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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요한복음

주은총목사/ 요한복음8/ 포도주 한 잔 하세요.

by 주은총목사 2023. 6. 14.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네이버 오디오로 들어보세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845/clips/138

 

 

주은총이야기

1-주은총이야기-서막

2-아달랴

3-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출간예정)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꿈이있는 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포도주 한 잔 하세요. (2:1-11)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는 인생의 삶에서 모든 쾌락, 모든 극치의 감정을 추구했습니다. 성의 쾌락에서, 술과 마약은 물론, 전쟁에 가담하여 스릴을 맛보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요트로 바다를 항해함은 물론, 스페인에 가서 투우를 해보기도 하고, 문학의 세계에 탐닉해봄으로, 삶의 기쁨과 행복과 의미와 소망을 찾았지만 세상의 헛된 것이 그에게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과 칭송을 받은 문헌,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학자 헤밍웨이는 영원한 기쁨과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살로써 자기의 삶을 비극적으로 끝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도 40세 전후에서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에 관하여 고민하면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왜 나는 살아야만 하는가? 내가 바랄 것은 무엇이며 또 인생에서 무엇을 소망할 필요는 무엇인가? 인생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으로부터 모면할 그 무슨 길이 있는가? 톨스토이는 그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어느 여행자에 비교했습니다. 그 여행자는 사나운 짐승에 찢겨 달아나다가 메마른 우물을 발견하여 그 안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우물 밑 바닥에서 큰 뱀한마리가 그를 삼키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다시 우물 밖으로 기어 나오다가 미끌어져 겨우 칙넝쿨을 붙잡고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 칙넝쿨에 매달려 있어 그의 팔이 한없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독사의 밥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죽을힘을 다해 칙넝쿨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에선가 쥐가 나와서 그가 매달려 있는 칡넝쿨을 갈아먹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얼마있지 않으면 이 칡넝쿨이 끊기는 순간 뱀의 입속으로 떨어질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을 이 칡넝쿨에 메달려 있는 인생으로 비교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해답을 철학이나 과학에서 찾으려 했으나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함으로 자살하는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살을 기도하던 톨스토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에서 해결책을 발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1-55에 보면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영원한 기쁨과 감격과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때 나는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으려는 희미한 소망이 없었던들 나는 벌써 오래전에 자살해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바랄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없이는 생명이 존재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산다는 것을 동일하며 하나님은 곧 생명이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삶의 포도주로 밋밋한 나의 삶에, 무미건조한 나의 삶에 영원한 기쁨과 찬양과 구원의 감격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와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혼인집 하면 기쁨이 충만하고 떠들썩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좋은 날 기쁨의 자리이며 축하의 자리인 이 시간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잔치가 한창 무러 익어갈 때 그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2:1-3)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만사가 귀찮고 밥맛도 없고, 마음에 소망이 사라지고 그만 살고 싶죠. 기운이 쭉 빠지고 즐거움이 사라진 생활입니다. 평안과 샬롬이 없고, 마음이 불안으로 꽉 들어차서, 깊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기쁨이 사라져서 삶의 힘을 잃어 버리고, 괴로움이 우리의 정신을 붙잡죠. 건강도 약해져서 아무리 활동하려고 해도 몸의 기운이 없습니다.

 

생각이 어문 데에 필이 꽃혀 있고 마음이 꽉 잡혀 있습니다. 사람이 싫어 질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꽉 들어차서 할퀴고 찢는 그런 마음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내 옆에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오는 것은 영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 은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십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23:1-3)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 것과 난 비길 수 없네.

오 주님, 채우소서.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2:4-5)

 

예수님은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부터 예수님은 사생활을 끝내고 공생애에 들어서, 마리아나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순히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한 인간(女人)으로 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행하러 왔지, 사람의 뜻을 행하러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죠.

마리아는 예수를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때도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암담한 시간이 있습니다. 나에게 부딪쳐 오는 사건의 이유와 의미를 알지 못하는 때가 있죠. 그러나 이와 같은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사실 당신과 저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 것일까요?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 그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하라시는 그대로 하면 됩니다.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방법에 어떤 다른 것을 첨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신앙적으로는 실패입니다(하나님의 약속과 아브라함의 신앙-흔들려 인간의 생각을 첨가시킬 때 성공같이 보였으나 실패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일하십니다.

 

6절에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했습니다.

 

보통 유대인 가정에서 물 항아리는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발을 씻도록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요즘같이 길이 포장이 되어 있고 신발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유대 지방에는 비가 오지 않아 먼지는 많은데 신발은 바닥에 끈만 달린 샌들을 신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밖에 나가 다니다가 집에 들어올 때에는 발을 씻어야만 하였습니다. 마른 날에는 먼지 때문에, 궂은 날에는 진흙 때문에 발을 씻는 물이 필요하였습니다. 본래는 위생상 그런 것이겠지만 이것이 점점 내려오면서 <결례> ,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에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완전수라고 해서, 7을 좋아하죠. 그런데, , 여기에, 6이라는 숫자가 있습니까?

