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성산책/룻기

주은총목사/ 룻기5/ 운명의 만남

by 주은총목사 2024. 5. 30.

https://youtu.be/AUijNF7u9vI

700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운명의 만남

룻기 2:8-16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그분이 찾아오실 때가 있다. 주의 깊게 살피라.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찾아오신 그 분을 감동시켜 보아라. 세상이 달라진다.

사람은 누구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이 전적으로 달라집니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일이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꺼져 가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장밋빛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된서리를 맞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정말 사람 잘못 만나면 고통 속에서 한숨과 눈물로 평생을 지내게 됩니다.

 

가슴에 피 멍이 듭니다.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얼굴은 자신의 나이보다 최소한 10년은 더 늙어 보입니다.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사는 것 자체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는 지옥입니다.

 

최현주 목사님의 위장된 분노의 치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목사님은, 목사님의 신분으로써 드러내기 어려운 자신의 치부, 즉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아내를 구타하며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야기를 공개하였습니다. 부부는 참담한 그 상황 속에서도, 기도의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치유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때, 남편에게 고통 받는 아내의 심정을, 사모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남편이 신학교 1학년 다닐 때 결혼했다. 그러나 그 결혼이 지금까지의 12년간의 삶을 짓밟아 버린 고통을 담보로 하고 있었음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었을까?

 

신학생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결혼을 하고보니 정작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편의 성격문제였습니다.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화를 잘 내는 성격 때문에 나는 매사가 힘들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12년간의 긴 도화선으로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알고 겪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은 고사하고 이해조차도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었기에 처음 친정에 다니러 갔을 때 그 때 나는 새장에 갇힌 새가 창공을 날아가는 듯한 자유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해방되는 것 같았고 진실로 자유로움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초기인지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차이 때문일 것이라고 그저 단순하게만 느낀 나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렸습니다. 첫 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몸도 아직 성하지 않는데 사소한 일을 가지고 분노를 터뜨리면서 폭력을 가해 왔습니다.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밤 간난아이는 젓을 달라고 나를 깨웠습니다.

 

품에 안고 젓을 먹이는데 바로 옆에 있는 산에서 접동 접동하면서 접동새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 마음을 알고 대신 울어 주는 것 같아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속으로 아픔을 삼키면서 울면서 젓을 빨리던 그 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흔들리는 사람,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

어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싶었지만, 예전의 남편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였습니다. 그런 상처 때문에 남자들에 대해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누군가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마음속에 끝없는 혼란을 가져온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위에 나 죽었네

그 사랑 내 속에 강같이 흐르네

그의 생명 내 속에

그의 능력 내 안에

그의 소망 내 삶에

나의 삶 주의 것

 

여호와의 날개 밑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불과 1.6Km떨어진 곳에 보아스의 밭이라는 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접한 곳에 목자의 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천사가 목자에게 전하여 준 곳입니다. 룻과 보아스의 로맨스의 배경은 1100년 후에 그리스도의 탄생지로서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룻기는,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기근 때문에 우상의 나라로 갔습니다. 모압은 아주 우상숭배의 죄가 관영한 땅이었죠. 엘리멜렉 일가가 먹는 문제 때문에 모압으로 갔다는 것은 결국 생명을 위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께 그 근원이 속해 있음을 알지 못한 경거망동이었습니다.

 

