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h_kf6xkTCI?si=wm2j2ORiclzDbwRI
꿈이있는교회/ 주은총목사
잊지 못할 아름다운 만남
할렐루야!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시간입니다.
忘れられない美しい出会い
ハレルヤ!ジュウンチョン牧師と一緒にする霊性散歩時間です。
人間は愛をする瞬間から老化が中断されるそうです。独身老人が異性に会って愛する瞬間から日々死んでいった脳細胞が嘘のように再び生き返るということです。愛が宿る出会いが死でも倒せるほどの偉大な生命力を持っています。
ある夫婦が離婚して6歳の息子を別の家に養子に送りました。子供はその後両親の下で育ちました。両親はガルピトすると子供を殴り、さらには子供だけ家に残して数日ずつ夫婦だけ旅行に行って来ました。
両親に虐待を受ければ受けるほど、子供は自分を捨てて去った両親を恨む。子供は12歳の時から胸に武器を抱いて通っていました。自分を捨てた親を探して復讐をするためでした。胸にチャゴクチャゴク溜まったあの子の恨みはついに22歳の時に胃を破壊するボトルに飛び出しました。
彼は病院で胃切除手術をした後退院したが、8ヶ月ぶりに再入院して残りの胃の半分を切り取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それにもかかわらず、彼は6ヶ月で3回目に入院しました。病院では、彼は手術ではなく精神科の治療が必要であると結論付けました。それで、カウンセリングを通して癒しのプロセスが始まりました。
相談の結果、驚くべき事実が発見されました。自分を捨てた親に対する恨みから、この病気が始まったので、親親に会って許して和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噂の終わりに近く彼の母親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ました。
彼の父はすでに世界を去った後でした。相談室の牧師が彼らの出会いを手配したとき、息子は数日間彼の母親を見下ろそうとしませんでした。しかし、彼の母親は息子に許しを借りて、彼は泣いていませんでした。 3日後、息子は母親の胸に顔を埋めて泣き始めました。そのように数日を握って泣いた帽子はついにお互いを真に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ました。その時から息子の上に奇妙な変化が起こり始めました。
胃壁を溶かした強い酸性の消化液が減り、自ら治り始めたのです。しばらくして息子は完治しました。 3番目の胃切断手術をする場合、致命的だった息子の健康状態が母に会って真の和解をこの部屋として新しい生命力を得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
生きてみると、人生がゴミ箱に捨てたいだけにもつれて説き悲惨になることがあります。誰が見ても回生不可能な状況に触れる時があります。しかしそのような時でも、神様は彼を見守り、心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ヨブが凄惨地経に至り、妻が去り、友達が指をつけた時も、神様はヨブから目を離さなかったのです。
今、消えた港のように方向もなく行く道を失いましたか?今喪失自信の中ですか?しかしそこにも希望はあります。ゴミ箱にも花が咲きます。私たちが希望を捨てない限り。
もう一つの話です。
40代の二人の男が同じ病気になっていました。彼らは両方とも手術を控えていました。しかし、そのうちの一人は比較的健康に見え、一人はとても衰弱していました。医師は衰弱した患者の手術の結果を心配しました。しかし、手術の結果はまったく意外でした。当初、良い結果が予想された患者は麻酔から栄養を起こすことができず、むしろ心配していた迅速に回復しました。理由は簡単でした。回復した患者には手術後に帰る暖かい家や家族、友人がいたが死亡した患者には帰る家も、歓迎する家族もなかったのです。
彼を待っているのはちょうど一日一日を天の腕で延命しなければならない寂しい現実だけでした。 彼はこの世界で生きる力を得る支持者がいなかっただけでなく、むしろ人生のひもを置くのが幸せだと思いました。
痛みの中で、3年余りを一人でいました。 「むしろ死ぬのが幸せでしょう」という考えに深いうつ病に苦しめられました。中年の年齢で、すべてをすべて失い、誰か一つ呼ぶことなく、誰もが訪れることなく、痛みを癒す必要がありました。その時、私の人生で最も重要なこと、「ただイエス・キリスト」を捕まえました。彼がいなければ、自殺することができた人生に、主は私に幸せと喜びと慰めを与えられました。
あなたは今誰を待っていますか?ただ火が消えた空の部屋しか待っていない人がいない人は、厄介な人生の荒野を過ぎているのです。ところでそう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真実ではありません。真っ暗な闇の中でも、荒涼とした砂漠の真ん中でも私たちを待ってくれる人がいます。帰ってきた唐子を迎えてくれるように疲れ、大変な人生を振り返る愛の神様がおられるのです。
人生とは誰かとの出会いで初めて完成します。見つめなければならない対象がなければならず、分けるべき相手がいなければならず、頼るべき何がなければ支えられる柔らかいものだからです。一人で立つということは影のない人生のようで、長くて短い話が全くない無味乾燥したことを意味します。重要なのはイエス・キリストです。キリストが見なければなりません。イエスが見なければ、すべての危機を克服することができます。
私は人生の危機にキリストの言葉を思い出しました。主とのその激しい最初の出会い
思った。最も大切な主との出会いが私の一生を捕らえました。
イエス様に会った時、その美しい感じ。今でも忘れられません。
鳥の音も美しく、花も美しく、世界も美しく、苦労も美しく、危機も美しく、死も美しく見えました。十字架と彼の言葉と礼拝のために、イエス・キリストが私の救い主の神として見られるとき、過去も恵み、未来も恵み、今日私が生きる一日一日、出来事がすべて恵み、感謝、幸福です。
「本当に美しい。主の世界は、そのソロモンの服よりも優れたユリ
主賛美するように、あの澄んだ鳥の音私の父の建てられたその技量深い。
(賛美歌78章)
イエスに対する私の最初の愛は情熱そのものでした。学校よりも教会が良かったし、熱い恵みに勝てず、どれほど賛美をたくさん呼んだのか、すべてのボール礼拝はもちろん、夜明けの祈りまで行きました。山に登って毎晩祈りの時間を持ち、主の愛にたっぷりとりました。
それから神は私に「恐れてはいけません。私はあなたと一緒にいます。驚かないでください。私はあなたの神になります。私はあなたを固めます。本当にあなたを助けてください。まさに私の義なる右手であなたを握りなさい」(イザ41:10)はみことばを与えました。
主よ、今も働かれておっしゃる「生きておられる神様」に会う「衝撃的な経験」をさせてください。
その驚くべき神様が私の人生の紅海にも道を出して、大きな仕事をしてしまった力の神様を証しさせてください!死の中で望みのない日に渡された奇跡の神様を賛美してください!イエスの名で祈ります。アーメン。
잊지 못할 아름다운 만남
할렐루야!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시간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하는 순간부터 노화가 중단된다고 합니다. 독신 노인이 이성을 만나 사랑하는 순간부터 날마다 죽어 가던 뇌세포가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깃든 만남이 죽음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여섯 살 난 아들을 다른 집에 양자로 보냈습니다. 아이는 그 후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양부모는 걸핏하면 아이를 때리고, 심지어는 아이만 집에 남겨두고 며칠씩 부부만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이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부모를 원망하였다. 