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tV_ZSitSXY?si=o-YoT1IYYLalgKZ7
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제목: 예수의 일을 먼저 구하는 자
성경: 빌2:19-30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주님께서 요구하는 사람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께서 찾으시는 일군은 과연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
1. 같은 마음의 소유자
2.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자
3. 연단으로 단련된 봉사자
[1]같은 마음의 소유자
바울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자기 생각이나 계획대로가 아니라 언제나 주님의 뜻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전용언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주 안에서”라는 말을 꼭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희망과 소원, 계획과 기대를 그리스도의 주권에 종속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것을 행동의 대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일꾼들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뜻과 계획을 앞세울 때 성공하면 교만해지고, 실패하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잘되거나 잘 안되어도 주의 뜻인 줄 믿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아니합니다. 잘 안되어도 감사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바울이 디모데를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그는 진실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여기에서 ‘뜻을 같이 하여’라는 말은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말입니다.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늘 마음을 같이한 사람이었습니다.
빌 2;2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라고 했죠. 성도들 피차간에 마음을 같이하지 못한 약간의 일들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평소에는 협력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하다보면 마음이 맞지 않아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과 디모데는 마음이 잘 맞았을까요? 그 비결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바울의 마음에 흐르고 바울의 마음이 디모데의 마음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밖에는, 내게 없다” “디모데 밖에는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디모데 너 밖에 없어.
바울이 '내가 너를 낳았다' 할만큼 디모데는 바울적인 그리스도인이요 바울적인 일꾼이요 또 바울과 함께 하는 동역자였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 바울은"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선생은 얼마든지 많지만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철저하게 그 아버지를 닮고 그 아버지를 따릅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의 편지 가운데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도여행 때 디모데는 늘 바울과 동행했던 것입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동행했고, 베뢰아, 고린도, 에베소는 물론 심지어 로마 감옥에까지 동행했습니다.
결국 동행한다는 것은 아들 됨을 의미합니다. 아버지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들 노릇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멀리 있는 아들은 아들이 아닙니다. 요즘 자녀들이 멀리 가 버려서 부모가 돌아가셨다 해도 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디모데는 성격이 강인하지 못하고 위장병도 있었습니다. 대개 성격이 꼼꼼하고 예민한 사람들한테 위장병 증세가 있지 않나요? 디모데한테도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하나됨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야 되는 줄 알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하나됨이란 전혀 타협이 없는 가운데서 하나가 되는 그런 조화 있는 일치입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성격을 보면 거의 정반대입니다. 바울은 추진력이 있고 디모데는 사고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정열적인 사람입니다. 잘못된 점을 보면 베드로까지도 신랄하게 몰아붙일 수 있는 사람이었죠. 바울한테 그런 정열이 있는가 하면 디모데한테는 자제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주도적 인물이요, 디모데는 협조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목적, 사고방식, 신학 방법이 같았습니다.
또한, 상황 판단이 정확하였습니다. 이 말은 냉정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변덕이 없는,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죠.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은 보내지 못합니다. 가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뜻을 주어서 보냈는데 그 곳에 가서 자기 본분을 잊고 현지인(現地人)에게 동화되어 버린다거나, 지엽적(枝葉的)인 문제로 좋다 나쁘다 하다가 일을 망쳐 버린다거나 - 이렇게 감정 주도적인 사람은 도저히 추천할 수도 없고 보낼 수도 없습니다.
1. 우리들의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 마귀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후렴
2. 우리들의 입은 갑옷 쇠가 아니요 우리들의 가진 검은 강철 아니요 하나님께 받아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후렴
3. 악한 마귀 제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 예수 앞서가시니 두려말고 용기있게 힘써 싸우세 최후 승리 얻을때까지 *후렴
4. 죄악중에 빠진 사람 죄를 뉘우쳐 십자가에 달린 예수 믿기만 하면 위태한데 빠진 영혼 구원 얻어서 천국백성 될 것임일세 *후렴* 일심으로 힘써 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2]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제자라는 이름을 가진 자만도 70인이 있었고, 특별히 훈련된 자도 12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결정적인 일을 하실 때 즉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그땐 아무도 주님 곁에 없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 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1절에 "저희가 다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하여 디모데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써서 보낸 서신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디모데후서 4장 9-11절이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함께 있는니라 네가 올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렇게 신실하였던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게 된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뼈 아픈 경험이었죠.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들이 많았듯이 사도 바울을 추종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이 복음 때문에 로마의 옥에 갇힌지 오래 되었고 또 얼마 못되어 사형이 선고될 지경에 이르자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둘 바울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디모데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빌립보까지의 멀고 험한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는 디모데가 그렇게 귀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2:22)"고 말씀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자기 욕심-자기 명예, 자기 소득을 위하는 개인적인 욕망들을 싹뚝 떼어 버려야 합니다.
