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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 창세기37/ 내 인생의 하프타임

by 주은총목사 2025. 1. 20.

https://youtu.be/eITaFPGxuVE?si=RayQq-XjubrE2NdU

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교회/ 주은총목사

 

창세기37/ 내 인생의 하프타임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

(창세기 3117~32)

 

들어가는 글

인생을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눈다면, 인생의 전반전은 성공을 추구하는 기간으로, 후반전은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이죠. 게임의 승패는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에 판가름이 납니다.

 

인생의 전반전을 마감하려는 사람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공>에서 벗어나 <인생의 의미>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전반전을 어떻게 보내는가요? 학교 다니죠. 대학입시를 위해서 죽도록 매달립니다. 오직 대학이 (인 서울)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학과는 대충 성적에 맞춰서 가고. 왜 가는지 무엇이 올지는 아주 막연합니다. 대학 가면 그동안 못 놀았던 것, 열심히 놀기도 하면서 애인이나 친구를 찾습니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서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죠. 인생이 잘 풀리기도 하고, 점점 꼬이기도 합니다. 갈등도 하죠.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봉급과 기분좋은 휴가, 자녀의 학자금을 제공받고 삶의 의미를 더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죠. 결국 혼란과 좌절이 슬그머니 찾아옵니다. 어떤 때는 가도 가도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책임지고 나갈 일이 너무 많죠.

 

그러다가 주춤하는 일이 생깁니다. 몸이 아픕니다. 이혼을 하기도 하죠. 다윗처럼 정당하지 않는 여자관계로 짐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업이 잘 안 되고, 투자를 잘못해서 많은 재산을 날리고도 빚을 지기도 합니다. 이런 인생을 갖는 전반전, 참 많죠.

 

우리의 남은 인생이 행복하려면 먼저 걱정하지 않는 법천천히 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내 영혼이 자유로워져야 하죠. 자유로움은 나이 듦의 특권입니다. 70대 중반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꼽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인간생태학 권위자인 칼 필레머 코넬대 교수가 미국 내 각계각층의 70~100세 어르신 1000여 명을 만나 물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이들이 빼놓지 않고 한 말이 있었죠. “걱정 좀 덜 하고 살걸” “온갖 걱정 다 하고 살았던 게 후회돼

 

근심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불안의 근원인 <미래>는 내가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 염려를 내게 맡기라. 라고 말씀하시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봄에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

칠흑같은 이 몸을 정금같게 하셨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우리 마음속 깨끗하신 영혼을 내리신 주-

죽음 이기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었네.

봄에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칠흑같은 이 몸을 정금같게 하셨네.

 

하프타임을 갖는 야곱

칼 필레머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에 책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 일을 걱정하느라 현재를 독살하는 행위를 당장 멈춰라.”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는 근심 걱정이 튀어 오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툭툭 튀어나오죠. 목사님께, 아는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중보기도를 부탁합니다. 이것들을 잡아 누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려놓았던 염려가 슬그머니 재방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6:34)

 

걱정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내 안의 갈망을 바꾸는 것이죠.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바뀌는 것입니다. 땅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죠.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늘의 평화가 내게 임합니다. 나를 얽어매던 것들에서 풀어지고 자유로워지죠.

 

스포츠 경기에서는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하프타임(Half Time)’이라고 하죠. 선수들은 이 시간을 통해 감독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경기를 할 것인가에 작전 타임을 갖기도 합니다. 오늘 야곱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삶의 하프타임을 갖고 작전타임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프타임을 갖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죠.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삶은 화려해지고 분주하지만 영혼은 황폐화되었죠. 야곱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무엇에 열심을 내는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나갈 방향은 어디인가?’

 

야곱은 이제 고향인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나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도망을 치죠.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일은 오직 자신이 압니다. 남은 모르는 법이지요.

 

야곱은 이곳에 빈털터리로 왔다가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들과 많은 재산을 일구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삶이 안정되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도망치다시피 하란을 떠납니다. 야곱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하프타임의 시간을 겪게 된 것이죠.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17-18)

 

왜 그는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의 집돌아가려고 하는 걸까요? 바로, 그의 마음에 갈급함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생겼죠. 더 이상 영혼에 힘이 없어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란에서는 그 갈급함을 채울 수 없었죠. 많은 재산도, 심지어 아내들과 자식들도 그 허전함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내면 깊숙이 공허하고 텅 빈 마음은 결혼을 했다고 하여서, 자녀를 많이 낳았다고, 돈이 많다고 해서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야곱에게는 더 이상의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인생이 끌려 다니다가는. 인생 후반전은 커녕 전반전도 뛰지 못하고 지치고 탈진하여 그렇게 뛰다가 퇴장하고 말리라!’는 위기감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야곱의 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을 때 그는 빈털터리로 혼자 에서의 손을 피해 도망올 때 만났던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이죠.

