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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빌립보서

주은총목사/ 빌립보서9/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by 주은총목사 2024. 12. 21.

https://youtu.be/pL6Bfh6vFVU?si=SDQ3SS5ADl8a609T

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212-18)

부제:목회자가 순교해도 기뻐하는 생활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피터 파울 루벤스는 17세기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로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잘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며 빛의 화가로 불리우는 렘브란트와는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플란더스의 개>라는 만화를 아시나요? , 추억의 만화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네로와 아로아의 풋사랑. 그리고 네로와 함께 우유배달을 하는 파트라슈.

 

우유배달을 하는 가난한 소년인 네로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 갑니다. 그런 네로가 일생을 통해 보고 싶어했던 그림이 바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였습니다.

 

만화에서는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안트베르펜 대성당이 그것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커튼으로 그림을 가려놓고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게만 그림을 보여줍니다.

 

가난한 네로는 은화 한 잎을 지불하지 못해서 루벤스의 그림을 보지 못하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이 그림을 보게 되죠.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명화 앞에서 행복한 얼굴로 파트라슈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는 천사들이 나타나서 네로와 파트라슈를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네로와 파트라슈가 항상 함께 동행하며 행복하게 우유를 배달하는 모습과 머릿속으로 오버랩되며 슬퍼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네로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작품 <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처럼, 우리의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목회자 부재시의 교회생활

2:12-18

 

사도바울은 목회자인 자신이 부재중인 교회생활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빛을 밝힐 것을 명하며 성도의 섬김과 봉사 위에 피의 전제로 자신을 올려드리며 설사 자기가 로마에서 순교해도 요동치 말고 주님의 뜻으로 알고 기뻐하라고 당부합니다.

 

12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바울은 자신이 있으나 없으나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이 말은 하나님을 무서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이죠.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유혹이 다가왔을 때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이런 악을 범할 수 있습니까?” 하고 유혹의 자리를 피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내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보이는 것과 같이 섬기는 자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두렵고 떨림이란 헬라어로 트로모스라는 말로 그리스도의 위대하고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면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변함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말씀에 복종하여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그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신 뜻을 다 이루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찬송가 211)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연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 성실과 인내로 내 형제 이끌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두려운 마음에 소망주고 슬픔에 싸인 자 위로하며 길 잃은 자들을 친절히 이끌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인생의 황혼이 깃들어서 이 땅의 수고가 끝날 때에 주님을 섬기다 평안히 가리라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아멘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인간이 마음에 소원을 갖게 하시고 인간을 통하여 그 소원을 이루게 하심으로 자신의 기쁘신 뜻을 이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을 때,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말씀만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육적인 자신의 소원을 끈질기게 추구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죠. 자신의 뜻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욕망이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은 영적으로 넉달이 지나야 한다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소원을 꺾고 내 욕망은 거절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십니다. 시퍼렇게 하늘을 향해 자신의 고집과 야망을 곤두세운 사람이 희어져서 고개를 숙입니다. 벼가 고개를 숙였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쳐봤지만, 제대로 대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처럼 내 뜻대로 세상 의지하고 살아봤지만,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고 나중에는 남자에게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동거를 하였죠.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습니다. 그때서야 참으로 의지할 대상이신 예수님이 보이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시는지 --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생각해야 하죠.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여기에서의 소원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죠.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라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2723-24절에 보면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아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이성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방향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은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막을 때까지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그 안에서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하죠. 그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간에 그 속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를 붙드시고 역사하며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자기의 생각대로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 하죠. 하나님을 따라갈 때에 손해가 나고 환난이 와도 끝까지 주님께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나약함을 생각하게 되면 패배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행하시다는 말의 헬라어는 에네르게인이란 말인데 영어의 ‘energy’와 관계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에너지를 공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에너지를 공급하셔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이것은 인간의 책임을 말합니다)”골로새서 129

 

겉으로는 인간들의 열심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 것도 결국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역사는 분리할 수가 없죠. 또한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원망>이죠.