자존심은 물론,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은 다 버렸기에 디모데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도 바울 앞에서나 협력자, 대리자, 동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디모데의 이런 자기 희생의 진실성이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바울의 정신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는 철저히 주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실행하면서 살았던 신앙인이었습니다.
나는 주님과 마음이 맞는 사람인가? 아니면 세상과 마음이 맞는 사람인가? 나는 내 일을 앞세우는가? 아니면 주님의 일을 앞세우는가? 나는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식으로 주님의 일을 하지 않는가?
디모데처럼 주님을 따르는 바울과 마음이 같고, 주님의 일을 우선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그립습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에바브로디도< 함께 수고한자>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도 개인적으로 안부를 전하는 성도들의 이름이 여기저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선교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었던 사람입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너무나 많은 적대자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름다운 좋은 친구들도 많았죠. 그들과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더욱 사랑하게 되죠. 도망가지 않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일컬어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형제란 말의 의미는 그만큼 바울에게 위로가 됐고 바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힘 있는 교회를 섬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휩쓸려 가면 되죠. 수 백 명, 천명, 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는 왔다가 갔는지도 잘 모르는 큰 교회를 섬기는 것은 별 어려움 없이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점이 있는 교회, 연약한 교회, 사람이 몇이 안되는 든든하지 못한 교회를 섬기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항상 위로와 평안을 끼치는 즉 순종하는 성도였고 주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열심을 내었고,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피해 도망가지 아니하고 함께 고난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에바브로디도를 다섯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형제’라고, ‘함께 수고한 자’라고, ‘함께 군사된 자’라고, ‘너희의 사자’라고,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소개했습니다.
특히 16절에 나오는 [수고]라는 말은 피곤해서 지칠 때까지 애쓰는 것, 탈진되기까지 수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수고한 분의 모본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습니다.
< 2:8>에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수고라는 것의 본질은 어떤 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시간을 희생하고, 정력을 쏟아 붓고, 물질을 소모하고,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죠.
바로, 에바브로디도가 그랬죠.
본문 30절을 보면,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겸손하게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예수님의 겸손한 복종의 정신이 바울에게로, 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게로 전달된 것을 볼 수 있죠.
에바브로디도는 십자가의 싸움이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어 용감하게 싸운 주의 군사입니다. 사도 바울보다 더 용감한 군사도 없었고, 그보다 더 투철한 믿음의 옹호자도 없었는데 바로 그 용감한 군사 옆에 에바브로디도라는 훌륭한 전우가 보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 영광나라
이 세상을 산다며는 얼마나 살 건가요 몇 백 년을 산다 해도 몇 천년을 산다 해도
주님 계신 영원한 곳 하루 만도 못합니다 힘쓰세요 힘쓰세요 주의 일에 힘쓰세요
세상 욕심 떨쳐내고 주의 사명 탐내세요 하늘나라 영광 나라 우리 위해 있답니다
부귀영화 세상 권세 일순간 지나는데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 위해 살아야지
주님 오실 그날에는 통곡하게 된답니다
전하세요 전하세요 주의 복음 전하세요 우리 복음 기다리다 듣지 못한 부모 형제
하늘나라 영광 나라 쳐다보고 운답니다 주님 위해 일하는데 어려움 많다지만
어려운 일 참아내면 기쁜 일은 더 많지요 어찌하여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답니까
일하세요 일하세요 주님 위해 일하세요 전도 충만 기쁨 충만 기도 충만 성령 충만
하늘나라 영광 나라 저기 저기 보입니다
3,연단으로 단련된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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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가 가지고 있었던 더 아름다운 믿음은 22절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
신경이 예민하여, 조그만 일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걱정하는 사람, 그리하여 위장이 약한 디모데. 디모데는 이뿐만이 아니죠. 고전16;10절에 의하면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 는 표현을 볼때 상당히 겁이 많고 수줍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강한 신앙의 사람이 되었죠. 여기의 연단은 어떤 시험과 같은 과정을 통과한 상태를 말합니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많은 훈련을 쌓은 것과 같은 신앙의 많은 연단을 받으면서 성장한 디모데 였죠
소포클레스가 여든세 살에 쓴 ‘필록테테스’라는 글이 있습니다.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는 전제아래 ,고통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죠.
