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성산책/요한복음

주은총목사/ 요한복음12/ 나는 쇠하여야 하리

by 주은총목사 2023. 7. 13.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네이버 오디오로 들어보세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845/clips/143

 

요12/ 나는 쇠하여야 하리 (by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

제목: 나는 쇠하여야 하리 본문: 요3:22~30

audioclip.naver.com

 

주은총이야기

1-주은총이야기-서막

2-아달랴

3-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출간예정)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꿈이있는 순복음 교회

주은총목사

 

제목: 나는 쇠하여야 하리

본문: 3:22~30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셨고, 요단강 옆 광야에 거하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세례요한보다 예수님의 인기가 점점 커가는 것을 보면서 못내 아쉬워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불평을 털어놓는 장면이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대지방,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남쪽 지방에 제자들과 함께 가셔서 얼마 동안 머물면서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에논]샘물이 많은 곳을 의미하고, [살렘]평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한쪽에서 세례를 베풀고 계시는데, 다른 한쪽 에논에서는, 세례 요한 역시,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오늘 (3) 본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볼 때,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서로 [라이벌]관계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은 라이벌이죠. 물론,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도 모든 조건이 좋습니다. 인간적인 면으로 따져보면 그렇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목수출신입니다만,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이죠. 예수님이, 고향 회당에서 설교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목수 주제에 무슨 설교냐?”, 배척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아버지가 제사장입니다.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받던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선택받은 집안 출신입니다.

 

둘 다 사역자입니다만, 세례 요한이 먼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이미, 세례 요한은,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죠.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물론 왕까지도 그의 설교를 청해서 들을 정도로 유명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세례요한이, [메시야]가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죠. 모든 유대인들이, 세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 인기나 인지도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세례는 세례요한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예수님도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세례를 받는 수가, 역전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몰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부 예수님께 몰려갑니다.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저희가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흥미롭게도, [라이벌](rival)이라는 말은, (river)“이라는 말과,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리버라이벌은 어근이 같죠.

 

[라이벌], , “경쟁자, 본래, 같은 강물을 마시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마을에서 다른 강물을 마시고 사는, 일면식도 없는 자와는, [라이벌]이 될 까닭도, 이유도 없습니다. [라이벌], 같은 강가, 말하자면, 동일한 업종이나, 분야에 있어야 [라이벌]이 될 수 있습니다.

 

라이벌의식, 항상 같은 강물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경쟁심입니다.

지금 예수님과 세례요한도, 공교롭게도, 한 강물을 두고, 세례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오늘, 자기 스승에게, 이런 말을 알린 이유가 뭘까요? 바로, /시기심, /경쟁심, 때문입니다. ‘라이벌 의식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스승에게 고자질하는 겁니다. 이것은,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게 하고, 질투하게 하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눈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다 예수에게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수님의 이적을 보러, 병이나 고치려고, 떡이나 주니 배부르게 하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참된 생명의 메시지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얼마 안 되었죠.

 

교회에 한때,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뭘까요?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한다. 잘 된다.’ 라는 바로 기복신앙이었습니다. 과연, 십자가와 낮아짐, 좁은 길을 설교를 한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만을 구할 뿐, 진리이신, 참이신, 그분의 삶을 본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무리들이, 등을 돌리고, 예수님께 몰려간 가장 큰 이유는, /갖가지 표적과 /이적과 /기적 때문이죠. 예수님이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보이시자, 무리들은, 전부 [세례요한]에게서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무리들은,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가 자기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세례요한이 누렸던 충만한 기쁨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이런 말을 하죠.

 

스승님. 지금 요단강 저쪽 편에서, 전에 스승님이 말씀하신 그분도, 세례를 배풀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민중들의 인기가 쏠려 가는 데 대하여 불안과 시기를 금치 못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예수가 세례를 받았는데하는 생각까지도 들었겠죠. 자기의 지도자를 아끼고 존경하다보면 이런 사태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사람입니다. 그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죠.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요한이 자신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오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요한은 예수님의 주권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커지고 싶고 흥하고 싶기에 불화가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을 험담해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기의 인기와 권위가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에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죠.

