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 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창30/ 네가 누구냐?
(창27: 17-40)
미국 프로 야구 역사에 남은 슈퍼스타 중 타이 콥 (Ty Cobb) 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24년간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는데 열두번이나 아메리칸 리그의 타격 왕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인기의 촛점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961년 7월 17일에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 메이저 리그 관련자는 겨우 3명이 참석했습니다.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친구가 극히 적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하기를 꺼려 하였습니다. 그 유일한 이유는 그의 성미 때문이었죠. 조금만 귀에 거슬리든지 눈에 거슬리면 싸우려고 들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파출부나 정원사는 물론이고 애인들이나 두번 결혼한 부인들도 심지어는 다섯명의 딸들도 그를 멀리했습니다. 화를 버럭내고 급하고 참을성 없는 것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갑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한 왕이 나오죠. 바로 그 유명한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죽음이죠. 여호람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더욱 비참한 것은, 백성들이 왕의 죽음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역대하 21장 1-20절)
여호사밧에게는 여호람을 비롯하여 또 다른 여섯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들들 사이의 권력 투쟁을 미리 막기 위하여 나름대로 고민해서 두 가지 방책을 썼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장자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5년 동안 섭정을 한 것입니다. 둘째는,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다른 왕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왕자들에게 보물과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고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3).
재벌가들 사이에서 재산상속 문제 때문은 물론, 일반인의 가정에서도 돈 때문에 부모와 의절하고 형제들끼리 원수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호사밧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모든 왕자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의 이러한 노력은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어 버렸죠. 여호람은, 부친의 죽음 이후 즉시 본색을 드러내며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4절)
권력에 눈이 먼 여호람에게는 핏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왕자들을 지원하던 고위 관리들 몇 명도 함께 죽였습니다. 자신이 죽은 후를 미리 대비한 여호사밧의 노력은 인간적으로 뛰어난 지혜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이죠.
여호사밧은 자식들에게 재물을 나눠주고 성읍을 나눠주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가르쳐야 했습니다. 여호람은 결국 하나님께 등을 돌렸고 백성은 여호람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그때 예언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죠.
12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13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14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15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대하21:12-15)
엘리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호람은 전혀 회개하지 않았죠. 그 결과, 엘리야가 선포한 심판이 그대로 성취됩니다. 여호사밧 시대에는 유다에 예물과 조공을 바치던 블레셋인데, 여호람이 하나님을 저버리니까 블레셋은 겁 없이 쳐들어왔죠. 이들의 공격으로 여호람은 여호아하스를 제외한 모든 아들들과 아내들을 빼앗기고 왕궁의 재산까지 다 탈취를 당합니다.
여호람에게 닥친 재난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여호람은 창자에 병이 들어 2년이나 고생하다 죽게 됩니다(18-19). 그의 병은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었으므로 어떤 의원들도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었죠. 어쩌면 마지막 회개의 기간이라 할 수 있는 2년의 투병 기간이었지만 여호람은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그래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하나님을 떠난 여호람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죠.
19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0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대하22:19-20)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 잡아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찬양하기 원하네 예수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오 예수 날 위해 고통 당하신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해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오늘 본문에서, 에서와 야곱이 갖고 있던 사고방식은 한 사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들의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분명하게 갈리죠.
무엇이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에서에게 있어서, 장자의 명분은 앞으로 시간이 걸려야만 누릴 수 있는 만족이고, 팥죽은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만족입니다. 그래서 기다릴 수가 없고 지금 당장 장자의 권리를 팔아서라도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빨리'라는 말 이외에 '속히', '퍼뜩', '후딱', '잽싸게', '불티나게', '재깍', '급히', 거기다가 현대에 와서는 '총알같이', '번개처럼' 등의 단어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은 것입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시스턴 채플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동안 2천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이죠.
끈기와 인내는 우리에게 좋은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귀중한 것들을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게 해주며, 시련이 닥쳐올 때에 그 시련을 이겨서 믿음의 성장과 인격의 성숙을 가져다 주는 것이 인내죠.
