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 있는 순복음 교회 주은총목사
당신도 “삼손”인가요?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령의 은혜’를 그에게서 거두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능력도 없어질 뿐 아니라 마음의 기쁨과 평안도 모두 다 사라지기 때문에 정신병자처럼 불안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성령의 은혜가 거두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은커녕 귀찮은 존재가 될 뿐이다.
사울 역시 성령의 능력을 거두어 가셨다. 그랬더니 사울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떠난 것은 물론이고 정신병자처럼 되어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살로 마감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삼손도 마찬가지였다. 구약에서 가장 놀랍고도 슬픈 이야기가 삼손의 이야기이다. 그는 그의 시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고, 나귀턱뼈 하나로 수 천 명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에게는 엄청난 능력과 기회들이 열려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몇 번의 승리를 맞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읽을 때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절이 있다.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16:20)
구약에서 이 말씀만큼 슬픈 구절도 없다. 아, 이 일을 어찌할까? 하나님이 떠나가다니. 사람이 애인한테 버림받을 때의 그 충격, 그 슬픔을 못 이겨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버림받다니.
오늘날에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과거에는 성령의 능력 가운데 주님을 위해 수고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님께 아무 쓸모없이 된 것이다. 과거의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자신의 삶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자신의 정욕과 야심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다. ‘그래, 옛날의 나는 죽었어. 이제 나는 예수로만 사는 거야.’ 하나님은 그들의 ‘고백’을 귀하게 보셨고,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붓고 그들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점점 그들의 삶에 들릴라가 나타났다. 세상이 다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세상의 매혹적인 음성에 귀를 기울였고,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들의 몸을 세상에 내어 맡기었다.
나 역시, 신앙에 있어서, 조금은 힘든 시기가 있었다. 평생을 신앙 안에 자란 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세상물정에 눈이 어두웠다. 그 결과,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누구보다 힘든 삼십대를 지나야 했다.
물질도 날아가고,
건강도 날아가고,
세월도 날아갔다.
그렇게 3여년을 지났을까.
건강이 안 좋은 이유도 있었지만, 고통을 잊고, 삶의 활력을 위해 운동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사람들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고, 주님의 음성이 둔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건강을 핑계 삼아, 힘든 마음을 달래려고, 아니 세상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점점 운동에 중독되어 가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위안을 찾으려면 찾을수록, 목이 말라 물이 아니라 마치 탄산음료를 마신 것처럼 더 갈증 나고 삶은 더 공허하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전진할 힘을 잃고, 사람 앞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깊은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주님과의 교제도 약해지면서 삶을 살아갈 힘도 잃어 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 인생에 얼마나 영적인 힘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지를, 정말 주님 없으면 한 시도 살 수가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그러면서, 내면에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은총아, 방 빼라!"
‘방빼? 무슨 방을 빼지?’
그 순간, 성령님이 주신 말씀을 찾아보니, 성전 안까지 사탄의 무리가 파고 들어와 아예 방을 차지하고는 거기서 버젓이 살고 있는 장면 즉 느헤미야 13장이었다.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도비야를 위하여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주는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느13: 4-5)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제사장 ‘엘리아십’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전 골방 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지만, 이스라엘의 원수에게 성전의 방을 내주었다. 아, 세상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이런 일을 일컬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면서, 하늘나라 신문에 뉴스 특보로 떴을 것이다.
요즘 나의 방엔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뒤 돌아 보게 된다. 지금 내 방의 중심엔 누가 서 계신지 살펴보게 된다. 나의 마음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아니하고, 악한 마귀가 살림을 차려 놓고 있다면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이야기일까?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몸과 영과 혼, 전 소유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 에너지의 모든 근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나도 모르게 들어와 있는 모든 세속적인 가치관들을 청소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게 하옵소서. 내 안에 있는 작은 오염 물질 하나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능력 있는 주님의 것으로 살게 하옵소서. 내 방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우리의 마음속에 ‘도비야’가 독사처럼 자리 잡을 수 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망가지고, 세상에 점점 관심이 있고, 돈이나 자아나 허영심등이 내 마음의 방을 하나 둘 차지한다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죄는 처음에는 소리 없이 들어온다. 그러나 처음에 작게 들어온 죄가 나중에는 나를 다스리고, 나를 지배하고, 마침내 나를 끌고 다닌다.
어떤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다. 지옥을 향한 길은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
때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무디어진다. 점점, 열정이 식어지고 기도의 양이 줄어들고, 전도에 생명을 걸어야 할 사람이 다른 일로 인해 바빠진다. 운전하고 있는 남편이 지나가는 아리따운 긴 머리의 처녀에게 한 눈을 팔아 아내의 눈총을 받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하나님보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좋아 ‘들릴라’만 바라보고 웃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인지, 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변함없는 순수함과 그 풋풋함! 그리고 주를 향한 열정. 그렇기에, 내 인생의 여정에 불어 닥친 환난과 고난의 파도조차 때론 사랑스럽다. 이 일로 인해, 사랑하는 주님을 애타게 부를 수 있다니. 오호라, 나의 영혼을 더욱 깨어나게 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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