필록테테스는 어린 시절 양떼를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오이타’라는 산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음하는 헤라클레스가 장작더미 위에서 죽어가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인 네소스가 건넨 독이 스며든 옷을 입은 탓에 온몸이 썩어들어가 죽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장작더미에 올라 불타 죽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장작에 불을 붙이지 못했죠. 지나가던 필록테테스가 장작더미에 불을 지피자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활과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선물로 줬습니다.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던 그리스군 장수였죠. 그런 그가 트로이로 가는 도중에 독사에게 발을 물렸습니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괴성 소리와 상처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가 모두를 질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방해가 되자 그를 무인도에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는 십 년을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목이 마르면 빗물을 받아먹고 배가 고프면 활로 날짐승이나 들짐승을 잡아서 먹었습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죠. 고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발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그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더 힘든 것은 배반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그는 증오로 버텼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통증을 묵묵히 견뎌내는 일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삶의 고통은 피해가는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고통은 남이 절대 대신할 수 없어.
오롯이 자기 것이거든.“
10년동안 외로운 섬에서 고통과 싸우며 죽음과 대면한 그 사람의 영혼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결국 상처와 활이 모두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극한 상처로 인한 고통과 그럼에도 죽음에 당당히 맞선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고결한 영혼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있는 유일한 활을 갖고 세상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고통은 남이 대신 할 수 없기에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자기만의 활을 갖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당당하게 맞이해야 합니다. 홀로 묵묵히 견뎌온 그 삶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이하고 이겨냈기에 치유의 활을 갖게 된 것이었죠.
그리스군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언에 따르면 필록테테스의 활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했죠. 무인도에 버린 그를 이제는 데려와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죠.
오디세우스에게 그 임무가 맡겨졌습니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젊은 장수를 데리고 가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필록테테스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죠. 필요하다면 죽이고 활만이라도 가져갈 심산이었습니다.
젊은 장수는 처음에는 오디세우스의 말대로 했지만, 필록테테스가 살아온 눈물겨운 삶과 격렬한 고통에 실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배반당한 사람을 또 배반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활을 필록테테스에게 돌려주고 국가에 등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국가를 구한 것은 그러한 인간적인 몸짓이었습니다. 결국 필록테테스는 트로이로 가서 치료를 받고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당신도 지금 뱀에게 발꿈치를 물려서 인생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나요? 필록테테스 역시, 온몸에 독이 퍼져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죠. 육체적으로 불구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불구였습니다. 그가 거주하는 장소인 ‘렘노스(lemnos)’라는 섬의 이름은 축자적(逐字的)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경계’란 의미입니다. 필록테테스는 이곳에 버려져 사회적으로 배척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불안하고 취약한 인물로 변하죠.
하지만, 살아남았습니다. 당신 역시 인생의 상처에서 나오는 고약한 썩은 냄새와 고통스러워하는 괴성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이 처절한 고통을 이겨내어서 뱀의 머리를 부서버릴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디모데가 훈련 과정을 거쳐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택한 것은 일시적이거나 충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 여러 사건을 통해서 디모데의 됨됨이를 경험했습니다.
“사람은 지나 봐야 안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이 시험해 보신 결과 믿을 만한 일꾼이라는 것이 생활 속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바울이 알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가구를 만드는데 쓰이는 <오크>라고 하는 고급 참나무 목재가 있습니다. 나무결이 그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비결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이 목재의 원료인 원목들은 폭풍이 몰아치는 장소에서 폭풍과 끝없이 싸운 나무들이라고 합니다. 폭풍을 맞은 나무가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나무결을 가지고 있듯이 슬픔과 시련, 고통과 천대의 폭풍 속에서 하나님은 인생을 강하고 아름답게 하십니다.
당신은 주님을 섬길 때 어떤 마음으로 섬기는가요?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실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가요? 당신의 교회를 향한 마음은 어떤 것인가요?
부디, 같은 마음의 소유자,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자, 연단으로 단련된 봉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나의 일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게 하소서. 디모데와 에바브로 디도처럼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와 양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달리는 말을 달리다 죽어야 하는 것처럼, 중간에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성되어서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않으며 나의 나됨 버리고 오직 주님 내 안에
살아있는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으며 부요해도 오만하지 않으며
모두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않으며 억울한 일 당해도 원통하지 않으며
소중한 것 상실해도 절망하지 않으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X2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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