 

27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14:27-30)

 

옛날 요단강 계곡 경사진 곳에 나무 세 그루가 있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 세 나무가 모여서 각기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나무가 말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꿈이 있었어. 여기 예루살렘에 들어가 거기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쓰여졌으면 해.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나는 하나님께 큰 봉사를 하게 될 텐데.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찾아와 경배를 드리며 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겠어? 그리고 나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알게 될 거야.”

 

이 말을 듣고 있던 둘째 나무가 말했습니다. “내 꿈은 사람들을 섬기는 거야.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해변으로 인도되어 큰 범선이 되어서 지중해를 내왕하는 사람들을 돕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모험을 주고 저쪽 로마의 풍요함을 이 땅에도 심어 줄 수 있지 않겠어?”

 

그 때 셋째 나무도 가지를 쳐들고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그대로 혼자 남아 있고 싶어. 여기에서 내 가지를 하늘로 향하여 지켜들고 산을 오르며 나를 보는 사람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싶어. 그리고 여름에 햇빛이 쪼일 때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면 얼마나 보람있겠어?”

 

드디어 첫번째 나무 그루에 도끼가 와 닿았습니다. 그 나무는 높은 꿈을 가득 안고 언덕에서 끌려 내려 왔습니다. 목수는 그 나무를 받아서 조각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계단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이 나무의 꿈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나무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 어느 집 말구유를 만드는데 쓰여 졌습니다. 나귀들이 핥으며 비를 맞아 시들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그 나무는 수치를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낡아빠진 구유가 되다니하고 말입니다.

 

두번째 나무도 잘라졌습니다. 그 나무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배를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도 물거품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중해를 항해하는 큰 범선이 되기는커녕 갈릴리라는 호수에서 어부를 돕는 작은 어선이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바닥에 냄새나는 생선을 싣고 다니는 조각배가 된 그 나무는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세를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세번째 나무는 그가 바라던 대로 오랫동안 그 언덕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도 역시 베어져서 그 언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목수들의 손에 의해서 그 당시 중한 죄인을 처형하는 기구인 세 개의 십자가로 만들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되었나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하늘에 별 하나가 나타나 그 구유 위를 비추고 구유 위에 마리아라는 여인이 한 아기를 낳아 눕혔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세상의 어느 건축물도 그 구유와 같은 명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고깃배가 된 두 번째 나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작은 바다에서 고기나 싣고 다니던 그 배는 자신의 삶이 시간 낭비요, 무의미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작은 배에 타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제단으로 하여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조그만 배는 세상의 어느 큰 범선보다도 더 큰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세번째 십자가가 된 나무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 세상 어느 교회를 가나 그 나무의 모습을 딴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땅의 온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나무는 믿음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언덕 기슭의 평범한 세 그루의 나무였지만 그들은 너무나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나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속에 우리가 바로 쓰일 곳이 어딘지를 다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 예수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쟎네 .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 내 마음 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무한한 사랑 풍성한 긍휼 슬픈 자 위로하시는 주. 길 잃은 죄인 부르는 예수 그 형상 닮게 하옵소서 .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 내 마음 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겸손하시고 거룩한 예수 원수의 멸시 참으시사 .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구주를 닮게 하옵소서 .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 내 마음 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바울은 하나님께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여 달음박질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바로 성도들의 이러한 신앙의 열매임을 강조하면서 성도들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되어 <믿음의 제물과 봉사>에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

 

바울은 모든 성도들의 봉사와 신앙위에 자신이 관제로 드려져 순교의 제물이 될지라도 자신은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순교까지도 기대하고 있는 바울은 순교에서 뿌린 자신의 피를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뿌려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봉사>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를 쫓아가며, 인기 있는 목사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방안에서 누워서 뒹굴 뒹굴들으며 교회에 나가서 <봉사>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죽으면, 서서히 가정도, 회사도... 다 죽습니다. 교회를 나가도 큰 교회에 가서 <사람구경>을 하고, 영화관람을 하듯이 예배를 드리고 봉사는 안하고 썰물빠지듯이 몸만 쏙하고 빠져 나옵니다. 혹시, 당신은 코로나를 핑계로 방구석 예배를 드리는 <구경꾼>인가요? 아니면 <일꾼>인가요?