인내력이 부족하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당장 눈앞의 것만 바라보고 당장의 이익만 찾습니다. 에서가 그랬죠. 그는 장자로서 그 집안의 모든 것이 다 자신의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고 경박하고 어리석은 에서는, 그 귀중한 복을 소중히 여기는 대신에 당장의 배고픔을 더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에서가 실패한 원인은 배고픔과 마침 눈앞에 보인 먹을 것, 성격적인 결함 곧 경박하고 무딘 성격, 이성적 사고가 아닌 기분 따라 움직이는 감정, 분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원인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결정적인 실패의 요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긴 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무시해 버린 것이죠.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경홀히 여기다’란 말을 직역하면 ‘무가치하게 여기다’, ‘멸시하다(despise)’가 됩니다. 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자의 명분을 멸시하고 무가치하게 여겼습니다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죠. 놀랍게도 이 ‘죽’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원어가 ‘에돔’입니다. 또한,‘붉은’것도 역시 ‘에돔’이죠. 성경에서 <에서>가 태어날 때 ‘붉다’고 한 것도 같은 단어이죠. 그러니까 에서는 날 때부터 붉은 ‘에돔’이었고, 지금은 야곱이 만든 ‘붉은 죽’ 즉 ‘에돔 에돔’을 먹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언어유희인데, ‘에돔/붉은/죽’은 에서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암시해주고 있죠. 에서는 결국 ‘팥죽’을 먹기 위한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될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이 ‘에돔’ 민족입니다.
에서는 아주 즉흥적이고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34절에서 그가 한 일이 다섯 개의 동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먹다, 마시다, 일어나다, 가다, 가볍게 여기다.’입니다. 여기에는, ‘생각하다’, ‘고민하다’라는 말이 없죠. 그냥 즉흥적으로 막 나가는 사람입니다. 먹고 마시고 일어나고 가고 가볍게 여깁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대신에 당장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에 급급합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장자권(즉, 믿음과 믿음의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고, 믿음의 삶을 팔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팥죽이죠. 물질, 세상의 쾌락, 세상의 것들이 우리 앞에 있는 팥죽이죠. 이런 팥죽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기는 하나,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이 장자의 명분보다 더 좋아하는 팥죽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이며,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팔지 말아야 할 장자의 명분은 영원한 것이며, 정말 귀한 것입니다.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으로 야성적이고 활동적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날을 들로, 산으로 다니며 인생을 순간 순간 즐기며 살았습니다. 사회 속에 쌓여 그 문화를 즐기며 사느라 육신적이어서 영적인 가치관이 형성되지를 못하였습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한 사람이 해안 지방을 지나던 중에 많은 갈매기들이 모래사장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치우고 있는 인부에게 다가가서 왜 이렇게 갈매기들이 때 죽음을 당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인부들이 대답해 주기를 “이곳은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각종 먹이를 던져 주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여러 가지 던져 주는 음식물을 먹으라 자기들이 먹던 원래의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여행객들이 던져 주는 음식물은 지금 먹을 때는 우선 맛이 있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오래 받아 먹다 보니 이 갈매기들의 입맛이 변해 버렸습니다. 현재 달콤한 것을 먹느라 그들이 먹던 자연 음식에 대한 식욕을 잃어 버렸습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갈매기들은 바닷 속의 자연 음식물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죽어 가는 것입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것을 좋아하고 잠시 있을 세상 것을 취하려다 영원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16-17에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을 기업(基業)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悔改)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였습니다. 뒤에는 후회하고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여도 영영 얻지를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그리스도인 중에는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는 없습니까?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며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 더 귀하다
큰 물결이 뛰놀아도 주를 더 사랑하는가 큰 환난이 닥쳐와도 주를 더 찬양하는가
깊은 잠에 빠진 영혼 주님 만날 수 없어 근심 걱정 많은 자는 찬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것들 뿐이니 주를 찬양하는 마음 금보다 더 귀하다
언제 다시 주 오실지 아는 이가 있는가 신랑으로 오실 주님 맞을 준비 되었는가
기름없는 등불 들면 주님 만날수 없어 재림 나팔 소리나면 예비 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맞을 준비함이 금보다 더 귀하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것이 있죠. 욥의 고백대로, 우리는 반드시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뵙는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조르르 가야 하죠. 이 세상의 마지막 호흡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붉은 죽이 아니라 장자권을 택하고 나아가야 하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가려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은 최소화로 갖추고 살아갑니다. 조금 더 시간이 가면, 성경과 몇 가지 필요물품만 남겠지요. 저는 개척교회에 집중하느라 1년 내내, 교회에 갈 적에 옷을 거의 같은 옷을 입고 갑니다. 하나님 앞에 갈 생각을 하면서,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Y 권사님이 “목사님은 옷을 두벌 드리면 안돼! 한 벌은 남주고, 한 벌만 입고 다니니까”그러셨는데. 아쿠! 이 일을 어쩐대유.
