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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845/clips/103
빌2/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빌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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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빌립보서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장 2절~11절)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번주는 구성전을 월세로 내어주신 건물주 할머니에게 맛있는 고기를 사서 인사를 갔습니다. 지하에서 마음껏 부르짖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보증금 500만원중에서, 사랑하는 우재에게 200만원을 선교여행비로 드렸습니다.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였습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갈 때는 ‘오병이어’로 풍성하게 드리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기도가 간절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 시민답게 살아가는 법
하나님의 부르심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늘 시민권자로서 긍지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와 법도를 드러내면서 살아야 할 책무를 가진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기 원하십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감옥 밖의 성도들에게 고난이 있음을 알고 그들을 위로하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감옥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빌립보 교인들처럼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나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나, 고난의 종류가 다를 뿐 고난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자세와 생활 자세, 그리고 일하는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죠.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승리로 살아가는 놀라운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빌립보서 1장은 바울은 자신을 시기하는 자들의 훼방으로 인하여 복음 전파가 더욱 진전되는 결과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처지는 복음전파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몰고왔죠. 이는 바울 자신의 생활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존귀만을 지향하는 삶이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확고함을 보게 됩니다.
먼저 본문 전체의 제목을 붙인다면 '그리스도인의 표지(The mark of Christian life)'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각각 어떤 마크(상징, 심벌)이 있습니다. 각 기독교 교단마다 합동, 통합, 순복음 다 마크가 있습니다. 운동 선수들 역시 그들의 소속 팀을 나타내는 마크가 있고 학생들에게는 학교 배지라는 표지가 있듯이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표지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가리킬까요?
그 근거는 첫째가 감사요, 둘째가 선교요, 셋째가 기도입니다. 본문에서는 이 세 가지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표지라고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선한 일을 하도록 하셨다는 점과 복음 안에서 바울 자신이 항시 빌립보의 성도들과 교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빌립보 교회는 바울로부터 전도를 받아 세워진 교회였으나 점차 성장하여 오히려 바울의 사역을 돕고 그의 전도활동에 동참한 성숙한 신앙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점을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 이 감사는 또한 환난 중에 처해 있는 바울 자신을 역경중에서도 기쁨으로 일관케 하였죠.
먼저 감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사람인가'할 때 남달리 청렴(淸廉) 진실하게 사는 사람, 구제와 봉사에 열심인 사람 등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들은 모두 겉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기뻐하느냐'에 있습니다. 기쁨 없이 하는 일은 아무리 귀한 일이라도 무의미합니다. 선교헌금을 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을 한다 해도 기쁨이 없으면 허망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 된 표지는 바로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신령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소유욕의 성취로 얻어진 기쁨이 아닙니다.
신령한 기쁨, 질적으로 높은 차원의 기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인입니다. 본문 3절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인은 생각을 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가요? 생각을 할 때마다 불평합니다. 분하고 억울하고 한이 맺혀서 생각을 할 때마다 원망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런 일 저런 일을 원망하다보니 잠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4절)
원래 '감사'라는 뜻의 헬라어 카라와 '기쁨'이라는 뜻의 헬라어 유카리스티아는 그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함께 감사한다는 것은 곧 기도와 함께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소망의 빛을 주신 생명을 내어주신
삶에 지쳐 쓰러진 나 일으켜 주신 분
눈물을 닦아주신 나를 꼭 안아주신
주의 자녀 삼아주시니 오늘도 찬양해
거친 파도 날 덮쳐도 주님 날 안으시고
고난의 길 나 갈 때도 능력의 힘을 주사
주님은 나의 노래 평생을 따를 이름
세상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내사랑
주님의 길 멀고 험해도 나는 달려가리
기쁨의 눈물 흘리실 주님 바라보며
우리가 알다시피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평안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이 기쁨의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 안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하늘의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환난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재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믿음의 승리를 경험하고 그리스도를 얘기하려면 우리 안에 그런 삶의 근거가 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비록 감옥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 마음속에는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 부당한 대우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넘쳐나는 기쁨 때문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에게 있었던 기쁨은 어떠한 기쁨이었을까요?
1. 기도의 기쁨입니다.
