로운 부자의 삶과는 반대로 그 부자가 먹고 버린 음식 찌꺼기로 연명했으며, 더욱이 개들이 그의 몸에 생긴 부스럼을 핥는 비참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사로는 병들어 있었죠.

 

부자는 자신은 호의호식하면서도 나사로를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문에 누워 있는 나사로를 구타하지도 않았고 내어쫓지도 않았습니다. 부자가 구박하였다는 흔적은 전혀 없으나 그의 죄는 병들고 가난한 나사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죄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나사로에게 무관심한데 있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나사로가 고통과 굶주림에 시달이고 있어도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풍족한 삶을 살았으므로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부자는 매일 좋은 옷을 바꾸어 입고, 맛있는 것을 먹었으며 돈으로 인해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자기 삶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만 부요하였을 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겸손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인생을 자기에게만 집중하느라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필요가 없었죠.

 

반면에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조차 얻어 먹기 힘든 가난과 질병으로 이 땅의 삶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죽음은 평안한 가운데 죽으나 영혼이 비통함을 안고 죽으나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공동운명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수한이 다하자 거지도 죽었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부자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장엄했으며 그의 영구는 긴 행렬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사실상 그의 죽음에서 혼자였으며 그의 영혼이 찾아간 곳은 지옥이었습니다.

 

부자의 장례식과는 반대로 나사로는 무연고 장례로 시청이나 구청에서 나와서 그의 시체를 간단하게 처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그 순간. 상황은 바로 역전이 되죠.

 

나사로는 홀로 쓸쓸하게 죽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으며 천사들을 시켜서 그를 아브라함 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제하며 영원한 안식을 얻었습니다.

 

22절에 보시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죽는 순간 누가 임했습니까? 천사들이 와서 그의 영혼을 오늘 아브라함의 품 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올려갑니다.

 

한 사람은 영원한 빛의 나라에서 또 한 사람은 캄캄한 헤어날 수 없는 어둠의 음부속으로 떨어집니다. 이 두 개의 대조적인 장소, 천국과 지옥. 당신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에나 낮에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지혜의 주여 말씀으로서 언제나 내 안에 계십소서

주는 내 아버지 나는 아들 주 안에 내가 늘 함께 하네

 

세상의 영광 눈 앞에 없네 언제나 주님은 나의 기업

주님만 내 맘에 계시오니 영원한 주님 참 귀하셔라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 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 되소서

 

성도의 죽음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심(116:15)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라고 부르짖는 음부에 간 부자의 호소에서 육체적으로는 부자도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을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버림받은 자였습니다.

 

이 부자는 세상에서는 재물을 쌓아둔 거부였으나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치 못한 자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주께서는 세상 재리의 유혹에 넘어가 결실치 못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셨죠. 세상의 영화와 부귀를 원하는 자들은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부자가 된 그들에게는 천상의 영화가 들어갈 빈 자리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연락을 즐기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빈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특히, 주의 사역을 걷는 사역자들은 하늘의 것을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부동산과 돈을 움켜쥐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땅에 것을 놓아야 하늘의 것을 쥘 수가 있고 주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나사로는 거지였죠. 게다가 그는 살이 다 문드러지는 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개들이 와서 살점을 뜯어 먹는 고통을 겪었죠.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사로는 이 세상 삶에 있어서 어떠한 물질적 혜택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자 였습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참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죠. 나사로는 그의 믿음 때문에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천대받던 소외계층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 나사로의 뜻인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사실이 암시하듯이 그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죠. 가난함 그 자체가 죄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권장할만한 것도 아니며 구원의 보상을 얻는 근거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심령의 가난함,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히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영적 풍성함과 기쁨을 얻는 삶의 태도입니다.

 

사람의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듯이 우리의 인생도 반드시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나니(9:27)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부요한 부자가 화려한 장례식을 치렀지만,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되자 마자 간곳은 음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영혼들이 육체의 짐을 벗어 놓자마자 곧 환희와 축복의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과는 반대로 사악한 영혼들은 육체의 쾌락을 마감하자마자 곧 끝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비참과 고통에 빠지게 되죠. 부자가 죽자마자 즉각적으로 간 곳은 음부였습니다. 부자가 간 이 음부는 어떠한 곳인가요?

