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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

주은총목사/ 에스겔의 환상

by 주은총목사 202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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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저자주은총출판담장너머발매2023.09.27.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에스겔의 환상

 

47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13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는 이 경계선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몫이니라

 

14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15이 땅 경계선은 이러하니라 북쪽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을 거쳐 스닷 어귀까지니

 

16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경계선과 하맛 경계선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경계선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17그 경계선이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경계선이 또 북쪽 끝에 있는 하맛 경계선에 이르렀나니 이는 그 북쪽이요

 

18동쪽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 강이니 북쪽 경계선에서부터 동쪽 바다까지 측량하라 이는 그 동쪽이요

 

19남쪽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쪽이요

 

20서쪽은 대해라 남쪽 경계선에서부터 맞은쪽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쪽이니라

 

21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22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의 민족적 상황

먼저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보기까지의 민족적 상황을 보면, 에스겔은 선지자 이기도 했지만,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살던 때는 느부갓네살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제국의 힘이 강하여 유대의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지위 높은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갈 때 에스겔도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바라본 예루살렘 성전은 우상의 소굴이었습니다. 성전 구석 구석에 우상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성전에 찾아와서 우상에게 경배했습니다. 심지어 성전의 담을 헐어보니 한 골방의 사면에는 우상들의 그림이 가득했고,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70인의 장로들이 향로를 피우고 우상에게 경배까지 하였습니다(8).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10:18, 11:23). 하나님은 "비록 노아, 다니엘, ,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 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14:14)"하신 대로 성전은 파괴되면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완전히 멸망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는 비천한 자를 제외하고 모두 다 잡아갔습니다.

 

[왕하24:14]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 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그발강가에서 기도하는 에스겔

포로로 잡혀간 무리 속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바로 제사장 에스겔이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지 5년동안 그 어디를 보아도 자신의 민족이 다시 해방을 얻고 그리운 민족의 땅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은 암담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에스겔은 이국의 땅 그발 강가에 나와서 조국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젊은 에스겔의 마음에는 "빨리 나라를 잃고 포로된 이 상황에서 돌이켰으면.” “지친다.” “힘들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 민족을 이렇게 방관만 하고 계실까?" "이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알고 계실까? " 왜 빨리 개척교회에 부흥을 안 주실까? 왜 빨리 가정이 화합이 되지 않을까? 왜 빨리 나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아픈 가슴을 가지고 기도한 에스겔 눈앞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된지 14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새롭게 세워질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40). 그리고 우상이 너무나 가득하여 성전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성전에 가득한 모습도 보여 주셨습니다(43:1-5).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 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편으로 흐르다가 굽이쳐 돌고 돌아 아라바로 흘러 내려 마침내 사해 바다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의 놀라움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발원하여 흘러나온 이 물은 보통의 물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바다 사해를 살려내고, 이 물이 흘러가는 강변의 황무지를 생기가 넘치게 하는 옥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를 가서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깨닫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을 했던 거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4:7)

 

창일한 강물을 이루었다.

천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가서 성전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수를 따라 줄로 재기 시작했습니다. 일천척을 재고 에스겔을 건너가게 하니 물이 발목에 올랐고, 또 같은 방법으로 일천척을 측량하고 물을 건너게 하니 물이 무릎에 올라 왔습니다. 또다시 같은 방법으로 일천척을 측량하여 건너게 하니 물이 허리에 올라왔고, 다시 한번 더 일천척을 측량하여 물을 건너게 하니 헤엄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47;3-5)

 

과연 나는 어느 은혜의 단계에 이르렀습니까? 나의 신앙 정도와 상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문턱만 밟는 신자입니까? 은혜가 무엇인지 그 맛을 과연 알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성도입니까? 능력을 받아 말씀과 겸손으로 봉사하는 성도입니까? 깊은 은혜에 잠겨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주님의 뜻대로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신자입니까?

 

여기서 줄이란 자 또는 척도를 말합니다.

이 말은 구약의 '카도쉬'<거룩하다>와 신약의 '캐논'<척도,> 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전 안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굽이쳐 돌고 돌아 아라바로 흘러 내려갔습니다. 성전 안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따라가며 줄자로 1,000자를 재고는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건너게 했습니다.

 

.1,000자씩 측량 후 건너게 한 결과

여기서 말하는 한 자는 한 규빗으로 남자 어른의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노아의 방주 크기를 계산할 때 <규빗>이란 용어가 나오죠. 규빗은 대략 4550cm으로 계산한다. 쉽게 계산하면 500m의 거리마다 건너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1,000척씩의 거리를 측량하고 건널 때 첫 번째는 발목에, 두 번째는 무릎에, 세 번째는 허리에, 네 번째는 잠기게 되어 헤엄을 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물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4가지 단계입니다.

