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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룻기

주은총목사/ 룻기3/ 고난의 동반자

by 주은총목사 2024. 5. 3.

https://youtu.be/nSQCCkGFYOE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고난의 동반자

(룻기 1:15-22)

꿈이있는 교회/주은총목사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좋은 차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선물을 준비해 가는 것입니. 어디 고향뿐이겠는가? 지난 날 초라하였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 앞에서도 나의 성공을 알리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거룩한 땅을 떠난 지 10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온 성읍에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녀가 10년 전 베들레헴을 떠날 때 만해도 그 이름만큼이나 기쁨과 행복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웠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지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나오미는 예전의 아름답고 도도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고 늙고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아니 당신이 10년 전에 우리를 떠났던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아니냐?”

 

이 말에 나오미는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습니다. 어쩌면, 모압에 이민 가서 사는 나오미의 생활이 고향에서는 마치 잘 사는 것처럼 소문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낯선 이방 땅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아들도 잘 키워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아들도 잃어버려서 이전보다 더 초라하고 가난한 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 고향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그 중엔 낮익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 앞에 선 나오미는 참담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 나의 이름이여, 나는 마라라, 더 이상 감미로움의 나오미가 아니라, 나는 쓰디쓴 패배자요 괴로운 자여라!”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모압 생활 10년만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가산을 다 잃었습니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음이니라.”(1: 20)

 

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움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며 주님의 괴로움 내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 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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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며 주님의 괴로움 내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 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라

 

출애굽기 15장에 나와 있는 마라의 샘이 기억하시나요?.

모세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진입하였습니다. 수르광야에서 3일 길을 걸었지만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중에 반갑게 만난 샘의 물을 마셨더니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샘물을 마라라고 칭하며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나무 가지를 물 속에 넣게 하였고 그 나무를 넣자 물이 달아져서 모든 백성들이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15: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1)마라라 하였더라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15:25-26)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하나님은 그 쓴 물로 인도하시고 나무가지로 물을 달게 한 사건을 통하여 중요한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셨습니다. 나오미에게 있어서 룻은 나오미의 쓴 인생을 달게 하는 나뭇가지였습니다.

 

룻의 결정은 뜻밖의 사건이요. 예기하지 못했던 은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간 동서와 같이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의 인생길인데, 룻은 `고난의 동반자'로 나선 것입니다.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거기 장사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이미 룻은 희생을 각오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떠나 집을 나서는 순간 자기 집과 고향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베들레헴에 가서 당할 모든 어려움, 핍박, 차별을 각오하였죠.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죽을 것을 각오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심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이 땅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처음에 나오미는 룻을 며느리로 맞이할 적에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 며느리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더군다나 신명기 23장에 나온 여호와의 총회에도 영원히 들어오지 말라는 그 모압족속의 여인인 룻을 며느리로 맞이했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명기 23:3)

 

아들의 며느리라고 하지만, 시어머니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아마, 처음에는 탐탁치 못해서 이혼시키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룻의 선택

룻은 이방여인으로써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을 와서 룻은 짧은 기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슬픈 일들을 경험하였습니다. 룻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행하신 일에 대해 불평하고 욕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시어머니 나오미도 보았습니다.

 

그때 룻은 이러한 생각도 하였습니다.

다 잃어도 괜찮다. 하나님만은 원망하지 말라. -나만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나만 실패한 것처럼 흥분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다 잃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 그때는 정말로 끝이다. -오늘도 하나님께 기대하라. -기대감이 없는 사람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넋두리 일뿐이다.

 

룻은 고민하였습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던 것죠. 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정을 나누었던 오르바는 입을 맞추고 오던 길을 돌아갔죠.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기 길로 영영 떠나 버린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르바의 이름의 뜻입니다. ‘뒷목, 젊음, 구름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죠.

 

구름처럼 영영 흘러간 여인! 우리는 더 이상 오르바를 성경에서 만나지 못합니다. 룻의 마음에도 오르바도 갔는데, 성도도 없는데... 나도 떠나갈까? 라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올라옵니다. 더군다나 시어머니는 가진 거라고는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룻도 오르바와 동일한 사람입니다. 별종이 아닙니다. 그녀는 나오미와 함께하면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알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이방 결혼을 기피하는 풍습으로 보건대 이스라엘에 가면 룻의 재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오직 고생만이 룻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10여년 간 보고 들으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어머니 나오미가 섬기던 하나님이었죠. 시어머니의 인간적인 단점과 모습도 있었지만, 시어머니가 섬기던 하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룻은 결단을 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하였습니다. 이는 이방인의 딸이었는데 동족을 바꾸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즉 혈통적 인연보다 영적 인연으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가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이 결심이 보통 결심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기로 결심하면 무서울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17절을 보십시오). 룻은 독한 여자입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하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 생명의 길은 우물쭈물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가다가 쉬는 길도 아니요, 힘들다고 뒤돌아 가는 길도 아닙니다.

