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보아스의 품속으로/ 룻기 3:1-7
꿈이있는 교회/ 주은총목사
자신에게 외쳐라!
-내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무엇을 의지하는지 뚜렷이 바라보라.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확실한 대상이다.
자기 목숨(프쉬케)을 아끼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조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요12:25)
미워해야 할 자기 "생명"은 원어로 [프쉬케]입니다. [프쉬케]는 자아를 나타내는 육신의 생명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번뇌하며 육신의 정욕에 집착한 인간이 [프쉬케적인 인간]인 것이죠.
반대로, 영원히 보존될 "생명"은 [쪼에]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세에서 장수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복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에서 자기생명(푸쉬케)를 미워하여야 하지만, 영원한 생명(조에)를 얻게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돈 미구엘 루이스라는 멕시코 외과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내면의 평화와 영혼의 행복을 일깨우는 작가이기도 한데, 그의 책 ‘Four Agrements’는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로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가 잘 나가던 의사에서 작가로 전업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죽음체험입니다. 어느 날 엄청난 자동차 사고로 그는 죽습니다. 사고가 난 직후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채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체 밖에서 죽은 자신의 육체를 본 것입니다.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어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이며, 그를 보고 있는 나는 또 누구인가?” 동시에 전혀 생소한 또 다른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 세계는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나는 빛 속에 있었고,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 순수한 인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빛에 모든 사물의 정도가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때 나는 절대자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연유와 과정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다시 소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추구하던 것들을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대부분 거짓이고,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세계에 대해서 증언하며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번도 그 빛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끝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슥3:2-3)
우리는 불 가운데 꺼낸 그슬린 나무들입니다.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자신감이 늘었고 영성은 더 강해졌으며 물질이나 지위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영혼구원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프쉬케]는 자아를 나타내는 육신의 생명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번뇌하며 육신의 정욕에 집착하는 [프쉬케적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쪼에]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힘을 얻습니다. 삶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념, 삶의 의미나 목적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버는 돈으로 기꺼이 <선교헌금>을 하여도 아깝지가 않고 기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쉼이 필요한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주가 너무 바쁩니다. 정신없이 일에 쫓깁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일하고, 밤을 새워 일합니다. 그러므로 어쩌다가 쉬는 날은 피곤을 풀기 위하여 야외에 나가지만 피곤은 더욱 쌓이기만 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영혼을 안식할 틈이 없습니다.
“예수믿으세요.” “바빠요!” “주일에 왜 예배 참석을 하지 못하셨습니까?” “바빠서요” 그러나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무리 바빠도 가야만 합니다.
우리 나라는 40대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노동하다가 정신없이 죽어 갑니다. 앞을 향하여 바쁘게 나갈 줄만 알았지 계속적인 나감을 위하여 「안식」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면 대개 어떤 병이든 ‘쉬십시오’,‘안정을 취하십시오’라고 진단합니다.
일을 줄이고 나의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이 땅에 필요한 것을 장만하고 채우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 그만두고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점검하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정말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 지를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이십니다. 쉬지 않아도 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 하신후 칠일째 안식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안식이 절대로 필요한 때이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어 마땅히 누려야 할 영혼의 안식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당신에게 원하는지도 모른 채 바쁘고 피곤하게 달려가는 삶이 바로 당신의 삶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쉼의 보금자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나님이 당신을 병으로 눕히기 전에, 주일에는 모든 일을 쉬고 주님의 말씀과 은혜를 묵상하며 다음의 할 일들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안식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위로치못하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오미는 바로 역전의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마라’였던 그녀의 인생이 패자 부활하는 놀라운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죠.
(룻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씀속에는 나오미의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룻을 향한 연민입니다. 나오미는 이미 늙은 여자였지만 며느리 룻은 아직 젊은 여자, 아니 어리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일것입니다. 그 어린 며느리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룻은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씀을 따라 안식할 곳을 구하는 일을 합니다. 참 이 나오미는 좋은 시어머니입니다. 그녀 자신도 과부로서 어떻게 재가할 곳을 찾아서 안식할 곳을 구해야 하는데, 저는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며느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 일을 하나님께 구해야겠다.
“너를 위하여...내가 구하여...복되게 해야하지 않겠느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고부 사이의 갈등으로 어렵고, 힘들다고 하지만, 믿음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서로를 생각해 주는 이 나오미와 룻은 친어머니, 친딸 이상의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나오미는 룻을 부를 때에도 내 딸아,(1,10절) 했고, 룻도 자신의 친어머니라고 생각될 만큼 다정한 관계였습니다.
나오미는 생각합니다.
“룻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안식이다”.
내가 이 룻에게 해 줄 것이 없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 가정을 이루어 평강과 안식을 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이 일을 ‘하나님께 구하여 룻을 복되게 해야하겠다’고 했습니다.
참, 인생이 세상에서 평강과 안식을 얻으려하나,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의 발치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룻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의 이불 속에 들어가서 누워 있습니다.
룻은 왜 이러한 순종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어머니의 의도를 분명히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2장에서 고마운 사람, 삶의 은인으로 다가왔습니다. 도무지 소망이 없던 그녀에게 삶의 길을 열어 준 사람,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그녀를 인도하고 보호해 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보아스였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로부터 보아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기 전 까지만 해도 보아스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그가 누구인지, 왜 그녀가 보아스의 발치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결히 단장해야 합니다(3-4).
나오미는 룻에게 아름답게 단장하라고 권면합니다. 보아스의 품에 들어가려면 보아스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합니다(3절).
