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따뜻함이 그리운 아이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많이 미워하였다. 술 먹고 와서, 이유 없이 때리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어느 때인가는 회초리가 부러져서, 자신의 허리띠를 풀러 죽어라 때렸다. 학교도 안 보내고, 가두어놓고, 늘 슬픔 속에서 살았다. 자살하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밤마다 산을 걷고 걸어, 매일 같이 도망가는 꿈만 꾸었다. 그런 아버지는 동네에서 슬금슬금 피하는.., 그야 말로 동네 사람들이 내어 쫓으려고 안달하는 망나니였다.
심지어, 자기 마누라가 산골짜기의 어두 캄캄한 방 안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순간조차, 술에 취해 잠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누구하나 아이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머리는 유달리 커서 나오지를 않았고, 어머니는 혼자 아기의 머리를 꺼내려고 발버둥 쳤다. 아이와 산모 자칫 잘못하다 둘 다 죽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를 악물고, 산모 혼자 자궁으로 손을 넣어 아기의 머리를 기어코 끄집어내어, 혼자서 탯줄을 끊어야 했다.
아기를 낳은 바로 그 다음날, 온 몸과 마음이 아픈 몸뚱이를 끌고 간신히 설거지를 하는 산모의 벌어진 자궁 사이로는 깊은 산골의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들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 컸다. ‘미래’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을 버리고, 깊은 산골 추풍령 골짜기를 무작정 뛰쳐나갔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로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도 어머니의 포근함도 모른 채, 그렇게 나의 삶은 시작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 없는 아이에다 술주정뱅이의 딸’이라는 눈초리와 무시 속에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래도 나의 성격이 삐뚤어지지 않은 것은 할머니의 신앙과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나는 그 열악한 상황 중에서도 주일학교를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다. 교회 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교회에서 먹던 떡국이 생각이 난다. 주일학교에서 주는 노트와 연필, 그리고 성경퀴즈대회 때 받은 크레파스도 큰 즐거움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늦은 밤에, 집 밖에서 불러주던, 성탄축하곡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마치 천사의 노래 같았다. 할머니는 그들을 위해, 뻥튀기와 튀밥을 준비해 두셨다.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주일학교 선생님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시던 선생님, 율동을 무척이나 곱게 잘 하시던 선생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뒷집 선생님도... 첫 사랑의 아련한 아픔처럼 그리워하고 있다.
가정을 돌 볼 줄 모르던, 백수건달로 일생을 보내던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어쩌다 집에 들어오던 날이면, 으레 매질을 해대었다. 술을 잔뜩 먹고는 ‘이 놈의 세상 뒤집어 버려’하며 거침없는 욕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도, 생활기록부 가정란에는 항상 우리 집은 ‘보통의 평범한 가정’이라고 적었다. 정말 평범한 가정인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도 심한 매질에 가정을 돌 볼 줄 모르는 그런 아버지인줄 알았다.
어느 날인가, 술에 잔뜩 취해 학교에 안 보내겠다고 책이며 다 불태우시겠다는 아버지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그 얼굴도 생각이 난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교회에 가서 캄캄한 밤에 슬피 울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교회에 차가운 나무 바닥에 앉아 예수님께 기도하며, 혼자서 풍금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교회 집사님이 어디서 망나니 같은 자식이 풍금을 치냐고, 풍금을 칠 수 없게끔 잠가 버리고 교회 문을 잠가 놓으셨다. 그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나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어느 집에 부엌살림이 숟가락 몇 개인지도 다 알 정도로 산골인지라, 늘 어른들의 무시와 멸시의 눈초리는 어린 아이의 가슴에도 많은 상처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이 심하게 아팠을 때,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당시에,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았지만, 홀로 있는 내게 주님은 늘 나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은총아, 울지 마. 네가 울면 나의 마음도 아프단다. 내가 너를 인도할게.”
“주님, 이제 중학교도 다니지 못해요. 다른 친구들은 다 학교 다니는데, 나는 산에 나무하러 다녀요.”
그러자 주님이 내게 말씀하였다.
“아니야, 은총아. 내가 너를 대학교도, 그리고 미국 땅도 밟게 할게.”
“네???”
당시에, 나의 생각에 미국은 마치 천당 같았다. 미국에서 선교사님이 오셔서, 거주하기도 하셨다. 나는 미국인 선교사님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따라다녔다.
“I love you, I love Jesus"
라고 말하는 나를 예뻐하셨고, 그러면 나는 “바보는 영어로 뭐라고 하는 거예요.” 하면서
종종 영어단어를 물어보았다. 주님은 나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큰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은, 이럴 때 하는 말 같았다. 1983년 초가을 새벽, 아침 일찍이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할머니가, 바로 내 눈 앞에서 쓰러지셨다. 무너져 가는 초라한 우리 집 기둥을 잡으며. 사람의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눈이며, 귀며, 입에서 피를 내뿜으며 쓰러지셨다. 역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뒤, 할머니의 똥오줌을 받아내며 할머니를 돌보던 나에게 주위의 어른들은 이제 고아원으로 보내야겠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아, 눈물이 폭포수 같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죽고 싶었다.
누구하나 하소연 할 때가 없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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