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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 창세기14/ 기다림과 믿음이란?

by 주은총목사 2024. 4. 14.

https://youtu.be/5JYqwyofUU8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미디어교회/ 주은총목사

 

기다림과 믿음

 

(15:1~5)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갈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오늘은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 점심약속을 준비하였습니다. 점심에 이기쁨 전도사님과 권순영 목사님과 더불어 발산역에 있는 쿠우쿠우에서 밥을 먹기로 했거든요. 하나님께 구정 전에 같이 얼굴을 보면서 점심을 먹게 하시니 감사해요. 점심 후에 권순영 목사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시고 기도로 힘을 주세요.“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협에 들려서 두 분께 드릴 것을 구입 한 후 자전거를 타고 발산역으로 갔습니다. 다리에 힘을 주셔서 제 힘으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면서 신나게 달려갔죠.

 

점심을 먹은 후, 권순영 목사님께서 차를 가져 오셔서 신대방역까지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차로 지상 위를 보면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쾌하였습니다. 맨나, 교회, , 교회, 집만 왔다 갔다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왔다였죠.

 

권순영 목사님이 섬기시는 예수 영광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와 기도를 올린 후, 또 열심히 발산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전거를 발산역에다 세워 놓았기에... 발산역에서 자전거를 찾아서 또 열심히 패달을 밟아가며 송정역에 있는 교회로 달려왔죠.

 

황숙녀 강도사님이 미리 와서 교회에 불을 켜놓고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오늘도 저녁예배를 드린 후 아침에 나가서 휴,... 10시가 넘은 시각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마무리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 나의 평생에 단이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성전에서 평생을 살게 하옵소서. 나의 평생에 하나님이 함께 하옵소서.“

 

신대방역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권순영 목사님이 섬기시는 예수 영광교회에서 기도를 매일 올려도 좋습니다. 네이버에 예수 영광교회라고 치면은 신대방 역에 있는 권순영 목사님의 교회가 나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사람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들입니다.

 

이 세 사람은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이 세 사람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울지 않은 두견새가 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했을 때, 이 세 사람의 답은 각각 다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은 두견새는 죽여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만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노부나가는 성격이 급합니다. 히데요시는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입니다. 이에야스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 가운데, 천하를 통일한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다림과 인내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이에야스~! 그러면, !! 기다림과 인내이렇게 떠오른다는 겁니다. 왜 그가 그렇게 기다림과 인내심이 뛰어났는가?

 

그가 두 살 때,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고, 6~19살까지, 13년 동안, 다른 가문에 인질로 잡혀가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장해서, 성공은 했지만, “울지 않은 두견새는 죽여버린다고 말한, 노부나가, “울게 만들어야 한다도요토미 히데요시 사이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노부가와도 죽고, 히데요시도 임진왜란을 끝내고 죽습니다. 두 사람 다 죽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잠잠해 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니, 기회가 온 겁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히데요시도 죽습니다. 드디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의 패권을 거머쥡니다.

 

기나긴 기다림과 인내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

 

위대한 것 치고, 속히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결과만 보면, 금방 이루어진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오랜 기다림과 모진 고통을 참고 이겨낸, 인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명작이 있습니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소설이나, 명작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이 명작들이 언제 이루어 졌는지를 보면, 그 작가들이 대부분, 70, 80대가 돼서 이룩한 작품들입니다. 젊어서 나온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명작품들이,

다들 7,80이라는 나이가 돼서야, 탄생하는 것입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66세 되서야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것입니다. 시스턴 채플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8년동안 2천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입니다.

 

우리가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2백 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은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 두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찾는 자에게 반드시 성공의 기회가 찾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다리는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죠. 봄에 뿌린 씨가 가을에 열매를 때까지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과 더불어, 온갖 병충해와, 혹독한 폭염과, 강한 바람을 이겨내고서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오늘 영성산책은 창세기 15장의 기다림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것은 바로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승리의 기쁨보다는 승리 이후의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일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1절 말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니까, 아브람이 밤새도록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들 중에 두려움과 걱정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만일 걱정과 두려움으로 밤을 지새워 본 경험이 없다면, 아마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던가 아니면 치매 환자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람은 318명의 특공대를 이끌고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비롯한 네 왕의 연합군을 멸절시켰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구하기 위해 나가서 싸웠고,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돌라오멜은 당시 근동지방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싸움 이후가 오히려 불안했던 것이죠.

 

아브람이 왜 두려워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4대 연합국에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4대 연합국은 아브람이 정예군도 아닌 일꾼들을 데리고 와서 자기들을 무찔렀다는 것과 아브람 군대의 숫자가 적은 것을 언젠가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전쟁에서 아브람이 승리했지만 주변에 원수들이 생겼다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브람에게 불안감이 엄습하였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몰려드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그날 밤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떠난 고향이요, 그래서 머무른 가나안 땅인데, 자신이 직면한 적이 너무 크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민족, 후손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지 10년이나 지나갔는데 그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란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브람을 더욱 불안하게 했던 것은, 눈앞에 보이는 적도 문제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도 컸습니다.