바로, 어제 Y권사님이 예쁘고 캐주얼하고, 세련된 옷들을 11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정리>를 해야 할 판에, <패션쇼>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 이런 이런 구절이 적혀 있더군요.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줄여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만 개의 물건을 갖고 있다고 한다. 먼저 서랍 속부터 정리하라. ‘이 물건을 지난 3년 동안 쓴 일이 있나?’ 스스로 물어보고 없다면 과감하게 버리라. 그 다음 책상, 옷장, 부엌, 창고 순서로 정리하라. 복잡한 환경 속에서는 어떤 좋은 생각도 떠올릴 수 없다.”
“하루 한 가지에만 최선을 다하라. 돼지 두 마리를 한꺼번에 안고 뛰면 서로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해서 시간과 노력이 더 든다. 불필요한 일은 제쳐 두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시작하라. 하루에 딱 한 가지만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라.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만족하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십시오!
저는, 개척교회를 꾸려 나가느라, 교회 월세를 부담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죠. 몸과 마음이 부대낍니다.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싫어하는 지라, 어쩔 때는 ‘교회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몰려옵니다. 전도지를 한 달에 기본 4천장을 돌리는데, 어제는 하나님이 “개척월세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아라. 영적인 자녀들을 잘 교육하는 것이 훨씬 귀한 일이란다.” “오히려, 교회 월세를 부담하는 그 기업체가 복된 거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사밧왕처럼, 자녀에게 아파트와 재산, 돈을 주는 것보다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합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 두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각각에 대해 서로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고,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리브가는 두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했을까요?
에서에게는, 인간적인 능력과 육신적 강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했죠. 또 야곱에게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2)
라며 더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섬기며 살라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아버지 이삭이 농사도 하면서 엄청난 거부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삭 집안은 목축업도 하고 더불어 농업도 했던 가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목축업과 농업을 꽉 잡고 있던 부자 가문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집안의 대표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제사 드리는 법,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계속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짜릿한 스포츠인 사냥을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에서를 “익숙한 사냥꾼”(27절) 이라고 표현하는데, ‘익숙한(skillful)’이라는 말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연습해서 숙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서는 어릴 때부터 신앙을 지키는 일, 하나님 말씀을 붙드는 일, 또 막대한 재산을 잘 관리하고 경영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쾌락을 위해서 사냥을 즐기는 일에만 몰두했던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러다 보니까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들판에 나가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고, 성경은 그러한 에서를 가리켜 “들사람”(27)이라고 부릅니다.
NIV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을 “a man of the open country”라고 번역했습니다. 꼭 들에만 있던 게 아니라 여기저기 아무 데나 막 다니던 사람, 마음대로 쏘다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권력자 집안 자제들이나 재벌 2세, 3세, 4세들,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고급 호텔이나 클럽이나 유흥가를 드나들며 술에 취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가끔 신문에 터져 나옵니다. 에서가 바로 그런 생활을 한 겁니다.
혈기 넘치는 남자가 낯선 곳에서 홀로 자유로운 밤을 맞게 되면, 웬만한 영성 훈련을 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밤에 거룩하게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잠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신앙의 훈련을 잘 받지도 않은 채 그저 자기 육체의 쾌락을 따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놀던 에서는 어떠하였을까요?
사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에서는 여러 여자들과 만나고 어울리면서 방탕하고 쾌락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에서가 가나안 여인 두 명과 결혼해서 데리고 오죠.(창26:32) 그 일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을 안겨 주었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26:34-35)
부모의 허락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나가서 그렇게 이곳저곳 다니며 어울리고 흥청망청 놀더니,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여자들 중 두 명을 골라서 자기 마음대로 결혼을 한 겁니다.
여호람의 악한 길로 간 것은 북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아합의 딸과 결혼한 데 있습니다. ‘남자가 머리라면 여자는 그 머리를 움직이는 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이런 말도 들어봤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고,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은 그 부모를 닮아서 보통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여호람을 조종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우상 숭배에 푹 빠지게 하며 악한 왕이 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 왕조의 악한 리더십을 그대로 전염시켜 버린 것이죠. 잘못된 결혼 하나가 온 나라에 임하는 재앙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이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구했다면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설마 이 결정 하나 때문에 이스라엘의 타락과 죄가 유다 왕조 전체를 오염시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지난 날의 잘못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지난 날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주여 나의 죄를 위하여 주여 주여 십자가를 지셨네
주님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야 하네 주님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야 하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지난 날의 잘못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지난 날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주여 나의 죄를 위하여 주여 주여 십자가를 지셨네
나의 생명 다하여 주를 위해 살리라 벙어리가 되어도 찬양하며 살리라
에서와 야곱, 이 두 사람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27장에 보면 이들의 결국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현세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 현재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사람과 현재의 고난을 찾으며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본 사람의 차이는 실로 컸죠.
