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인생의 흉년과 선택
룻 1:1-5
꿈이있는 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평범한 한 가정의 이야기
룻기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고 또 겪어 왔으며 고민하였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죠.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1장 절에 “사사들이 치리할 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사시대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인 사울이 세워질 때까지 약 350년을 말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질서와 흑암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이 되죠.
“그때에(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왕이 없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된 지도자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곧 무질서의 시대였다는 거죠. 자기 소견에 옳으면 그것이 곧 법이요, 힘이 있고, 돈 있고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시대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위기
이러한 시대 속에서도 엘리멜렉의 가정은 신앙으로 잘 이겨내었습니다. 비록 암흑시대요, 무질서의 시대였지만, 신앙으로 살아가려 애를 쓰며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결정적인 고통이 그들의 가정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1:1)
그들의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흉년이 찾아왔던 거죠. 경제적 고통은, 가정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엘리멜렉의 가정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엘리멜렉이 사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떡집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경제적, 인간관계, 영적인 흉년등 여러 가지의 흉년이 있습니다.
먼저, 경제적인 흉년이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되든지,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든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또 인간관계라는 특별한 면의 흉년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당신 가정의 부부사이는 어떻습니까? 지난 때 같이 마냥 좋고 탄력있는 아름다움이 있습니까? 법적으로만 부부지 실상은 메마르고 삭막한 부부관계는 아닙니까?
부모와 자녀관계는 어떤가요? 당신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떻습니까? 삶의 모든 고통이 다 아프지만, 인간관계의 갈등이야말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긴장과 어두움과 고통을 가져줍니다.
영적인 흉년
지금 여러분들은 영적인 생활이 어떻습니까? 말씀이 은혜가 넘치고, 날마다 기쁨과 감사로 넘치고, 기도가 막히지 않고, 마음 속에서부터 찬송의 샘이 터쳐나오는 경험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신앙생활이 힘들어서야 어떻게 할꼬. 하면서 탄식과 피곤과 낙심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가 막히고, 말씀에 힘을 잃었습니다. 은혜가 떨어졌고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충성도 예전보다 못합니다.
고난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법
당신은 삶 속에 흉년이 도래할 때에 어떻게 이를 대처하겠습니까? 인생에 흉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네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 흉년이라는 상황 자체를 부인을 한다.
이 사람은 도박, 술, 담배 등 다른 것에 집중해서 자신의 현실을 눈감아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인생의 위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아니라고 부인을 합니다.
내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 건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 사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 영적인 상태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흉년에도 이 현상을 자기 두 눈을 감아 버리면 없어지는 것 같이 부인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괴로움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술을 찾고,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이 여행이나 다녀오고... 음란과 중독에 빠지고 다른 사람을 의지합니다.
둘째, 무지해서 깨닫지 못하는 경우이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을 자기만 모르는 사람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다 아는데 정작 본인은 모릅니다. 아무리 알려주려고 해도, 자기 고집만을 내세웁니다.
셋째, 현실 도피이다.
인생의 흉년이 찾아오면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 버립니다. 일단 이곳을 피하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는 것입니다.
넷째, 용기있게 직면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부딪치는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이죠. 자기의 삶에 다가온 흉년이라는 고통스러운 상황과 더불어 대결합니다.
고통 그 자체는 괴로운 것이고 어려운 것이지만,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며 오히려 감사와 인내로 자신의 고통의 현실과 부딪쳐 싸우는 용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이기내며 현실이란 역경을 오히려 디딤돌로 삼는 사람입니다.
흉년은 누가 보내셨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흉년이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엘리멜렉 가정에 닥친 흉년은 그 가정에만 닥친 흉년이 아닙니다.
1절을 보시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했습니다. 룻기의 역사적인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그 때는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 때에 그들에게 왕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단순히 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을 지도하는 자가 없었고, 그들에게는 왕이신 하나님 조차 저버리고 없었던 때 입니다. 이 때는 자기 마음대로 살던 때입니다. 그 결과가 암흑이고, 혼돈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말씀 없이 사는 것이 자유같으나, 이 때가 믿는 자에게는 방종이요, 방탕이요, 어두움이요, 혼돈과 멸망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이키시기 위해서 매를 드셨습니다. 그 징계가 바로 흉년입니다.
갑자기 따뜻하고 평안하던 가정이 흔들립니다. 그동안 잘 버텨오던 사업이 비틀거립니다. 건강에 이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적신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를 결코 포기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치시기 위해서 내 신앙의 잠을 깨우기 위해서 내리치시는 <인생의 막대기>입니다.
또한, 당신의 신앙생활을 더 확고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흉년을 주십니다.
한 사람의 신앙의 진정성, 그 진실은 어려움이 닥쳐오기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이 흉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오는 흉년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때에 주신 시험이었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어려움이 닥칠 때에 드러납니다. 아무도 어려움이 오기 전에는 믿음이 있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기적의 하나님
1. 그 어느 날 새가 그물에 걸림같이 내 삶 속에 덫이 임했네
몸부림쳤지만 허우적거렸지만 나는 약한 자였었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라
나의 좋으신 주님 태양을 멈추며 혈루증을 고쳤던 주님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는 나를 고쳐 주셨네
2. 그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내 삶 속에 슬픔이 임했네 원인을 찾으며 애써 봤지만 나는 무력한 자였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라
나의 좋으신 주님 죽은 자를 살리며 모든 병을 고쳤던 주님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는 나를 고쳐 주셨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라
나의 좋으신 주님 태양을 멈추며 혈루증을 고쳤던주님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는 나를 고쳐 주셨네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는 나를 고쳐 주셨네
엘리멜렉의 선택
흉년이 온 것도 우연이나,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흉년이 올 때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 흉년을 피하여 세상으로 더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통을 직감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갑니까?
