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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주은총목사/ 성경통독1일/ 창세기1-4장

by 주은총목사 2025. 7. 14.

https://youtu.be/mjLRxOzWJ8s?si=Y5FCq5DXQkThjgy2

성경통독1/ 창세기1-4

 

성경을 여는 장엄한 서사, 모든 역사의 위대한 시작

"창세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는 세상 창조로부터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메시아의 약속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구원 역사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민족과 땅과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통해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창세기는 언약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그 앞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여주며, 동시에 앞으로 성취되어 갈 하나님의 장엄한 구원 역사를 기대하게 한다.

 

창세기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없이는 우리의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삶의 실재를 다루는 유일한 책임을 거듭 강조한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평안과 행복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반면에, 죄를 지으면 고통은 필연적인 것이다.

 

창조(1-2)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고, 에덴 동산을 창설하여 그곳에서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창 조 의 방 법 창 조 의 순 서


식물 - 말씀으로(1:11)
짐승 - 말씀과 흙(2:19)
사람 - 말씀과 흙과 생기(2:7)


1:--- 4:,,
2:궁창,--- 5:,물고기
3:,식물 --- 6:짐승,사람
7:안식하심

 

 

창세기 1장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2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권'을 말합니다. 세상의 왕들이 그들이 몸소 행차할 수 없는 지방에다가는 그들의 통치권에 대한 상징으로서 자기 자신의 초상을 세우곤 했는데 인간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초상'이라는 것입니다. 즉 존귀하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지상에 세워진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제일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이것을 상실해 버리면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대면하는 데에서만이 인간은 완전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형상'이라는 단어가 '그림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림자는 실체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가까이에서 그분과 교재하고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 본연의 삶입니다.

 

2. 인간의 타락(3-5)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완전한 환경이 조성되었으나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범죄한 인간의 회복을 위해 구속자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죠(3:15).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3:15).

타락하여 정죄 받은 인간은 비참하고 무력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인간을 찾아와 이름을 부르며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반역한 그 순간에도 그들을 구원할 길이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뱀, 큰 원수, 우리가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권세, 이 세상의 신을 정복할 그리스도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 주겠다고 하십니다.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주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의 회복을 위해 네가 어디에 있느냐”(3:9)고 죄인들을 부르고 계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본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혜로웠지만 뱀의 흔적이 인간의 성품 속을 한번 통과한 후 인간은 철저하게 어리석어지고 말았습니다. 벌거벗은 것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려 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나무 뒤에 숨어 하나님을 피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바보스러운가요?

 

그런데 하나님이 친히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 속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1. 무딘 감각을 깨우치는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화인 맞은 양심'이란 말이 나옵니다. 죄는 고통 없이 양심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말씀은 "지금 네 자신을 보아라. 너는 지금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비참한 존재가 된 것을 발견하느냐? 너는 하나님에게 잃어버림을 당했고, 행복도 잃어버렸고, 평화스러운 마음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2. 죄를 깨닫게 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범한 죄를 자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나는 너를 내 형상대로 만들었다. 나는 내가 만든 모든 것을 네게 주어 다스리게 했다.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 이 동산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네게 주었다. 그런데 지금 네가 어디 있느냐?"

 

3. 하나님이 잃어버린 심령을 슬퍼하는 음성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너는 나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젠 나를 피해 달아났구나. 전에는 네가 행복하더니 지금은 불행하게 되었구나. 너는 전에는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나의 형상을 지녔었는데 지금 그 형상이 어떻게 되었느냐?

 

주님, 성경을 여는 장엄한 서사, 모든 역사의 위대한 시작인 창세기를 통하여 "창세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