 

재물과 존귀가 다 주에게서 나오며 또 주는 모든 것을 통치하시나이다. 주의 손에 권능과 능력이 있사오니 사람을 크게 하심과 모든 사람에게 기력을 주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역대상 29:10~13>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편 16:5~6>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은 시편을 통해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이미 줄로 그어저 있는 것처럼 예비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윗은 이 현재의 내 상황이 하나님께서 줄로 그어서 주신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 계획안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병을 주셨건, 가난을 주셨건, 실패를 주셨건, 그것은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서 주신 것이죠.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날 때 시므이가 다윗에게 돌을 던지면서 욕을 하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잘 믿었는데,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사업이 잘 안 되고, 불치병이 생기고, 이래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세상적으로 봤을 때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에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은, 지금 시기와 질투를 유발시키려는 사탄에게, 넘어지지 아니하고, 주님을 향한, 자기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오히려 보여주죠.

 

세례 요한은, 모두가 자기를 떠나가도, 오히려, /기쁨이 충만합니다. 장가간 신랑 친구가 기뻐하듯이, /기쁨이 충만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세례 요한은 이와 같은 유대인의 풍속을 배경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 당시 유대인이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신랑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그 신랑의 한 친구로 말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이 표현을 물려받아서 교회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사명은 이스라엘과 예수를 함께 만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이스라엘 사이의 혼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이 완성되어 다 끝났을 때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습니다. 예수는 흥하여야 되겠고 자기는 쇠하여야겠다고 말한 것은 시기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진정 기쁨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을 보면, 딱 무슨 장면이 떠오르는가요?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나요?

 

(11:24~27)

(24)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의 장로 70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2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70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26)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70명의 장로들은 예언하는 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모세]만 할 줄 아는 예언을, [엘닷][메닷]이라는 자가 한다는 겁니다.

 

(27)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28)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여호수아]가 이 말을 듣고, 당장 못하게 하라고 진언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모세]의 대답이 너무 복됩니다.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야망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악착같이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야망의 사람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신의 힘과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죠. 끝없는 경쟁 심리와 질투가 그들의 마음과 삶을 다스립니다. 그러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됩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교만한 자리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넘는 순간 망하게 되어 있죠.

 

세례 요한은 자신은 빛이 아니라 빛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고, 메시아가 아니라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그 길을 미리 닦는 심부름꾼이요 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은 그 선지자나 또는 그 말씀이 아니라 그 선지자그 말씀을 전하는 소리일 뿐임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교만하여지거나 거만해져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는 가운데 주께서 정하신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나 가진재물 없으나 나 남이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있는 건강 있지않으나 나 남이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 을 보았고

나 남이 들지 못한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없는것 같게 하셨네

 

예수그리스도는, ‘이요 진리” ‘생명입니다. /“진리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진리절대 수용해야 할 삶의 목표이죠.

 

남자가 여자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랑의 고백이 참된 고백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왜 일까요?

 

몇 십 년만 지나면, /그 사랑의 고백을 한 주체도, /그 고백을 받은 대상도, 모두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순간의 고백일 수 있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된 고백일 수는 없습니다.

 

//돈을 들여서,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도, 그 집은 참된 집이 될 수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소멸되고,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참된 집일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 자체가, 안개와 물거품처럼 허망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144:4) 죽음 뒤에도 남아있을 영원한 생명을 택하십시오.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참됩니다. 진리되신 그리스도는 바로, 영원한 생명이죠.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의 분기점은,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무관한 것은, /그 무엇도 참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에서 벗어난 것은 소멸되게 마련입니다. 참된 것이 아닌 것은,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하였죠.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점점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고, 자기 자신은 점점 더 쇠하여야 한다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야 하겠고, 나를 따르는 사람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어야 하겠다는 말이기도 하죠.

