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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 야곱의 축복

by 주은총목사 2024. 9. 16.

https://youtu.be/UZqJehFQgMY꿈이있는 교회/ 주은총목사

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

본문: 27

 

이삭과 리브가 부부는 결혼하기 전부터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죠. 이삭은 훌륭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위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아버지를 밀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맡길 정도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남편으로서도 훌륭했습니다. 그는 한 아내만을 사랑했습니다. 첩을 두지도, 바람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창세기 268절에는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았다고 언급하죠. 이것은 밤 시간이 아닌 낮이었죠. 그 장면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왕궁의 창문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이삭은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았던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리브가가 아기를 갖지 못하자 20년을 한결같이 아내를 위하여 기도를 하였죠.

 

요즘 시대는, '결혼=출산' 공식은 옛말이 됐죠.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신혼부부통계'에 따르면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가 없는 부부가 23466쌍으로 28.7%를 차지하면서 가장 많은 유형이었습니다. 20·30대가 무자녀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201527.7%에서 202044.1%까지 오를 정도로 사회 분위기 변화가 뚜렷하죠. 다자녀, 혹은 딩크족의 삶을 선택한 40·50대의 삶은 어떨까요.

 

​◆ '다자녀' 둔 덕분에 삶의 즐거움 훨씬 커져

 

대구 한 구청 공무원 김찬근(42·) 씨는 3남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내와 대학교에서 만나 10년 연애 후 결혼한 그는 어릴 때부터 다복한 가정을 꿈꿔왔죠. 외동이었던 김씨에 비해 늘 또래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가 식구들의 도움과 아내의 희생 덕에 3남매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출산 시 육아와 경제적인 부담을 많이 느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처가와 함께 살아서 절약된 비용도 큽니다""저 역시 장인, 장모를 그저 우리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니 처가살이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넷째까지 출산을 염두에 둘 정도로 자녀를 많이 둔 것에 만족감을 드러냈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삶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김 씨는 정부의 출산 장려정책에 대해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양육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고 했죠.

가정환경·경제상황, 딩크 결심하게 만들어

 

 

최하늘(가명·56·) 씨는 기혼 여성으로, 배우자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딩크족'입니다. 아이가 없는 삶에는 여러가지 상황이 영향을 미쳤고, ·단점을 느낀다고 얘기했죠.

 

그는 결혼을 '한 번은 할 만한 것'이라 칭했으나,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거나 결혼 적령기에 결혼해야 한다는 등의 사회적 시선에는 휘둘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하는 자식 걱정'을 안 하게 된 것을 딩크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인간사에서 가장 큰 고민을 덜었다는 것이죠.

 

대신 아이 없는 부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아 마음을 다칠 수 있고, 부부 간 갈등이 생기면 오로지 둘만의 감정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고 했습니다. 아이 없는 삶에 큰 불만이 없지만 최근 남편이 사업을 물려줄 후대가 없다는 사실을 조금 아쉬워한다고도 했죠.

 

그들 부부가 자라온 가정환경과 결혼 당시의 경제적 상황이 선택에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부모님이 결혼하면 자식 하나는 낳아야 한다고 성화여도 부부에게는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혼과 출산 모두 스스로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존중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치고 시끄럽지 않은 가정이 없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장난하면서 시끄럽게 하고 때로는 아이의 행동 때문에 부모가 큰 소리 치느라 왁자지껄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도 있죠. 자녀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늘어나는데 아직 까지는 여러모로 출산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배려는 부족해 사회적인 상승을 꿈꾸는 여자는 남자와는 달리 가정생활이나 개인의 목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딩크족이 늘어나기도 하죠.

 

자녀를 갖지 않고 그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는 딩크족을 딩펫족(DINK + pet)도 있습니다. 공원에 가면, 강아지를 유모차에 실코 다니는 사람도 있습디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죠.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14:4)

 

소로 인해서 구유가 지저분해지고 냄새 나는 곳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를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소가 있음으로 해서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없으면 집안이 조용하겠지만 아이로 인하여 얻는 것도 많습니다.

