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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산책/빌립보서

주은총목사/ 빌립보서6/ 하나가 되는 비결

by 주은총목사 2023. 8. 14.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기쁨의 빌립보서저자주은총출판담장너머발매2023.04.17.
 

빌6/ 요즘 당신의 생활은 어떤가요? (by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

요즘 당신의 생활은 어떤가요? 복음에 합당한 생활(빌1장 27절~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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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214)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교회는 사도행전 1611절 이하에 나타난 대로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가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들어갔는데 안식일에 예배할 회당이 없어 조용한 강가로 나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유대의 풍습에 따라 사는 유대인들이 강가에 나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자주(紫紬) 장사하는 루디아를 만나 전도하게 되고, 루디아가 마음 문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또 자기 집을 열어 예배 처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넉넉했던 루디아의 집이 선교 본부가 되고 빌립보교회가 출발했던 것입니다

.

빌립보교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여성 주도적인 교회입니다.

루디아라는 한 여성으로 시작된 교회인 만큼 여자들이 많았죠. 물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혔다 하면 다른 교회에서는 '또 갇혔나 보다' 생각하고 기도만 했지만 빌립보교회는 여성적인 교회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문을 듣자 '얼마나 춥고 배고플까, 얼마나 불편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문금을 모아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여성적인 빌립보교회의 장점입니다.

 

그런가 하면 단점도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들의 결정적 약점, 바로 질투입니다. 사랑과 질투는 종이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빌립보교회 안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인 사이에 알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사를 경쟁적으로 하고 질투하고 시샘하다 보니 그만 교회가 화목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어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바울의 마음에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4절에서 바울은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말을 합니다.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하는 이 말의 표현은, 너희들이 다투기 전에 내 처지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버지 앞에서 형제 싸움을 못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에서 역시 야곱이 미웠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은 죽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는데 빌립보 교인들이 서로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기쁨도 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찌 다툴 수 있을까요?

 

교회는 더불어 사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함께 사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빌립보서 21절로 4절 말씀은 <하나가 되는 비결>- 다른 말로 하면 -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가리켜 줍니다.

 

먼저 빌립보서 21절과 2절을 함께 읽습니다.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1] 한마음을 품어

교회는 권면, 사랑의 의로 성령의 교제 긍휼과 자비의 요소들과 함께 성도들이 한 마음을 품어 한 뜻을 가질 때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1)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면과 사랑의 위로

권면은 믿음이 연약하거나 시험에 들어 실족하려는 자들에 대한 말씀으로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2)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긍휼과 자비입니다. 이는 죄인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교회안에서 죄인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죠.

 

[2]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라

 

바울은 또 본문 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라'고 말씀합니다.

 

3아무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툼은 경쟁심입니다. 경쟁심을 갖게 되면 자기 상실에 빠지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진실을 잃어버리고 승부욕에 지나치다 보면 자기 과장에 빠지게 됩니다. 한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없고도 있는 척, 모르고도 아는 척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허영은 헬라어로 케노독시아’(κενοδοξία)입니다. 그 뜻은 헛된 영광자만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케노스(κενός)텅빈’, ‘거짓된’, ‘공허한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영은 진실을 잃게 하고 자기 존재를 완전히 상실하게 합니다. 남들이 나를 뭐라고 하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사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라이프성경사전- 이생의 자랑

문자적인 의미는 생활의 자랑.’ , 부유한 재산이나 높은 신분. 이 세상에서의 활약상 등 세상 환경이나 조건에 대한 허탄한 자랑을 일컫는다(요일 2:16).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랑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가문에 대한 자랑, 학벌에 대한 자랑, 돈 자랑, 권력 자랑, 출세 자랑.... 이것 저것 자랑할 것들이 많습니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고 명품, 고급차, 고급주택들을 그 자랑거리들을 인스타그램에 마구 올리기도 합니다.

 

결국 이생의 자랑은 그 영향이 밖으로 까지 미칩니다. 타인의 시선이 목적이죠. 그것은 이웃을 질투케 하고, 이웃을 절망하게 만듭니다. 이생의 자랑은 주변을 파괴시키죠. 그러나 결국은 그 자랑하는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자랑질이 그 정확한 예증이죠. 자랑하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생의 자랑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시기, 질투로 사람들을 파괴시키죠.

 

교회 역시 이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한국 교회 과반수 이상의 목사님들이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고 있는데 어떤 목사님들은 여전히 큰 교회 대형교회를 추구합니다.

 

교회광고가 나오면 제일 크게 나오는 것이 먼저 무엇일까요? 바로 교회당 건물이죠. 그리고 나서 담임목사의 사진과 함께 기록한 화려한 경력이나 학력들입니다. 그리고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화려한 교회의 장식 화려한 성가대와 악단 그리고 놀이 문화 공간 이런 것들이 그들의 자랑거리입니다.

