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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빌립보서

주은총목사/ 빌립보서15/ 마음의 평강을 잃지 마세요!

by 주은총목사 2025. 1. 8.

https://youtu.be/dc7o8jtKW8Y

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교회/ 주은총목사

 

마음의 평강을 잃지 마세요!

 

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1-7)

 

신발 속에 모래하나

긴 사막 여행을 마친 사람에게 신문기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물 없는 광야를 외롭게 혼자서 걷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가파르고 험한 고갯길을 고생하며 올라가던 것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기자들은 대답을 재촉하며 또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추운 밤이었나요?

그러자 그 여행자는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내 신발 속에 들어 왔던 모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고통은 아주 크고 어려운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마음이 맞지 않은 사람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자와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는가? 정말 신발 안에 든 모래같이 별 것 아닌 거 같은데 그것 때문에 온몸이 아픕니다. 마음이 맞아야 행복한 결혼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안 맞으면 이것은 생지옥일 것입니다. 가끔 외관상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사람들이지만 갈라서는 경우를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성격차이라고 말하죠.

 

밥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런 소리하는 거지, 뭐 그게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렇게 살아본 사람만 아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건이야 살면서 만들면 되지만 성격을 맞추고, 마음을 맞춰가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고통을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다투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나으니라.’

(21:9).

 

기가 막힌 표현 아닌가요. 다투는 여자와 함께 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 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발 속에 있는 작은 모래 하나, 정말 별 것 아닌 거 같은데 그것 때문에 온몸과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이 맞는 자와 같이 가면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찰떡궁합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척하면 삼척이고, 쿵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린 줄 아는 사람끼리 함께 일해야 일이 힘든 줄 모르고, 그런 자와 함께 살아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인생이 즐거운 것입니다.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마침내 둘은 혼인해 함께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잘못 풀어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그러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 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뿐입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가치관이 같은 것을 말하며, 상대방의 편에서 배려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는 사도행전 16장에서 읽어 충분히 알 수가 있죠.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전도하러 갔을 때에 여기서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바울은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고 루디아는 기꺼이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자기 집을 개방(open house)하고 그 가정에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더군다나,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애정을 특별합니다. 그가 감옥안에 있으면서 태동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22-29).

 

인생을 살다가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당하게 됩니다. 형통한 일을 만나기도 하고 곤고한 일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성숙되는 것이죠.

 

먼저 질문입니다.

이번 한 주를 보내면서 당신의 마음을 사로 잡은 근심은 무엇이었나요?

근심이 당신을 이겼나요?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근심을 뛰어 넘어 이겨버렸나요?

3. 인생을 살면서 근심과 문제를 다루는 당신만의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4. 당신의 방법은 성경과 일치하나요?

 

빌립보 교회 안에 두 여인 사이에 불화가 있었습니다.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4:1-3)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인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성경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두 여인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사도바울은 어떠한 해답을 제시를 하였을까요?

 

이 험한 세상 나 살아갈 동안

이 험한 세상 나 살아갈동안 내 주님가신길 걸으며

내 주님을 찬양해

 

십자가 보혈 날 구한 그사랑 나 매일 찬송을 드려도

늘 부족한것 뿐이니

나 호흡있는 동안에 나 생명있는 동안에

나 주를 찬양하리라 내게 생명 주신 주님을

 

내 작은 손 불 밝혀들고서

이 세상 다시 오시는 내 주님을 맞으리

내 무거운 짐 다 벗겨주시고

그 아름다운 그 면류관 날 위해 예비하시니

나 호흡있는 동안에 나 생명있는 동안에

나 주를 사랑하리라 내게 생명주신 주님을

나 호흡있는 동안에 나 생명있는 동안에

나 주를 사랑하리라 내게 생명주신 주님을

 

(부모가 자녀 앞에서 싸움을 하거나 이혼을 한다고 하면, 그 속에 있는 아이들은 지구가 무너지는 것 같은 흔들림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영적 지도자들이 굳건하게 서 있지 않으면 영적자녀들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첫째: 주안에 서라

읽을말씀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같이 주안에 서라”(1)

 

여기에 서다라는 스테코(στκω)라는 말은 견고하게 선다는 말입니다. 헬라어(스테코)(몰아쳐오는 적군에 직면하여 떨지 말고 크게 서서 대적하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반석과 같은 부동의 신앙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풍파와 시험 환난에 흔들리지 말고 든든히 서서 신앙의 부동의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죠. 주안에 서라. , <무너지지 않은 견고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서 있으라.>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부실공사가 되고 말죠. 기둥의 일차적인 사명은 바로 서는 것입니다. 기둥이 기울어지면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결국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5-27)

 

 

둘째: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읽을말씀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권면하여 같은 마음을 품게 했습니다. 같은 마음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가?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앞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1:5)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태복음 11:29)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 말씀에 잘 길이들여진 손종하는 마음이요, 겸손한 마음은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서 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 피를 받은 한 형제로서 한 세례를 받았고, 같은 양식을 먹었고, 한 반석에서 쏟아진 생수를 마신 자들입니다(고린도전서 10:2-4).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12:21)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지체의 고통은 온몸의 괴로움이요, 한몸의 기쁨은 온몸의 즐거움입니다(고린도전서 12:26).