 

첫 아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얼떨떨함도 있었지만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대했는지를 기억하십시오. 부모야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자녀만큼은 귀족의 자제처럼 애지중지하며 길렀습니다. 옷을 사도 가장 좋은 옷을 사려 했고, 장난감을 사도 그랬죠. 다른 데 지출하는 것에는 인색했지만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만큼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기한 일이었지요.

 

오로로- 까꿍하면 까르르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얼러 주면서 덩달아 웃곤 했죠. 자연히 아이로 인하여 집안에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아이가 이빨이 나고, 기어다니가가 걸을 때, 그리고 아이가 새로운 행동을 하나 할 때마다 얼마나 대견스러웠나요?

 

이처럼 귀여웠던 아이가 요즘은 왜 그렇게 부모의 생활의 안정을 깨는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요? , 늙은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 리스크가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하는 걸까요? 자녀 리스크는 부모의 노후 계획이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으로 망가질 수 있는 불확실성을 가리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며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 같아서 자식이 많은 자는 복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127:3-5) 왜 갈수록 열이 받아 칙칙폭폭김이 오르며 원수가 되어 갈까요? 때로는 소리를 지름으로 인하여 혈압이 오르는 정도이지만 이대로 방치해 두면 저 놈 때문에큰 충격을 받고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였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였다고 하기에는 아픔이 있었죠. 이처럼, 이 세상에는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란 자식과의 관계에서 불려지는 이름인데 그들의 자식에게는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쌍둥이 두 아들은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고 그들의 행실 또한 지극히 실망스런 것이었죠. 이것은 이삭과 리브가의 자식에게 대한 편애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창세기 27),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졌을 때, 그 집에서 벌어진 이상한 사건을 기록한 장입니다.

아버지가 눈이 어두워서 앞을 잘 못 보는 그 상황을 이용해서, 장남이 사냥을 간 사이에, 어머니와 둘째 아들이 서로 공모하여, 가장을 속이고, 큰아들이 받아야 할 축복을 쟁취하는 장면이, 정말 너무도 리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축복을 받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 이 장면은 남편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가로챕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특히, 성경에서는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방법으로 축복을 빼앗아 버립니다.

 

마치 차남이 장남인양, 손에 염소털을 붙이는 분장을 해서, 어머니와 아들이 치밀하게 공모해서, 이 일을 해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팔아 먹어가면서까지, ‘난리를 치죠. 지금 막 사냥하러 떠난 [에서]가 돌아와서, 요리를 하려면, 시간이 한참 더 있어야 하는데, 금방 상을 차려서 왔으니, [이삭]이 이상해서 물어봅니다.

 

(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이 사냥할 짐승을 쉽게 잡히게 해주셨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팔아먹습니다.

지금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죠. 그런데 야곱 이야기에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문제 있는 가정, 분열된 가정, 달리 말해 비신앙적인 가정에도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점입니다. 이삭의 가정은 건강하고 조화를 이룬 가정이 아니죠. 야곱과 에서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싸웠고, 이삭과 리브가는 편애하는 자식을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죠. 경륜이 무슨 뜻인가요? 경륜은 쉽게 말해서, ‘살림살이입니다. 어머니가 집안 살림살이를 하듯이,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 시키고, 먹여 살리려고, ‘살림살이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시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고, 사람되게 해서, /훌륭한 승리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나를 경륜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도 보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죠. 사람은 어린아이 때부터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고, 사랑도 듬뿍 주지만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하죠.

 

야곱과 같이 인간성이 강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이어서 가는 곳마다 문제만 일으키는 trouble maker. 야곱과 같이 한 사람도 섬길 수 없는 이기심으로 인해 괴로워하죠.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소망을 두고 키우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변화되지 않는 나 자신, 그리고 사람을 보며, 절망이 될 때마다 나를 경륜하시는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입니다.(16:9)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죠. 사랑이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보면 인간의 사랑은 상대방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했습니다.

