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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 창9/ 노아의 방주

by 주은총목사 2024. 4. 8.

https://youtu.be/Sea0mdVhyKk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 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노아의 방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6:9~14)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18~22)

 

노아의 방주는 구약성경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한 이후 세월이 지나 세상이 날로 부패하자 홍수로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건립할 것을 결심하시고 노아에게 노아의 방주를 짓도록 명령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동안 얼마나 큰 핍박과 욕을 당했던가 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이 있죠. 바로 베드로 전후서입니다. 이번 주에는 창세기 6장에서 8장 말씀과 더불어 베드로 전후서를 정독하기를 권합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받는 비방과 당하는 욕은 마치 구약의 노아가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에 당했던 핍박이나 비방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그 일 자체가 벌써 하나님 앞에 귀한 일이었죠. 그의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죠.“

 

물론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들었으나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믿지를 않았죠. 그러나 노아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노아를 가리켜 그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했다고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세상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라라고 했죠. 홍수의 경험도 없었지만 노아는 홍수의 경고를 꼭 그대로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그것을, 꼭 그대로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보이는 현실, 매일 경험하는 세상일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내세, 영혼의 일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고후4:18).

 

노아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꼭 보는 것 같이 믿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위해서 보이는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개척교회를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와 물질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며, 자신의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서도 맘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집을 세워 가기 위해서 묵묵히 조용하게 올려 드립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그의 희생이 얼마나 컸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물질의 희생, 시간의 희생, 노력의 희생만이 아니라 마음고생은 보너스요, 많은 수욕을 참아야 했습니다. 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120년의 세월동안 큰 희생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에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죠. 아벨에게는 순교의 피가 따랐고,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친척과 본토와 재산을 버리는 희생이 따랐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습니다.

 

네 짐이 무겁고 힘이드냐 주를 보라

고난이 유익이라 주님 말씀하시네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소망이요 쓰라린 아픔 뒤에 축복이 있다네

 

고난은 인생의 참 의미를 알게 하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할 수 있어요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소망이요 쓰라린 아픔 뒤에 축복이 있다네

 

뉴욕 관광지 중 하나인 브루클린 다리는 가장 길고 오래된 아름다운 다리로 뉴욕의 아이콘입니다. 최초로 철 케이블을 사용하여 19세기 중요한 기계 공학 업적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브루클린 다리를 바라보며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로블링 가족이죠.

 

존 로블링은 독일 태생으로 미국에 이민 온 토목 건축 기사였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다리의 주요 계획 입안자이자 설계자였죠. 이 당시 넓고 물살이 센 이스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선박밖에 없었는데, 점차 교통량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습니다.

 

로블링은 이곳에 다리를 놓을 것을 뉴욕 시장에게 주장했죠. 지형적 특성상 강 중간에 교각이 없는 다리를 짓는다는 것은 그 당시 너무나도 획기적이고 위험한 방법이라서 전문가들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존 로블링과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뉴욕 시장과 금융업자들을 설득하고 공사자금을 모아 다리 건설에 착수하죠.

 

안타깝게도 존 로블링은 착공 직전인 1869년 측량을 마무리하던 중 보트에 부딪히는 사고로 페리와 선착장 사이에 다리가 끼는 사고를 당합니다. 의사는 그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지만 3주만에 파상풍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는 꿈에 그리던 공사를 시작하자 마자 같은 해 사망한 셈이죠. 이스트강을 잇는 다리를 완성하고 싶은 꿈을 꿈과 동시에 그 꿈이 자신의 사망으로 이어지게 될 줄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존 로블링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은 토목공학 전공으로 아버지와 함께 다리 건설 현장일에 종사했습니다. 아버지 존의 사망과 동시에 책임 엔지니어로 일하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각 기초공사단계에서 감압증에 걸려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불구가 되어버리는 참사가 일어나죠.

 

그 상황에서도 워싱턴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하나로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다리가 설계대로 만들어지는지 망원경으로 공사현장을 지켜보며 감독했습니다. 그는 남은 인생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존 의 며느리이자 워싱턴의 아내인 에밀리 로블링 역시 용감한 여인이었습니다. 시아버지의 사망과 남편의 불의의 사고 속에서 오히려 강한 집념의 여성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남편이 반신불구가 되어 현장에서 지휘감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에밀리는 그의 감독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로 현장을 지휘 감독했습니다. 여성의 입장으로 험한 공사판의 현장을 지휘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죠.

 

브루클린 다리는 1869년 착공되어 13년만인 1883년 개통되었습니다. 존과 아들 워싱턴 그의 아내 에밀리 로블링으로 이어지는 13년간의 헌신적인 집념의 결과가 오늘날의 브루클린 다리를 탄생시켰습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는 왜 매년 브루클린 다리에서 거행되는 것일까요? 오로지 인간의 손으로 건설된 브루클린 다리는 대를 이은 로블링 가족의 도전과 집념 그리고 600만명의 작업자들과 27명의 사망자의 낸 헌신의 결과였죠. 미국인의 도전과 집념의 아이콘을 이보다 잘 표현한 곳이 또 있을까요?