 

그리고 음부의 특징은 의식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부자는 이 사실은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19:23-24)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음부에서 뭐라고 그랬나요? 고통 중에. 그가 지금 고통 하고 있어요. 의식적으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음부-하데스라는 장소를 묘사하면서 계속적으로 거듭 출연한 단어가 두 단어입니다. 고통, 하나는 고민. 고통의 장소, 그리고 끝없는 번민과 괴로움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고민하다.<오 뒤나오>의 원래 뜻은 괴로움을 겪다. 고통을 당하다 라는 뜻으로 울부짖지 않을 수 없는 극심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영적절망과 소외감을 가리키죠.

 

우리가 어떤 일에 막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가도 고민이 어느 정도 지나면 끝나니까 우리가 생존이 가능하죠. 끝나지 않는 고민. 끝나지 않는 번민. 상상해 보세요. 사람들은 그냥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고선 마지막 생명을 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해결이 아닙니다. 영원한 정신적인 고통이 기다리고 있죠. 그것이 사후의 모습입니다.

 

빛이 꺼지면 우리의 심령의 상태가 어떤가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우울해지죠. 빨리 죽고만 싶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조금도 살 수가 없습니다. 영혼에 힘이 없죠. 지옥은 바로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꽃. 영원한 목마름. 캄캄한 어두움.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통곡소리. 귀신들로 가득찬 곳. 성경은 이것이 바로 지옥의 정체라고 알려주죠.

 

마태복음 2541절에 보면 본래 지옥이란 장소는 마귀와 마귀들을 따르는 그의 졸개들. 귀신들을 위해 예비된 곳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사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이 마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자기의 주인으로 알고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선택해서 그를 추종하다 보니까 마귀가 가 있는 곳 마지막도 그곳에 가 있는 것이예요. 그것이 지옥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죽음이란

 

깨어나지 않는 고통의 악몽속에서 부자는 괴로워하지만, 나사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16:25) 요한 계시록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나님 이 저희들과 함께 계셔서 저희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자마자 경험하게 될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려나와서 나를 안아 주십니다. 내가 알아. 네가 세상에 있는 동안 얼마나 아파하고 슬퍼했는지를 알아. 그리고 주께서 내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내 눈물이 씻겨지는 장소. 그리고 이어서 천국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시는 아픔이 없고 다시는 애곡함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 없는 곳이다

 

당시, 76살의 친어머니가 100억대의 교회 재산을 두고 10살도 안된 사촌 조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친딸에게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몹쓸 짓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친딸이 남자관계가 문란해서 내어 쫓았다.”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되어가지고, 저런 이야기들을 마구 할 수가 있을까? 친어머니는 그것도 모자라서 허위로 112신고를 사주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수많은 거짓말을 마구 해대었습니다. 국가가 발행하는 공적인 문서에 의해서 명백하게 증명이 가능한 거짓말조차, 사람들은 전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 하나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없었죠. 사람들은 덩달아서 춤을 추며 한 술더 떴습니다.

 

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법정에 나와서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마구 해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심장이 이상이 올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죽음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미치도록 죽고 싶었습니다. 덫에 걸린, 한 마리 울부짖는 짐승 같았다. 갈기갈기 찢겨 죽어가는 짐승처럼, 마음이 찢겨지고, 미친년처럼 통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잠잠해지자, 잠을 잤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계속해서 잠만 잤죠. 어쩔 때는 수면제까지 먹어가며 잠을 잤습니다.

 

마치 죽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을 자면 뭐든지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러다가 잠이 깨면 무서웠습니다. 서늘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러다가 죽어 혼자 발견되겠지? 그렇게 절망의 끝에 이르렀을 때도 생각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바로, "..”,

 

오직 예수님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나의 머릿속에는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찬송가 88( 내 진정 사모하는)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사 내용이 나의 마음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찬양은 내가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불러주기를 원하는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부르고 나면,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끝까지 나를 돌보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포근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위로가 느껴졌습니다. 나는 자는 연습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속에서 살아나는 연습을, 주님 만나는 연습을 많이 하였습니다.

 

혹시 당신에게 죽음이라고 하는 현상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요?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숨이 답답할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죽는 연습을 날마다 합니다. 지금은 자지만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다, 황혼이 되어 잠을 자다 깨어나면 주님이 맞아주십니다.

 

“Good Morning!”

 

하면서, 우리 주님이 웃으면서 맞아주십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주님과 같이 있게 하십니다. 혼자 두지 않으시고, 울음을 닦아 주시며, 사랑하는 주님이 포옹해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란 말을 이렇게 표현하는데 공감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죽음이란 천국, 행복, 그리고 주님을 의미한다.’(For the follower of Jesus, death means heavens, happiness, and him.)

