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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의 창5/ 라멕의 노래

by 주은총목사 2024. 3. 24.

https://youtu.be/ihGn4Xfpxmk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제목: 라멕의 노래

본문: (4:8~26)

성경본문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모든 것이 다 틀어지죠. 첨부터 과녁이 틀어지면, 다 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지을 때는, 거기서 끝날 줄 알았지만, 그 아들 대에서는 형제간에 살인이 벌어지고, 죄가 더 악화되고, 더 증폭됩니다.

 

부모 대에서 생긴 문제는 반드시 자식 대에 연결되고, 더 깊어지고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하죠.

 

아담은 그나마, 부끄러운 줄 알고, 죄책감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대에 가서는,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삿대질하면서 대듭니다.

 

가인이 한 말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왜 나한테 묻습니까?”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요? “다 그렇게 하고 사는데, 그렇게 유별나게 믿어야 합니까? 제가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살다보니, 죄가 뭔지도 이제는 둔해졌습니다. 왠만한건 죄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데, 너무 유별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고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가인의 일은 가인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 더 증폭되고 더 악화된다고 경고하죠.

 

성경은 이렇게 가인 자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인간이 점점 더 흉폭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 하반부에는 가인의 후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아들은 에녹이며, 가인은 성을 쌓았는데 아, 집을 짓고 성을 건축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서 그 성의 이름을 아들 에녹의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가인의 6대손에 라멕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라멕은 두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그녀들의 이름은 아다와 씰라입니다. 그리고 각기 자녀들을 낳았죠. 아다는 야발과 유발을 낳았습니다. 씰라는 두발가인과 그의 누이 나아마를 낳았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유명한 자들이 되었죠. 야발은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고, 유발은 악기를 다루는 자의 조상이고,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기구를 만드는 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버클리를 가고 하버드를 가고 예일공대를 가고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대단했죠. 소위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죠.

 

가인의 후예들이 지향한 세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힘과 권력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갖기 위해 안간힘을 다합니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힘이라고 생각하고, 이 힘을 갖고 또 이 힘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 그렇기에 경쟁과 생존의 잔혹함을 훈련하는 것이죠. 냉정하게 말해 우리 사회는 아직 가인의 후예들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참 고단하고 피곤한게 아닐까요?

 

성에 거주하면서 안전을 도모하고, 그리고 땅에서 나는 곡식이 아닌 삶의 방식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가인은 원래 농사를 지었던 자이지만 이제는 목축과 음악과 기구를 만들어서 필요를 해결하였습니다. 이런 삶은 두 아내를 가질만큼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었죠. 여러 아내를 둘 수 있는 것은 모두 경제적인 능력과 관련됩니다. 뭐 먹고 살만해지니까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애인 하나씩 두는 것이죠.

 

소위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가인의 후손들이 이런 힘을 가지고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았는가를 보아야 하죠.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라멕이 부른 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루는 집에 돌아와서 두 아내에게 자랑을 합니다. 오늘 길을 가다 한 젊은 청년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가 자신에게 창상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가 창상을 입혔기에 나는 그를 죽여버렸다고 자랑하며, 첫 살인자 가인을 죽인다면 그 벌이 일곱배이지만 만일 나 라멕을 죽인다면 그 벌은 칠십 칠 배가 될 것이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즉 그만큼 자신의 생명이 가치가 있고, 또 자신이 그만큼 용맹하다는 것을 자랑한 것이죠.

 

용맹한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 바로 가인의 후예들은 그런 세상을 점점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와 보복을 서슴치 않았고, 그런 용맹함을 지닌 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된 것이죠.

 

6장에 가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렇게 용맹한 이들은 신의 자손이라고(, 나는 금수저야) 하며 스스로를 일컬으며 사람들을 다스려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가 얼마나 잔혹하고 공포가 가득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죠? 힘이 없는 자들은 그저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착취당하는 그런 사회였던 것입니다.