 

저 사람하고 결혼하면 나는 행복하겠다생각하고 나를 위하여 결혼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죽었을 때 우는데 죽은 사람이 불쌍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나는 혼자 어떻게 사나하는 자기 신세를 생각해서 운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야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그런 에서가 좋았죠. 그에 반하여 리브가는 거칠고 반항기 있는 에서보다는 야곱이 더 좋았습니다. 각자가 다 자기 기준에 맞추어 자식들을 사랑하였죠.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그를 축복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이삭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은 알면서도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하였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려는 태도, 즉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내 뜻대로 끌고 다니려고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죠.

 

하나님의 뜻은 상식을 뛰어 넘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42대에 걸친 족보가 나오는데 대부분 장자의 이름들입니다.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야곱을 축복하려 하시는데 하나님의 뜻보다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상식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으나 상식에 의해 정복되지 않습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 신앙이죠. 상식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는 상식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밤에 얕은 곳에서만 고기를 잡습니다.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낮에는 잡을 수 없죠. 깊은 곳은 물이 차갑기 때문에 고기가 없습니다. 이런 상식을 뛰어넘어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레마를 들려 주시나요? 부디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못함 없네

 

리브가는 복중에 임신을 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였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했죠.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이 이루실 역사를 믿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야곱이 사기를 쳐서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자, 에서가 어떠한 마음을 먹습니까?

동생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죠.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아버지가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거죠. 눈도 멀고, 기력이 쇠하였으니, 곧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시면, 동생을 죽여버리겠다는 거죠. 그러나,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시나요? 이후로 40년을 더 살다가 가죠.

이삭은 180세에 죽었는데 137세에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죽음은 43년 후에 찾아왔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입니다.

 

에서의 생각을 안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을 하죠.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분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리브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야곱, 그 아들이 죽을 까봐, 형의 분노가 풀릴 때 까지, 몇 날 동안만 삼촌집에서 피신해 있어라. 라고 당부하죠. 그러나 그 몇 칠 동안 있으려고 갔던 그곳에서, 몇 년 있게 되나요? 무려, 20년의 세월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죠.

 

피신하려고 갔던 곳에서, 야곱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까지 합니다. 잠깐 몇일 만 피신하려고 마음먹고 계획하고 간 그곳이죠. 하지만, 리브가는 죽을 때까지 아들 야곱을 보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의 뜻과, 그 크신 뜻에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의 살림살이,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경륜, 그것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거든, 우리는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하고 하죠.

이 세대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충만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으면,

절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마음입니다. 이삭처럼 별미에 가려져서, 먹고 마시는 문제에 가려지면 안되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이루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을 바라보면 그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를 세우기를 원하셨고,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지를 보여 주셨죠.

 

야곱 이야기를 나의 삶 속에서 발견할 때, '야곱스러움'이 나의 삶 속에 드러날 때, 하나님이 야곱을 빚어 가셨던 섬세한 손길을 나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큰 아들 에서가 아니고 작은 아들 야곱을 선택하셨을까요? 그의 어떠한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하나님이 그를 유심히 보셨을까요?

 

에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서의 태도에 관한 성경의 평가는 히브리서를 보면 에서는 망령된 놈으로 표현하죠. 장자권 즉, 하나님의 자녀된 권리를 만홀히 여겼죠. 무시하였습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이불속에서 뒹굴뒹굴하며 인터넷으로 누워서 예배를 드리지 말고, 주일이니 제발 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려!”라고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생명을 다하여 주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죠. 그렇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신 기본 중의 기본인, ‘주일 성수조차 제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세상으로 나돌아 다녔습니다. 영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방 여자들을 만나서 육체적인 쾌락을 탐닉하며 이 세상의 가치관을 쫓아서 살아갔습니다. 어리석은 에서는 팥죽 한 그릇으로 영혼을 팔았죠.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사모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남으로 태어난 것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는 에서가 허기져 있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세습적 축복을 가로채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 같죠. 왜 그는 생명을 내걸고 이런 모험을 했을까요? 그것은 영적 축복에 대한 열정 때문이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가슴 벅찬 축복을 기필코 받아 냅니다. '발꿈치를 움켜쥔 자'라는 자기 이름에 걸맞게 장자의 유업을 움켜쥔 것이죠. 이 축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3대 족장 이름에 에서가 아닌 야곱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성경은 얼마나 자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에서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지.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야곱의 이름이 그래로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1:2)