 

1) 발목에 오르는 것 같이 은혜를 조금 맛본 단계입니다.

발목에 잠기는 은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 처음으로 은혜를 체험해 봄으로 은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단계입니다.

 

은혜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이 맛을 알기 전에는 성전 문턱만 밟을 뿐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시계추 같이 기계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교회에 나오던 신자였으나, 은혜를 받고 나면 적어도 타의에 의한 출석하는 수준을 벗어나게 됩니다.

 

은혜가 아직 발목에 있을 때는, 아직도 죄의 성품인 내 뜻이 많이 살아 움직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져 있는 자신을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것입니다.

 

말씀 대로 살아 보려고 시도해 보지만 할 때마다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은혜는 받아서 알게 되었지만 아직 받은 은혜대로 살아가기 위한 능력은 너무도 미약하기 때문에 자주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나 자주 넘어집니다 오 주여 나 자주 실패합니다 오 주여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나 슬픈 일 당합니다 오 주여 나 심히 괴롭습니다 오 주여

저 마귀 유혹합니다 오 주여 나 승리하게 하소서 오 주여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세상의 시험과 유혹 아래서 쉽게 은혜를 잃어 버립니다.--그러나 성령의 생수를 받고 나면 복음으로 심령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격이 변화되고,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예수님으로 인해 새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죽었던 심령에 새 생명의 기운이 들어왔으니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2) 무릎에 오르는 것 같이 시원한 은혜를 맛본 단계입니다.

은혜받는 것을 좋아합니다.--은혜의 맛만 본 상태의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 은혜를 사모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은혜를 맛보기를 원합니다.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기를 기뻐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고 은혜가 있는 자리에는 항상 앞장서서 참석하게 됩니다.

 

또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무릎에 닿은 생명수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의 능력과 중요성을 깨닫고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합니다.

 

왜 시험이 옵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읍니다. 기도의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내뜻인 죄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이 자주 부딪히는 갈등을 갖게 됩니다. -아직도 상당히 많은 옛 성품이 자주 되살아나 말씀대로 살고 노력하려는 뜻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되살아나는 옛 성품의 방해와 충돌로 자기 자신의 내부적으로 심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수많은 기도와 인내, 연단의 훈련 과정이 필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3) 허리까지 오르는 상당히 깊은 은혜를 받은 단계입니다.

 

허리까지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제, 세상을 의지하던 습성이 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생활로 몸에 베여 갑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는 말씀이 자신의 신앙고백같이 중요한 말씀이 되어집니다.

 

우리가 허리에 오르는 은혜의 단계에 들어가면 비로소 남을 섬기는 봉사, 전도하는 봉사,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한 충성된 봉사자가 되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생명수가 깊어 헤엄쳐야 하는 은혜의 단계입니다.

모든 것이 충만한 단계를 말합니다. 물이 얕을 때에는 거치고 부딪치는 것이 많아 넘어지고 쓰러지는 상처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창일한 깊은 은혜의 단계에 오면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오직 믿음, 소망, 사랑의 구속한 주만 보이는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발목이 잠기는 삶은 거의 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서 자유자제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이고, 무릎이 잠긴 상태는 행동이 불편한 상태이고, 허리가 잠긴 상태는 행동의 자유가 거의 사라진 상태이고, 몸이 완전히 잠긴 상태는 자신의 의지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전히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가 된 것입니다.

 

이 몸을 받아 주소서.

1. 사랑하시는 나의 예수님 병들어 쓰러진 내 영혼

십자가 보혈의 손길로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의 죄로 물든 내 영혼 절망과 시련속에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비오니 은혜를 베푸옵소서 이 몸을 받아주소서

 

2. 사랑하시는 나의 예수님 나를 구속하여 주신 주

믿음 소망 사랑 주시며 내게 은혜 베푸셨네

이 세상의 무엇으로 갚으리까 주님의 크신 그 사랑

연약한 이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눈물만 흘리옵니다

 

3.사랑하시는 나의 예수님 이제 무엇을 바라리요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사명 감당 하렵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

오로지 주께 영광 돌리며 영원히 찬양하리라

이 몸을 받아주소서 이 몸을 받아주소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사역자는 하나님의 군사된 자로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역자에게 안 믿는 남편이 있어 보십시오. 날마다 성전으로 달려가는 사역자를 믿지 않는 남편이 바라다 보면, 얼마나 교회에 대한 선입견이 안 좋겠습니까? 그래서 사역자들은 사역을 할 때 저희 교단에서는 반드시 서면으로 된 <배우자의 동의서>를 받고 사역을 시작합니다.