 

547나같은 죄인까지도

나같은 죄인까지도 찾아와주신 주 간곡한 음성 못잊어 마음문엽니다

피흘려주신 그 사랑 감당치못하여 상하신 주님 그 얼굴 우러러봅니다

목마른 사슴 갈하여 시냇물 찾듯이 메마른 영혼 말씀을 갈급해합니다

진리의 성령오셔서 인도해주시고 샘같이 솟는 그 말씀 넘치게주소서

질 그릇같은 이 몸도 깨끗게하시고 죽으나 사나 주위해 일하게하소서

영광의 주님 오실때 부끄럼많으나 흰 예복입고 주님을 뵈옵게하소서

 

야곱은 벧엘에서 자기를 만나 주시고 약속을 주시고 자신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다시 찾기 위해 이제 가족들과 함께 목숨을 건 도망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야곱의 하프타임입니다. 그는 그동안 오직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혼자 와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많이 낳고 재산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생각했죠. “나의 인생이 도대체 어떤 방향을 향해 흘러 가고 있는거지? 내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까지 한 일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인가? ”

 

야곱의 결론은 가나안을 향해 도망치는 거 밖에 없었죠. 야곱은 라반의 집을 떠나는 데 있어서 미리 알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칠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가만히 떠났습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야곱은 라반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철저히 잘 알고 있습니다. 호락호락 쉽게 보내 줄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19-20)

 

목축하는 사람들에게는 양털을 깎는 때가 큰 축제나 다름없기 때문에 모두들 정신이 거기에 쏠려 있을때. 야곱은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도망갔습니다. 길르앗을 통과하여 얍복 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이고, 거기만 들어가면 라반이 더 이상 추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현대사회의 특성 중 하나는 속도와 결과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죠. ‘누가 더 빨리 목표지점에 도착하느냐?’ “누가 더 빨리 돈을 버느냐?”만을 가지고 성패를 따집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제대로 된 쉼을 누리지 못하죠. 쉬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 채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번아웃(Burn out)’에 빠지고 맙니다. 영혼은 탈진하고 지쳤습니다. 짜증도 쉽게 내고, 면역력이 약해져 있습니다.

 

내가 고작 이러려고 그토록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에 파묻혀 살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고 마음이 허탈해집니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자신은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이죠. 우리 몸은 그분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꾸만 밖에서 들리는 소리만 쫓아갑니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다니고 환경에 휘둘리고 현실에 붙잡히니 자꾸만 영혼이 곤고합니다. 더 이상 움직일 원동력과 에너지가 없습니다. 몸과 정신, 영혼이 바닥을 치고 엔꼬 상태입니다. 나의 영혼을 잃어 버렸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돈을 왕창벌고, 명예를 얻고, 좋은 빌딩을 사고 이렇게 천하(온 세상)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성공은 결국, 영혼을 잃은 삶입니다. 생명이 없는 삶이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야 가능하죠.

 

그런데 그렇게 살려고 할 때 가장 큰 방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외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인 경우가 많죠.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길을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14:26)

 

여기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미워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세이조금 사랑하다‘ ’덜 사랑하다의 뜻으로 상대적으로 다른 것보다 덜 귀히 여기는 것을 표현합니다. 부모나, 형제,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은 부모나 형제,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는 것. 우선순위 1순위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정말로 미워하고 증오하라는 말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어디 있는지 확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냐? vs 부모의 뜻이냐? vs 형제와 아내의 뜻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vs 네 자신의 정욕이냐?

 

찬송가 2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맘을 나에게 바치어라 너 어디있든지 날 섬기며 기쁘게 날항상 의지하라

 

2.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맘을 나에게 다 바치고 사악한 죄에서 벗어나면 나 어찌 널구원 않겠느냐

 

3.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진바 모든것 다맡기고 네맘도 기쁘게 바치어라 풍성한 은혜를 더하리라

바치어라 네 마음을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네 캄캄한 죄에서 불러내신 주께서 늘 인도하시리라 아멘

 

추격하는 라반 (21~24)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 지 사흘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죠.