 

어느 곳 하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합니다라는 말이나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천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라는 자랑은 없습니다. 어느 곳 하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작은 개척 교회를 사랑하고 섬긴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생의 자랑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자기 자랑 자기 교만 때문에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요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영원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랑을 하려면 학벌자랑, 부동산자랑, 자식자랑이 아니라 내 약한 것들을 자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해

주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육신의 정욕이란 사람 마음속에 있는 지나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이란 영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잘못된 인간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지나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e)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여정으로 세계적 불후의 고전인 고백록(Confession)을 썼습니다. 그 고백록을 보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어거스틴은 정욕 중 가장 절제하기 힘든 것이 성욕으로 봅니다. 깨어있을 때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한 성욕이 꿈속에서는 절제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성욕은 몽중에서도 자신이 육신을 충동시키고 동물적 행태를 보인다고 했죠(고백록 10.30.42).

 

몽중에는...내 마음과 육체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커서 내가 깨어 있을 때에는 실제의 인물을 보고도 하지 못할 짓을 몽중에 있는 나를 설득하여 하도록 한다 ”(고백록10.30.41).라고 고백합니다.

 

성적 욕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자녀를 낳아서 번성케 하고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게 하고 가정을 행복하게 해 주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지나쳐서 육신의 정욕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신 좋은 것으로 오히려 가정을 파괴하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옛 사람의 본능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육신의 정욕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죠. 육신의 정욕은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육신의 욕망들 때문에 지나치게 쾌락을 추구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지나치게 돈에 빠져서 돈을 쫓다가 오히려 자신과 가족, 주위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도한 욕구로 몰입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계속해서 더 센 자극, 더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마지막에는 중독에 빠지게 만들죠. 그게 안목의 정욕입니다.

 

알콜 중독, 도박 중독에 빠졌던 분이 계십니다. 결심, 결의로 끊지 못한 것을 끊었습니다.

바로 예수 중독입니다. 중독은 더 강한 중독에 의해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분 표현으로는 그것이 예수 중독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산다. 성령이 모든 삶을 지배하신다. ” 더 이상 중독은 힘을 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도 사라지고, 정욕도 사라지고, 푯대와 사명만 남게 되었죠.

 

어거스틴의 고백론에 나온 기도문입니다.

 

, 나의 영혼의 진단하시는 주님,

내 영혼 깊숙이 박힌 침이 있나이다.

아담의 후예인 저와 저의 후손들까지

깊숙, 깊숙이, 박혀 있는 독침입니다.

뽑아도 뽑히지 않는 흉측한 악독의 침입니다.

 

독침에 맞는 내 영혼, 죄악과 사탄, 양심의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내 영혼이 번진 독으로, 육신의 정욕은 흘러넘치고,

안목의 정욕은 쏟아지고, 이생의 자랑은 솟구칩니다.

독을 내뿜는 죄악의 바이러스가 나의 전 인격, 나의 삶,

나의 인생을 파괴하고 병들게 했나이다.

 

길르앗의 유향 되신 주님이시여,

영혼의 진정한 의사 되신 주님이시여,

주께서 흘리신 보혈만이 온전한 해독제이기에

영혼을 말살한 독을 풀어주시고,

제 인격에 박힌 독침과 제거하여 주옵소서

병약한 영혼에 성령의 빛, 생명의 빛을 내리소서,

성령을 좇아 진리의 검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오직 예수와 그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십시오. 주변을 살리는 힘이 될 것입니다. 모든 시선을 주께 돌리십시오. 그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이기는 길입니다. 입을 열어 자랑을 하는 그 사람을 보면, 그가 누군지 알게 됩니다.

 

타락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어지고 썩어지고 멸망을 향해가고 있는 세상에 욕심을 내고 세상을 자랑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예수님의 십자가만, 천국만, 영생만 사랑하고 자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온 것이고 그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6-17)

 

들어 주소서

들어 주소서 나의 주여

내 영의 소원을 살피소서

주가 주신 나의 이 생명 주 뜻대로 이끄사

어두워진 이 세상에 한빛 되게 하소서

 

들어 주소서 나의 주여

내 영의 소원을 살피소서

주가 주신 나의 이 생명 주 뜻대로 이끄사

썩어 가는 이 세상에 소금 되게 하소서

 

[3]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역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일입니다. 사람은 대개 약자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보다 나은 자에 대해서는 도전적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3에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려면 세 가지 일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다툼은 성령의 교제와 반대되는 말이며 허영은 세상의 헛된 우상숭배를 가리켜 그 허무성을 뜻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것과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또한 여기에서의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의 절대성 앞에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자각하는 데서 오는 진정한 의미의 겸손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1)자기일을 돌보라

신앙인들 가운데는 사지가 멀쩡한데도 일을 하기가 싫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들로 시험에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을 합니다. 신앙인들은 먼저 자신에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 공동체나 사회속에서도 오히려 해가 될 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데요. 교회에서 각 지체들이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교회 전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기 집착 때문에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자기 주관>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주관적인 고정 관념에 딱 매여 있는 것을 터널 뷰우(tunnel view)라고 합니다. 굴속에서 보면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저 쪽 끝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굴속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이란 바로 그 구멍만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그렇게 작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자기 아는 것이 전부라고 고집부리는 사람은 하나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이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할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2)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

성도들 각자가 자기 일에 충실할 뿐 아니라 타인의 일도 돌아보아 도와주어야 합니다. 즉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죠.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로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므로 서로가 서로의 부족을 보충해 줄 때만이 교회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하소서.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소서. 또한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고 교회의 일을 돌볼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리라

아침 해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