 

아내가 은혜가 떨어져 보십시오. 버틸 힘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신앙이 없는 남편은 이때다 싶어서 교회에 빼앗긴 아내를 데리고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다른 데로 이사를 가버리는 거죠.

 

어떤 사람에게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자신을 핍박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몸도 좋지 않아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믿지 않는 배우자 때문에라는 불평 대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내 신앙이 쭉정이인지 알곡인지 점검하게 되었고, 때가 가깝다는 말씀을 실감하고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반열에 들기 위해 더욱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성령이 있으면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피곤함이 없습니다. 기쁨으로 일들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41절을 보니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들은 핍박당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이 있으니까, 생수의 강이 흐르니까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성령이 말라서 피곤하,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줄기만 남아있고 그 외 물은 다 말라서 강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남편문제와 더불어 자신의 몸을 치료해 주실 것을 여러 번 기도드렸지만 웬 일 인지 하나님께서는 완쾌시켜 주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몸을 지탱해 나갈 정도의 힘만 주실 뿐, 병의 뿌리는 뽑아 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이 사람이 하나님께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고요하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잔잔한 음성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이 그의 마음속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 강 중간에 높이 5척이나 되는 돌이 막혀 있어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여! 이 바윗돌을 옮겨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서 그 마음속에 보여 주시는 말씀은 바윗돌을 내가 옮겨 주랴?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물의 높이를 높여서 바위를 덮어서 배를 타고 능히 바위 위를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주님 바위를 옮기는 것 보다 강물을 더 증가시켜 바위를 덮어 버림으로 바위 위를 유유히 건너가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부터 그분은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병과 문제로 인해 낙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육신의 가시가 있었지만, 그것을 능히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넘치는 은혜를 주셔서 그로 하여금 수십 배, 수백 배로 큰일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의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도 나를 짓누르는 어둠의 권세를 능히 이기고 나갈 수 있도록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보여야 합니다. 예수가 보여야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생의 위기 상황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나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가 보이면 비로소 모든 것이 은혜가 됩니다.

 

새소리도 아름답고, 꽃도 아름답고, 세상도 아름답고, 고생도 아름답고, 위기도 아름답고,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십자가와 그분의 말씀과 예배로 인해 예수 그분이 나의 구주 하나님으로 보여질 때에 과거도 은혜요, 미래도 은혜요, 오늘 내가 사는 하루하루, 사건 사건이 다 은혜요, 감사요, 행복입니다.

 

진펄과 개펄-어정쩡한 중간지대

여기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 놀라운 생명의 역사에서 제외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진펄과 개펄입니다. 진펄은 강가의 수렁과 같은 곳으로 강물이 불어나면 강처럼 성령에 충만하고 강물이 줄면 땅처럼 보이는 쓸모 없는 습지대입니다. 개펄은 밀물 때는 바다가 되고, 썰물 때는 육지가 되는 곳으로 역시 쓸모 없는 곳입니다.

 

이 두 곳, 진펄과 개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지대입니다.. 이처럼 확실치 아니한 어중간한 상태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47: 11)

 

요한 계시록 3:15-16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했습니다.

 

야고보 1:6-8절에 "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 이 없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진펄과 개펄, 그들은 바로 의심하는 자요, 두 마음을 품은 자요,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 물 같이 정함이 없는 자요,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자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하나님과 남편사이 하나님과 혈육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자이다. 우리를 위해서. 바로 토하여 내칠 자들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47:11)

 

기도 줄을 놓친 사람은 성전에서 예배와 기도를 드릴 때는 마음이 일시적으로 충만한 것 같으나, 그때 뿐 입니다.

 

가려고 일어나면 그 뜨거움이 온전히 유지되지 못하고 허망합니다.

 

황무지나 사해 같은 죽음의 바다까지도 소성하나 진펄과 개펄은 소생되지 못하죠.

 

진펄은 강의 습지대로서 아주 마른땅도 아니고 물속에 잠겨 있는 땅도 아닌 그 중간 상태의 진흙땅입니다.

 

개펄은 바닷가에 있는 땅으로서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바닷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는 드러나는 땅입니다.

 

하루는 성령에 충만 했다가 그 다음날은 썰물처럼 성령은 온데간데

없이 다 빠지고

 

허망함과 육체만 남은 사람은 살아나지 못 한다는 것이죠.