 

.<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너머 눈보라 재우쳐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 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 - -.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현세에서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연락을 즐겼던 부자는 음부에서 불 가운데 고통을 받으며 나사로를 보내어 혀에 물을 적셔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애원하는 비참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였지만 물 한 방울의 자비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음부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음부에서의 깨달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죽는 그 순간은 이미 늦은 거예요. 이미 영원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가던가. 영원한 지옥으로 가던가. 그순간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줄 아세요? 본문에 보면 사람이 죽는 그 순간 일어나는 다음 사건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낙원과 음부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왕래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에 의하면 낙원과 게헨나간의 거리는 담하나 혹은 한 뼘의 길이, 또는 손가락 하나의 거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후 결정된 각자의 처소는 더 이상 어느 누구의 권세로도, 능력으로도 변경 될 수가 없음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음부에 자기의 처소가 결정된 순간 회개할 기회는 사라졌죠. 변경 될 수가 없는 심판으로 인해 그는 한 뼘의 구덩이를 뛰어넘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친 부자의 결국을 보면서 하나님의 권한 아래 놓여 있는 때와 기한에 대해 성도들은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때가 있는 반면에 울며 부르짖어도 응답해 주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현세에서 회개의 기회는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심과 생각에 이끌리기 쉬우나 기회를 놓친 부자의 결국을 보면서 회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됨을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회개는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이죠. 성도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귀중한 회개의 기회를 놓쳐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큰 구렁은 원어로 <카스마>인데, 벌어진 틈을 가리킵니다. 이 큰 구렁은 팔레스틴의 사막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형으로서 장마철외에는 전혀 물이 없는 골짜기를 지칭하는 와디나 협곡을 가리킵니다.

 

큰 구렁은 하나님의 결정이 결코 변경 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하죠. 다시 말해서 이는 이 땅에서는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죽고 나면 더 이상 그 같은 기회가 없게 된다는 것과 죽음에 의해 결정된 각자의 처소는 어느 누구의 권세와 능력으로도 변경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부자는 죽고나서 음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심판의 엄정함과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족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주도록 요청하죠.

 

음부에 온 부자가 놀래서 소리칩니다. 뭐라고 소리치는가요? “내 형제들만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만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19:27-28)

 

당신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당신이 죽는순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 둘중에 한 곳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중요합니다. 이 순간이 중요해요. 이 순간 어떤 결단을 하는가? 그것이 영원한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발걸음무겁게 이세상 어디 쉴곳 있나요 머물곳 있나요 예수안에는 안식이 있어요 평안이 넘쳐요 십자가 보혈믿는 자 마다 구원을 받아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당신은 오늘 누굴만났나요 위로받았나요 이세상 누가 나를 대신하여 목숨버렸나요 고통의 명예벗어버리세요 예수이름으로 마음문 열고 주님 맞으세요 기쁨이 넘쳐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를 믿고 새롭게 되니 기쁨이넘쳐요 어둠 걷히고 새날이되니 행복이넘쳐요 이전에 없던 평안을 얻으니 찬송이 넘쳐요 샘솟는 기쁨전해주세요 예수이름으로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주를믿는자 그는 행복해요 영원한생명얻으니 하나요 주를믿는자 그는행복해요 영원한생명얻 으니 하나요 할렐루야 아멘 예수님나라 그의것이라 어서 예수믿으세요 주를요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당신은 자살하고 싶은가요?

 

거지 나사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의 처지입니다. 비록 나사로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붙잡고 걷는 길에는 많은 환난과 고뇌가 있게 마련입니다. 나사로는 극한 상황에 놓여 고난을 받는 자들의 상징입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대적 마귀와의 치열한 영적투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현실적으로 고난의 연속이죠.

 

14:22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나님을 선택한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좁고 협착한 길이기에 많은 고난이 수반됩니다.

 

죽고 싶은가요?

또한, 이 세상에 죽음이나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마다 각자의 사연 속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76살의 어머니가 10살도 안된 사촌 손자에게 교회건물을 준다고, 자신의 친딸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내쫓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일이 어머니로써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외톨이가 되어서, 기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혼자서 미쳐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자신이 가엾고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 세상에 과연, 누가 자신의 친어머니와 트레인 변호사에 의해 당하는 심정을 이해할까요? 처녀가 낯선 사내들에 둘러싸여 윤간을 당하는 그 심정과 공포.