 

사실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그를 떠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요한과 안드레가 원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자기의 수는 줄어들게 하였고, 예수의 수는 증가하게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요, 그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땅에서 온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었죠. 세례요한은 하늘에서 오신 분으로 자신과는 비교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창조자와 피조물은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은, 사람들의 평가에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주님께 의탁하고 자신의 할 일을 밀고 나갑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받은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을 알기 때문에 상황이 어떠하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소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는 충성 된 종이었죠.

마지막에는 자신까지 헤롯의 칼에 목이 베여 순교했습니다. 하나의 태양이 떠오르면 뭇 별들은 사라지듯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빛나야 합니다.

 

이번에 청년들 수련회로 강남 금식기도원에 다녀 왔습니다.

우재와 수아, 요한이와 준수에게 2편씩 주제를 내주어서 미리 설교준비를 해오라고 시켰습니다.

 

오프닝 예배를 이기쁨 전도사님께서 찬양과 김수대 목사님께서 기도로 말씀을 우재가 첫 설교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그 다음번과 그 다음 날에는 수아와, 요한이, 준수가 차례로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 그런데... 청년들이 얼마나 신실하고 뜨겁고 조리있게 잘 하는지. 다들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수대 목사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수아에게 수아야! 너 왜 이렇게 잘하냐. 아버지 보다 네가 훨씬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청년들이 서로에게서 영적인 도전을 받았습니다. 청년들 4명이 다음학기에 수시로 신학교에 입학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기쁨 전도사님은 보통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하는데... “어떻게 청년들에게 설교를 할 생각을 했냐고? 너무 좋다고. 매년 왔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우재와 수아, 요한이와 준수를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세례 요한처럼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였지요. 교회에서 기도를 한 다음 수아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수아야

교회에서 이제 들어왔다.

이젠, 하나님의 친구 '수아'

비상할.

날아 오를 준비만 하면 되는거야.

 

첫째,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복종할 수도 없어.

 

그러므로

방언은 꼭 받아야 한다.

(체험을 해야지, 뭔가가 달라 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

 

그러려면, 반드시 너 혼자서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지만 방언을

할 수가 있고.

 

(지금 현재, 너는 너 혼자만의 기도시간이 절대 부족이다!)

 

둘째, 성경을 바탕으로한 신학체계가 잘 잡혀 있어야 되.

 

세째, 건강관리.

현재의 수아는 자신의 육체가 관리가 안 되어 있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거?

알쥐???

 

배우자를 잘 만나야 되!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짱돌'이 되어

훨훨 날...!!!!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야망은 그 사람이 죽을 때 함께 사라짐으로 헛되지만, 주님이 주신 소명으로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이 죽어도 그가 남긴 열매는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쇠하여야, 주님이 흥할 것입니다. 내가 약해야만, 주님이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내가 흥하면, 복 같지만, 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주님은 크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게 손햅니다.

 

내가 쇠하여야만, 그게 복입니다. 내가 쇠하여지면 쇠하여질수록, 모든 걸 내려놓고, 가만히 서서, 집중해서, 복되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 더욱더 나의 기쁨이 충만케 될 것입니다.

 

주님, 내게 주신 소명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꿋꿋하게 가게 하옵소서. 남과 비교하지를 말게 하시고 나는 쇠하여지고 주님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생애를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는 생애가 되게 하옵소서.

 

나 주의 믿음 갖고 홀로 걸어도

나 주의 믿음 갖고 노래부르네.

폭풍 구름 몰아치고 하늘 덮어도

나 주의 믿음 갖고 실망치 않네.

주는 내 친구- 진실한 친구

끝날까지도- 주를 믿으리

폭풍 구름 몰아치고 하늘 덮어도

나 주의 믿음 갖고 실망치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