環境を超えたヨセフ
https://youtu.be/CaIr5o0nvk0?si=ABYSZEj5njMXk2g8
꿈이있는교회/ 주은총목사
창세기/ 환경을 초월한 요셉
할렐루야! 주은총목사와 함께 하는 영성산책시간입니다.
夢のある教会/ジュ・ウンチョン牧師
創世記/環境を超えたヨセフ
ハレルヤ!ジュウンチョン牧師と一緒にする霊性散歩時間です。
ある人がリンカーン大統領に尋ねた。 「覚醒の驚くべき成功と全民が尊敬する人生の秘訣は何ですか?」
リンカーンは彼に言った、「その秘訣は簡単です。私は失敗をたくさん経験したからです。私が失敗したたびに、悪魔は私に近づいてきました。そして私の耳に当たって終わったとささやきました。
しかし、失敗したたびに、神様は私に近づいてくださり、失敗の経験を持って、より大きなことに大胆に挑戦するように言われました。私は悪魔の物語よりも神の声に耳を傾けました。今の私になったのは、神様の恵みだと告白するしかありません。
苦難のない聖徒の人生には神様の恵みがありません。しかし逆に、神様が私たちに許されるその苦難の歳月の中で神様を眺めて最後まで耐える人生には、必ず神様の祝福が臨むのです。
聖書に出てくる人物の中で、私たちが特に愛し、尊敬し、似ていて、従いたい人物がいるなら、ヨセフでしょう。ヨセフの人生は私たちに非常に深い感動と勇気と慰めを与えます。
ヨセフも私たちと同じように苦しみと試練と危機をたくさん経験しましたが、神を恨みませんでした。ヨセフは非常に問題のある家庭で問題と一緒に成長しました。
ヨセフが幼い頃に住んでいたのは「カナンの地」でした。カナンとはどのような場所でしたか? 「乳と蜂蜜が流れる良い土地」という表現は、数百年後にイスラエルの民が出エジプトになる時のことであり、ヨセフが若い頃ではありません。
むしろヨセフにとって、「カナン」は暗い思い出の土地であり、悲劇の地でした。親の母ラヘルが死んで埋められた悲しみの土地であり、大型ルベンが父の帆との間であったところがまさにそこでした。
姉のディナが異邦民族に恐れられた場所であり、それによって第二兄と第三兄が数多くの人々を殺すことによって周囲の人々と反目するようになった土地でした。
「カナン」、ヨセフが育ったその土地はまさにそのような場所でした!傷と痛み、死と悲しみで粘り強い悲劇的な思い出の土地でした!そのような場所で、ヨセフは子供の頃を過ご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高く上がる夢を持つ者ほど、落ちるピットが深くなります。山が高いほど谷が深いように、建物が高いほど下に深く下がるように、神様の人は試練の深い谷を通過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やっと「十七歳の少年」だったヨセフ。
やっと高校2年生しかいない子どもたちのヨセフは、親母のいない家庭で、義母と二服兄弟たちに眉を食べながら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10代の少年の頃に母親を失い、孤独で憂鬱なうえ、他の兄弟たちからひどいいじめにあったとすれば、最近の何らかの青少年らは訪問をかけてロックして反抗し、自分の好きな音楽やゲームに心酔して自分を孤立させながら憂鬱に時間を過ごします。
希望のない自分の人生を悲惨にして、当然、まともな人生で生きていくと思って脱線してしまったのでしょう。
私たちは環境が困難な場合に傷を受けます。性格が歪んで言葉も細かくせず、血気を振って反抗する問題児の性品になりやすいです。しかしヨセフを見なさい。彼がそのような環境の中でも、環境に関係なくずっと伸びた竹のように育ったのは奇跡の中の奇跡です。
ヨセフの成長環境を通して得ることの一つは、「この世に問題のない仮定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ヨセフは問題がいっぱいの家庭でした。しかし、ヨセフの家庭だけに問題があ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今日の私たちの家庭はどうですか?他の家の話だと言えますか?種類だけが違うだけで家庭問題がどれくらい多いですか?