 

미국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다짐할 때,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때 브루클린 다리를 찾는다고 합니다. 뉴욕 브루클린 다리에 방문하면 로블링 가족의 헌신을 상상해 보세요. 불안과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가지십시요. 인생의 걸작이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집념의 산물이니까요.

 

인내하는 기도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너무 서두르지도 마세요

우리의 간절한 기도 주님께서 감찰하시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듯 엘리야가 비를 내리게 하듯

간절히 인내하는 기도 주님께서 응답하세요

믿고 간구하세요 받은 줄로 생각하세요

의심의 검은 구름 저 멀리 버리세요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아니한다고

낙망하지 마세요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 주님 역사하심을 믿으세요

가장 적당한 날에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 주님 예비하심을 믿으세요

가장 적당한 날에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 주님 예비하심을 믿으세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함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11:7)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6:22) 노아는 방주를 짓고, 동물을 싣고, 식량을 모아 실었습니다. 그는 방주 제작에 필요한 목재, 방수재, 규격, 방주의 승객과 화물 등 모든 것을 다 말씀 그대로 따랐습니다. ‘잣나무가 근처에 없는데 느티나무로 하자라든지 창문을 그렇게 꼭대기에 달면 채광도 나쁘고 바깥도 안보일 테니 층마다 달자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모든 일을 순종하였습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명대로 준행했죠.

 

노아의 방주의 영적 의미

성경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말하듯이 노아의 방주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그림자(모형)입니다. 우리는 방주의 구조를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모형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창6:16에 보면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을 옆으로 내라" 하였습니다. 방주는 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구원의 문은 하나란 암시이죠.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예수님만이 구원의 문이란 암시입니다.

 

방주의 창은 방주 꼭대기에서 한 규빗(45센티) 아래의 높은 곳에 두었죠(16). 그래서 방주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늘만 쳐다보아야 합니다. 창문이 사람 눈높이에 맞춰 있었다면 대 홍수로 무수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다 보이면서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홍수가 넘치는 무서운 심판의 날에도 방주의 창문은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오직 위만 바라보게끔 지어졌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평안과 안식의 예표였죠.

 

홍수가 그치고 물이 잦은 후 방주가 아라랏 산봉우리에 닿은 그 날은 신비롭게도 717일이었습니다.(8:4). 그날은 니산월 17일이죠. 유월절을 지난 3일만의 날입니다(12:6). 그날은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로 보여주는 날입니다.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부활의 세계가 시작됨을 보여주죠. 이처럼 성경의 기록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너무나 오묘하고 신비합니다.

 

20231025일 신문에 세계적인 구조물로 유명한 노아의 방주가 내년 3월경에 우리나라로 옮겨지고, 설치될 장소 가운데 김포시도 물망에 올랐다고 전해지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노아의 방주2012년 네덜란드의 건축가 요한 휘버스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성경에 쓰여진 크기 그대로 만든 초대형 목재 현대판 방주로, 길이 125m, 너비 29m, 높이 23m, 연면적 약 16528(5천평), 무게 약 3천톤 규모다. 제작하는 데 6, 420만 달러(58억원)가 투입됐습니다.

 

요한 휘버스가 만든 노아의 방주는 총 7층 구조로, 노아가 대홍수를 대비해 동물 암수 한 쌍씩을 실었다는 성경 기록을 따라 내부에 얼룩말, 기린, 코끼리 등 1600여종의 동물 모형이 설치돼 있고 1천여명이 동시에 예배할 수 있는 공간과 40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죠.

 

노아의 방주2012년 제작된 이후 10여년 동안 네덜란드 남서부 도시 도르트레히트 해상에 정박해 역사박물관이자 각종 문화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돼 하루 3천여 명,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세계적 명소로 각광받았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우리나라까지 운반되려면 자체 동력이 없어 바지선을 이용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운반비와 설치비를 합해 약 70억원과 약 2개월 반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고 소개하면서 내년 3월 정도에 김포에다가 유치될 전망입니다. 이글은 김포신문에도 실렸죠.

 

물론 노아는 자기의 마음대로 그렇게 큰 배를 지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준행한 것이라"(6:22) 노아는 그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준행했죠.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후에 곧 홍수가 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7일 후에야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 (7:910) 했음을 보죠. 성경에 그 7일이 강조된 것을 우리는 주의할 필요가 있죠. 7일이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최후의 기회였습니다.

 

본래 성경에 7수는 완전 수라고 하죠. 누구나 방주에 들어올 수 있는 최후의 완전한 기회를 의미합니다. 노아는 패역한 사람들이, 정욕과 음란으로 인해 가정을 나간 사람들이 방주안으로 들어오기를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음란을 버리고 패역한 길에서 돌이키고 제발, 방주안으로 들어오십시오.”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노아를 끝까지 비웃었습니다. 날은 여전히 맑았고 낮의 해는 솟아 올랐지만, 노아는 7일 동안이나 문을 열어 놓고 최후의 기회를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는 가리켜 끝까지 "의를 전파한 노아"(벧후2:5)라고 했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24:37-38).