 

우리를 가장 안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가요? 잠언 1312절에도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라고 했죠.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을 주셨는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어려움들을 경험하면서 조바심이 나는 것이죠.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집보다 하나님을 크게 여겼기에 아비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롯과 헤어질 때에도 롯이 바라보는 세상의 안목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여겼으므로 롯을 신앙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크게 여기며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앞으로도 하나님에 대해 바로 깨닫는 것이 큰 상급이 되는 길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죠. 방패가 무엇인가? 적으로부터 오는 공격을 막는 무기입니다. 세상의 방패는 그렇게 안전하지를 못합니다.

 

골리앗은 창과 단창을 손에 잡고 방패든 자를 앞세웠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든 자가 앞섰더라 (사무엘상 17:41)고 했죠.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든 방패는 다윗의 물멧돌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권력을 방패삼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사도행전 12:23). 돈을 방패 삼아 살아가는 어리석은 부자도 있습니다.(누가복음 12:13-21).

 

사람의 칭찬과 칭송을 받기 위해 외식하는 어리석은 무리들도 있습니다(마태복음 23:13-36). 이러한 것을 방패삼아 사는 자들은 사단이 쏘는 죄의 독이 박힌 사망의 화살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가장 안전한 방패는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방패가 되어 막아주시죠.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4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43:2,4)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내 맘이 힘에 겨워 지칠지라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세상의 험한 풍파 몰아칠때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주님은 나의 산성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하시는데, 아브람의 대답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이때 아브라함의 나이 70세입니다. 아브라함 당시만 해도 그 나이는 많은 나이입니다. 당시 셈족속들의 결혼 적령기가 보편적으로 30대 임을 알 수 있습니다(창세기 11:10-26). 그런데 그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곁에는 아들 같은 롯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롯이 아브라함 곁을 떠났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언약 위에 더욱더 굳게 서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에셀은 충성된 종입니다. 롯이 아브라함 곁을 떠났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텅 빈 둥지와 같았습니다. 그 텅빈 둥지에 누가 들어가게 되었는가요? 당신의 텅빈마음에는 누가 들어가 있나요? 아브람은 롯 대신에 다메섹 출신 충성 된 종 엘리에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에셀을 인정치 않았습니다. 조카 롯은 자기 곁을 떠난 지 오래이며, 충성된 종 엘리에셀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고, 아내 사래는 경수가 끊어진지 벌써 오래 되었으니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때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세기 16:2)고 했죠. 이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런데 이를 또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서 떼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하갈을 교만케 해서 사래와 사이를 멀리하여 아브라함 곁에서 멀리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따졌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게 뭡니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게 자식이라도 하나 주셨습니까?”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2-3절에 나타나는 아브람의 상한마음을 보십시오.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나의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지금 아브람의 인생은 장애가 가로막고 있기에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손이 있어야 하는데, 약속된 자손을 주시지 않기에 막막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늘 평안하고 형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형통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슬퍼집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인지 아십니까? 밤새도록 당신으로로 하여금 잠을 못 들게 하는 그 아픔들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콜트만 목사님은 어느 부인이 처해있는 복잡한 결혼문제를 상담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의 처지를 자세히 분석한 후에 다음과 같이 권고를 했습니다. [집사님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 마음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빨리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는 주안에서 그리고 주님을 위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집사님의 인내심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실 것입니다만 결국 변치 않고 만족한 해결책을 주실 것입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의 신앙이 강하여졌으며 하나님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 주시기 시작하시는 것도 알았습니다.

 

인내는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는 미덕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정도를 벗어나지 말고, 다시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문제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죠. 내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마구 조종하고 싶죠. 하나님, 빨리요. 속전속결요!

 

조이스 마이어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책을 읽어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마리아와 요셉은 무척이나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먼저는 들어가 거처할 집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 이미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만왕의 왕을 잉태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말입니다. 말구유에 오신 주님을 모시고, 마리아와 요셉은 구차하게 선물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춥고 어두운 마구간에서 밤을 보내야 했지만 선물을 청하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기에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을 보내셨고, 박사들이 타고 온 낙타에는 귀한 공급 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낙타들이 오고 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으면 낙타들이 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할 것들이 말입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사역할 때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떤 건물을 점찍어 둔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건물을 우리 것으로 주장하며 차를 타고 일곱 바퀴를 돌았고 우리가 이 건물을 살 때까지 이 건물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아 그 건물은 팔렸습니다. 우리에게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건물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로 가서 한 구석에서 다시 그 건물이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간단히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다른 건물을 생각하고 계심이 분명해. 만일 그 건물이 우리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남겨두셨을 테니까 말이야.”