私たちは皆、柔らかい人間です。ですから、どんな家庭でも葛藤があり、争いがあります。
しかし重要なのは、この現実を現実のまま認め、始めることです。ヤコブの家庭が後に偉大な人物を輩出した家庭であったが、いろいろな種類の紛争と問題が総集結された家庭であったならば、あなたの家庭もいくらでもそうなることを考え、大胆さを持ってください。
環境や条件が人生を決めるならば、ヨセフは明らかに失敗した人生を生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んな彼がむしろ生涯全体を通してただ一点のしみも残さずに素敵に生き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ことは何を教えてくれるでしょうか?それは私たちの人生が環境によって決ま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ダニエルを見なさい。イスラエルの歴史の中で最も堕落し暗い時代に生まれました。国を奪われ、両親と別れたままバビロンという異邦国家に捕らえられ、若い青年期を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不幸な環境で生まれ、不利な環境で成長しました。しかし、彼は後日、偶像の前に屈服せず、異邦王の権勢の前に堂々と立つようになり、80歳を超える老年に至るまで清楚な信仰の姿を少しも散らばらない偉人となりました。過酷な環境が彼の人生を支配しなかったのです。
神様の人々には環境が気になりません。環境を超越する人生を生き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環境に支配されるのではなく、環境を超越して生きる人生、まさにそれが神様が力を与えてくれる驚くべき祝福だということです。神の中で環境を超越し、治める力強い人生を生きる!
ある日、木こりが母親を失ったワシの子を見つけました。貧しい時代の木こりは、ワシの子を連れて行って、ひよこ私たちに入れて育てました。時間が流れ、ひよこは鶏の姿で、ワシの子はワシの姿に育ちました。しかし、ワシは自分がワシであるという事実に気づいていませんでした。
ある日、そのワシは見知らぬイーグルの一匹が翼を広げてゆっくりと空を飛んでいる様子を見ました。空を飛ぶ鷲が自分の同族であることを夢にも知らないその鷲が恐怖と羨望が混じった目で空を飛んでいる鷲を見ながら嘆息しました。
「あ、一度だけでもあんなに素敵な姿で飛んでみたら…」
このワシの中に入っている鶏がまさにあなたと私が抱いている「問題」です。明らかに飛ぶことができるのに、翼を広げる考えすらできなくする何かが私たちの中に入っているのです。
それはワシである私たちに絶えず、「あなたは鶏です、だから絶対に飛ぶことはできません!」とささやきながら、小さく曲がり、否定的な視点で世界を眺めるようにします。私たちの中の鶏を追い出し、広い空を自由に飛ぶ鷲のように、強い神の人よ!自信を回復し、環境を超越し、素敵にワシのように飛び上がってください!
主、
自分の選択ではなく、環境によって苦しむ人はいますか?
環境に支配され、環境に押され、踏みつける人生ではなく、強く起きる人生にな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心が崩れ落ちる者ではなく、誰よりも大胆に神様の御名で勇敢に環境を支配し、治める者として生きて行ってください。イエスの名で祈ります。アーメン!
어떤 사람이 링컨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각하의 놀라운 성공과 온 백성이 존경하는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링컨은 그에게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저는 실패를 너무나 많이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 마다 마귀는 내게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내 귀에 대고 끝장났다고 속삭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였을 때 마다 하나님은 내게 다가 오셔서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더 큰 일에 과감히 도전하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나는 마귀의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지금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이 없는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그 고난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견디는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우리가 특히 더 사랑하고 존경하고, 닮고 싶고, 따르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요셉일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는 우리에게 아주 깊은 감동과 용기와 위로를 줍니다.
