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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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총이야기
1권-주은총이야기-서막
2권-아달랴
3권-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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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요4/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
(요한복음1:12-14)
브라질에서 30여년을 선교를 하고 계시는 김철기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2020년 05월 19일(화) )
청춘과 아내를 아마존에 묻고 아마존에서 30년 선교한 결과가 암이냐?라는 말에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질문을 나를 부러워하는 질문으로 해석하고 싶다. '어떻게 너는 복을 그렇게 많이 받았느냐'라는 질문으로 이해한다.
한번도 선교사가 되려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나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만 34세에 선교사로 아마존에 왔다. 힘든 아마존의 환경보다 더 힘겨운 핍박과 비난과 모욕을 받으며 수십년을 살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상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내를 잃었다. 거듭 말라리아와 댕기열에 노출되며 고혈압, 당뇨, 간질성 방광염, 사시, 복시현상, 녹내장, 갑상선 암이 발병하여 두번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그야말로 나는 여러 질병을 많이 가진 병 부자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선교사 사도 바울은 25년 선교사역을 했다. 사역 말기에 늙고 병들었다. 함께 했던 친구들마저 그의 곁을 떠난 상태에서 감옥에 죄수로 갇혀 있다가 로마 감옥에서 순교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그가 가진 유익한 것들을 모두 해로 여겼다(빌 3:7). 그리고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가 마침내는 목숨까지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존경한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가? 그분은 인류역사상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 분이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그 주님은 33세의 나이에 십자가에서 강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들, 주님의 모든 제자들도 제 명대로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보내심을 받은 땅에 가서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성경에서 주님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과 모욕과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결국에는 수치스런 죽음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2장 22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격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구원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자아의 죽음은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로서의 삶을 동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고 일하는 장소가 보냄을 받은 선교지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골 골짝 빈들에도 소돔같은 거리에도 가겠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께만 드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기쁘게 지겠습니다'라고 찬송을 부른다. 이 찬송이 우리의 진실한 고백이라면 우리가 복음 전도자로서 세상에서 많이 잃어 버릴 수록 감사한 것이다. 어느 순교자가 고백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유한한 것을 잃어버림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질병을 갖고 아마존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고난의 열매로 주님께서는 내게 무었을 주셨는가?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허락하셨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여러가지 것들보다 차원이 다른 이 땅과 영원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복을 하나님께 받았다. SOLI DEO GLORIA!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천사 나팔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우리의 최고의 복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자신은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처럼 몇 백억 빌딩을 구입하여 임대료로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며 성공이라고, 이것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은퇴를 앞둔 어떤 목사님이 예수님은 우리가 부자 되기를 원하시며 예수님 잘 믿으면 이렇게 해주신다고, 가난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 죄라고 설교하시는 것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은 더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습니다. 과연 이것이 복일까요?
기독교는 기복종교가 아닙니다. 자녀가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고,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등, 복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다 있죠. 복을 빌던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왔는데 신(神)만 바뀌고 기복 습관은
그대로라면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 믿으면 이런 복을 받는다는 가르침은 어찌 보면 이단보다 더 해로운 우리 내부에 있는 독입니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복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 자체가 복인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봐도 세상적인 기준의 복을 받은 제자는 없습니다. 가족도 없고, 재산도 없었죠.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듭나고 중생하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일까요? 죄란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기 욕망을 앉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인데,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목에 힘주고 교만을 떠는 게 죄죠.
그런데, 거듭난다는 것은 이러한 자기를 부인하고(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내 심령 안에 예수님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에는 생물학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수명이 다하면 누구나 맞게 되죠. 그러나 영적 죽음은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악마가 무엇인가요? 악마는 흰 소복을 입고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입에 빨간 고추장을 묻히고 나타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악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죠.
“복이란 죄, 죽음, 사탄으로부터 풀려나 그리스도의 나라 가운데서 그(예수)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죄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9-11)
빛이 왔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가 오셨으되 피조물이 그를 알아 보지 못 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이신 빛이 왔는데도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오셨는데 하나님인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였던 거죠." (사1:3)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있어서 이러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예수를 믿으니까, 내 아내가 예수를 믿으니까 “나는 자동적으로 구원받겠지” 하지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못 믿겠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참으로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믿을 수도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믿는 자는 곧 성령으로 거듭난 자인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은혜중의 은혜요 복중의 복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잘 한 것은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함이 없습니다
나의 평생에 가장 복된 일은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
나의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은 내가 예수님을 주로 섬긴 것이라
이 세상 살 동안 내가 걷는 길이 때론 험하여서 넘어질 때도
주의 강한 손이 나를 붙드시니 나는 예수님만 주로 섬기며 살리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 다 주의 은혜니 내가 걸어갈 모든 날도 주만 섬기며 살리
오직 예수 이름 부르며 살아가리라 이 세상 살 동안 내가 걷는 길이
때론 험하여서 넘어질 때도 주의 강한 손이 나를 붙드시니
나는 예수님만 주로 섬기며 살리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 다 주의 은혜니 내가 걸어갈 모든 날도 주만 섬기며 살리
오직 예수 이름 부르며 살아가리라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까요?
거듭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2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름난 바리새인이며 유대 민족을 다스리는 산헤드린 공회 (유대인의 통치를 위한 의회) 의원인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3“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3-7).
