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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 창34/ 굶주린 마음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by 주은총목사 2024. 11. 24.

https://youtu.be/JIK0PGBinJg

 

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 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34/ 굶주린 마음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30:1-24)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렸던 한 여자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검사였고, 어머니는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이셨죠. 13녀의 막내로, 그녀의 부모는 늘 바빳습니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100점을 맞아오니까, 아버지가 기뻐하면서 무릎에 올리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녀는 공부에 집착했죠. 이유는 한 가지, 오직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빈 마음이 채워 지지가 않았죠. 오히려 그 부작용으로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나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을 향해 무시하는 성격이 생겼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분노하는 상한 내면의 증상도 보이게 되었죠.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도무지 만족이 없고 무능력해 보이는 남편을 향해 온통 불평과 비난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자신을 보게 되니, 분명히 믿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마치 고슴도치처럼 온통 가시가 돋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 사랑에 굶주린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결국 그녀는 십자가를 붙들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녀의 병든 영혼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녀와 비슷하게 굶주린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었던 성경의 인물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레아입니다. 레아는 어릴 때 자라면서 항상 동생과 비교를 당했습니다. 더군다나 운명의 장난은 짖굿게도 라헬과 레아의 남편은 같은 남자였습니다. 바로 야곱이죠. 레아는 한마디로 야곱에게 집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레아는 끊임없이 야곱의 사랑을 갈구하죠.

 

그러니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컸을까요? 남편은 아주 표시가 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라헬만 사랑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하고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이런 등식을 깨어버리시죠. 바로 창세기 2931절에서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29:31)

 

하나님께서 라헬과 레아, 야곱의 관계에 개입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셨던 것이죠. 레아의 태를 여셔서 아들을 잉태하게 하셨던 것이죠. 그녀가 잉태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거죠.

 

레아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조금씩 변화되어 가다가 유다를 낳고서는 남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선포까지 했습니다(29:35). 그리고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아무리 야곱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어도, 자기가 낳은 네 명의 아들들(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은 보고 싶어서 자주 레아의 장막에 찾아왔죠. 라헬이 듣지 못하는 엄마소리를 레아는 야곱에게서 자녀에게서 르우벤 엄마, 시므온 엄마, 아이엄마라는 소리를 들었죠. 또한 야곱은 라헬이 아닌 레아를 통해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라헬의 질투 (301~2)

언니 레아가 연속해서 4명의 아들을 낳는 것을 보고 라헬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자기는 아기를 아무리 갖고 싶어도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데 자신의 언니 레아는 계속 아이를 쑥쑥 낳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죠.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1)

 

라헬이 뭐라고 하는가요?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소리치죠. 지금 라헬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죠.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요즘 현대에 살았으면 언니 레아로 인한 스트레스로 신경정신과에 찾아가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 복잡한 가정속에 살아가고 있는 라헬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주며 상담하고 항우울제약을 처방하여야 하죠.

 

사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두 자매인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두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야곱이 두 아내를 두게 된 것도 자기 뜻이 아니라 속아서 된 일이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주 복잡한 가정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골치가 지끗지끗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두 여인 사이에 있었던 야곱은 어떠 하였을까요? 말할 수 없이 피곤하였습니다. 집안이 편안해야 남자는 마음껏 일을 할 수 있는데. 여인들의 끊임없는 암투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집안에 들어서면 숨이 컥하고 막혔죠.

 

그는 밖에 나가면 라반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라반의 솜씨에 번번이 당하면서 기력을 잃었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잃어버린 에너지와 기력을 집안에서 찾을 수 있을ᄁᆞ요?

 

집에 들어오면 다시 야곱은 라헬과 레아의 암투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이 얼마나 피곤한 인생인가요? 자신의 부인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 끊임없이 암투를 벌이는 모습. 하나님은 이렇게 야곱을 다루어 가셨습니다. 라헬의 말을 들은 야곱은 또 어떻게 반응하나요? 지칠 대로 지친 야곱도 화가 나서 라헬의 말을 받아치며 공격하죠.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0: 2)

 

그의 인내심도 바닥을 쳤습니다. 이제 야곱의 가정에는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거나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럴ᄁᆞ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거기 있는데 그들이 그것을 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령에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죠.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일 때문에 주변 사람이 자꾸 미워질 때, 괜히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날 때, 누가 무슨 말 한 마디만 해도 민감해져서 분노가 일어날 때, 그럴 때에는 사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나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화를 내고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 맘대로 안 되기 때문이죠. 심지어 자녀조차도 내가 낳은 자식인데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자식과 한바탕해야죠. 하루가 지나도 분이 안 풀리고 씩씩거립니다. 심지어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희어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 몸인데도 혈액순환도 안되고, 밤에는 쥐가 나고, 불면증에 점점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될까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세상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이 있죠. 그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과 동행하는 사람은 그게 정상인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고갈되니, 인격이 무너지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죠. 참을성과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점점 성령의 불이 소멸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닥나면서 모든 책임을 다른사람에게, 자녀에게, 남편에게 전가시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30: 3)