길르앗은 이스라엘 땅의 북동쪽에 있습니다. 요단강 동편입니다. 하란에서 길르앗까지는 약 250마일 이상 되는 거리인데, 야곱이 그 많은 짐승들과 가족들을 다 이끌고 10일 정도 만에 거기까지 갔습니다. 붙잡히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아주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죠.

 

, 그런데 라반은 야곱보다 더 빨리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7일 만에 이곳에 도착을 합니다. 물론 가축이 없었을 터이니까 빨리 달릴 수 있었겠지만.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31:21-23)

 

라반은 이놈 야곱! 붙잡히기만 해 봐라. 죽여 버리겠어. 어떻게 이놈에게 혼구녕을 내지?!’ 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사력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결단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세상의 부와 명예, 학벌, 성공 혹은 실패를 했던 모든 삶을 사도바울처럼 배설물로 버리고, 부를 쫓는 똥, 쾌락과 향락을 쌓는 똥.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관계없이 나를 위하여 아등바등 살아오던 똥들을 치워버리고 이제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살겠다고 하는 결단은 가장 중요한 결단입니다.

 

내가 남은 인생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다. 이제는 세상의 쾌락이나 내 마음대로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한번 살아 보겠다.’ 하고 결단할 때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꿈을 꾼 것이 아니라, 라반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주신 것입니다. 그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니까 야곱을 순순히 보내주는 것이지, 아니면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죠. 20년 동안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29)

 

그는 실제로 야곱을 해치기 위해서 왔죠.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다라는 말은 나는 너를 죽이려고 왔다는 말이 아닌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라반이 이토록 분노하며 야곱을 쫓아와서 해치려고까지 한 것은, 단순히 몰래 도망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가 아끼는 것을 도둑질해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30)

 

라헬의 드라빔 VS 당신의 드라빔은?

드라빔의 문제는 라헬이 '드라빔을 하나님과 함께 두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당신과 나의 문제일 수가 있습니다.

 

기원전 14세기와 15세기의 고대 근동의 생활을 소개하는 누지(Nuzi)토판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조상 중의 한 사람을 형상화해서 조그마한 수호신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자신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던거죠. 하나님도 나를 지켜주고, 드라빔도 나를 지켜 주고. 라헬은 자신의 앞길과 남편 야곱,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불안감을 버리고 평안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 '드라빔'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감추어 놓은 드라빔을 따르는 사람들, 즉 라헬은 누구인가요?

기독교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의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크게 두 가지 드라빔을 경계해야 하죠. 하나는 샤머니즘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맘모니즘(mammonism)'입니다.

 

무당같은 어느 기도원 원장이 자식과 남편의 앞날을 기똥차게 잘 알고 맞힙니다. 그러면 샤머니즘 적으로 달려가서 예언기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가요? 헌금봉투만 봐도 투시의 은사가 있다고 광적으로 열광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돈을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면 그것이 오늘날의 물질의 드라빔, 돈돈돈의 드라빔입니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쾌락의 드라빔을 섬깁니다. 여자, 동성애, 음란, , 마약, 핸드폰 중독, 주식, 비트코인 중독 등. 이처럼 또 다른 라헬들은 각자의 드라빔을 마음 깊은 곳에서 숨겨 두었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6:10)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2:15-17)

 

라반이 정신없이 쫓아가서 야곱을 붙잡은 다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가요? 바로, 드라빔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서 샅샅이 뒤져보죠. 라반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눈이 벌게져서 미친 듯이 물건들을 뒤지고 털어내고 야단법석을 피우고 난리를 칩니다. 사람이 도둑맞으면 자신의 어미 품도 들춰본다더니 라반이 꼭 그 모양이죠.

 

큰딸 레아의 장막을 뒤지고 두 몸종의 장막도 뒤지고 둘째 딸 라헬의 장막까지 뒤졌습니다. 라반이 뒤쫓아와 라헬의 장막에 들이닥쳐 드라빔을 찾는 위기의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당당하게 드라빔을 지켜 냈습니다. 드라빔은 라헬 자신의 목숨이고 삶의 이유였죠.

