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산책/요한복음

주은총목사/ 요한복음14/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주은총목사 2023. 8. 20. 03:08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네이버 오디오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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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 지금 이때야! (by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

요4장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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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19-23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마침내 둘은 혼인해 함께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잘못 풀어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그러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 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뿐입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가치관이 같은 것을 말하며, 상대방의 편에서 배려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결혼을 예를 들어볼까요? 결혼은 엄밀한 의미에서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할 뿐입니다. 상대방을 친절하게 배려하는 이타적인 결혼 방식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결혼방식이죠.

 

결혼하기 전에는 상대방을 무척 배려하는 듯이 보이다가도 결혼 후에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서로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계속 맞물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잠깐은 갈 수 있겠지만 반드시 대형사고가 나거나 어느 순간에 기계가 멈추고 말 것입니다. 계속 가다가는 사고 날 게 뻔하죠. 방귀가 잦으면 화장실 가게 되어 있고, 다툼이 잦으면 갈라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요? 우리는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지식이 뭡니까?

/수학 /영어 /과학에 관한 지식이 아니죠.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대화법부터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대화를 어떻게 하셨나요? 언제나 /쉽고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이 지식이 있어야, /언어와, /가치관이 바뀝니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말이 끊어지죠. 이런 것들이 끊어져야, 그 삶이 회복이 됩니다.

 

(13)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 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을 길르러 온 여인과 대화할 때는 /“로서 대화, /제자들이, 먹을 양식을 사왔을 때는, /“양식으로서 대화. /나무곁에 서서 대화할 때는, /“열매를 가지고 대화. /농부가 곁에 있을 때는, /뿌리는 를 가지고 대화. /혼인잔치집에 있을 때는, “포도주, “기름등불을 가지고 대화 하십니다. 그때그때 상황 속에서,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말씀하시죠. 그래서, 같은 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그루 나무가 있다 칩시다!! 이 나무가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필요합니다.

이 있어야, 나무가 크게 성장할 수 있죠.

 

그렇다면, 세계를 정복하려는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야망입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나폴레옹]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야망입니다.

야망이 없이는, 절대, [나폴레옹]이라는 나무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나폴레옹]이라는 나무에게 있어서, 이란, 바로, /“야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야망이 있어야 [나폴레옹]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한그루의 성장한 나뭅니다. [콜롬버스]에게 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불타는 모험심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타는 모험심이 없고는, 절대, 신대륙을 향해 출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대륙을 발견해야, 성장한 나무 [콜럼버스]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요셉], 애굽의 총리가 된 큰 나무입니다. [요셉]을 성장케 한 은 무엇일까요?

/야망? /불타는 모험심? /아닙니다. [요셉]을 성장케 한 물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죄수였을 때도, /노예였을 때도, /총리였을 때도, 그는 언제나 하나님 곁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물, [요셉]이라는 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무엇이든지 형통케 하는, 복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요셉]을 성장케 하는 ,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이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그리스도십니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예수그리스도는, 이 여인에게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사, /하나님의 선물, ‘영생인데, 이 영생은, 예수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자체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생수가 되어주시/, ‘선물인 것입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이 여인에게 있어서, /예수그리스도가 진짜 신랑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진짜, ‘생수입니다. 여인이라는 나무에게 있어서, “,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 물이 되어주고자, /먼 행로에, 몹시 지치고, 피곤하였지만, /손에 못이 박히고, 창이 허리를 찔렸지만, 나에게 기어코 다가오신 것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다가오신 선물이신 그리스도를,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6:19~31)까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더니, 결국,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는데, 지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히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큰 고통은, 목마름을 해결해 줄 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목마름은, 공포스럽게도,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물 한 모금 먹는다고 해결될 일입니까? 이제 와서, 예수그리스도가 진정한 물임을 깨달았으나, 이미 모든 기회는 다 지나가고 없습니다.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성경말씀을 듣지 아니하면이라는 뜻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의미하거든요.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듣지 않고, /믿지 않은 사람한테, 아무리 지옥을 체험하고 온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예수 믿으라고 설득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권면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뭣하러 [나사로]를 보내냐는 겁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완악하고 고집이 쎈지 모릅니다.

 

이 부자가, 지옥에서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 있을 때,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어야 했고,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영원토록, 목마름의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 울며 돌아옵니다

 

주님 손과 발 못 박혔고

머리에 가시관 박히셨네

내 모든 죄와 허물 위해

말없이 피 흘려 주셨네

 

오 예수님 나의 손잡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녀는 야곱의 우물물을 마셔도 목이 말랐던 것처럼 세상 사람이 세상의 것을 얻으면 얻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누리면 누릴수록 더 갈증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것으로는 참 만족, 참 해갈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죠. 사람은 겉모양은 물질이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의 만족함을 얻기 전에는 참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오히려 예수님에게 나에게 그 물을 좀 주셔요하고 청했습니다. 다시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 배에서 생수가 넘쳐흐르는, 그런 물을 청했습니다.

 

목마른 자는 누구나 이 샘물을 와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하였죠. 생명수를 마시려면 먼저 죄를 청산해야 하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성령의 샘물을 흡족히 주십니다.