 

일에 대한 열정이죠.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부르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부르신 것도, 사도 바울을 부르신 것도 바로 그들의 열정이죠. 심지어 엘리야 조차 고백합니다. ‘내가 열심히 특심이오나

 

하나님은 야곱의 열정에 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반한 순간을, 여로보암에게 반한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죠. 야곱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현실을 타개해나가며 경우에 따라 속이기도 했습니다(3:7). 그는 또 목적을 향해 끈질기게 찾아 맞서기도 하며 역전고투(力戰苦鬪)의 길을 걸었습니다.

 

빈손으로 결혼한 야곱은 레아를 위하여 7, 라헬을 위하여 7, 그래서 도합 14년을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우리 같으면, 빈정이 상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텐 데. 결국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기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20년의 고생을 사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이 우리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죠. 야곱은 고백합니다.

 

29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0:29-30)

 

39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다윗의 열심 역시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지.(삼상 17:34-37) 하늘 위에서 하나님이 다윗을 보시고, “... 저것봐라.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그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네. 우와 더군다나 곰과 사자가 일어나서 다윗을 해하고자 하면 다윗이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이네. 다윗! 원더풀! 굿잡! , 참 마음에 든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8-9)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야곱은 사랑도 멋지게 하였죠. 첫눈에 라헬에게 반했고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에게 속아 레아와 결혼을 하죠. 그렇지만 그는 라헬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 다시 7년을 봉사하죠. 얼마나 라헬을 사랑는지 7년의 긴 세월도 수일 정도로 여겼다고 성경은 말을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어떤가요? 장자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요? 교회가 비록 멀고, 기도하러 다니기는 어려워도 시간을 아끼지 않고, 물질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는 가요? 인터넷 예배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무슨 놈의 집구석이 쳐박혀서 인터넷 예배입니까? 큰교회, 대형교회. 거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섬김과 봉사도 없고, 밀물과 썰물 빠지듯이, 영화관람하고 쭈욱 빠져 나오듯이 황급하게 몸만 빠져 나옵니까? 개척교회에 사람이 없어서 안갑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당신이라도 혼자서 온기를 들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이 감동 받으시고 보내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당신과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아내가 교회에 안간다고. 남편이 없다고. 혼자 우두커니 인터넷 예배 드리지 마세요! 어디서, 얼어 죽을 놈의 인터넷 예배입니까? 교회에 가면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죽으면, 당신의 영혼, 직장 다 죽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기도를 격려하고, 믿음을 격려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십시오.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드디어, 이제 야곱에게 주신 축복을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읽습니다. 야곱의 첫 번째는 양식의 복입니다. 비옥한 토지와 풍성한 양식이 공급될 것을 축복했습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복으로 통치권의 복입니다.

 

[야곱]에게서 나는 향취는 여호와께서 주신 밭의 향취입니다. 이 향취는 천국의 향취인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와야 할 줄 믿습니다.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7:28-29)

 

주님,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소서. 장자권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시고 주어진 사명에 열정과 최선을 다하여 올려 드리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가 나게 하시고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채워 주소서.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아멘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해가 뜨는 새 아침 밝았네 이제 다시 주님 찬양

무슨 일이나 어떤 일이 내게 놓여도

저녁이 올 때 나는 노래해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주 그의 크신 사랑 넘치네

주의 선하심 내가 노래하리 수많은 이유로 나 노래해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곧 그 날에 나의 힘 다하고 나의 삶에 여정 마칠 때

끝없는 찬양 드리리라 수많은 세월지나 영원히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나 주님을 경배해

나 주님을 경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