본문 1장 4절에 「간구할 때 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간구'는 '간청적'인 소원을 뜻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 마다 감사가 나오고(빌1:3), 간구 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할 마음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민족을 위해서는 근심 중에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롬9:3).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는 마음에 눌림과 근심과 걱정으로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갈1:6, 고후2:4). 그러나 빌립보 교회(무리)를 향하여 간구 할 때는 기쁨이 일어난다고 하였죠.
기도 중에서 가장 능력 있는 기도가 기쁨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몸소 체험하였죠. 빌립보 감옥에서 매맞고 죽게 되었으나 기쁨으로 감사하고 찬송했을 때에 옥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바울은 항상 기쁨으로 간구할 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었죠.
바울의 지금 처지는 인간적으로 볼 때 암담하고 답답합니다.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녀야 할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정말 원망스러운 상황이죠. 그러나 바울은 그 상황으로 인하여 시위대 안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되었고, 사람의 몸은 상황에 따라 제한을 받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매이지 않음(딤후2:9)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으로 간구하고, 감사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 이것을 분명하게 아울러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를 바라십니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께 "이 사업을 할까요, 말까요?" "이 사람과 결혼할까요, 말까요?"하고 자꾸 묻습니다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이럴까요 저럴까요 하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기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내가 감옥에서 나가야 기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의 기쁨으로 나아갔을 때 어떠한 것을 누렸을 까요?
1. 환경을 초월하게 되어버립니다(빌4:13) - 3절
바울은 감옥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기쁨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환경도 조건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2. 기쁨으로 기도로 나아갈 때 그리스도가 함께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고후4장에 보면,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내 속에 이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 흑암의 권세가 무너집니다 - 12절
(빌1:12)"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무슨 말인가요? 비록 바울이 감옥에 갇혔지만, 그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복음에는 더 큰 진보와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바울로 하여금 복음 전하지 못하도록 감옥에 묶었으나, 오히려 복음의 역사는 더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전 지역에서 사단의 흑암 권세는 더 크게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구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 주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기뻐하는 마음
경제난이 가중된 요즈음은 실직과 파산으로 인하여 자살을 하여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기
초가 파괴되는 현상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습니다. 죽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방법으
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알고보면 너도 나도 모두 살고자 하는 일인데 질투와 욕심으로 죽여야 살고,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세계에서 청소년층의 자살이 제일 많은 나라는 미국입니다. 1년이면 오천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떠나갑니다. 그들이 목숨을 끊고 난 다음에 그 의미를 과연 발견했을까요? 남은 것은 가족들의 비애와 슬픔뿐입니다.
사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땅에 묻히게 되어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이죠. 성경에 사람의 년수는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건강하게 아름다운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할 수 있는 생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은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혼자 떠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죠. 예수 이후의 최고의 복음 전도사, 천하의 대사도였던 바울도 엄청난 고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바울의 말년은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가정의 따스한 재미도 없었고, 사랑받고 줄 수 있는
아내도 없었습니다. 이제 몸을 기댈 자식도 없었습니다. 오직 일생을 예수에 미쳐서 복음만 전하여 살아왔습니다.
사람은 고생이 너무 심하면 죽고 싶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삶을 포기하고 싶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힘을 잃어버립니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없을 때 인간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죠. 당신과 제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의 고민은 바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생의 절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심정은 1장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두 갈래 길에서 죽음을 선택하던지, 삶을 선택하던지 한쪽에 결단을 하여야 하는 인간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죠.
바울은 고백하죠. 죽음의 가능성이 있는 감옥 속에서도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중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빌립보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더 중요했습니다(1:19-26). 그것은 죽음을 초월한 신앙과 성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당신과 나와의 만남. 주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감사하는 마음 --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성도의 교제란 십자가로 맺어진 영원한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이 교제는 그리스도께서 맺어 주신 것이죠.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돈이나 명예나 이권 때문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는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 맺어진, 그 동기가 아주 순수한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의 교제는 그리 순수하지 못합니다. 불순한 조건이나 동기가 많이 파고듭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말씀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교제입니다.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분이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1:5-6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 선한 일, 즉 구원 사역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인간에 의한 것이라면 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므로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신앙의 길을 달려가야 하죠.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므로 아무런 염려와 걱정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주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 구원 역사를 시작하시고 지금도 인도하시는 성령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항상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 중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관제물'이란 제물 위에 마지막으로 붓는 술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뿌릴 피의 순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자신은 빌립보 교우들의 그 제물(사랑의 봉사)위에 피를 쏟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고,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재림의 날까지, 종말이 이를 때까지 주님께서 우리들의 교제를 지속시켜 주시리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형제나 친척보다 성도의 교제가 가장 깊고 가장 의미 있고 영원한 것이요, 가장 순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형제나 친척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대화가 통하지 않고, 벽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늘 가족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말과 마음이 통합니다.