요셉도 우리와 똑같이 고난과 시련과 위기를 많이 겪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지극히 문제가 많은 가정에서 문제와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가나안이란 어떤 곳이었을까요?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라는 표현은 수백 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게 될 때의 일이고, 요셉이 어렸을 때는 아닙니다.
오히려 요셉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어두운 추억의 땅이요 비극의 땅이었습니다. 친어머니 라헬이 죽어 묻힌 슬픔의 땅이었고, 큰형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과 간통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누나 디나가 이방 민족들에게 겁탈당한 곳이었고 그로 인해 둘째 형과 셋째 형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반목하게 된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요셉이 자라났던 그 땅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상처와 아픔, 죽음과 슬픔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추억의 땅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요셉은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꿈을 가진 자일수록 떨어지는 구덩이가 깊습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은 것처럼, 건물이 높을수록 아래로 깊이 내려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시련의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겨우 “십칠 세의 소년”이었던 요셉.
겨우 고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되는 어린나이의 요셉은 친어머니가 없는 가정에서 계모들과 이복형제들에게 눈칫밥을 먹으면서 보내야 했습니다.
10대 소년 시절에 어머니를 잃어 고독하고 우울한 데다 다른 형제들로부터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고 하면, 요즘의 웬만한 청소년들 같으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반항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게임에 심취해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우울하게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희망 없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며, 당연히 하찮은 인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탈선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어려우면 상처를 받습니다. 성격이 비뚤어지고 말도 곱게 하지 않고, 혈기를 부리고 반항하는 문제아의 성품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그런 환경 속에서도 환경과 상관없이 쭉 뻗은 대나무처럼 자란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요셉의 성장환경을 통해 얻는 것 중 하나는 “이 세상에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문제가 가득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가정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어떤가요? 남의 집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종류만 다를 뿐이지 가정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모두 다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가정이라도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기 마련이며, 그에 따른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현실을 현실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이 훗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 가정이었지만 온갖 종류의 갈등과 문제가 총 집결된 가정이었다면, 당신의 가정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담대함을 가지십시오.
환경이나 조건이 인생을 결정한다면 요셉은 분명히 실패한 인생을 살았어야 합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생애 전체를 통해서 단 한 점의 오점도 남기지 않고 멋있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줄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와 헤어진 채 바벨론 이라는 이방 국가로 잡혀가 어린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훗날, 우상 앞에 굴복하지 않고 이방 왕의 권세 앞에 당당하게 서게 되었고, 80세가 넘은 노년에 이를 때 까지 청초한 신앙의 자태를 조금도 흩트리지 않는 위인이 되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이 그의 생애를 지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환경이 상관없습니다. 환경을 초월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초월하며 사는 인생,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는 놀라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환경을 초월하며 다스리는 강력한 인생을 살라!
어느 날 나무꾼이 어미를 잃은 독수리 새끼를 발견했습니다. 불쌍히 여긴 나무꾼은 독수리 새끼를 데려다가 병아리 우리에 넣어 길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아리는 닭의 모습으로, 독수리 새끼는 독수리의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독수리는 낯선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유유히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자신의 동족임을 꿈에도 알 리 없는 그 독수리가 두려움과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독수리를 보면서 탄식했습니다.
“아, 한 번만이라도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날아봤으면...”
이 독수리 안에 들어 있는 닭이 바로 당신과 내가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분명히 날 수 있는데도 날개를 펴볼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수리인 우리에게 끊임없이, “너는 닭이야, 그러니 절대로 날 수 없어!”라고 속삭이면서 작고 구부러지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 안의 닭을 몰아내고,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독수리처럼,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여! 자신감을 회복하고, 환경을 초월하여, 멋지게 독수리처럼 날아오르십시오!!
주님,
자기의 선택이 아닌, 환경에 의해서 고통당하는 이가 있습니까?
환경에 지배당하며, 환경에 눌리며, 짓밟히는 인생이 아니라, 강하게 일어나는 인생 되게 하소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담대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감하게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