 

대개 남편들이 언제 외도를 하나요? 아내와 싸우고 감정적으로 대립이 되면서 아내가 미울 때 다른 여자를 보게 됩니다. 야곱 역시, 라헬과 한바탕 싸우며 감정적으로 대립하죠. 그러면서 라헬의 시녀에게로 들어갑니다. 한 번의 성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된 관계로 이어지면서 빌하가 두 자녀를 낳습니다.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4-6)

 

라헬의 여종 빌하가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그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십시오. 단은 원한을 풀었다라는 뜻입니다. 빌하가 또 둘째를 낳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어떻게 짓습니까?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7-8)

 

자매들의 싸움이 웃기죠. 납달리는 경쟁함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아이들 이름을 이렇게 전투적으로 짓나요? 아이 이름을 원한을 풀었다라고 지었습니다. 한국말로 부르면 , 원한을 풀었다야, 이리로 와라. , 경쟁아, 이리로 와.’라고 합니까? 한거죠.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의 콩가루 집안같죠?

 

라헬이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아들을 낳았지만, 라헬의 마음은 더 답답하고 더 미칠 지경이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를 낳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빌하가 둘을 낳으니까 더 답답해집니다. 가슴이 먹먹해지죠. 마음에 평안이 더더 없습니다. 오히려 언니를 향한 질투지수가 더 올라갑니다. 점점 언니 레아와 사이가 안좋아집니다. 신경전이 곤두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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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라헬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나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자꾸 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기분과 내 감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삶이 복잡해집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 내 답을 가지고 하나님께 결재 받기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되죠. 오직 주님만 잠잠히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움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요

 

라헬이 여종을 통해 단과 납달리를 낳으니, 이제는 야곱이 새로 태어난 <단과 납달리>를 보러 그리로 더 자주 가게 되죠. 레아에게는 이미 네 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있었지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유다를 낳고 하나님을 향해 귀한 신앙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방법이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채 라헬과 똑같은 인간적 방법을 쓰게 됩니다.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9)

 

라헬이 자기 여종 빌하를 통해 두 아들(, 납달리)을 낳은 것처럼, 레아도 자기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아기를 낳게 하죠. 이러한 레아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어 실바 역시, 두 아들을 낳게 됩니다.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10-13)

 

레아는 복되도다’, ‘기쁘도다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죠. 레아가 그래도 신앙을 유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정식 아내가 두 명이고 첩이 두 명, 즉 네 명의 아내들이 있으니 오늘 <본문의 영성산책>이 얼마나 복잡하나요? 우와. 살다 살다.... 이렇게 설교준비를 하기가 어려울때도 있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성경을 읽을 때, 마태복음 1장과 역대기의 족보들을 읽기가 힘들어서 스킵을 하는 그건 기억들이 떠 오릅니다. 야곱의 가정과 4명의 부인. 참 복잡합니다. 또 그속에서 태어난 아이들끼리 얼마나 복잡할까요? 성경이 그렇게 부끄러운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집과 같이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열두 아들에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그것을 발견하기 깨달으며 나의 삶속에서 적용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합환채 사건 (14~16)

오늘 본문을 보면, 레아와 라헬은 자매이면서도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한 사건으로 인해 갈등이 더욱 심해집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30:14)

 

합환채라는 것은 요즘 식으로 하면 사랑의 묘약같은 것입니다. 열매가 노란 토마토같이 생겼는데, 남자가 먹으면 성적 충동이 강해지게 되고 여자들의 불임치료에 좋다고 해서 고대시대에 알려져 있던 식물이죠. 이 합환채는 술람미와 솔로몬의 사랑이야기인 아가서에도 등장하죠.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아가서 7:13)

 

합환채는 매우 향기로운 과일이죠. 사랑사과라고도 부릅니다.

이 과일의 나무의 뿌리가, 인삼처럼, 사람의 몸체와 비슷해서, 비너스로 알려진 아프로디테합환채의 여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바로 그 합환채를 발견하여 들고서 어머니에게 갖다 주죠. 그런데 라헬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는 쫓아와서 달라고 요구합니다. 르우벤이 야곱의 맏아들이지만 당시 십대 소년 정도였을 텐데, 들에 있는 많고 많은 식물 중에서 이것이 뭔지를 어떻게 알고 가져왔을까요?

