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주은총이야기
1권-주은총이야기-서막
2권-아달랴
3권-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출간예정)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주은총목사/ 한 낱 욕심 많은 노인네-사울
내게는 나의 ‘어머니’처럼 목회의 길을 걸으시는 ‘이모님’이 계신다.
이 책은 이모님과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연단을 허락하신 귀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난다. 벌써 약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 없이 유년 시절을 보낸 내게, 이모나 친척형제들이 있다는 것은 감히 꿈도 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돌봐주던 할머니가 쓰러져서, 고아원으로 보내지려는 찰나에 ‘생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내 나이 14 살에 처음으로 외할머니도, 이모도, 외사촌들도 만나게 되었다.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이 없었던 터라, 목과 발에는 때가 가득히 끼어 있었고, 푸석한 머리에, 허름한 모습은 마치 영화에나 나오는 ‘전쟁고아’와 다름없었던 몰골이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고, 직업이 미용사였던 이모는 미용실로 데려가 머리를 잘라주었다.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거울 속에 비친 소녀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빗질을 할 때마다, 한 웅 큼씩 떨어지는 ‘이와 벼룩’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이모와의 몇 번 안 되는 만남 중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 이모는 이십 여 년의 넘는 세월을 TV 한 대를 벗 삼아 한 평 남짓한 곳에서 미용을 하며, 두 아이들을 뒷바라지를 하였다. 가끔씩 미용실을 찾아가면, ‘전기’를 아끼느라, 방안은 어두웠고, 사촌아이들은 이모에게 돈 "500원"씩 용돈을 타 갔었다. 그 때 용돈도 탈 수 있었던 그 사촌들이 얼마나 부러웠든지.
그런데, 그렇게 좁은 미용실에서, 인생을 보내던 이모의 인생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개 ‘미용사’였던 이모가 신학을 하며 목회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많은 개척자들이 야망을 품고 도전하는 목회도, 80% 이상이 실패를 하는데, 설마 이모가 ‘일’을 내겠어? 하는 생각도 잠시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주님은, 이모를 통해 더욱 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성이라 목사 안수를 받기 어려운 시절부터, 교단의 임직원에 이르기까지 이모의 자리는 일취월장하였다. 이제는 아무도 그녀가 “미용사”출신이란 것을 믿지를 않았다. 그녀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심지어 동료목사님들까지 소위 “성공한 목회자”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주 커다란 빌딩도 2-3채 소유(?)하고 있었고, 제법 건실한 ‘유치원’도 가지고 있었다. 선덕여왕에 나오는 고현정역의 “미실”처럼 그녀의 권력(?)은 대단했고, 이모가 속한 지방회 소속 목사님들이 그녀의 지도를 받았다.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그녀는 점점 더 여성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었다.
겸손한 사울이 변하다.
부모님이 목회자이셨고, 주의 길을 걷는 형제와 친척들이 많기에, 어쩌면 나는 다른 이들 보다 더 많이 목회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많은 목사님들이 맨 손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정말 갖은 고생 끝에, 잘 지어진 본당과 교육관, 주차장을 갖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조차, 잘 지어진 건축물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덕분에 목사님도 이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안정적인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료 목회자 사이에서도 시샘어린 눈빛을 받을 수도 있고, 이제는 어깨에 상당히 힘을 주게 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노회에서는 물론 총회에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를 역임하게 되었다.
이렇게 겉보기에 잘 나가는 교회인 것 같은데, 성도들은 속으로, 자꾸 목사님이 변해간다는 서운함마저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성도들보다, 건물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고. 내가 이상한 걸까? 왜 자꾸 시험이 드는 걸까? 하며 속으로는 상처를 받는다. 그러면서 점점 더 목사님과 교회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런데, 그 이유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목회자가 초심을 잃고 변했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살아남은 목사님들은 대체로 엄청난 ‘집념과 고집’을 가지고 계신다.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목사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지독하다. 쉽게 지지 않는다. 아니 ‘주의 종’이라는 신분 때문에, 감히 목회자에게 반기를 들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사님이 변하셨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신실했던 목사님이 실망스럽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사울처럼. 사울도 그 누구 못지않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전에는 금과 같고 정금과 같았던, 그렇게 신실하던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과 기쁨을 잃고 어찌 그리 변하였는지.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애가 4:1-2)
나는 어렸을 적, 가난으로 인해 놀림을 많이 받았다. 한 번은, 동네 아이가 먹고 떨어뜨린 새우깡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나는 후다닥 주워서 내 입속으로 넣었다. 그 순간에 동네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거지래요. 거지래요”
사실, 나는 예수님이 부유한 집에 태어나지 않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다는 사실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왜 ‘마구간’에서 태어났을까? 왜 예수님은 잘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비천하고 무식한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 왜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창녀와 같이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을까? 하는 생각들을 한 적이 있다.
예수님이 비천한 말구유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삶을 마치신 까닭은, 그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도, 그 어떤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동일하심을 알게 하기 위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목회자는 얻어서 안 될 부와 명예를 교회를 통해서 너무 많이 얻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성도들의 재물을 착취하는 자리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날 목사의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목사가 비굴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너무나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사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울 왕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왕권이 견고해 지는 것과 나아가서는 왕권을 아들 요나단에게 양위’하는 것이었다. 사울은 자신의 욕심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처럼, 어떤 공동체건 그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도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도자가 음란해지면 공동체에 음란이 넘쳐나게 되고, 지도자가 물욕에 눈이 어둡게 되면 공동체 전체가 돈의 손아귀에 붙들리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명예욕에 사로잡히면 공동체가 쓸데없는 것들에 치중하면서 사단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된다.
그러므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해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라고 감히 확신하지 말라! 사도바울의 고백이 생각나지 않은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고전 9:27)
사울을 보라. 하나님의 도구였으나 사탄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사울의 영혼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왕으로서 언약했던 순종의 권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 순수했던 모습은 차츰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돈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는 한 낱 욕심 많은 노인네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머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악령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사탄’에 의해 사울을 붙잡고 있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눈에 ’보일 만큼‘ 극심하게 사울을 지배하게 되었다.
고. 집. 불. 통 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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