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두 번째/ 돈 문제 vs 자기 무력감
이혼에 도달하는 부부의 심리적 상태 중에 자기 무력감이 있다. 대부분의 이혼한 사람들은 심한 자기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한 전도사님이 아내의 가출을 인하여 괴로워했다.
자신은 목회자가 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밟아가는 단계이고, 할 수 없이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하여 아내가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빚을 지고는 아무런 상의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가출했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녀양육을 부탁했지만 사는 것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앞으로의 목회를 위해서도, 신앙적으로도 이혼이란 있을 수 없고 어떻게든지 이 상황을 잘 수습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벌써 아내가 집을 나간 지 수개월이 되었고, 그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며 괴로워했다. 이 전도사님은 만약에 아내가 계속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혼으로 끝날 수밖에 없고, 목회의 길조차 막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였다.
또한 남편으로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무능력감이 그로 하여금 깊은 절망에 빠져 들게 하였다.
위에 전도사님만이 유독 이러한 문제를 겪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립하지 않은 많은 남편 목회자들이 경제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서 시집이나 친정에 손을 내밀도록 아내를 보내고 있다. 또한 이러한 돈 문제와 관련하여 목회자 가정에도 사모들이 폭력과 학대를 당한다.
2000년에 감리교 신학대학원에서 발표 된 <목회자 가정의 가정폭력 실태연구와 목회적 대응>이란 논문에 의하면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반가정에 있어서의 아내 구타에 대한 평균발생률이 28.4% 인 것에 비해 목회자 가정의 폭력발생률은 58%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이 비율은 언어폭력을 제외한 신체적 피해를 경험한 폭력의 비율이었다. 심한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언어폭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는 응답자는 100명중 71%로 조사되었다.
또한 목회자 가정에 있어서의 남편에 의한 아내 구타문제를 일반 가정의 폭력률과 비교해 볼 때, 먼저 폭력의 유형에 있어서 일반 가정의 경우 ‘손과 발, 몽둥이로 때리는 경우’가 20.6%, ‘칼 등의 흉기로 위협하는 경우’가 13.6%로 나타났으나 목회자 가정에서는 ‘손과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경우’가 29.3%로 조사되었고, ‘흉기로 위협한 경우’는 1.7%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비교로 볼 때, 일반 가정의 경우 아내에게 흉기를 사용하여 위협하거나 혹은 사용하는 경우가 목회자 가정에서보다 높게 나타났고, 목회자 가정에서는 손이나 주먹을 이용하여 따귀를 때리거나 얼굴을 때리는 유형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논문이 어느 정도의 사실을 반영했는지, 그 신뢰도는 별개의 문제로 치더라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경제적 문제와 관련한 목회자 가정 내에서의 드러나지 않는 폭력도 문제가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집안에 돈이 없으면 느는 것은 사실 부부싸움뿐이다. 이것은 비단 목회자 가정뿐만이 아니다.
“저희 남편은 일하기를 싫어해요. 집에 돈을 가져다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밖으로 일을 다녀야만 집안이 돌아갑니다.” 라고 호소하는 여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부부에게는 서로를 향해서나 가정을 위해서 책임져야 할 영역이 많다. 남편에게는 가정의 경제적인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만약 맞벌이가 남편이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 불행한 일이다.
많은 남편들이 일하기 싫어하거나 게을러서, 또는 사회생활에 미숙하여 직장 생활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채 그 짐을 아내에게 떠맡기려고 한다.
그러나 가정의 경제를 책임질 능력과 헌신이 없으면서 결혼을 하는 것은 한 여자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이다. 만약 남편의 경제적인 능력이 좀 약할지라도 책임지려는 책임감만 읽을 수 있다면 아내의 마음이 짜증스럽지는 않다.
남편이 품어야 할 마음은 '우유배달을 해서라도 아내를 굶기지 않겠다.’는 태도가 아닌가? 남편이 돈을 가져다주었을 때, 가정이 무엇인가 달라지고, 돈이 모이는 재미도 아내에게는 큰 기쁨이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때로는 남편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 그때는 능력 없는 남편을 탓하면서 앉아 있지만 말고 아내가 함께 나서 준다면 한결 쉽게 일어설 수 있게 된다.
남편이 자존심을 꺾고 함께 벌자고 말하기 전에 아내가 함께 뛰자고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돈 문제로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자. 화가 난다고 내 뱉은 말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난 머리야!
나이가 마흔이 넘어 전도사가 된 남편이 있었다. 이 남자는 사회에서 하는 일마다 풀리지가 않자, 마침내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아내는 생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사모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그것도 당황스러웠는데, 남편은 전도사로서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신학을 마치고서도 자리를 못 잡아 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커 가고, 남편은 점점 가정경제에 소홀해져 갔다. 그러면서 남편은 아내가 무어라고 이야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이런 말을 하였다.
“성경을 한 번 읽어봐! 성경에서는 남편을 머리라고 했어.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로 복종해야 할 책임이 있어!” 그런 그의 아내는 남편이 이런 태도를 볼 때마다 힘들어했다.
머리를 운운할 때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같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아집만 내 세우고 가족들을 고통 속으로 빠뜨리는 독재형의 리더가 아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셨고, 자존심을 포기하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는 섬김의 리더였다. 남편이 머리라고 주장할 때는 당신의 배우자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줄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남편의 결정은 자신의 유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유익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결코 권세를 부리는 머리가 아니라, 들어 주고 돌아보고 생명까지 내어 주는 사랑에 근거한 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남편이 한 가정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라는 말을 앞세울 때는 반드시 ‘책임의 영역’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머리라고 말하면서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는 회피하거나 아내에게 미루고 있지는 않는가?
머리로서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당신은 헌신적이어야 하고, 희생적으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무책임한 머리를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아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배우자에 대한 희망부재
심리적인 핵심: “아, 절망이야, 저 사람은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어.”
결혼을 한 후 "이 남자(여자)에게 속았다" 싶을 정도로 배우자에게서 실망한 적이 있는가?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하기도 하고 여전히 지지고 볶으며 갈등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상대방을 아예 꺾어놓고 한 쪽이 편 한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하나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된다. 갈등이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의견을 동등하게 주장할 때 일어난다.
갈등의 과정에서 갈등 자체가 부담스러워 아예 부딪히는 것을 피하는 경우가 있고, 아예 굴종을 통해 하나 됨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만약 한쪽이 무시된 채 하나가 되어 진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한 사람이 죽어서 연합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결혼인가?
한 사람은 편하게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배우자는 평생, 한숨지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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