 

화나고 흥분해서 어리석은 짓을 하는 대신 우리는 낙타가 오고 있다!”고 계속 고백했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표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 대로였습니다.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60:4-6)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이 시간이 있어야 낙타가 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낙타가 옵니다!”

 

샬루 샬롬 예루살라임

 

 

하나님은 실의에 차 있는 아브람을 이끌고 나가서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들처럼, 아브람의 자손이 많아지고 번창하리라는 말씀은, 엄청남 축복의 말씀을 하셨죠. 아브람은 그 말씀을 믿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었다고 한 말이 왜 대단한 말이 되는가 하면, 지금 아브라함한테는 단 한 명의 자식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은 좋습니다만, 현재 내 상황을 봐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별처럼 수많은 후손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지금 내 현재 상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는다는 말”, “믿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서, ‘믿음[에무나]입니다.

에무나는 [아만]에서 나옵니다.[[아멘]][아만]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만]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아만],

//성실하다. 신실하다. 진실하다.

//충성하다. 견고하다. 단단하다.

//확실하다. 확고하다. 확신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멘 할 때, 이 말은 부사로 사용되는 말인데, 참으로~~!,/ 진실로~~!” 이런 뜻입니다.

 

(참으로 그렇게 될 것을 바라는 말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될 것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멘이 이런 의미입니다.

 

(하박국 2) 말씀에 보면, “믿음이라고 해석해 놓은 말이 [에무나]입니다.

[에무나]의 뜻을 살펴보면, 성실하다. 진실하다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박국 2)에서는 믿음으로 해석했습니다. ‘성실함과 진실함믿음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다시 말한다면, “의인은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이란, 성실함과, 기다림, 인내가 없이는 믿음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한결같은 것을 말합니다. 성실함은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믿음이란, 오늘 불쑥, 내일 불쑥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같이,

성실하신 하나님처럼, 한결같은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확실하고, 확고하다면, 한결같이 성실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인내하고 참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고 했는데, 원어로 [아만]이라는 말을 믿었다고 해석했습니다. [아만[이라는 말은, “성실함이고, 진실함이고, 인내와 기다림이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를 믿음으로 해석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확실함이고, 확고함입니다만, 또한 믿음은 //성실함입니다.//기다림입니다.//인내입니다.//충성됨입니다.

 

[아브라함]이 앞으로, 400년이라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이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예 믿습니다로 대답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예 성실히 기다리겠습니다

약속하신 그 말씀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한결같이 성실히, 충성하겠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홍수를 기다리는 세월은 100년이나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100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광야를 40년 먼저 살았습니다. 그리고 80이 돼서야 백성들을 이끌고, 다시 광야로 들어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일들에 대해서, 너무 조급하게 기다립니다. 금방 나에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처럼 조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계속해서 뭐라고 합니까? 인내하라. 인내하라 그럽니다. 인내는 기다림입니다. 참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습니다

작은 사랑 가슴에 안고 순종하며 왔습니다

가슴이 움직이는 데로 이곳에 왔습니다

나를 버리고 내려놓을 때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보았습니다

작은 순종에 하늘문을 여시는 그 사랑에 눈물 흘립니다

 

나 이제 이곳에 살아갑니다

당신의 사랑 나누며 한 줌의 흙이 되기를

이곳에 나를 묻고 내 생명 다할 때까지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 꽃을 피울 때까지

이 땅에 하늘에 사랑을 심고 생명의 꽃들을 피울 때까지 워

나 이제 이곳에 살아갑니다

 

당신의 사랑 나누며 한 줌의 흙이 되기를 이곳에 나를 묻고 내 생명 다할 때까지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 꽃을 피울 때까지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지 않습니다 순종합니다

 

어떤 사람은 욕망 때문에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과 사랑을 거부하고 부끄러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19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욕망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이 세상일에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시편 37:7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지어다" 했죠.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축복이 안 나타나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참으며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도리어 "슬픔과 고난의 보자기에 축복을 싸다 준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올 때 불평이나 낙망대신 "주여 감사합니다. 이 시험이 지난 뒤에는 무슨 축복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시련의 크기만큼, 고통의 크기만큼 그 다음에 큰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하며 기다릴 때 기적적인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 학생이 울면서 교회 사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도둑의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어 억울하다는 내용이었죠. 그 학생은 마구 흐느껴 울면서 "사모님은 절 믿지요?"하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사모는 "아무렴, 널 믿고 말구!" 하며 다독거렸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면서 "목사님과 사모님만 나를 믿어주면 됩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학생이 사모님으로부터 널 믿는다는 이 말 한마디에, 그 억울하고 속이 터져서 미칠 지경인 마음을 진정하고, 그토록 기뻐하며 고마워하듯이, 하나님도 그런 아브라함을 기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15년의 세월을 기다립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간적인 가능성이 희박해 지는데 말이죠. 아브라함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비전을 놓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죠. 하나님은 믿고 기다리는 아브람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의로 여기셨죠.(15:6)