 

6인간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완전한 숫자가 아닌, 불완전한 숫자인 6이 놓여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666이 그렇습니다. 인간을 나타냅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는 사람을 상징한 것이라고, 그 항아리가 비었었는데 하나님 없는 인간은 잃어진 존재를 상징하죠. 항아리에 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비어있는 항아리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누굴까요? 바로, 우립니다.

 

우리가 비어있습니다. 이 충만해야 포도주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물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사시사철 청정할 수 있는 것은, 물 때문에 가능합니다. 성령에 충만하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해야 기쁨을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다. 아구까지 철철 넘치게 채워져야, 기쁨을 공급하고, /참 안식과, /참 평안을 공급하지요.

 

그런데, 물이 없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성령의 교제가 단절이 되니, 만사가 귀찮고 밥맛도 없고, 마음에 소망이 사라지고 그만 살고 싶죠. 기운이 쭉 빠지고 즐거움이 사라진 생활입니다. 아무리 활동하려고 해도 몸의 기운과 마음의 의욕이 떨어집니다. 예수님은 내게 아구까지 물을 채우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막에 서 있는 내가,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해야 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텅 비어 있는 그릇에 물이 아구까지 가득 채워지듯이, 텅 비어있는, 내 심령에,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면 떠다가 주라는 것입니다.

 

미래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만들어 낸 신조어가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란 말입니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입니다.

 

세상의 과학과 문명은 /더 발달할지 모르지만, 인간성이나 도덕성은 /극도로 타락하여,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오히려, ‘디스토피아’, 지옥이 되어 간다는 경고의 말입니다.

 

세상은 좋은 것을 먼저 주고 나쁜 것을 나중에 주죠. 죄는 먼저 죄 안에서 즐거워하게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뿐입니다. 죄로 인한 쾌락의 마지막은 환멸과 눈물과 고통입니다. 결국은 영원한 파멸뿐입니다. 결국은 실망하죠.

 

세상은, 당장은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그 맛과 질이 떨어지다가, 어느날, 포도주가 뚝 떨어지듯이, 그것마저 떨어지는 날이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즐기는 포도주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즐기는, 쾌락과 세속적 행복이 있습니다. /자기 주위에 유쾌한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며,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락한 환경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모든 쾌락이 끝이 나고 어느 한 순간, 나에게 기쁨을 주던, 그 포도주가 없음을 발견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세상의 포도주가 떨어지고,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는 사실, 복 받은 자입니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본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죠. 그것은 복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히 실망해야 하죠. 내 자신에 대해, 철저히 실망한다는 것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땅의 것만 관심을 갖던, 수준 낮은 자가, 하늘의 것도 사모하게 되는, 수준 높은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2:10)

 

보통은, 좋은 술을 먼저 내 놓고, 술이 취해서, 분간을 못할 때쯤 되면, 그때는, 안 좋은 술을 내놓는데, 어째, 이 집은, 그 반대로, 좋은 술을 나중에 내놓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이 말씀은, 좀 어렵게 표현하면,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다릅니다.//세상은, 먼저, 좋은 것을 주고, 마지막을 위해 나쁜 것을 남겨 놓습니다.

 

먼저, 잠시 동안의 죄의 쾌락이 있고, 그 다음에 죄의 삯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방식이고, 세상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정반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약속된 땅,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광야로 이끄십니다.

 

/광야를 체험하게 하고, /그 후에, 축복의 땅으로 들여보냅니다. /먼저 십자가가 있고, /그 다음에 면류관이 있습니다. /안 좋은 포도주를 먼저 주고/ 그 다음에, 좋은 포도주를 주십니다.

 

주은총 목사의 영성산책을 듣고 있는 분들 중에, 나는 지금, 품질이 떨어진, 쓴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기분 나쁘거나, 서운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을 가장 좋은 포도주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안좋은, 쓴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위해, 가장 좋은 포도주를 아직 남겨 놓으셨습니다.

 

오늘 두손을 활짝 들고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요. 주여! 주여! 텅빈 항아리를 가지 고 나옵니다. 삶의 의미가 없고, 무기력하고 지친 나의 육체를 가지고 나옵니다. 채우소서. 아구까지 물이 철철 넘치도록 채워 주옵소서. 성령으로, 기도로,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 주소서.

 

병든 자는 오늘 나음을 입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오늘 힘을 얻게 됩니다. 슬픈 사람은 기쁨을 얻게 될 것 입니다. 소망 없는 자는 소망을 얻고, 마음이 불안한 자는 평안함을 얻게 됩니다. 오늘 두손들고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아구까지 채웠으면, 물을 떠다주는 <주님의 하인>이 되십시오.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이 거듭나 새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빈 항아리처럼 그 심령이 비어 있습니다. 돌과 같이 굳은 마음입니다. 차갑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쓸모가 없죠. 그리스도 없는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그 마음속에 새로 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 두 손 들고 나왔사오니 하늘의 기쁨과 포도주로 충만하게 채워 주소서. 인생을 힘차게 살아갈 에너지와 소망, 당신의 도우심과 위로가 아구까지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생명 드리리라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