 

예수 피를 힘입어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나를 구원한 주의 십자가 그것을 믿으며 가네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나 여전히 부족하나

나를 품으신 주의 그 사랑 그것을 믿으며 가네

자격없는 내 힘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자격없는 내 힘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십자가의 보혈 완전하신 사랑 힘입어 나아갑니다

십자가의 보혈 완전하신 사랑 힘입어 예배합니다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나를 구원한 주의 십자가 그것을 믿으며 가네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나 여전히 부족하나

나를 품으신 주의 그 사랑 그것을 믿으며 가네

 

노아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전부 구원을 받은 반면, 롯의 경우에는 심판을 믿지 않은 사위들과 불순종한 롯의 처는 구원을 받지 못했죠.

 

롯은 여호와의 동산같고 향락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에서 맨나 음란한 문화만 접하니, 롯도 조금 이상해졌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의 음란과 동성애로 롯의 심령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옛날에 마님과 돌쇠가 있었습니다. 하면서 마님은 돌쇠를 비롯해서 종들을 돌아가면서 따콩따콩 따 먹었다고 하고, 주인어른은 주인어른대로 젊은 처자들을 데려다가 즐겼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에 문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한 배우자, 한 남자, 한 여자에게만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주위에 음란한 문화가 있는 도시에 있다 보니 롯의 심령이 변해갑니다. 천사들이 바로 자신의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말을 하죠.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너희 눈에 좋을대로 해라

 

롯의 신앙상태가 온전치 않았습니다. 노아의 가족 전부 구원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창세기 713)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죠. (창세기 1926)(창세기 1914)

 

지금, 당신의 가족은 어떻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구원의 방주에 올라탔습니까? 예수를 믿으려면 제대로 미치십시오! 처음에는 영적 전쟁이 치열하지만, 내가 예수에 붙잡히고 미친만큼 그들에게도 예수의 불이 뜨겁게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하십시오. 예수님은 미지근 한 사람은 토해서 내친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세미한 음성이 당신에게도 들리기를 축복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구원의 방주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고 또 하나님께서 친히 방주를 설계해 주셨습니다.

 

방주는 하나님께서 설계를 하셨죠. 당신의 <인생설계도>도 하나님께서 해 주시길 축복합니다. 광야에서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의 설계도도 이름있는 유명한 건축가가 아닌 그보다 뛰어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방주는 엄청난 폭우와 심한 풍랑 중에 1년 이상 떠다녔어도 배가 새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어부도 아니고 배 만드는 목수도 아니었지만 완벽하게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셔서 산봉우리나 암초에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운항을 마치고 뭍에 내렸습니다.

 

이 시간에 나 자신과 가정과 사업체에 감당할 수 없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홍수가 나고 있나요?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나에게 이르렀나요? 숨이 막히고 돈 문제는 터지고,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스트레스로 인해서 건강을 잃고 팍 늙어 버릴 것 같나요?

 

방주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고개를 들고 주님을 바라보며 같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과 세상의 허무한 말들은 나 자신을 공격하여 나를 쓰러뜨리고 가정을 넘어지게 하고 회사를 무너지게 합니다. 침륜에 빠지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을 바르십시오! 기도의 역청을 안팍으로 팍팍 바르십시오.

 

방주는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를 하셨습니다. 잣나무로 건조하고 안팍을 역청으로 방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방주엔 방향키, 나침반, 방향타(운전), 돛대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홍수로부터 보호하시고 좌초되거나 파선되지않도록 안전하게 인도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도 세상을 사랑하며 내 본성의 욕구대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좋은 학벌과 경제적 능력 등을 추구하며 세상에서 보란 듯이 출세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지만, 자녀에 대해 기대가 큰 부모를 만족시킬 수가 있을 것 같았죠. 음란에 허우덕 대며, 세상에 미련을 두고 첨버덩 거렸습니다.

 

내 욕구가 먼저였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역시,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죽어갔던 사람들처럼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던 그날, 물속에 잠겨 죽었죠.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살아왔던 교만과 함께 죽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나오던 그 순간, 나의 모든 죄악은 말끔히 씻겨 나갔고, 다시 태어나 새 삶을 부여받았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피로 자기 죄를 씻은 자들이 행하는 거룩한 믿음의 고백(성례)입니다. 세례를 받은 자들은 노아와 그 가족들처럼 구원의 방주에 올라탔습니다.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고 세례를 통해 죄를 씻은 자에게는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의 때에 홍수심판이 끝나고 물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 비둘기 한 마리가 올리브 나뭇가지 잎사귀를 입에 물고 노아의 방주로 날아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은 노아를 어리석다 조롱했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였습니다.(잠언 9:10) 누가 지혜롭고 명철한가. 세상인가, 노아인가.

 

주님, 홍수 심판을 대비한다며 그 커다란 배를 짓는 동안 노아는 수많은 손가락질과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순종했던 노아처럼. 주님, 저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일들을 영적인 120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려도 묵묵히 노아의 방주를 짓게 하옵소서. 내게 붙여 주신 영적인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 오르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아멘.

 

이 영화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