아이는 12살 때부터 가슴에 무기를 품고 다녔습니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 그 아이의 원한은 드디어 22세 때 위를 파괴하는 병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위 절제 수술을 한 뒤 퇴원했으나 8개월 만에 다시 입원하여 남은 위의 절반을 잘라 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6개월 만에 세 번째로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수술이 아니라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통한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담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한에서 이 병이 비롯된 것이므로 친부모를 만나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가까스로 그의 어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상담실 목사가 그들의 만남을 주선했을 때 아들은 며칠 동안 그의 어머니를 쳐다보려고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사흘 만에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붙들고 울던 모자는 마침내 서로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의 위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위벽을 녹이던 강한 산성의 소화액이 줄어들면서 스스로 치유되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아들은 완치되었습니다. 세 번째 위 절단 수술을 할 경우 치명적이었을 아들의 건강상태가 어머니를 만나 진정한 화해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인생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을 만큼 얽히고설키고 비참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회생 불가능한 상황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욥이 처참지경에 이르러 아내가 떠나고, 친구들이 손가락질을 했을 때도 하나님은 욥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불 꺼진 항구처럼 방향도 없이 갈 길을 잃었습니까? 지금 망연자실한 가운데 있습니까? 그러나 거기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쓰레기통에도 꽃은 핍니다.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40대의 두 남자가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수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고, 한 사람은 무척 쇠약해 보였습니다. 의사들은 쇠약한 환자의 수술 결과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수술 결과는 전혀 의외였습니다. 당초 좋은 결과가 예상되던 환자는 마취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걱정하던 신속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회복된 환자에게는 수술 후 돌아갈 따뜻한 집과 가족, 친구들이 있었지만 사망한 환자에게는 돌아갈 집도, 반겨줄 가족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만 하루하루를 날품팔이로 연명해야 하는 고달픈 현실뿐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지지자가 없었을 뿐 만 아니라, 차라리 삶의 끈을 놓는 게 행복하다 생각이 되었습니다.
고통가운데, 3년여를 혼자 있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행복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누구 하나 전화하는 이 없이, 누구하나 찾아오는 이 없이, 아픔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럴 때,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그 분이 없었더라면, 자살 할 수도 있었을 인생에, 주님은 내게 행복과 기쁨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오직 불 꺼진 빈 방밖에는 기다려 주는 이가 없는 사람은 삭막한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도 우리를 기다려 주는 이가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맞아주듯 지치고 힘든 인생을 돌아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삶이란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비로소 완성됩니다.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고 나누어야 할 상대가 있어야 하며 의지해야 할 무엇이 있어야 지탱할 수 있는 연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선다는 것은 그림자 없는 인생과 같아 길고 짧은 이야기가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것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보여야 합니다. 예수가 보여야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생의 위기 상황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님과의 그 강렬했던 첫 만남도
생각이 났습니다. 가장 소중한 주님과의 만남이 나의 평생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아름다운 느낌.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소리도 아름답고, 꽃도 아름답고, 세상도 아름답고, 고생도 아름답고, 위기도 아름답고, 죽음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십자가와 그분의 말씀과 예배로 인해 예수 그분이 나의 구주 하나님으로 보여 질 때에 과거도 은혜요, 미래도 은혜요, 오늘 내가 사는 하루하루, 사건 사건이 다 은혜요, 감사요, 행복입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 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찬송가 78장)
예수님에 대한 나의 첫사랑은 열정 그 자체였습니다. 학교보다 교회가 좋았고, 뜨거운 은혜에 못 이겨 얼마나 찬송을 많이 불렀는지, 모든 공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까지 다녔습니다. 산에 올라 매일 밤 기도시간을 가지며, 주님의 사랑에 듬뿍 취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장 10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 지금도 역사하시고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하시어, 메마른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능력 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그 놀라우신 하나님이 내 인생의 홍해에도 길을 내며, 크신 일을 저질러 버린 능력의 하나님을 간증하게 하옵소서! 죽음가운데서 소망이 없는 날 건지신 기적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일어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環境を超えたヨセフ (0) | 2025.03.05 |
---|---|
기독교교육 (0) | 2023.08.15 |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 (0) | 2023.04.06 |
예수 그리스도와 선교 ( 복음서의 선교 ) (0) | 2023.04.06 |
출애굽 사건의 선교점 관점 (0) | 2023.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