“거듭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정말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변화, 즉 영적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탄생, 즉 거듭남은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고후 5: 17; 딛 3: 5; 벧전 1: 3; 요일 2: 29; 3: 9; 4: 7; 5: 1-4, 18).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로도 나타납니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왜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이 뒤따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인은 영적 ‘죽음’ 상태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적 생명을 얻을 때, 성경은 그것을 새로운 탄생에 비유합니다. 오직 거듭난 사람들만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립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당신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신다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따라 해 보세요.
“하나님, 저는 죄인이며 죄에 대한 벌을 받기에 합당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고, 그분을 믿음으로써 제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직 당신만이 저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은혜와 용서의 결과로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1.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1:12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데, 나는 흙수저라서 유산은커녕 고생만 실컷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면서 “너는 금수저는 아니지만, 은수저인것만도 감사해라” 하면서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세금으로 10억을 덜컥 냅니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재벌의 자녀가 된다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란 Tv를 연출만 해도 큰 인기를 얻습니다. 대리만족을 느끼며 카타르시스를 맛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창조주, 섭리자, 심판자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룰 자니라(갈라디아서4:4-7)
2.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이 나의 카운슬러가 되어서 항상 내 옆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셔서 심령을 평안하게 하십니다.(요한복음14:26-2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14:16-18
14:26에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추진하면 실패를 한다는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게 되죠. [잠언 19:21]
우리는 다윗처럼 여호와께 묻고 또 묻습니다. 나의 계획과 뜻은 다 내려놓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어봅니다. 성령이 나의 영적인 카운슬러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의 말보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와서는 사람들의 말이 뇌리에 못처럼 박혀서 사람을 자꾸만 힘들게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되고 거리를 조금 두게 됩니다.
사람들은 은근히 돈으로 지배를 하려고 하죠. 부모의 유산 때문에 싸우고 있는 형제들, 며느리가 혼수를 적게 가지고 시집 왔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은근히 처갓집 도움을 바라는 남편과, 그 속을 들여다보면서 괴로워하는 아내…….
어떤 부모들은 돈이라는 끈으로 자식들을 움켜잡고 놓아주지를 않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돈을 지배하지 못해 돈을 잃고 자식을 잃어 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의 자녀를 고생시키기는 싫으니까, 자녀 대신에... 다른 사람을 자신의 <몸종>으로 두려고 하는 속이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신 주의 종들은 불을 지나오고 물을 건너며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죠. 그러면 그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년에 우울한 감정에 사로 잡혀 어떻게 키운 자식들인데. 지들이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화도 납니다.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 가면서 혼자서 눈물을 쏟게 됩니다. 자녀가 해야 될 것들을 과도하게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합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배신과 실망감이 크죠. 지나치게 자기에게 <집중과 몰두>를 하기가 쉽고,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괜히 감정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 사람의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쉽게> 퍼뜨립니다. 그것도 <부정적인 시각>과 <불신앙>과 <악평>의 말들을.
뱀에게 미혹된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그 선악과를 아담에게도 건넨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받아줄만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시각>과 <불신앙>과 <악평>의 선악과를 건넵니다. 자, 먹어봐
마치, 시어머니와 아들이 하나가 되어, 아들이 어머니편에 서서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묵묵히 그 상황을 견뎌내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여야 하죠. [시편 57:1]
다윗 역시, 사람들에게 오해와 가혹한 비난을 받았을 때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사자 가운데서 살고”,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은” 사람들 중에 있다고 표현했죠.(시편 57:4). 다윗은 그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로 향하며 그분 안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그 유명한 <조지 휫필드>(1714-1770) 역시, 논란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죠. 야외에서 설교를 했던 그는 사방에 벽이 있는 교회 건물 안에서만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심한 비판의 말에 대한 휫필드의 대답은 그의 묘비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내 평판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심판의 날까지 편안히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죽은 뒤 묘비에는 이렇게만 써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조지 휫필드 눕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위대한 심판의 날이 밝혀주리라.’”
고린도전서, 데살로니가,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 역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믿는 사람, 종교인, 유대인, 그리고 주님의 일꾼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쇠고랑에 묶이어 매도 수없이 맞았고 굶기도 셀 수 없이 하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곁을 떠났습니다.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이 떠나는 거야!”라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 무력함과 외로움 그 가운데서 자신을 보는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오직 예수만을 붙들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요함과 권능 안에서 자신을 보려고 안간힘을 다 하였습니다. 오직 그에게는 한 가지의 목표만이 있었습니다. 오직 하늘의 부르신 부름의 상을 쫓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
예수를 만난 사람은 창녀가 되었든지 세리가 되었든지 구두닦이가 되었든지 간에 자기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갈 줄 압니다. 잡힌 바 된 그것, 주님이 주신 소명의 길, 그 길로 기쁜 마음으로 좇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우리 삶의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존재하죠. 아무리 험난한 오해가 있고, 핍박이 있고 고통이 있을지라도 내 인생의 가장 큰 복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와 함께 살다가 죽는 것, 성경은 성도의 죽음조차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116편 15절에서는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또한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서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부디, 예수와 한평생을 살고,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하늘나라에서도 나의 슬픔과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당신과 나의 마지막이 천국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세상사람 날 부러워 하지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한 것...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당신을 위해 삶을 드리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주님이 홀로가신 그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길을 나도 가오
험한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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