 

어머니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하며 판결 선고가 있는 당일에, 저는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어느 반 지하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지옥을 보았죠. 많은 영혼들이 음침하고 괴로워하며 영혼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주인인 이0례와 그녀의 딸에 의해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심폐소생을 실시하며 119 구조대에 의해서 고양명지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세상에 작별을 고하고 싶었죠. 눈앞에 펼쳐지는 환경들은 너무나 처절하였습니다. 평안을 찾아서 떠나가고 싶은 유혹이 간절하였습니다. 정말, ...... 저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었습니다. 그곳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지옥이기 때문이었죠. 과연 누가 자신의 친어머니에게 당하면서까지, 이 세상을 살아갈 자녀가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목숨을 내려놓기 전에, 주님이 친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세요. , 이제 그만 거두어 주세요.” 눈물만 한 없이 흘렀다. 나는 진심으로 평안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서 엘리야가 지쳐서 누워 있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소망도, 힘도 없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2019614일에 자살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던 그녀는 "죽음은 무한한 고통으로 부터 나를 해방 할 것이다."라는 유언장을 써놓고 두 번씩이나 자살을 하려했습니다. 더 이상, ‘자살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말은 영원히 지옥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자살>의 근거를 찾으려고 방황을 하였습니다. 그때, 어느 기자의 글에서 자살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곳에는 청소년 자살자들의 심정이 잘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저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간 곳이라면, 나 역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내게 증명을 하지 않는 이상... 나 역시 그곳으로 가야겠다.>라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2019614일에 자살을 하리라고 날짜를 정해놓았습니다. 진짜로, 자살을 결정한 사람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합니다. 서초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배변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까봐, 긴급구조를 하려고 경찰들을 보내왔습니다. 나는 그들을 돌려보내며, 속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니야, 날짜가 틀렸어. 내가 죽으려고 하는 날짜는, 2019614일이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합니다. 이미, 지치고 더 이상의 살아갈 삶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죽음에 관하여도 무덤덤합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나를 살리려고 신의 한 수를 두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오산리 기도원에 갔습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베들레헴 성전에서 철야를 하고 내려 왔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온 그날, “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 첫 연락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나 보내시지 않지하며 희미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일을 하러온 천사

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기도>밖에는. 그분이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깊이가 있었습니다. 손수 작은 예수가 되어 교회를 정성껏 만들어 주려고 애를 썼죠. 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필요로 하는 공구가 없었고, 콘크리트에 힘을 써서 못을 박고, 난관을 넘어야 할 큰 공사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딱 그 순간에... 사람들이 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건물을 관리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공구도 가지고 있었고, 힘을 쓰는 일을 잘 하였습니다. 그들 부부가 20kg'를 주러 왔다가 일까지 하였습니다. 천정에 있는 전기 공사부터, 커텐을 달고, 강단을 꾸미는 것까지 착착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분들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분은 기도만 하고 있고, 일은 이상하게 우리가 한다고.” “이분은 가진 것이 없다고.” “일도 우리가 하고, 밥도 우리가 사먹고.”

 

떡과 물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떡과 물을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그 천사는 말씀의 깊이와 해석이 탁월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내게, 주님이 주신 그 어떠한 쓴잔도 감사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질병이나 고통, 죽음 그 모든 것 조차도 감사가 나오게 말씀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어가는 나에게 은총아, 사랑하니 살아나라.” “죽지마!” 라는 소리를 매일 들려주었습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신뢰해요.

질병이나 고통, 죽음 그 모든 것 조차도 감사뿐이에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름답게 이루시고

그분께 안길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에요.

그분은 아버지잖아요.

능치 못함이 없는.

 

예수의 죽음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신 것처럼,

은총이의 죽음을 통해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할 것을 확신해요.

 

하나님은, 나를 살리려고 신의 한 수를 두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나를 살리려 하셨고, 나의 우상을 깨뜨리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자체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 자체로 감사로 바꾸어주셨죠.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말을 하였습니다. “, 신기한 것 발견했어. 당신이 2019614일날 자살을 하려고 유서를 써 놓은 날. 그날, 어떠한 일이 있었는 줄 알아? 당신이 죽으려고 하던 그 날에, 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어. 하나님은 당신이 죽으려고 하는 날에 바로, <예배>를 드렸다고.”