 

271 나와 같은 죄인 위해

(1)나와 같은 죄인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길을 피 흘리며 가신 주 그 주님을 배반하고 그의 사랑 버리고 자비하신 주의 맘에 가시못을 박았네 (2)가슴치며 통회하고 주님 앞에 나오니 십자가의 흘린피로 용서하여 주소서 땅을 치고 애통하며 밤을 새워 외치는 이 죄인의 울부짖음 물리치지 마소서 (3)사랑으로 용서하신 주님 은혜 고마워 마음속에 다짐하며 겸손하게 빕니다 죄의 상처볼 때마다 내 가슴을 찢으며 두번 다시 우리 주님 배반하지 않으리 아멘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말을 합니다.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31:32)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랑하는 아내가 바로 도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야곱은 드라빔을 훔친 자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아주 자신 있게 맹세하죠. 훔친 사람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아주 과격하게 이야기합니다.

 

야곱의 말대로 결국 그렇게 되죠. 실제로 라헬은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하고 베냐민을 낳다가 길에서 죽고 맙니다. 당신은 무엇을 의지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나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나요? 아니면 의지하는 다른 뭔가가 다른 드라빔이 있나요?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것도 섬기겠다는 태도가 바로 라헬이 가졌던 태도입니다.

 

오직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 헛된 드라빔을 버려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스스로 파멸을 초래할 뿐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중환자를 실은 앰뷸런스가 가다가 자동차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그때 운전자가 나와서 앰뷸런스의 길을 막으며 11분 정도를 못 가게 했죠. 급한 환자라 빨리 가야 한다고 해도 환자가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 어떻게 보상하겠느냐?’하고 시비를 하다가 정말로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환자가 죽었죠. 알고 보니 운전자가 상습범이었고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이 밝혀져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앰뷸런스가 죽어가는 환자를 싣고 갈 때 교통신호를 다 지키며 가는 것을 보셨나요? 빨간불이라도 마구 소리를 울리며 지나가죠. 사람이 죽어 가는데 신호등마다 서서 다 지켜가면서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가면 환자는 살 수가 없습니다.

 

환자를 실은 앰뷸런스는 교통법규를 위반해서라도 빨리 달려야 합니다. 법규보다 중요한 게 생명이죠. 사실은 그게 위반이 아니라 법규 위에 있는 겁니다. , 이제 죄악 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키세요. 지금, 당신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당신의 영혼은 지금 살 여력과 에너지가 없잖아요. 어서, 하나님의 손을 잡으세요. 하나님과 동행할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지금 예수님은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육체적인 안식, 마음의 안식, 그리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부르시고 계시죠. 세상과의 관계를 잠시 차단하고 오로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핸드폰, 유튜브, TV 다 끄시고 하나님, 내 영혼에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여 주옵소서.”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당신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인생을 앞만보고 달려 왔잖아요. 당신의 영혼, 마음, 건강은 어느 누구도 대신 지켜 줄 수 없습니다. 쉼이란 음악의 쉼표와 같죠. 아름다운 연주의 완성을 위해 쉼표가 필요합니다. 세상일에 복잡하고, 정치가 염려스럽고 혼란하다구요. 그래서 못 쉬겠다구요? 세상이 돌아가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영혼에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귀에 들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말씀하실 수도 있고, 때로는 영혼에 말씀하시는 세미한 소리를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하프타임을 '희미해지는 훈련''작아지는 것', '숨겨지는 것' ‘무기력 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행복해지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영적 생활의 향상을 위해 그리고 영원한 삶을 위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반전보다 나은 후반전을 위해 나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당신에게는 지금 하프타임이 필요합니다.

 

주님, 성공을 추구하는 전반전을 벗어나 이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후반전입니다. 나의 속도를 늦추고 하나님과 천천히 걷는 법, 동행하는 법을 익히게 하소서. 삶의 주위도 돌아보고

창으로 흘러드는 햇살도 느긋이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영혼을 온전히 회복하옵소서. 남은 생애, 하나님만을 뜨겁게 원없이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447 이세상 끝날까지

이 세상 끝날까지 주 섬겨살리니

내 친구되신 주여 늘 함께 하소서

주 나와 함께 하면 전쟁도 겁없고

주 나를 인도하면 늘 안심하리라

 

나 주를 따를 때에 주 약속하신 것

그 영광 중에 모두 이루어 주소서

주님의 뒤를 따라 섬기며 살리니

그 크신 은혜 속에 날 인도하소서

 

이 세상 온갖 시험 내 맘을 흔들고

저 악한 원수들이 안팎에 있으나

주 나를 돌아 보사 내 방패되시고

내 옆에 계신 것을 알게 하소서

 

저 영광 빛난 곳을 주 허락했으니

그 허락하신 곳을 늘 사모합니다

끝까지 쉬지 않고 주 따라 가리니

주 넓은 사랑안에 늘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