 

르우벤은 어릴 때부터 조숙하고 그런 쪽으로 밝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한마디로 싹수가 노랬습니다. 이것은 라헬, 레아가 만들어낸 잘못된 결과물이 바로 <르우벤과 합환채 사건>입니다. 당신 부부가 만들어낸 <르우벤과 합환채>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아들이 혹은 당신의 남편이 자매를 성추행을 하지 않았나요?

 

복잡한 결혼 생활 속에,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가 쭈쭈빵빵한 젓가슴들을 들어내고 젓을 먹이는 것을 르우벤은 보면서 야릇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며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빌하의 젓가슴살과 엉덩이를 보면서 르우벤은 사고를 치죠. 자신의 아빠, 즉 야곱의 여자를 건드린 것입니다. 르우벤과 빌하가 성관계를 맺을 때, 야곱이 그것을 듣고 있었죠.(35:22) 그리고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르우벤을 저주합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49:3-4)

 

이상한 쪽으로 밝히고 그런 쪽으로 빠진 아이, 르우벤의 문제. 가정에 들어온 음란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레아와 라헬은 그가 들고 온 합환채를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있죠. 이런 것을 보면 이런 것이 무슨 믿음의 가정인가 하는 의심이 생기지 않나요? 도저히 믿음의 가정으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남편과의 잠자리를 위해 합환채를 놓고 거래하는 레아와 라헬이 믿음의 여인들인가요? 어린 자녀 르우벤이 합환채를 가지고 왔을 때, 오히려 어머니인 레아와 라헬은 정욕적인 싸움을 그만두고 그들의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레아가 라헬에게 한 말을 한 번 자세히 보십시오.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5-16)

 

야곱은 아무 선택권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야곱이 라헬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서 결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레아와 결혼해야 했고, 두 여종들도 첩으로 얻었습니다. 자기가 의도한 바는 아니죠. 그렇지만 야곱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복잡하였습니다. 골치가 지끈 지끈거렸죠.

 

여자 하나도 감당하기가 힘든 판에, 이제는 완전히 여자들의 싸움에 끼어서 노예가 되어, 이러라면 이러고 저러라면 저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의무방어를 해야 하는 한심한 야곱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믿음의 조상의 모습이라는 말인가요? 이런 사람이 과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편인가요?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상하고 자격미달인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까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격이 없는데 주시는 선물이 은혜입니다.

 

야곱과 레아와 라헬과 그 여종들의 깊은 갈등과 괴로운 관계 속에서 아들들이 태어났지만, 또한 그들의 불순종과 비신앙적인 모습 가운데 경쟁 속에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획이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안 계신 것처럼 살고 있던 야곱의 가족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시고 열두 지파를 일으키시는 놀라운 계획을 하나님이 지금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미움과 갈등과 혼란과 경쟁 속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조용히 당신의 선한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당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아 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 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흐르네

너의 죄 너희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 다 사하시려 십자가 달리신 주

얼굴과 손과 발에흐르는 그 귀한 피

골고다 언덕위에 피로 붉게 적셨네

 

아 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 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흐르네

 

누가 최후 승자일까요?

치열한 자녀 출산 경쟁에서 이긴 최후의 승자가 누구인가요? 이 암투에서 누가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최후의 승자는 레아라고. 라헬의 최후는 비참하다고.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라헬이 둘째 아들을 해산하게 되는데, 지친 몸으로 아이를 낳다가 아들이 태어난 뒤 라헬은 죽고 말죠. 그녀의 무덤은 길가에 세워지죠. 세월이 한참 지나고, 야곱이 창세기 48장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48:7)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 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라헬은 가족 묘지가 아닌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외롭게 묻혔죠. 언니 레아는, 죽었을 때, 조상의 묘에 나란히 합장됐습니다. 시조부모, 아브라함과 사라, /시부모,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남편 야곱 곁에 나란히 묻힌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입니다. 그러나 길가에서 죽었다고 라헬의 죽음을 비극적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라헬과 레아의 경쟁에서의 ᄊᆞ움의 최후 승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비극적이고 저주의 죽음은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둔 라헬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3:13-14)

 

22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21:22-23)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잘못과 죄 때문에 복잡한 일들과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일어날 때에도, 그분은 반드시 선을 이루고 마십니다.

 

레아와 라헬이 직접 낳은 아들들은 물론 혈통으로 야곱의 아들들이지만, 레아와 라헬은 자기 여종들을 통해 얻은 아들들도 자기 아들로 입양을 했습니다. 이걸 보면, 빌하가 낳은 단과 납달리, 그리고 실바가 낳은 갓과 아셀은 사랑받는 아들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양어머니 라헬과 레아의 남편 사랑 탈취 작전과 경쟁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죠. 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요?

 

두 여인은 잘못된 마음으로 경쟁하며 그 과정 중에 수많은 상처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혈통을 통해서만 아니라 입양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죠.