 

교회는 완전무결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의견의 불일치는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에는 갈등이나 부조화가 항상 있을 수 밖에 없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나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극복하고 조화를 이루어 나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셋째: 주안에서 항상 기뻐합시다.

읽을말씀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

 

바울은 빌 3:4-8에 자신이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바울은 가문에서 버림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동족에게 배신자라고 낙인을 받고 버림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 의원직을 박탈 당했습니다.

바울은 대부호의 아들로서 유산을 박탈 당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얻어 진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질병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세 번 기도했으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각종 중상 모략을 받았습니다.

바울을 환영하는 삶도 많이 있었지만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은 사람 중에서 바울을

배신하고 중상 모략을 했습니다.

 

바울의 남은 것은 가난뿐 이었습니다.

바울의 최후에 남은 재물은 외투 한벌과 가죽성경 한 권 뿐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남은 것은 늙음 뿐이었습니다.

젊을때에 예수를 믿고 사도로서 30년을 충성하고 보니 늙은 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처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도로서 30년동안 이방인을 위한 선교활동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은 동족과 산헤드린의 고소에 의하여 죄없이 가이사랴 항구에서 로마군에 보호된 채 2년간 옥중생활을 하게 되었고, 로마에서의 황제의 재판을 받기위하여 지중해을 항해하던 중 파선되어 죽을뻔 했으며 로마에 도착하여 2년간 옥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로서의 30년의 생활은 고난의 눈보라의 연속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고린도 후

6:4-10에 증거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을 하였습니다.

얼마후 그는 네로의 핍박때 칼에 목베임을 당해 순교하므로 그의 생은 끝나게 됩니다.

 

환경이 좋고, 여유가 있고, 문제가 없을 때는 기뻐할 수 있는데 어렵고 곤고하고 힘들 때는 오히려 원망이 앞섭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 기쁨과 소망이 없는 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경배합니다

아버지 채워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경배합니다

아버지 채워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경배합니다

예수님 채워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경배합니다

성령님 채워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중국선교이야기

허드슨 테일러는 막연하나마 어릴 때부터 중국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다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되면 중국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신앙인이 되도록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허드슨이 11살이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가 학교에 가서 책상 위에 엎드려 기도하면 "! 허드슨이 기도한다"하며 아이들이 비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그는 학교를 그만 두었고 15살의 나이에 한 은행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는 선배 동료들의 나쁜 영향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하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징계로 시력이 나빠져 실직하게 되어 무의미와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 고통하였습니다.

 

비록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났지만 테일러는 17세가 되어서야 회심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고 이어 전에 알지 못했던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기쁨을 느꼈죠.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해주신 일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하나님, 제게 저의 사랑과 감사의 표시로써 뭔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있은 다음 허드슨에게는 하나님이 자기의 생애가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시는지 깨달았다는 명백한 확신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내가 전능자와의 언약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 언약을 철회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음성이 내게 너의 기도는 응답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이후로 내가 중국으로 부름 받았다는 확신은 한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테일러는 중국 옷을 입고 활동하여, 51년 동안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18678월 사랑하던 딸 나리아 그레이스가 폐렴으로 죽고 18702월에는 다섯 살 난 아들 새뮤얼을 결핵성 장염으로 잃었습니다. 같은 해 9월 아들 노얼이 태어난 지 20일 만에 죽었고, 그로부터 13일 후에는 아내마저 32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중국내지선교회를 설립한 지 30년이 지난 1895년에는 64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중국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헌신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북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호주, 뉴질랜드에 중국선교회 지부가 설립되고, 한 때 중국에 모여든 선교사는 1천 명을 넘었습니다.

 

의화단 사건

19005의화단 사건이 전국을 휩쓸었을 때는 135명의 선교사와 53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살해되었는데, 대부분 중국 내지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는 독신 여성선교사들도 많았죠. 의화단 사건이 지나가고 1902년 그는 선교회 대표직을 사임했습니다.

 

중국방문

73세인 그는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중국을 향했습니다. 그곳 기독교인들은 사랑과 존경심으로 영접해 주었고 어디를 가나 그를 중국의 은인으로 불렀습니다. 여러 선교 본부를 방문한 후 그는 이전에 배타적인 지방이었던 후난 성(湖南省)의 창사(长沙)에서 73살의 나이로 열정적인 전도자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았고 영혼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였고, 전도의 목표를 위해 언어, 의학, 기도훈련을 철저히 감당하였으며,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감당한 헌신적인 전도생활을 실천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중국 복음화의 선구자였습니다.[1]

 

넷째: 같은 멍에를 맨 동역자를 도웁시다.

