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설교

중국어/ 朝鲜间谍成为牧师

주은총목사 2025. 3. 13. 09:21

https://youtu.be/ucUVjyLcHAg?si=PyBgqmjwjAV5B6YW

꿈이있는교회

할렐루야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시간입니다.

 

有梦想的教堂

这是与哈利路亚朱恩宫牧师一起进行的一次心灵之旅

朝鲜间谍成为牧师

 

1950朝鲜战争正酣朝鲜特务人员越过三八线南下被美国军事情报人员逮捕他们肩负着特殊任务如报道撤退的联合国部队和我国军队在难民中南下的行动摧毁重要设施以及暗杀关键人物

 

当时的情况是联合国军和韩军不断撤退对被捕获的朝鲜间谍的监视运送和管理存在很多问题和风险因此联合国部队强烈建议他们皈依但他们拒绝了最终联合国军司令部下令处决这些间谍

 

然而就在处决这些间谍之前一名联合国军官要求一名韩国翻译查明这些间谍是否去教堂然后其中一名探子做出了祈祷的手势在胸前画了一个十字架一名目睹这一幕的联合国官员小心翼翼地告诉这名间谍站到一边以保全他的生命然后其他间谍注意到了并试图站在一边看上去就像在祈祷

 

此时联合国军官向朝鲜翻译军官摇了摇头表示对间谍的行为感到怀疑随后韩国翻译悄悄地对联合国官员说了一句话如果你真的去教堂你就可以唱赞美诗也就是说只有那些至少能正确唱一首赞美诗的人才能走到一边

 

然而这些间谍都不会唱赞美诗而且很快人们就发现他们不是基督徒但就在这时其中一名间谍突然走上前来看着身边的同僚开始唱起了赞美诗。 〈我把我的一切考验和重担都摆在主耶稣面前…… 〉这是第363首赞美诗

 

第一节唱完他又唱了第二节出乎意料的是当天正在做礼拜的翻译惊讶地发现这名间谍唱起赞美诗来没有任何节奏甚至连歌词都没有念出唱完第二段后间谍又唱了第三段唱到第四段时他哭了起来

 

赞美诗的第四节还未唱完翻译就走近联合国官员自信地作证说这名男子一定是一位虔诚的教徒联合国官员这才点点头问道可是你为什么一边哭一边唱赞美诗呢

 

最终这名人民军特工因这首国歌而成为唯一一个在生死关头戏剧性地幸存下来的人经重新调查发现此人既不是人民军成员也不是间谍而是一个纯粹的平民是在逃亡过程中被这些间谍强行抓获并伪装成难民跟随他们

 

但事实上这个人是一个从来没有踏进过教堂的人而且还是一个严重迫害去教堂的人但是一个从未去过教堂并且迫害过教会成员的人怎么能唱得这么好赞美诗呢听着这个令人惊奇的故事感觉就像在看一场情节剧

 

故事讲的是一个在基督教家庭长大的女人结婚后瞒着丈夫开始虔诚地去教堂但有一天她被丈夫发现脾气暴躁的丈夫抓住妻子的头发拖着她穿过街区的小巷说这太丢脸了

 

可是当星期天来临拂晓时分隐约可以听见教堂的钟声时妻子又跑到教堂准备被丈夫打死在教堂敬拜上帝唱赞美诗的时光是一段快乐的时光那时我忘记了丈夫对我的迫害所受的殴打和所受的羞辱但这种幸福是短暂的从教堂回来时丈夫总是等在前门揪住妻子的头发把她拖进厨房扇她耳光用各种言语辱骂她被打的女人在厨房里哭泣再次唱起赞美诗因为当我尽情地唱完赞美诗之后我的心不知怎的就平静下来了

 

面对这样的迫害妻子依然坚持十年如一日地去教会并且随着她为丈夫热切祈祷她的信仰也一天天成熟尤其是妻子想让女儿信教的意愿与丈夫坚决不送女儿去教堂的意愿相冲突的长达10年之久

 

我把我所有的考验和重担都摆在主耶稣面前

你回顾我充满忧虑的日子并将我所有的忧虑都揽在你手中

当我无法独自承受沉重的负担而崩溃时

唯有耶稣那施恩的主怜悯我们拯救我们

诗歌 363

 

妻子之所以经常唱这首诗歌是因为诗歌的歌词与她自己被丈夫逼迫却依然坚持信仰生活的处境太相似了因此无论他在厨房做饭洗碗还是在田里干活他总是唱这首赞美诗而每逢星期天当我的丈夫迫害我时我就会更大声地唱这首赞美诗仿佛在发泄我的愤怒