민수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듯이 성전중심으로 생활을 꼭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왕이면,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가까이로 와서 사세요. 이사를 다니는 문제, 먹는 문제, 직장문제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은혜받기 위하여, 기도를 하기 위하여, 내 삶이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교회 가까이로 이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엘리멜렉 일가는 마땅히 베들레헴 거주지 가까이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흉년 때도 생명의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여야 마땅하였습니다.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예레미야 애가 2:18-19)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하나님을 멀리하며 우상의 땅으로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 가족은 화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압 땅에 갔다가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다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잘 살아 보겠다고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낯설은 땅을 찾아가던 여인 나오미! 그렇게도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려고 바둥거리던 남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토록 효성스럽고 다정했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의 무덤앞에서 나오미는 실신을 할 정도로 울었습니다. 가슴은 찢어지고 눈물은 앞을 가리워 보이지 않는. 그런 비참한 현실속에서 나오미는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가까운 본향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난처로 여호와의 날개 밑을 찾았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방랑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죠. 바로 보아스가 룻에게 날개 되어 준 이 베들레헴 언덕을 오르내리며 여호와의 날개 아래를 노래하였습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된 그리스도인들이 거할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여호와의 날개 아래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곳만이 사망과 죽음에서 온전히 보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23:37)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 그곳이야말로 우리 믿는 자들의 요새며 피난처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운명의 만남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흥망과 성쇠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만남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명문대학을 나오고, 재능이 뛰어나도, 특히 여자는 남자 한번 잘 못 만나면 인생을 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번의 잘못된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이처럼, 만남은 우리 생에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지만, 한 번의 좋은 만남이 인생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마침내 룻과 보아스가 만났습니다. 우연히 이삭을 줍기 위해 밭을 찾았는데 그곳이 보아스의 밭이었고, 마침 그때 보아스가 그 밭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이요, 결정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소문대로 보아스는 유력자일 뿐만 아니라 유덕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유대인 남자요 밭의 주인이며 성의 유력자였으나, 한 사람은 이방 여인이요 그의 시녀도 못 되는 이삭 줍는 신분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로 베푸는 자의 위치였으나 한 사람은 가난한 자로 그의 동정을 받아야 연명이라도 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룻기 21절에 의하면 보아스는 유력한 자이죠. ‘유력한 자라는 말은 성경에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한 마디로 재력이 있고 학식도 있으며 신앙과 인품까지 두루 갖춘 덕망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왔으나 그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여인, 하루 한 끼를 위해 거지처럼 떨어진 이삭을 주울 수밖에 없는 여인, 소망도 기대할 만한 내일도 없는 여인, 룻은 가치를 인정받지를 못한 존재였습니다. 종이쪽지 같고, 버려진 휴지조각 같은 그녀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유력한 보아스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딸아!” 이 얼마나 따뜻한 목소리인가요? 이스라엘에 와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 함께 있으라, 목이 마르거든 이곳에서 마시라.”꿈같은 소리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룻기 2:8-9)

 

보아스의 배려의 말에 룻이 감격을 하였다. 땅에 엎드린 룻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십니까?”

그때 보아스가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룻기 2: 11-12)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지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룻이 사람이나 환경을 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을 때,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시어머니와의 만남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났지? 하필이면 이런 가문에 시집오게 되었지? 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지? 하면서 우울해 하지도, 신세한탄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남편이 죽었는데도,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며 봉양을 하였습니다.

 

어찌, 이런 룻에게 하나님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도 한번 하나님을 감동시켜보십오! 비록 길고 긴 고통과 좌절의 터널을 통과하게 될지라도, 결국 그 종착역의 이름은 해피엔딩입니다. 모든 것은 내 자신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했던 룻의 소문은 마침내 보아스의 귀에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룻은 이 만남이 자기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편30:10-11)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말라 네 손 잡아주리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말라 네 손 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내 여호와라

 

룻은 젊었습니다. 그리고 과부였고 고아였습니다. 밭에서 추수하던 젊은이들은 눈에 띄던 가난하고 초라한 외국 여인을 건드려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추수기였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많은 일꾼들을 가져다 썼고,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흥청거림과 심지어 부도덕한 행위까지 따랐을 것입니다, 룻은 위험한 가운데 처해 있었으나 보아스가 그녀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8)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녀들에게 그녀를 잘 돌보아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젊은 남자들에게는 그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내 딸아 들으라! 너는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이 밭을 떠나지 말며,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여기서 이삭을 줍되 목이 마르면 소년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시라. 이는 네 행위를 내가 들었음이니라. 그리고 소년들아, 이 소녀를 건드리지 말라.”