3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룻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으로 내려가라.”
지금 나오미가 룻에게 하는 말 속에는 이러한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네 과부의 옷을 벗어버려라. 너는 지금까지 충분히 오래 입어왔다. 이제 새로운 옷을 입어라.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는 삶을 살지 말아라.”
룻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불쌍한 여자이죠. 한마디로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룻은 시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에 그래도 순종하였습니다.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6절)
당신이 그리스도의 품에 쉼의 안식의 필요하다면 이제 할 일은 주님께 보이기 위하여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의 품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어야 하듯이,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일이야말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신부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순간입니다. 「씻고」「화장하고」「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식하려는 성도는 그렇게 자신을 가꾸기에 부지런합니다.
1.말씀의 생수로 마음을 깨끗하게 씻으십시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6)
십자가의 복음은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씻어 내십시오. 말씀으로 마음의 내 생각들을 걸러 내는 일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신랑은 정결한 신부를 기뻐하듯이 그리스도는 늘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성도를 품에 안아 주십니다.
2.성령의 기름으로 마음을 단장하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기름은 아름다운 화장품입니다. 기름은 사람을 윤기 나게 보이게 하고 아름답게 해줍니다.(요일 2:27)
기름 부음은 곧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아름다운 여인의 화장품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가득하게 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므로 안아 주십니다.
기름은 기쁨과 잔치를 상징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기름이란 성령을 말합니다. “기름을 담아”(마 25:4)란 성령으로 항상 하나님과의 교통이 충만함을 말하죠.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야(요 3: 5)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나 주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꺼저 어두어진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의 등을 밝히십니다(마 25:4). 이 영혼의 등(燈)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님과 교통하는 것이죠.
당신은 성령의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처녀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기름이 꺼져서 날마다 허덕이는 미련한 다섯처녀입니까?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의 풍습에 의하면 결혼식에 앞서 약 일 년 전 약(정)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랑은 장인 장모에게 신부를 위해 결혼 지참금을 지불하고 결혼 약정서에 서명하고 난 후, 단장하고 기다리고 있는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무도회를 엽니다.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서 저녁 무릅 혼인예식을 거행하는데 예식 중에는 축하의 의미로 횃불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때 신부 집에서는 열 처녀로 구성된 도우미 처녀들(신부 또래의 절친한 친구들)은 신부가 신랑집으로 가는 결혼 행렬에 참가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결혼 행렬에 참여하려면 각자의 횃불이 필요했죠. 횃불에는 막대기에 솜(헝겊이나 천)에 감람유를 묻혀서 불을 밝혔습니다. 감람유는 15분마다 다시 공급되어야 했습니다. 신랑집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가하려면 감람유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합니다. 다섯은 슬기로운 처녀요 다섯은 미련한 처녀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 갔으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당신의 영적인 상황은 본인이 가장 잘 압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3.선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옷을 입으십시오. “그에게 허락 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8)
신부의 드레스는 희고 아름답습니다. 성도의 드레스는 옳은 행실입니다. 늘 주님 보시기에 흐믓한 행동을 하십시오. 행실은 옷과 같습니다. 주님의 신부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습니다.
어떤 여자도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것입니다. “목욕하고”, “기름 바르고”, “의복을 입고” 이런 자세로 사는 신부는 평생에 신랑의 극진한 보호를 받고 살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혼인잔치를 앞두고 자신을 단장하는 신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맘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엔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내 입술엔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용기 있게 실행해야 합니다(5-9).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나오미는 오늘 밤에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서 추수를 할 때에 보아스의 품으로 들어가라고 권면했습니다.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아예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밭의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삭을 주워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은 주님의 품에서 평화와 안식을 간절히 사모합니까? 언제까지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의 품안으로 뛰어드십시오.
나오미는 「오늘 밤 타작을 마치고 보아스가 잠을 잘 때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4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이것은 여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겸손하게 맡긴다는 표시입니다. 이 얼마나 여인으로서 행하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까?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까? 불안한 일입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확신을 가지고 권면합니다.
“그의 품안으로 들어가라. 그는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주님께 당신을 맡기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품안에 당신의 안식이 있습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나의 몸과 마음을 다 맡긴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들은 각기 주머니가 다릅니다. 남편 통장 따로, 아내 통장 따로 참 불행한 일입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믿을 수 없는 사이는 이미 부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시간도, 직장도, 당신의 인생도, 미래도, 노후도, 심지어 당신의 근심도. 당신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성령님께 의탁하십시오. 룻은 어머니의 권고대로 자신을 맡겨 버렸습니다.
5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룻기3:5-6)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 때도 안보하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거기에 누웠더라(7)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7절)
주일은 주님의 품에 눕는 시간입니다.
회사에 남겨 둔 일 생각, 부엌에 가스불을 끄고 왔나 하는 생각, 있다가 친구 만날 생각. 오후에 해야 할 일의 생각···
전혀 주님의 품에 안기지 않은 자세입니다. 진정한 쉼의 예배가 아니지요.
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고, 노동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예배를 즐거워하나, 노동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예배를 지겨워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맡기고 ‘거기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보아스의 품에 당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 맡기는 행위입니다. 룻은 이미 보아스를 사랑하므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 쉼과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강하십니다. 당신의 모든 삶의 문제의 해답을 다 가지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주님, 인생을 내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근심조차 기쁨으로 바꾸어 버리는 하나님께 맡기게 하소서. 온전한 주일성수가 있게 하시어,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사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누리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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