 

대형교회든 소형교회든 일하는 사람은 제한적입니다. 일꾼은 일을 하지만 구경꾼은 언제나 구경꾼이죠. 개척교회나 규모가 작은 교회일수록 1인 사역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피로도가 높아지고 강박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자신이 할 수 있는 분량껏 하십시오.

 

교회를 섬기는 것은 주님의 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제1()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이고 그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헌금 교훈을 예로 들어볼까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했습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의 뜻은 슬픔으로입니다. 헌금이나 봉사를 슬픈 마음으로 하면 될까요?

 

세상사람들은 육신의 안일과 평안함으로 인하여 기뻐하지만 성도들은 오직 영적인 일로 인해 참 기쁨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을지라도 우리의 영이 살아서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된다면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인해 환경을 초월한 영원한 기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진리의 싸움을 할 때 열심을 내어라. 모범을 보이신 예수 굽히지 않으셨다. 그대의 충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

 

주님께 내 귀한 것과 내 맘과 내 생각도 주 위해 온몸을 바쳐 힘 다해 섬기면 독생자 보내신 성부 은혜로 갚아 주리. 그대의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 - ♪ ♬ ♪ -

 

우리의 귀한 것 모두 주님께 바치어도 단번에 생명을 주신 그 사랑 못갚네. 하늘의 영광을 버려 우리를 구했으니 그대의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

 

이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세대를 따라가면 신앙이 타락이 됩니다. 성도가 진리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핍박이 오죠.

 

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 핍박을 받으면서라고 말씀대로 따라가야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고 빛들로 나타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죠. 성도가 신앙을 지켜야 세상의 빛으로 드러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어그러진 세상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가야 하죠. 개인이 나가서 전도하는 일과 교회를 세워서 진리를 밝혀 나가야 합니다.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이 사명을 위하여 전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애쓴 것이 헛되지 않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믿음을 지키며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을 믿음의 제물이라고 하였죠. 성도들이 믿음으로 희생하고 봉사할 때에 바울은 자신의 피를 거기에 붓는다고 할지라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서부터 사람의 자리로, 사람중에서도 종의 자리로, 종보다도 더 낮은 십자가 형을 지신 죄수의 자리, 그것도 죽음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면서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부디, 당신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위에 교회가 살아나고, 또 다른 사도바울들이 피의 전제를 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제물로 바쳐지는 영적부흥과 추수의 시기를 맞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시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며 말씀을 하실 때,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복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성령을 소멸치 말게 하소서.

 

내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행하게 하시고,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게 하소서.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의 봉사위에 피의 전제를 드리는 사도바울과 같은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이 늘어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너의 푸른 가슴속에 십자가의 흔적 있다면 주 위해 이제 일어나 너의 믿음 주께 보이라

너의 뛰는 가슴속에 하늘의 불 타고 있다면 그나라 그 영광 위해 너의 삶을 주께 드려라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나라 이제 곧 오도록 우리 주의 은혜의 강 이땅 휩쓸며 흐르도록

하나님의 눈물을 가진자 일어나 주님을 따르라

너의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면 온세상 주 영광 보겠네.

너의 삶을 불태워 주를 섬겨라 주의 영광 나타나겠네.

 

오래 황폐한 이 땅 꽃을 피워라 주의 향기 가득 하겠네.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나라 이제 곧 오도록 우리주의 은혜의 강 이 땅 휩쓸며 흐르도록

하나님의 눈물을 가진자 일어나(일어나) 주님을 따르라

너의 십자가 가지고 주님을 따르면 온세상 주의 영광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