 

보아스는 '내가 그녀를 받았으니 너희도 내가 그녀에게 대우한 것처럼 대우하라. 그녀를 모욕하지 말라. 부끄럽게 하거나 책망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음성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인간의 따스한 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보아스의 넉넉한 날개 밑이었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2:13)

 

히브리 원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계집종의 마음에 말하셨나이다,' 보아스는 단지 그녀의 귀에다 말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격려함을 얻고 있읍니까? 어떤 사람들은 곤경에 직면하게 될 때 위스키에서, 당구장에서, 마약에서, 아니면 삼손처럼 눈을 빠지게 하는 들릴라의 품에서 위로와 쾌락을 얻고 있습니다. 세상 친구들과 세상적인 쾌락에서 격려를 얻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문제들로부터 임시적으로 잊어버리게 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도움과 격려를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욱 침체케 할 뿐입니다. 모압은 세상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녀가 모압에 있었을 때는 어떠한 만족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참된 만족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 IS~I4).

 

당신은 룻의 모든 축복이 은혜와 믿음의 결과라는 것을 주목해 보셨습니까?

룻은 나오미에게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2 : 2)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보아스에게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받아들이기로 표시한 후에도 룻은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룻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로 들어갔고 그리하여 참 만족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통한 은혜로 살아갈 때 룻이 누렸던 것과 똑같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선하신 인도와 보호하심, 준비와 만족케 하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34:10)

 

룻은 은혜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보아스는 그녀에게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2)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2:12)

 

인생이 바뀌다.

경매장에 낡은 바이올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겨우 3달러를 부르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나오더니 바이올린을 자기 손수건으로 닦고는 현을 조여 음색을 잡고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천사의 소리 같았습니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났을 때 노인은 바이올린을 가슴에 안고 중얼거렸습니다. “너를 40년 만에 다시 만져보는구나.” 노인은 다시 감미로운 곡으로 한 곡 더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경매는 상상이상이었습니다.

 

갑자기 경매가 활기를 띠더니 3만 달러에 낙찰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오래된 시 중에 거장의 손이 닿을 때(The Touch of the Master’s Hand)”라는 시입니다.

 

3달러 정도였던 바이올린이 왜 갑자기 3만 달러가 되었을까? 그것은 거장의 손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먼지에 쌓여 있던 바이올린이 거장의 손에 닿자 값어치가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먼지에 쌓인 3달러 정도의 바이올린에 불과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도 낼 수 없는 죄와 허물에 쌓인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거장의 손이 우리에게 닿을 때, 그 분이 우리를 터치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권한과 권세를 가진 자로 바뀌게 됩니다. 그 거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고귀한 자요, 거룩한 자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 분이 우리를 터치 하시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을 만난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 사람들은 그들의 한계를 초월하였습니다. 지식의 한계를, 신분의 한계를, 지역의 한계를, 가능성의 한계를 초월하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놀랍고도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존재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룻 역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남편은 일찍 죽었고, 자식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의 밭에 들어가 곡식을 주워야지 먹고 살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디에서 따뜻한 대접, 따뜻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녀가 보아스를 만났을 때, 그녀의 인생은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룻의 팔자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가난하지도 않았고,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아이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룻이 상상 할 수 없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보아스 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 가운데 진정한 치유가 일어납니다. 예수님 때문에 인생이 살 맛 나게 되죠. 예전의 나는 마음속에 미움과 두려움과 무서움이 가득 차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용기 있고 담대해지며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이전에는 진정한 를 몰랐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나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서는 어디서든 용기 있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분을 붙들었을 때에 마른 막대기에 꽃이 피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30:11)

 

주님,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환경가운데 불평하지 말게 하시고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시어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환경을 승리로 이끄는 만남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 하리라

다 알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 가리라 X2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 하리라

다 알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 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