 

성과와 업적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죠.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우리는 모두 서로를 향해서 서로 돕는 이가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취와 힘의 독점, 계층의 분화와 권력의 양극화를 통해서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윽박질하고 억압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출세와 이기심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짓밟는 행위를 서슴치 않죠.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더 늘어간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주 사랑 안에 사네 주 우릴 하나로 회복했네

한 집에 사는 우리 형제자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 우린 하날세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라멕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부일처의 결혼제도를 최초로 깨뜨린 사람이죠. 라멕의 두 아내의 이름은 아다와 씰라입니다. 아다의 뜻은 '장식품' 도는 아름다운, 사랑스런'을 의미합니다. 씰라는 '그림자'인데 더운 지방에서는 그림자는 그늘이며, 구원을 상징하죠. 씰라의 이름이 '딸랑딸랑 울리다'라는 찰찰이란 히브리어에서 왔습니 이렇게 보면 두 아내는 멋진 병행을 이루죠. '부드러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 라멕의 노래는 먼저 두 아내를 자랑하는 병행하는 두 행이 나오죠. 자신의 경제력과 힘을 과시하는 선언입니다.

 

라멕은 자기 아내들에게 검의 노래(복수의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다야, 씰라야, 내 소리를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창세기 423)

 

그리고 이어서 라멕이 살인을 정당하게 된 사건을 말하죠.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으로 인해서 죽음으로 응징했다고 말을 합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라멕의 두 부인은 라멕이 칼과 살인에 관한 노래를 하는데도 남편이 행한 악행에 충고는커녕 찬사를 보내고 함께 동조하며 박수를 보냈죠. 자신의 남편은 흙을 파는 일개 농사꾼이 아니라 집도 좋고 경제력도 빵빵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자녀들은 버클리를 가고 하버드를 가고 예일공대를 갔습니다. 악기를 다루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구리와 쇠로 기구를 만드는 일등장인이 되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 라멕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아다는 매일 꽃단장하고 꾸미는 데 온 정신과 시간을 다 소모하고, 씰라는 라멕의 살인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고 온갖 유혹적인 애교를 부리며 딸랑딸랑 장단을 맞추었죠.

 

라멕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 행위를 하고도 평소와 똑같이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자기 아내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섰습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안했죠. 감히 누가 라멕을 건드릴 수가 있을까요?

 

창세기 423절과 24절을 [라멕의 살인예찬]이라고 합니다. 라멕이 자기가 살인한 것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죠. 성경에는 수많은 노래가 있습니다만, 살인을 찬양하는 노래는 [라멕의 노래] 밖에는 없습니다.

 

(23)“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창상은 히브리어로 페짜로서, 생명에 해가 될 만큼의 중상이 아니라 가벼운 타박상이나 멍이 든 정도를 말합니다. 그는 겨우 작은 창상과 상함을 입고 자기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 힘과 권력을 과시하면서 고귀한 생명을 무참히 파괴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그대로 옮겨서 번역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내가 받은 조그만 상해 때문에 한 사나이를 죽였고, 나는 내가 받은 작은 상처 때문에 한 소년을 죽였다

 

조그만 상해는 멍이 들 정도의 작은 상처를 말합니다. 누가 나를 멍이 들게 했는데,

나는 그를 죽여 버렸다는 겁니다. 나에게 사소한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 죽여버린 것을 자랑합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가인이 대들었던 것은 이제보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멕에 비하면, 가인은 양반인 것이죠.

 

한번, 표창원, 이수정이 되어서 라멕의 범죄자 프로 파일링을 작성해볼까요?

범죄자 프로파일링(영어: offender profiling, criminal profiling)은 심리학, 사회학, 범죄학 등을 이용하여 범죄자의 심리 및 행동 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범인상() 추정, 범죄유형 분류, 피의자 신문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과학적 수사 기법을 말하죠.

 

먼저, 라멕은

1. 두 아내를 자랑하죠. 두 번 반복합니다.

2.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합니다. ‘내 목소리’ ‘내 말을 들으라고 강조하죠.

3. 자신의 살인을 자랑합니다. ‘나의 상처’ ‘나의 상함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하죠. 라멕의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타인을 죽여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죠.

4.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로, 악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라멕은 자신의 선조인 가인보다 더 악한 존재로 그리죠. 우리는 라멕의 노래를 통해서 죄의 확장성과 구체성을 엿 볼수가 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여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아담에게 시작된 죄는 가인에게 구체적인 죄로 드러나고, 라멕에 의해 인간의 보편적 성향으로 자리 잡죠.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중되어야 할 생명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악한 풍조가 성행하게 되었음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죠.