 

남편을 데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 사마리아 여인은 이 분이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진실한 순간에 하나님을 알아봅니다. 자기 앞에 선 유대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임을 알았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어봤죠. 그녀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을. 사실 인간적인 면으로 생각하면 이제 선지자를 만났으니 나의 소원이 먼저 나오는 것이 순서겠죠. 좀 안정된 생활을 위해, ‘좋은 남편이나 한 사람 구해 주세요라고 자기 소원을 아뢸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직접적으로 돈과 관련한 것이나. 이번에 어느 주식을 사야지 재산을 늘리고 호재를 부를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주님께 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차원 높은 것을 물어보았죠. 바로 예배하는 장소 문제였죠.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4:20)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할까요?.

 

어떤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남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남편이 총각일 때는 침례교회 청년회장까지 했던 사람인데 부인이 감리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교회출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교파문제를 내세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남편의 말을 따라 주지 않고 순응하지 않는 아내에 대한 미움과 증오, 반발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남편은 지금이라도 자기의 말을 순종하고 교회를 옮긴다면 교회를 나가주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하두 남편이 술을 먹고 부인의 신앙에 대한 비판과 욕도하고 살림도 부수고 지랄을 떨고 핍박을 하니까 이분이 그럴까 하는 생각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침례교 성결교 감리교 장로교 교파를 믿어서 받는 것은 아니죠. 어느 교파도 믿어서 구원받을 교파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갈등이 사마리아와 유대 사이에 있었습니다. 북쪽 사마리아와 남쪽 유대는 형제 나라로서 왕은 따로 있었지만 종교는 하나였으니까요. 그러나 예배는 늘 예루살렘에서 드렸죠. 그후 주전 720년에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침략을 당해 잡혼정책으로 피가 다 섞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인지, 이방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자 남쪽 유대 나라로부터 멸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치가 다르니 종교에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종교 성향을 막기 위해 그리심 산에다가 큰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이제는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고 광고를 하여야 하기에 이들은 몇 가지 정당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정당성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는 그리심산은 옛날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 앞에 바친 곳이다라고 선전문구를 작성하였습니다.

 

둘째는 롯이 소돔 사람에 의해 포로 되어 갔을 때 아브라함이 나가 싸워서 이기고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리며 제사를 드린 곳이 바로 그리심산이라는 거죠.

 

세째는 모세가 광야를 지나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예배드린 곳이 그리심산이다. 라고 이상 세 가지 이유로 정당성을 주장했죠.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맞도록 역사를 고쳤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꺼이 제물로 드리려 했던 곳이 그리심산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왔을 때 모세가 제일 먼저 제단을 쌓고 희생을 드린 곳이 신명기 274절에 의하면 에발산인데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리심산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나타내기 위하여 성서와 역사를 고쳐 그리심산을 가장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은 멸시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리심산으로 발길을 옮겼죠.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지를 않았습니다. 교회문제로 늘 마음에 고민이 있었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때는 지금이구나하고는 갈등을 겪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신앙상담>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4:21)고 때와 장소가 문제가 아님을 말씀하시고 중요한 것은 참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아침안개 눈앞가리듯

 

아침안개 눈앞 가리듯 나의 약한 믿음 의심 쌓일때

부드럽게 다가온 주의 음성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빗줄기에 바위 패이듯 나의 작은 소망 사라져갈때

고요하게 들리는 주의 음성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외로움과 방황속에서 주님앞에 나아갈때에

위로하시는 주님 나를 도우사 상한 나의 영혼 감싸주시네

십자가의 보혈로써 주의 크신 사랑 알게 하셨네

주님께 감사하리라 언제나 주님께 감사해

 

<간 주-후렴>

 

빗줄기에 바위 패이듯 나의 작은 소망 사라져갈때

고요하게 들리는 주의 음성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외로움과 방황속에서 주님앞에 나아갈때에

위로하시는 주님 나를 도우사 상한 나의 영혼 감싸주시네

 

십자가의 보혈로써 주의 크신 사랑 알게하셨네

주님께 감사하리라 언제나 주님께 감사해

 

누구에게나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입니까?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입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곧 이때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연수는 70이요, 강건해도 80입니다. 신속하게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연수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배는, “입니다. 누구 앞에서의 삶입니까? 예수그리스도 앞에서의 삶예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드디어, 그리스도앞에 서 있습니다. 불쌍하고 짠한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드디어,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왔습니다. “바로 지금 이때입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21)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삶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무슨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누구 앞에 있습니까?

이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앞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자체가 예배행위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앞에서의 삶예배입니다.

 

예수님과 마주하고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닫고, /닫힌 영안을 열어,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참 지식을 소유하는 것, 이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보는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 몸을 드리는 것은, ‘우리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거룩하게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절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이라고 말하고 있죠. 그렇다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지 않고 거짓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누구 일까요?