 

每次丈夫都会责骂我你这个傻瓜你上教堂十年了就只学会了唱歌妻子说道我去教堂不只是为了学赞美诗你知道我为你祈祷了多少吗也许有一天上帝会回应我的祈祷让你成为一名牧师

 

每当我丈夫听到这样的事情他就会想这家伙疯了我要成为一名牧师吗你甚至说出这么奇怪的话他愤怒地喊道然而我丈夫每天听这首赞美诗十年之后就能记住从第 1 节到第 4 节的所有歌词甚至知道节奏狗读三年学能吟诗一首是不是比喻这种情况呢

这对一直过着这样生活的夫妻终于要分离了朝鲜战争爆发妻子为救丈夫准备好衣服和食物并催促他赶紧和难民一起南下

 

妻子说要带着孩子尽快跟着丈夫走强行推开了犹豫不决的丈夫丈夫那天突然觉得非常可怜妻子他要和过去只迫害过他的妻子分开哪怕只有一小会儿我向南走去多次回头看见妻子和女儿悲惨的景象

 

于是逃亡的丈夫被人民军特务抓获最后濒临被处决却在被他曾经极力迫害的妻子唱起赞美诗时奇迹般地活了下来于是当他唱到赞美诗的第四节时他不自觉地哭了

 

这位来到南方的男子幡然悔悟开始去教堂后来他学习了神学并成为了一名牧师这真是上帝奇妙的恩赐被任命为牧师的第二天他在军事当局的配合下去了军事分界线的铁丝网围栏那里从那里他望着仅需一小时步行路程的家乡抓住铁丝网无休止地哭泣

 

亲爱的你十年来没有一天安宁过只有被迫害每次我从教堂回来我都会抓住你的头发毫不留情地打你那张娇嫩的脸即使遭受各种辱骂和迫害你也不还口只是像个傻子一样唱赞美诗

 

您当时的赞扬救了我的命正如你们祈祷的那样我成为了一名牧师但现在我能为你做什么呢我的女儿长多大了你還是独自一人居住嗎你今天在厨房里唱着那首赞美诗想着我吗

 

望着远处家乡炊烟袅袅牧师紧紧抓住三八线的铁丝网泪流满面

当我们的生活受到挑战时让我们不要停止赞美和祈祷以耶稣基督的名义我们祈祷阿门

 

6.25 전쟁이 치열하던 1950년 어느 날 삼팔선을 넘어 남하하던 민간복장을 한 인민군 첩자들이 미군 첩보 부대 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피난민들 속에 끼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후퇴하는 유엔군과 우리 국군의 부대 이동을 파악해서 보고하고, 중요한 시설의 파괴와 요인암살 등 특수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전황은 유엔군과 국군이 계속 후퇴를 하는 상황에서 체포한 북한 간첩들을 감시하고 수송하고 관리하는데 많은 문제와 위험성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유엔군은 이들에게 전향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유엔군 사령부로부터 이들 첩자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간첩들을 처형하기 직전에 유엔군의 한 장교가 한국군 통역장교에게 이 간첩들 중에 혹시 교회에 나가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간첩 한 사람이 가슴에 십자가를 그려 보이며 기도하는 흉내를 냈습니다. 이 모습을 유심히 보던 유엔군 장교는 그 간첩을 살려주기 위해서 옆으로 나가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눈치를 챈 다른 간첩들도 모두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옆으로 나가 서려고 했습니다.

 

이때 유엔군 장교는 한국군 통역 장교에게 간첩들의 행동에 의심이 간다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한국군 통역장교가 다시 유엔군 장교에게 잠시 귓속말을 하고 나서 너희들이 정말 교회에 나갔다면 찬송가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즉 찬송을 정확하게 한 곡이라도 부르는 자만 옆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간첩들은 아무도 찬송을 부르지 못했고 결국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금방 탄로가 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간첩들 중에 갑자기 한 간첩이 앞으로 나오더니 옆에 있는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찬송가 363장이었습니다.

 

1절이 끝나자 그는 다시 2절을 불렀습니다. 뜻밖에도 이날 통역장교는 자신이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이 간첩이 부르는 찬송의 가사는 물론 박자 한 군데도 틀리지 않고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절이 끝나자 이 간첩은 또 3절을 불렀고 4절을 부를 때는 울기 시작했다.