 

전쟁의 시작은 관계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이제 라멕을 통해 죄는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이고, 차마 행하지 않았던 죄도 담대하게 행해지죠. 비디오를 통해 아이들이 살인과 음란, 마약 폭력성을 배웁니다. 죄에 용감해지죠. 라멕의 시대를 지나 이제 노아의 시대는 폭력의 시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라멕은 문명을 만들었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라멕의 자손들은 많은 재주를 가졌죠.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과 행복은 별개의 문제임이 드러나죠.

 

라멕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살인은 관계의 죽음이죠.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자신을 위한 존재로 보지 않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취급한다. 영적인 생명을 물질적 쾌락추구와 성공지향과 문명의 발전으로 대체하고 있죠. 이것들을 통해 함께 사는 세상, 서로 돕는 세상을 만들지를 않았습니다. 좋은 펜트하우스, 경제력, 두 명의 아내를 두었다는 것은 곧 힘이 지배하는 세상을 말하죠.

 

당신은 좋은 집과 돈을 잘 버는 남편, 서울대, 하버드, 예일대, 버클리에 다니는 자녀로 인하여 행복한 가요? 마지막 때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부모의 속을 썩 일대로 썩이는 웬수라는 것입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3)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주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세상 어딜가나 슬픔뿐이요

먹고자고 애써 일할뿐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여 나는 무엇하리까?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주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어둠속에 손펴 도움 바랄때

돌연 빛이 나를 비추네

예수님이 서서 눈물흘리며

지체말고 오라하시네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주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처음에는 죄라는 것, 불순종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죄스럽고, 부끄러워, 변명을 해서라도 용서받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흐려져가고, 굳어져가죠.

 

결국은 하나님을 반박하고 조롱하는 사탄의 종이 되어, 사탄의 노래를 서슴없이 부르고 삽니다. 이것이 아담에서 가인에게, 그리고 라멕으로 이어지는 죄의 흐름도고 죄의 지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속히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라멕의 노래를 보고, 가슴아파 해야 합니다. 라멕의 노래가 내 노래가 되지 않도록, 내 자식의 노래가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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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노래는 경제력과 정치력 등 힘을 기반으로 한 성(도시)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비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이 추구하는 문명과 삶의 결과들이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없고 그의 은혜를 구하고 찬송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의 자손들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에노스의 노래이죠.

[에노스]는 누굽니까? 바로 다음절에 나와 있습니다.

 

[에노스]를 낳고 나서야,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그럽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예배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노래한 겁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에노스]때부터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까? [에노스]란 이름의 뜻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칠십배로 갚아주겠노라큰 소리 치지만, 나도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잰데,

/내가 누구를 복수하고, /복수하면 또 얼마나 하겠습니까?

 

/내가 티끌처럼 가벼운 존재인가를 알았다면, /내가 에노스임을 깨달았다면,

속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육체로 있는 동안에 아내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여야 하죠. 잘못을 저지른 못난 부모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 전에 자식을 찾아가서 잘못을 사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죽고 나면, 이제는 회개의 문이 닫혀서 더 이상 용서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에노스는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생명을 살리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명을 노래했죠. 사망을 찬양하는 라멕의 노래와 너무 달랐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은,

/성을 쌓고, /악기를 만들고, /무기를 개발하고,

/세속 문명을 이루고, /발전시켜서, /세상 왕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결국, 어리석은 라멕의 노래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러나 셋의 후예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악한 세대에 물들이지 않고, 복수하지 않고 바보처럼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에노스의 노래입니다. 에노스의 노래는 신앙의 노래요, 용서와 사랑이 충만한 생명의 노래요, 소망의 노래였습니다.

 

세속의 악기를 만들고, 세속의 문화를 만들고, 세속의 농사를 지어, 인생의 풍요를 누리고자 하나, 그 속에서 자신이 에노스인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라멕의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저마다 자기 노래가 있습니다. 자기 노래를 부르다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신은 무슨 노래를 부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겠습니까?

 

기도> 주님,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하였고, 가진 재물도 없습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휙휙 불어 닥치는 칼바람을 맞이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최고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사랑과 든든한 위로로 이 세상 끝날까지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