 

이것에 관하여,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잘 해석하여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이 혈통으로는 아브라함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짐으로써 그의 후손으로 여김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된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다양한 민족이 그를 통한 주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뜻,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환경이 모두 다릅니다. 자신의 성장 과정이 다른 사람처럼 정상적이거나 순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과 불평을 가진 사람도 있죠. 어릴 때 받은 상처나 충격으로 괴로워하며 살아온 사람, 특히 부모님이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이 날아갈 정도로 엄청나게 부부싸움을 해서 그것을 보면서 자란 사람도 있죠. 그러면서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올 수도 있죠.

 

때론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이 싫을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욥도 태어난 것조차, 자신의 생일 조차 저주할 정도로 쓰레기 같은 비참한 환경에 처하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인생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아무리 괴롭고 상처가 많고 죽을 정도로 힘들고 험난한 인생이지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주 고귀한 인생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참 잘 살아오셨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을 쓴 미국의 릭 워렌 목사님이 교도소에서 약 5천여 명의 재소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 그 곳의 분위기는 집중하는 사람 하나 없이 어수선했고, 목사님은 달랑 마이크 하나만 쥔 채로 단이나 강대상도 없이 평평한 바닥에 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주머니에서 5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이 50달러를 갖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그러자 거기 모인 5천여 명이 일제히 손을 들었고, 그렇게 단번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지폐를 구겨서 살짝 찢은 뒤 여전히 이 50달러를 갖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모든 재소자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돈에 침을 뱉은 다음 바닥에 던져 짓밟은 뒤 다시 물었습니다. “이래도 이 돈을 원하는 사람 있습니까?” 이번에도 재소자들 중에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해주신 일입니다.

학대를 받으셨습니까? 이용을 당하셨다고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모욕을 당하셨어요? 지금 당신은 이처럼 구겨지고 찢기고 짓밟혀서 더러워진 지폐와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가치는 단 1달러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왔든지 간에, 어떻게 주님을 만났든지 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죠. 여종에게서 태어난 단, 납달리, , 아셀이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 역시,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에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에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사랑의 굶주림은 축복입니다.

레아는 늘 사랑에 굶주렸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늘 외롭고 공허하였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이 늘 텅비고 쓸쓸하였죠. 그런 레아는 자신의 슬픔을 이겨 나가기 위해 점점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사랑의 굶주린 마음에서 오는 외로움은 그녀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었죠.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태를 열어서 그녀에게 유다와 레위를 주셨습니다.

 

유다는 누군가요? 오늘날 유태인이라는 말이 이 유다에서 나온겁니다. 유다 즉 유태인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말이 된 거죠.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는, [유다]를 통해서 나옵니다. 유다가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습니다.

 

레위, 제사장의 시조가 됩니다. 유명한 레위지파입니다.이 두 사람이, 누구에게서 나왔습니까? 사랑을 듬뿍받는 라헬이 아닌, 사랑을 받지 못해 처절한 외로움에 시달린 영적인 [레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처절한 외로움과 공허, 사랑에 굶주림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요셉 역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열 아들은 어머니가 있어서 별 문제 없이 지냈지만, 요셉과 그의 동생 베냐민은 어머니 라헬 없이 외롭게 자라야 했죠. 요셉은 어릴 때부터 더 어린 동생 베냐민을 돌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요셉에게는 형들이 갖지 못한 지혜가 생겼고, 하나님과 가까웠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요셉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간구했죠.

 

요셉은 어려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으며, 주인의 신임을 얻어 괜찮게 지낼 만한 자리에 오르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요셉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찾았던 하나님을 의지해 역경을 이겨 갔죠. 마침내 애굽 왕 바로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나타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41:38-39)

 

절박한 외로움과 시련들이 요셉을 지혜롭게 만들어, 흉년이 온 땅을 뒤덮어 사람들이 굶주리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어가야 할 때 그 고통을 겪지 않도록 준비해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굶주린 마음을 엄청난 축복을 받을 선물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기만 한다면. 다윗 왕 역시, 외로움과 굶주린 마음으로 인하여 엄청난 축복을 받죠. 그로 인해 그는 시편을 통해 알 수 있듯,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친밀감을 나눈 고백들도 많이 나옵니다.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가리키는 것이죠.

 

주님, 처절하게 외롭고, 우울하며 공허와 절망감이 휩싸입니다. 삶은 지치고 무기력하고 활기도 의욕도 없습니다. 은혜는 바닥이 나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질을 내고 화를 내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주님, 사랑에 굶주린 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갑니다. 사랑받음이 없으시고 태의 문을 여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인생의 문을 열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자신 연약해

고통속에 눈물흘릴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