읽을말씀3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우리는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중등지역에는 두 소를 한 멍에 아래 둡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씌워 준 십자가의 멍에를 맨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우리는 한 멍에 아래서 삶의 방향과 목적이 같은 생명공동체입니다.

 

 

다섯째: 관용의 사람이 되라

읽을말씀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시니라”(5)

 

내가 기쁠 때에 관용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슬프고 짜증스러울 때에 무슨 말을 들으면 당장 화부터 내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여유가 있고 기쁨이 충만할 때에는 어떤 말이라도 너그럽게 봐주고 웃음으로 넘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훈계도 하고 때로 회초리를 들기도 하지만 실은 그러는 부모한테도 회개할 것이 좀 있습니다.

 

내가 기분 좋을 때에는 아무리 큰 잘못이라도 봐주었고, 기분 나쁠 때에는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따지고 책망하지 않았나요? 그러면 아이들은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어떤 때에는 봐주고 어떤 때에는 야단을 치고 하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즘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이것은 내 잘못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저쪽 기분에 달린 것이구나. 엄마와 아빠가 다툰 후에는 꼭 나한테로 불똥이 튀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연쇄반응으로 되어진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쯤 되면 나중에는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저쪽 기분이 어떤가, 그렇게 눈치나 보게 됩니다.

 

관용의 마음은 사람을 담는 그릇입니다. 링컨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스탠톤은 링컨에 대하여 욕하기를 교활한 광대요, 고릴라같은 사람이요, 고릴라를 잡으려면 아프리카로 가지 말고 링컨의 고향으로 가라고 악담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에 국방장관에 기용했습니다. 후에 링컨이 죽었을 때 가장 슬퍼한 자가 스탠톤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고백하기를 여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 있다고 했습니다.

 

 

여섯째: 염려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읽을말씀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6)

 

영국의 어느 병원에서 오백명의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시각장애의 30% 가량이 정신적인 긴장으로부터 유발된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레오나드 S. 포스딕 박사는 걱정을 하게 되면 침의 분비가 억제되고 그로 인해 입속의 타액이 중성이 되지 못하여 충치가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21개 대학에서 오천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걱정하는 학생은 성적도 떨어지게 됨을 알아내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잠언 16;22) 여기 심령의 근심을 깨어진 영(broken spirit)라고 했습니다. 깨어진 영은 만병의 근원이죠. 뼈는 온 몸을 지탱하며, 신경과 근육과 함께 운동하고, 골수에서는 혈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뼈가 마름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이처럼 심령의 고통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위기는 인간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 관계가 밀접하면 밀접할수록 스트레스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지죠.

 

특히 부부관계는 그 어느 관계보다도 친밀하고 강렬하며 커다란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극복하기 힘든 위기가 계속해서 밀려오기 쉽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삶을 늘 끊임없이 피곤하게 만들고,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과 정력을 끊임없이 낭비하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되는 어려움이 있죠. 바로 영적인 갈등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좋은 일보다 꼭 나빴던 일만 생각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때에는 하루 종일 좋은 일도 많았건만 전화 한 통 받고 기분 나빴던 것, 싫은 소리 몇 마디 들은 것만 기억납니다.

 

가정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사업문제 등 일일이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죠.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자꾸만 우울과 집착과 슬픔과 근심속으로 더 깊게 빠져들어갑니다. 마귀의 세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이리치고 저리 치는 바람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영어 필립스 번역에는 ‘Knock down’ 됐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는 하지만 마귀의 펀치에 그만 ‘Knock down’ 될 수가 있습니다. 자빠집니다. 넘어집니다. 그러나 ‘Knock out’ 되지는 않습니다. K.O.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죠.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는 일곱 번 넘어집니다. 그러나 여덟 번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칠전팔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아무 일에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끝없이 염려에 집착하는 동안 은혜도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못 보고, 약속도 못 믿고, 말씀도 들리지 않습니다. 염려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은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도 바울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나를 덮으면 내 근심 따위는 문제도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있는데 물질 문제, 경제 문제, 세상 문제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근심은 심리적인 것입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으면 슬플 일밖에 없어도 기쁘고, 아무리 고통을 당해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을 때에 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있고, 이것이 우리를 감사로 인도하고, 은혜로 인도하고, 약속으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립시다. 주안에서 섭시다. 같은 마음을 품읍시다. 동역자를 도웁시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합시다. 관용의 사람이 됩시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고 삽시다.

 

주님,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여호와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드심이요

어떤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혹시 넘어졌다가도 일어설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나를 당신의 팔로 붙드소서. 주안에 굳게 서 있게 하시고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을 잃지 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