본문의 가정에 가장인 ‘엘리멜렉’이란 이름의 뜻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좋은 뜻입니다. 그의 아내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도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이 가정은 그 가족의 이름만 봐도 대대로 믿음을 잘 지킨 가정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이 나의 삶의 왕이시다.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삶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신앙고백으로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죠.
그러나 어느 날 흉년이라는 바람이 베들레헴에 그 땅에 닥쳤는데, 이 흉년의 어려움이 이 가정에도 닥쳐왔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하였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께 구하였을까? 아니면, 도망을 갔을까요?
엘리멜렉은 그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도망합니다. 그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피한다고 징계가 그쳐지지 않습니다. 징계의 목적으로 때리신 하나님의 흉년은 떠나지 않을 것이고, 더 커다란 고통만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도피를 선택했습니다. 장소만 옮기면, 해결될 것입이다. 이혼만하면 됩니다. 사업의 업종을 바꾸면 됩니다.
엘리멜렉은 불행하게도 흉년이 찾아왔을 때 세 번째 선택인 현실을 도피하였습니다. 엘리멜렉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잘못된 선택을 하였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모압이라는 나라로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모압은 어떤 땅인가? 모압은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을 간신히 피한 롯과 두 딸에 의해서 세워진 땅의 이름입니다. 두 딸은 자손이 끊어질 것이 염려되어서 그 아비에게 '술을 먹이우고' 동침한 결과 맏딸이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모압이죠. (창 19:30-38)
이 모압이 후에 요단강 동편에서 한 민족과 국가를 이루어서 모압족속이 됩니다. 민수기 25장에 이들과 접촉하여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모압족속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그들의 신 [그모스]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한 문화를 가졌습니다. (민 25장)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품으로 도망가지 마십시오! 이혼하지 마세요! 당신의 고집과 주장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가정을 버리고, 그 여자와 그들을 구원시키겠다구요? 하나님이 이러한 하나님인줄 아십니까? 제발 ‘가장으로써 정신을 똑바로 차리십시오!’
엘리멜렉은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땅을 간 엘리멜렉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압은 행복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죽음만이 그들의 결과였다는 죠. 가장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멜렉은 신앙의 가장이었습니다. 흉년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기뻐하는 삶이 있었지만, 흉년이 왔을 때는 그 믿음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입술로만 아니라, 입술의 고백이나, 찬양에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진정 나의 삶 속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 이 고통과 어려움의 환난 가운데서도 바를 보시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고, 보호하실 것이라는 전능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나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이 모든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나를 훈련시켜 놀라운 뜻을 이루실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애석하게도 남편인 엘리멜렉의 고집과 어리석음의 결정으로 인하여 그의 아내 나오미는 큰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고통을 경험하게 된 나오미는 나중에 자기 이름을 마라(1:20) 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이 이름은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던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삶을 배신한 가정에 찾아온 것은 죽음과 고통 뿐이었습니다.
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룻기 1:3-5)
우선 집안의 가장인 엘리멜렉이 그곳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에는 두 아들마저 죽어 버립니다. 남자 셋은 다 죽고, 과부만 셋이 남습니다.
첫 아들의 이름은 말론인데, 그 이름의 뜻은 질병입니다.
둘째의 이름은 기룐인데, 그 이름의 뜻은 상실한다,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이 두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 떠난 그 가정의 유랑의 생활의 결과에 대한 상징적인 이름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사는 생활. 그 결과는 불행이요, 죽음이요, 다 잃어버리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도피는 결코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흉년은 하나님이 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흉년을 통해 나를 만드시고, 고치시려는 것이 무엇인가,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남편이 있는 여자와 간음을 했습니다. 거기서 그친것이 아닙니다. 밧세바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교만하게 인구조사까지 했습니다. 죄질이나 죄의 경중을 따지고 보면 다윗이 훨씬 악합니다.
사울과 다윗을 모른다고 가정하고 누가 더 악한지 묻는다면 다수가 다윗이 더 악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자”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납득이 갑니까? 왜 이런 오해와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집니까? 다윗은 범죄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운동성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오로지 자신의 고집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점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뜻을 구하는 자세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내게 닥친 흉년이 경제적이든지, 부부관계의 흉년이든지, 영적인 면의 흉년이든지 그 흉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네 인생길에는 늘 풍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다보면 폭풍도 지나고 캄캄한 밤도 지나갑니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도 있고, 거친 들판을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오르막 길이 있는가 하면, 천길 낭떠러지도 만나지요. 이러한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요? 도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저 앉아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죠. 하나님 자녀답게 비겁하지 맙시다.
주님, 인생의 흉년이 인생을 망하고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께로 돌이키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인생이 역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게 하옵소서. 흉년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만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아멘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기다리시는 본향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안아주시는 본향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눈물 흘리신 그 품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변치 않으신 그 품으로
1. 나의 어리석은 지난 날을 이제 가슴 치며 회개하오니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2. 나의 방황했던 지난 날을 이제 눈물로서 회개하오니
나의 상한 마음 만져 주시고 그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실패와 흉년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보십시오!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시키는 데 다음과 같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정직하게 실패와 흉년을 인정하십시오.
둘째, 실패를 이용하십시오. 절대로 실패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십시오.
셋째, 실패를 `이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는 계기로 삼지 마십시오. 실패와 흉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실패를 반가운 손님을 맞듯 대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실패란 또 다른 형태의 성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일의 승리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 실패를 맞아 좌절의 늪에 빠져 계시지는 않는지요 ? 당신에게 힘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어떤 종류의 실패라도 그것을 성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당신에게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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