특히 성경 오바댜는 에서의 결말에 관하여 리얼하게 들려줍니다.
오바댜는 유다 출신 선지자이지만 아주 독특하게도 이웃 나라 에돔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죠. 오바댜 이름의 뜻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또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여호와를 경외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민족과 열방(列邦)에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오바댜1:1).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을 주시고 이삭을 통해 에서와 야곱 쌍둥이가 태어나게 하였죠. 그러나 동생인 야곱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사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은 사건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분개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자 어머니 리브가는 오빠가 있는 라반으로 피신을 권하게 되죠.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돌아올 때는 이미 에돔 지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습니습니다. 에돔은 사해 남쪽에 위치한 남북으로는 120㎞, 동서로 20㎞에 달하는 지형적으로는 조그마한 나라였다. 그러나 사해 남단 난공불락의 요새지 세일 산맥을 근간으로 형성된 나라이다 보니 침입하기가 쉽지 않았죠.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반대에 이르러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는 내용이 나온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형제 관계는 철천지원수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세기25:23)
이런 혈통적으로 한 형제인 양 국가는 끊임없는 갈등과 적국의 관계 속에서 에돔은 남 유다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더 나아가 남 유다를 침공하여 멸망시킨 바벨론을 돕기까지 한 것이죠. 예루살렘이 침공당할 때 기뻐했고, 그 기회를 노려 약탈 하고 도주로를 차단하는 등 온갖 만행을 일삼아 온 것입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오바댜1:10). 종국적으로는 에돔도 B.C 2세기경 요한 힐카누스에 의해 유다에게 복속되었고, 로마제국의 디도장군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이삭의 에서를 향한 말은 에서의 장래에 대한 예언이었죠. 에서는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칼의 힘을 믿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법으로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이죠.
불행하게도 에서의 자손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끊임없이 대적을 하게 됩니다. 에돔 족속들은 사울에 의해 패배되고(삼상 14:47) 다윗에 의해 정복(삼하 8:14) 당하여 이스라엘을 섬기게 됩니다. 후에 헤롯을 통하여 에돔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멍에를 벗게 되죠. 이것이 에서에게 내렸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에돔은 하나님과 이 땅에 그의 왕국이 건설되는 것을 반대하는 모든 열방을 대표하고 있죠. 그들이 지금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의 날에 임하는 하나님 백성의 승리 앞에 모두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세상의 약자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강자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온 땅에 선포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시간에, 이삭이 자식에게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라고 물은 것과 같이 예수님도 당신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누구냐?"
당신은 누구인가요?
지금 당장 배를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나요? 내 만족을 위해 사는 인생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당장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과, 비록 힘들어도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에서는 건장한 사냥꾼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 인기를 끄는 것에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죠. 그는 그는 철저히 자기 육신을 믿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은 야곱의 길이 아니라 에서의 길을 선택해서 그리로 가고 있습니다.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로 가고 있죠.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신앙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얼마든지 소홀히 여기며 빠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하고 시간이 없으면 안 하는 식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에서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팥죽 때문에 장자권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의 삶이죠. 그것이 잠시 허기를 면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영원히 배부르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신앙은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생명을 다해 주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에 얼마나 고통이 많았느냐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말씀하십니다.
주님, 육체밖에서 하나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게 하시어, 팥죽 한 그릇 즉, 물질, 세상의 쾌락, 세상의 것들에 의해 장자권( 믿음과 믿음의 삶)을 팔아먹지 말게 하옵소서. 일시적이며,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천국, 영원한 것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 땅에서도 육체로 살아가오니,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돌보시는 주님, 우리를 천국 본향에 가는 그날까지 돌봐 주시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 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욥22
너희가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깊이 박음으로 새로움을 입으라
주가 주신 교훈대로 믿음의 굳게 서서
너희 맘에 깊은 곳에 감사가 넘치게 하라
너희가 예수와 다시 살았으니 위의 것을 구하라
거기는 주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앉아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말라
이는 내가 예수따라 새 생명 얻었음이라
주가 주신 교훈대로 믿음의 굳게 서서
너희 맘에 깊은 곳에 감사가 넘치게 하라
너희 맘에 깊은 곳에 감사가 넘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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