 

제가 지금 정신을 차려서 해야 할 한 가지 일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는 일이에요.

저는, 이제... 제게 주신 연단과 고난을 즐거워합니다.

신랑되신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정한 신랑 되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도

감사함으로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한 남자의 고백

어떤 한 남자의 고백입니다.

 

나는 우주와 영원 속에서 희미한 빛도 없이 홀로 퀴퀴한 술과 절망에 절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합리적이고 유일한 길은 물에 빠져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근처의 해변으로 차를 몰고 간 다음 완전히 지칠 때까지 바다를 향해 오랫동안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뒤를 돌아보자 멀리 있는 해안의 불빛이 언뜻 보였습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되돌아서 그 불빛을 향하여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하지만, 절망 앞에 굴복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어두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당신은 어디에서 영원히 비추는 빛을 보았습니까?

 

예수님의 삶도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의 삶이었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 대적들로부터 수많은 핍박과 고초를 겪으셨지만 길이 참으시고 마침내 당신 자신을 인류 대속을 위한 속죄양으로 드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성취하신 승리의 삶이었죠.

 

오늘 어떤 사람은 금과 명예를 얻었네.

다른 이는 폭풍이 출렁이는 바다로 나갔지

다른 사람은 미지의 세계를 정열의 눈으로 보았네. 해외로도 나가 보았지.

어떤 사람은 병원균을 찾아냈다네.

하지만 내 걸음이 향하는 곳은 바로 성전의 기도처소라네.

나는 오늘 그리스도라는 가장 귀중한 친구를 얻었다네.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내일 결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지막 호흡을 내쉬며 죽는 순간, 당신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가 되는 순간, 즉시로 당신이 거할 영원한 처소인 음부와 낙원이 결정됩니다. 부디, 천국에서 천사에 의해 받들려 올라가서 천국에서 만납시다. 기도를 따라해주에요.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 마음의 문을 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그 흘리신 피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 이제 제 맘에 오시옵소서.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너의 등불 밝혀 있나. 기다린다 신랑이- 천국 문에 이를 때에 그가 반겨 맞으리-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기다리던 성도들과 그 문에서 만날 때- 참 즐거운 우리 모임 그 얼마나 기쁘랴-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당신의 신앙의 깊이는 ?

 

 

전도

현대 교회 속에 있는 우리는, 머리로만 전도를 생각하지 말고 실제로 나가서 한사람씩 직접 만나서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내가 직접 나가서 전도를 해봐야만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여 기독교를 무시하는 사람, 예수를 알지만 죄가 많아서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 .담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마음에 감동이 없다는 사람,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 천국을 부정하는 사람,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 생각해 보고 믿겠다고 하는 사람, 제사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 등등 너무나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예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처럼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지침

󰋎 하나님의 영속적인 사업이다.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선대하신다.

64:5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신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풍성한 삶의 약속을 받는다.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게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https://youtu.be/3bl0IbTEnOU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저자소개

주은총목사는 경희대학교에서 법학석사를 마친 후, 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녀는 또한 여성으로는 드물게 맨 몸으로 꿈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여, 도전과 모험의 길을 걷고 있다. 저서로는 <, 행복한 사람아>(쿰란), <딸아, 너의 결혼은 지금 행복하니?> (쿰란) 등이 있다.

 

판권 페이지

1-천국과 지옥

1.영원한 운명은 언제 결정이 되는가?

2.부는 하나님의 선물

3.성도의 죽음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심

4.예수를 믿는 자에게 죽음이란

5.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6.당신은 자살하고 싶은가요?

7.한 남자의 고백

2- 빛이 있을때 믿으라

1.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

2.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예수

3.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4.잘못된 메시야관

5.빛을 믿으라

 

부자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장엄했으며 그의 영구는 긴 행렬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사실상 그의 죽음에서 혼자였으며 그의 영혼이 찾아간 곳은 지옥이었습니다.

 

부자의 장례식과는 반대로 나사로는 무연고 장례로 시청이나 구청에서 나와서 그의 시체를 간단하게 처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그 순간. 상황은 바로 역전이 되죠.

 

나사로는 홀로 쓸쓸하게 죽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으며 천사들을 시켜서 그를 아브라함 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제하며 영원한 안식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의 상태는 죽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예요. 죽을 때 결정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결정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결단을 하느냐, 그것이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