 

성령의 충만함과 뜨거움을 계속해서 유지하십시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주님, 성령의 충만함이 흘러 넘치게 하시어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심히 많게 하시고

 

강 좌우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게 하소서🌸

 

죽은 사해가 살아나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인해 바다의 물이 소성하였습니다. [아라바] 즉 사해로 흘러 사해가 살아났습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물고기가 살아나고 모든 생물이 나타났습니다. 생명수는 이름 그대로 생명을 주는 물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거나 성령이 약한 채로 교회의 일들이 맡으면, 그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내게 생명이 없기 때문에, 내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생명수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믿음 없는 사람을 살려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제단 앞에 나와 하나님과 충분한 기도의 교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기 위해 허리를 동이셨습니다. 서로가 자기가 높다고 다투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신 주님은 돌연히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섬김의 모습을 손수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벗었다란 <자기의 자존심과 주장을 벗어버렸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방법과 논리와 생각들을 주장하며,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섬기는 사람은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바로 이 시간 예수님의 발 아래에 무릎을 꿇기 원합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기고 내 심령에 은혜가 있게 하시고 생명의 강물이 풍성하게 흘러가게 하옵소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기쁨

18세기의 유럽에 예배의 생명력은 잃게 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어 고민을 가졌던 진젠도르프 백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는 한 번도 체험할 수가 없구나.’라고 고민하며

 

그때 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나이 27세에 성령의 능력을 받고 또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모라비안 교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라비안 교파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중시했고, 그림이 아니라 실체를 중시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모라비안 선교회가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존 웨슬리 때문이었습니다. 이 존 웨슬리가 대서양을 건너 여행을 할 때, 목사였는데도 성령의 체험이 없었고,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자신의 신분이 목사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가 대서양을 지나가는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배 갑판 한 구석에서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찬송을 합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그들의 얼굴에 평안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도대체 저들과 나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나는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저들은 어떻게 찬송할 수 있는가? 저들은 누구인가?’ 하고 알아보았더니 이 사람들이 바로 모라비안 교도였습니다.

 

웨슬리가 충격을 받고 1738524일에 영국으로 돌아와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모라비안 교파의 예배처소에 찾아가서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거기서 그는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사학자들은 모라비안 선교회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라비안이라는 작은 교파가 20년 동안 해외로 보낸 선교사가 천 여 명이 된다. 다른 보수적인 교단이 200년 동안에 보낸 선교사들보다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낸 것이다.”

 

이들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사람이 변화되고, 우리 안에 예수께서 살아계신다는 확신과 우리 속에 주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7:37)

 

우리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는데,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때론 인생사에 지치고 힘들 때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풍요로움이 생깁니다. 힘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강이 흐르는 곳마다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곡식을 무르익게 만듭니다.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력이 공급됩니다. 마찬가지로 속에 성령이 있고 생수의 강이 흐르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에스겔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47:6)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47:9)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47:10)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47:12)

 

이와 같이 성령의 물이 우리 삶에 흘러넘칠 때 우리의 사역도 생명력과 능력을 얻을 것이며, 우리가 하는 일이 놀라운 열매를 맺을 것이며,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니, 부활과 기적과 생명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주님, 살아있는 모든 날 동안에 매일 처럼 예수님과 교제하게하시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옵소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삶에 개입해 주시고, 생명의 강물을 만들어 주주옵소서. 성령의 강물이 지나가는 곳마다 죽은 자가 살아나게 하시고, 썩은 바닷물이 살아나게 하시고, 고기들이 모이며 열매가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너의 푸른 가슴속에

 

너의 푸른 가슴속에 십자가의 흔적 있다면

주 위해 이제 일어나 너의 믿음 주께 보이라

너의 뛰는 가슴속에 하늘의 불 타고 있다면

그나라 그 영광 위해 너의 삶을 주께 드려라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나라 이제 곧 오도록

우리 주의 은혜의 강 이땅 휩쓸며 흐르도록

하나님의 눈물을 가진자 일어나 주님을 따르라

 

너의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면 온세상 주 영광 보겠네.

너의 삶을 불태워 주를 섬겨라 주의 영광 나타나겠네.

오래 황폐한 이 땅 꽃을 피워라

 

주의 향기 가득 하겠네.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나라 이제 곧 오도록

우리 주의 은혜의 강 이 땅 휩쓸며 흐르도록

하나님의 눈물을 가진자 일어나(일어나)

주님을 따르라

 

너의 십자가 가지고 주님을 따르면

온세상 주의 영광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