 

하나님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5)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밖을 불러내어 하늘의 별을 세게 했습니다. 하나 둘 셋 ..., 새로 다시 하나 둘 셋 넷 ... 도무지 셀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가 그처럼 많은 자식을 네게 줄 것이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같이 많은 자식을 주시겠다는 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죠. 그러한 많은 자식을 주면 약속의 땅 가나안은 협소한 곳인데 어디서 살 것인가?

 

그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이러합니다.

 

1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5:18) 이라고 했죠.

 

애굽에서 유브라데까지는 당시 세계의 범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온 세계 천하를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은 지금 온 세계에 편만해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정복자로 살고 있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1)고 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을 주셨는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어려움들을 경험하면서 조바심이 나는가요. 왠지 불안한가요? 눈앞에 보이는 적도 문제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더 큰가요? 세월은 많이 갔는데 아직도 나타나는 변화는 없는가요? 나이는 먹어가며 늙어가며, 갑자기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몰려드는 두려움과 외로움, 초라함 여러 가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나요?

 

하나님은 그런 당신을 위해, 오늘 아브람의 그 길고도 긴...지칠 정도로 힘든 그 기다림의 여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거죠.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127절에서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호하시리이다

1215절에서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했고, 7-8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로다

 

당신은 영화 속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이 감독이고, 당신은 주연이죠. 영화속의 주인공들은 총 싸움을 해도, 칼 싸움을 해도 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총알이 피해 다니는지.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아무리 총알이 빗발쳐도 그 주인공이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공이 끝나면 영화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은 꼭 하나님의 약속의 주인공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함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1)

 

저는 용문산 기도원에서 어린 시절을 자라 났습니다. 그때 용문산 기도원을 위해 애쓰시던 박0득 목사님이 생각이 납니다. 용문산 기도원을 위해서 50여년을 부목사로 섬기시던 목사님의 모습. 친구가 학교에 늦으면 오토바이에 실어서 능치초등학교까지 데려다 주시고. 예수천국 불신 지옥하면서 50여년을 많은 시간을 혼자서라도 전도하러 다니시던 모습.

 

40일 금식을 하면서도 군인 출신이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시던 모습. 혼자서 대성전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장작을 준비하시러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하러 가서 쓰러지는 나무에 맞아서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천국으로 가신 박0득 목사님.

 

그분의 따님의 이름이 박0미입니다. 저랑은 한 살 차이가 나는 믿음이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인가... 0와 둘이서 성탄 준비를 위해서 그맑고 환한 밤중에를 주일학교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춰서 부르던 모습도 생각이 납니다.

 

0미는 저보다 먼저 하나님께 갔습니다. 자신의 병원비로 나온 보험금을 동생인 박0철목사님께 개척자금으로 드리고 갔죠. 0철이는 지금 음성상담교회를 섬기며 멋있게 주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도 용문산 기도원에서 50 여년간 평생 외로이 종으로 사셨던 박0득 목사님의 뒤를 따라 주의 종의 길을 갑니다. 용문산 기도원 식구들에게 최선을 다해 섬기셨던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저도 그렇게 외로울지라도 주의 길을 끝까지 묵묵히 걸어갔다는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그 길을 갈 수 있기에 눈물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우리의 마음이 녹아지는, 그런 눈에 그렁그렁하는 눈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로 여기시지 않겠습니까?

 

주님, 아브라함과 계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어떻게 성취하신 지를 후대가 알기에 은혜가 넘칩니다. 너무나 멋지고 원더플합니다. 놀랍고 놀랍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가 친히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실 때까지 기다림에 신실한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평소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갈 길을 깨달아 순종하게 하소서. 하나님과 관계가 더 밀접해지고 돈독해지며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인도해 주시고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영적 전투에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승리케 하셔서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를 이제 난 알수 있겠소

죽어가는 영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

이제 더이상 바라볼수 없어 그들에게 난 달려가겠소

영원한 생명 그 십자가 나 따라가오

 

세상 날 버려도 지쳐 쓰러져도

나 놓을수 없는 십자가

생명을 구할수만 있다면 그들 주를 볼수 있다면

나의 생명이라도 두고 가겠소

주님 가신 그 길처럼 단 한번만이라도

아버지위해 아낌없이 드릴테요..

 

나의 가슴속에서 흐르는 눈물

내 아버지 사랑이죠 이제 울지 말아요

세상 모두다 주의 이름 부를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