 

룻의 결심은 마치 사도바울의 결심이 생각납니다. 1:20-21)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일제시대에 일본 학정에 못 이겨서 많은 젊은이들이 만주로 피난을 가서 독립군에 입대를 하였다. 독립군에 입대를 할 때는 항상 세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총에 맞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둘째는,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셋째는, “추위에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독립군에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주님의 선한 군인으로서,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룻과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가는 것, 이 길 밖에 없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룻의 결단을 보면서 신앙은 피보다 진하다는 것을 느낀다. ‘신앙 때문에 혈육을 포기하고, 고향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신앙이구나.’

 

오늘, 룻의 결단을 상고하면서 우리도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평생을 던진 사람, 그 꿈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외길을 간 사람들은 본인도 복된 삶을 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 8)

 

룻의 결단을 통하여 니도 주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온전한 고백을 올려드리기를 바랍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위해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위해죽네

하늘영광 보여주며 날오라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위해 피흘리신 내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위해 있네

우리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천사 나팔불며 마중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위해 피흘리신 내주님의 것이요

 

그때 그 도마뱀처럼

도교 올림픽 때, 올림픽 스타디움을 짓기 위해 새로 지은 지 3년밖에 안된 집을 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부들이 동원되어 집을 허물던 중, 벽 틈에서 꼬리가 못에 박힌 채 살아 있는 도마뱀을 발견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3년 동안 살아 있을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작업을 중지하고 사흘 동안 쭉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다른 도마뱀이 나타나 움직이지 못하는 그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3년 동안을 쉬지 않고 변함없이 먹이를 물어다 주어 굶어 죽지 않도록 해준 것입니다. 그동안 어두운 지붕 밑에서 두 도마뱀은 함께 사랑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고통 속에서 서로 안고 잠이 들곤 하였을 것입니다.

 

3년은 얼마나 길었을까?

 

그 도마뱀은 못을 박았던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감격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아니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사랑을 받은 바 있습니다. 바로 예수 십자가 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렇게 곤하고 힘든 인생길을 헤쳐 나갑니다.

 

~ 놀라운 주님의 사랑!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영광스런 천국떠난 사람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놀랍네. 놀랍네.

!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나를 위한 그 사랑

(복음성가)

 

본문 “(1: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하였습니다. 대단히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룻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생활했고 의리를 지켰으며 자부로서 시어머니에게 대한 효성을 다했습니다.

 

자기들은 수십만원짜리 옷을 턱턱 사 입으면서, 부모님은 수십 년 전 옷을 그대로 입게 버려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려견에게는 온갖 돈을 들이면서 따뜻하게 돌보는데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는 개에게 하는 것 반절도 못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자신이나 자식들 입히고 먹이는데는 아낌없이 쓰면서, 낳아준 부모님에게는 쓸 돈이 없는 자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룻은 가난한 시어머니를 먹여 살리려고 이삭을 주우러 갔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가난한 동네에 살았는데... 학교를 가는데 어떤 남학생저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서 얼마나 놀랬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룻기는 아주 오래전 수 천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남편도 없는 룻이 사람들이 드문 밭에 보리주우러 갔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룻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셔서 거기서 이삭을 줍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끼니를 위한 작업이었지만,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보아스를 만나게 된 것이죠.

 

8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3:8-9)

 

나오미가 모압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 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22)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습니다. 추수기에 맞추어서 도착하게 하시고 추수하는 때에 보아스의 집의 이삭을 줍게 하시고, 보아스 밭에서 주울 뿐만 아니라 당시에 보아스를 만날 기회가 없는데 만나게 하시고, 또 보아스가 룻을 무시할 수도 있는데 눈을 맞추게 하시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을 해서 아기를 주시고, 가문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은 위로자를 낳는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통해 한 차원 승화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자신이 고난 중에 받았던 하나님의 위로를 가지고 모든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완전한 절망에 빠져 버린 나오미의 쓴 인생에 룻은 나오미의 위로가 되었고 고난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3가지 탄식을 합니다.

 

1) 고향을 떠날 때 가지고 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탄식

2) 기쁨을 뜻하는 나오미 대신 괴로움을 뜻하는 마라라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탄식

3)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여인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는 탄식

 

그러나 나오미의 이런 탄식이 하나씩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빈손이었던 그녀에게 보아스가 보내 준 곡식이 담겨지고 그리고 그 손에 아들이나 다름없는 손자가 안기운 것입니다. 살 맛을 잃었던 나오미에게 여인들의 축하의 노래가 들려집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그 품에 안긴 아들은 바로 그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살맛을 찾게 해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그의 괴로움은 끝나고 그의 원래의 이름대로 기쁨의 생애가 그녀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희망이 없었던 나오미에게 놀라운 희망이 안겨진 것입니다. 모든 축하와 기쁨은 룻이 아닌 나오미에게 돌려지고 있습니다. 룻은 이 기쁨의 자리에서는 조용히 뒤로 물러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또 다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예표가 된 것입니다.

 

평범한 한 여인 오르바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고난의 동반자"로 나섰던 룻과 같이 오늘의 고난을 민족과 함께 나누는 "고난의 동반자"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룩하시는 당신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결단의 시기에 오르바와 같이 구름처럼 사라져 가는인생이 아니라 마라의 쓴 인생을 달게 하는 룻과 같은 여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 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 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