 

통역장교는 4절 찬송이 끝나기도 전에 유엔군 장교에게 다가가 이분은 교회를 열심히 다닌 분이 틀림없다고 자신 있게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유엔군 장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데 왜 울면서 찬송을 부르지하고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인민군 간첩은 찬송 때문에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혼자만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재차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사람은 인민군도 간첩도 아닌 순수 민간인이었는데, 피난길에서 이들 간첩들에게 강제로 붙잡혀서 이들과 함께 피난민으로 위장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사실은 교회 문턱도 밟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교회 나가는 사람을 극심하게 핍박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나가지 않았고 또 교인들을 핍박했던 사람이 어떻게 찬송을 그렇게 잘 불렀을까? 그 기막힌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한편의 신파 연극을 감상하는 기분입니다.

 

내용인즉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부인이 시집을 와서 남편 몰래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가 결국 어느 날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남편은 부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창피를 준다면서 온 동네 골목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주일이 되어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면 부인은 오늘도 남편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는 그 시간만은 남편에게서 받은 핍박도 매 맞은 상처도 창피 당한 일도 모두 다 잊어버리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뿐 교회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남편은 어김없이 대문에서 기다리다가 부인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부엌으로 끌고 가 따귀를 후려치며 온갖 욕설과 함께 매질까지 하였습니다. 매를 맞고 난 부인은 부엌에서 울면서 다시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이라도 실컷 부르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핍박 속에서 부인은 결코 중단 없이 10년 동안 교회를 다녔으며, 남편을 위한 기도도 열심히 하면서 부인의 신앙은 나날이 성숙해졌습니다. 특히 딸아이를 신앙적으로 키우려는 부인의 의지와 딸아이만큼은 절대 교회에는 못 보낸다는 남편의 단호한 의지가 서로 상극을 이루는 10년 세월이었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찬송가 363)

 

부인이 유달리 이 찬송만 부르는 것은 이 찬송의 가사 내용이 남편으로부터 핍박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신의 형편과 너무나도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나 설거지를 할 때나 밭에 나가 일을 할 때나 이 찬송을 항상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남편이 핍박을 하게 되면 마치 분이라도 푸는 기분으로 이 찬송을 더 큰 음성으로 불렀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이 천치 같은 여자야, 10년간 교회를 다니면서 노래라고 겨우 그것 하나밖에 못 배웠느냐!”고 약을 올렸습니다. 그러면 부인은 내가 찬송만 배우기 위해서 교회 가는 게 아니요.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시오? 하나님께서 언젠가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당신을 목사로 만들지도 모르지요.”

 

남편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 인간이 이제는 실성을 했네 뭐! 내가 목사가 된다고? 별 희한한 소리까지 다 하네.”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고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 한 가지 찬송만 10년간을 매일같이 듣다보니 1절에서 4절까지 가사 전부를 저절로 외우게 되었고, 박자까지도 훤히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비유한 것일까?

 

그렇게 지내던 이들 부부에게도 드디어 이별을 해야 할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인은 그래도 자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옷가지와 양식을 준비해서 남편에게 빨리 피난 대열에 끼어 남쪽으로 가라고 재촉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형편을 봐서 아이들 데리고 곧 뒤따라가겠다고 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남편을 억지로 밀었고 남편은 지난날 그렇게도 자신에게 핍박만 받았던 부인과 잠시나마 헤어진다는 현실 앞에서 갑자기 그날따라 부인의 모습이 너무나 측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부인과 딸의 처량한 모습을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피난길에 오른 그 남편은 인민군 첩자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고, 드디어 총살 직전 그야말로 죽음의 일보 직전에 자기가 그렇게도 핍박했던 부인의 찬송가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찬송가 4절을 부를 때 자신도 모르게 엉엉 울었던 것이었습니다.

 

남쪽으로 넘어온 이 사람은 회개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는 목사안수를 받던 다음 날, 군당국의 협조를 얻어 휴전선 철책선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서부터 도보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자신의 고향마을을 바라보면서 그는 철책선을 붙잡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10년 세월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핍박만 받으며 살았지요. 교회 갔다 올 때마다 나는 당신의 머리채를 잡고, 그 연약한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지! 온갖 욕설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신은 말대꾸도 없이, 그저 바보같이 찬송만 불렀지요.

 

그때 당신의 그 찬송이 내 생명을 구해 주었다오. 그리고 당신이 기도한대로 나는 목사가 되었소. 그런데 이제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요! 딸아이는 얼마나 컸는지요. 당신은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지요. 그리고 오늘도 나를 생각하며 부엌에서 그 찬송을 부르고 있는지요.”……

 

밥 짓는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향 마을을 멀리 바라보면서, 휴전선의 철책선을 붙잡고 그 목사님은 한 없이 한 없이 울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삶이 시련에 부딪칠 때 찬송과 기도를 쉬지 말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