혹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여 외롭고 고통스럽습니까?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고민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외로워하지 마십시오. 다른 이유 하나 없어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외면한다 해도 성도의 교제는 언제까지나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 동기가 그리스도요 그 역사가 곧 그리스도이기에 이것을 이름지어 마라나타 커뮤니티(Maranatha community)라 합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주의 능력 가운데 이 교제가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6절)고 고백합니다. 신령한 기쁨, 신령한 감사, 그리고 종말론적인 성도의 교제를 소중히 여기면서 늘 감사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된 첫째 표지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천군마마를 얻은 장사처럼 든든한 기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픈 겨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때입니다. 아들 딸 3남매를 애지중지 키워 온 어느 노부부가 아들 며느리들이 모여 서로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고 싸우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이 부부의 마음속에는 차가운 한겨울의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그로부터 삼일 후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습니다. 아내까지 잃어버린 아버지는 더욱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어 버렸죠.
그 후로 1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이렇게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배신은 인간의 마음에 혹독한 위기를 몰고 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모든 것- 그의 지식, 능력, 재산, 열정, 청춘-을 몽땅 주님께 바쳤습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목숨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닌, 인생의 겨울을 눈앞에 둔 ‘늙은이’였죠.
예수님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바울에게, 겨울을 지낼 외투 하나 없이 감옥에서 있었지만, 그는 결코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식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평생을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게 뭡니까?’라고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러 면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이했지만, 그러나 바울은 그 인생의 매서운 추위를 멋지게 극복하였습니다. 아니, 죽음조차 사도바울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바울에게는 빌립보 성도들이 있었고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그가 믿음으로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그와 디모데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교감을 나누고 있었죠. 그들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만은 무엇이든 그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미약한 개척교회를 뒷바라지 하는 “민스 시스터” 자매들과 한국프르트의 장로님 부부, 왕복 5시간을 교회로 2년간 달려오시다가 아예 성전 옆으로 이사오신 김희숙 목사님, 매주 왕복3시간을 걸려 개척의 전에 기도와 따뜻함을 전해주러 오시는 정만숙 권사님. 오랜시간을 묵묵히 마음을 주고 계시는 이재숙 권사님과 손철호 집사님.
용인에서 매주 주일예배에 참석하시며 교회에 온기를 넣어주는 사랑하는 김은정 권사님, 한번 뜻을 정하면 꾸준한 성실함을 보여 주시는 박창성목사님, 주일예배 한 번 빠뜨려 먹지 않고 매일 성경을 읽는 우리 우재. 교회가 이전을 할 때 아, 그 늦은 시간에 약밥을 해가지고 오시고 교회를 꾸미시는 목사님들을 위해 밥값을 내주시며 성전에서 철야를 하시는 방성자 권사님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수고하시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며 바울은 고백합니다.
빌1:7-8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 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이처럼 바울은 사랑하는 성도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순교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도끼로 목 베임을 당한 바울. 로마에 가면 사도 바울을 목 베어 죽일 때에 사용했던 도구를 만들어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앉혀놓고 칼로 친 것이 아니라, 커다란 절구통같이 생긴 나무토막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목을 걸치게 해서 도끼질을 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죽음이었으나, 바울은 이것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주님, 그리스도인의 표지로써 기쁨과 감사와 기도와 선교가 있게 하옵소서. 기쁨으로 기도를 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그리스도로 인해 맺어진 성도의 교제를 감사하게 하소서. 빌립보 성도들과의 그 사랑 때문에 기꺼이 순교를 감사함으로 받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 계획해 놓셨네 우린 하나되어 어디든 가리라 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리라 당신과 함께 우리는 하나되어 함께 걷네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또 우리 모임은 주님만 따르리 환란이 올지라도 주함께 하시니 또 우리마음에 시험이 닥칠때 어둠은 지나가고 새 아침 주시리 우리는 하나되어 함께 걷네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우리는 하나되어 함께 걷네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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