 

첫째로, 자기가 원하는 것만 택하고, 원치 않는 것은 삭제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부분의 성경은 택했고, 원치 않는 부분은 아예 그들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소위 외골수 신앙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은 광야에 구르는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으실 수 있다고 하셨을까요?(3:8)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돌들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십니다. 내 손을 통해 섬기고, 내 발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내 입술을 통해 축복케 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너무 뻣뻣하고 완고합니다. 유연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으며, 듣는데 인색하죠. 인간관계가 자꾸 어렵고 하나님이 자꾸만 나를 짓누르시고, 낮추시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너무 강하고 교만한 건 아닌가.

내 지식과 내 경험이 너무 앞서 있는 건 아닌가.

내 고집이 지나쳐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은지.

 

두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나에게 너의 마음을 달라.” 이사야 2913절에도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도다무슨말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죠.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영이 소성하지 못하고, 허덕이고 지치고 무기력합니다. 내 영혼이 날마다 주를 만나야지 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마귀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졸립게 하고, 혈기로 은혜를 쏟게 하고, 잡념을 가지게 합니다.

 

과거의 믿음의 선진들이 환란이나 핍박을 통해 하나님을 떠날 것을 강요받았다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외부가 아닌 나 자신의 염려와 근심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물질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때로는 세상일에 빠져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죠.

 

나 자신의 형편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의 형편은 더욱 악화되죠. 성령으로 차지 아니한 빈 마음, 공허한 마음에는 악한 귀신이 일곱이나 자신의 동무들까지 데리고 들어옵니다. 상황이 더욱 겉잡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하죠. 하나님은 생명을 주되 풍성하게 주려고 왔습니다. 마귀는 인생을 죽이려하고 도적질을 하려고 왔죠. 그것을 알기에 마귀는 결사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예배를 막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예배를 잃으면, 하나님 만나는 길을 포기하면 개인이 망합니다. 가정이 망가집니다. 사회가 무너집니다. 국가가 위태롭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을 꼭 만나십시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 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오늘날 많은 교회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예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감동적이고 은혜롭게(?) 드릴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고의 음향기기, 영상기기들, 최고의 성가대 등, 예배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 붇고 있죠. 혹은 요즘 유행하는 경배와 찬양팀을 세워서 예배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식의 분위기나 감정 띄우기 방식의 예배 행태가 예수께서 원하신 예배일까요? 그런 고양된 분위기나 감정에 사로잡혀 예배드리는 것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닐까요?

 

신령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다는 무슨 뜻인가요? 이 말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처럼 살과 뼈를 가진 이런 육신이 아니라는 뜻이죠. 즉 하나님은 어떤 형상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천사로 나타나실 때 본 사람은 더러 있죠.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통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나타나실 때 본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11절에 태초에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하였는데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말씀이죠.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말합니다. ''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헬라어로는 '프뉴마'라는 말로서, 문자적으로는 '바람' 또는 '(호흡)'으로 해석되며 그 깊은 의미는 생명, 또는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죽은 해골이 가득한 곳에 생기가 불어오죠. 하나님의 바람 불어오는 숨의 역동적인 모습을 연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영"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생명 자체와 생명력의 원천이시오. 생기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27절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 즉 거룩한 생기, 생명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적 존재라고 하죠. 생기, 생명력을 받았다는 말은 인간은 단순히 목숨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거룩한 성품과 의를 사랑하는 바른 정신과 마음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그러한 삶을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를 가리켜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죠. 요한복음 8:44에 불신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는 마귀다라고 하셨죠. 그렇기에 신자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불신자들은 마귀에게 예배합니다. 굿하고 점하고 부적 사다 붙이고 마귀가 원하는 대로 돈과 쾌락 명예를 쫓으며 한 세상을 살다가 그들의 아비인 마귀가 있는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신령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말하죠. 하나님은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속에는 성령이 내주하게 됩니다. 불신자들은 예배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의 예배만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만을 열납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무소부재 즉 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나 편만해 계신 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또 같은 시간에 어디나 계신 분이란 뜻이죠.

 

그는 북한의 수용소에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사람과도 함께 하시고,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난민을 위해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과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그를 찾는 백성들과 함께 계시죠.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7-10)

 

우리가 슬픔에 잠겨 온 세상이 나를 뒤흔드는 것같이 느낄 때에도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계시고 무서운 시험과 고난이 내 영혼을 쓸어가는 것 같을 지라도 거기에 하나님도 함께 계십니다. 영은 공간을 초월하죠.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심 산에도 계시고 예루살렘에도 계시고 그 어느 곳에나 계시죠. “예배하는 자는 꼭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된다,” 혹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배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며, 그런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참된 예배라는 뜻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진정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신명기 6:5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사랑하기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신령으로드리는 예배, 즉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여야 하죠. '진정으로' '진리를 따라서(in truth)' 란 뜻이 있습니다. 바른 도리, 즉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본을 따라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고 그것을 따라가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흥분과 참된 열정이 없다면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도 없습니다. 미지근한 예배, 열정이 식은 예배, 율법주의 적인 예배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예배의 감격과 기쁨이회복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주님, 나의 삶에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이 삶과 일상과 가정, 교회와 나라 전역에 흘러가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아멘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기뻐하라 나의 영혼아

감사하라 손을 들고

송축하라 주를 향해 외치라

 

기뻐하라 나의 영혼아

감사하라 손을 들고

송축하라 나의 영혼아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