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정복하기

주은총목사/ 열등감의 기준-<외모와 학벌>

주은총목사 2023. 4. 4. 14:07

목사님들도 열등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열등감의 기준을 대부분

“외모와 학벌”에 둔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하게

나타난 사실이기 때문에

외모가 달라지고 학벌이 달라지지 않는 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규장에서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위장된 분노의 치유”라는 책에서

최 현주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신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 중

가장 심각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열등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혹은 내 자신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보는 나 자신은 별로 만족할 만하지 못했고

그런 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비하시켰으며 자연히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혔었다.

 

나는 특히 학교 문제에 대해

열등감을 많이 가졌었는데,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일류학교는 아니었기에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었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좋은 학교 출신들 앞에서는

괜히 부끄럽고 움츠러들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인 나는

그것이 불만스런 동기가 되어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허기진 부족감을 채우기 위해서

나의 친구나 동료, 동기생들을 끌어 들여서

그들은 일류학교 출신임을 내세워서

보상받으려고 하기도 했다”

 

이처럼 심지어 주의 길을 걷는 목사님들조차

학벌에서 자유로워 질수 없는 경우가 많다.

 

1,000명의 성도를 이끄는 꽤 알려진

어느 중형교회의 목사님은

55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으로 가셨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따셨지만,

일흔이 되어 은퇴를 하기 직전까지,

이분의 목회는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 주님께로

이끈 교회의 성도는 1,000여명이 훨씬 넘었지만,

박사학위를 따고 와서 은퇴 직전까지

양들은 다 흩어져 200명도 안 되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차라리 박사학위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는 대신에,

주어진 자리에서 부흥의 열정을 가지고

뜨겁게 끝까지 잘 마무리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 역시 신대원을 졸업하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을이면 매년 박사학위에

늘 유혹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나를 박사학위의 자리가 아니라,

개척의 자리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았고,

그 부름에 순종하였다.

 

또 이 과정에 “생명의 초청”이란

책에서 이 윤재 목사님의 고백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

 

<원래 저는 공부해서

학자가 되려고 미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하늘에서 큰 음성이 제 심령에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목회자로 불렀다.”

 

저는 너무 깜짝 놀라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너무 생생한 음성을 들었어.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대.

미국에서의 계획을 다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저는 미국에 오래 살면서

이것저것 해보려는 계획을 그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른 한국의 작은 교회로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는 너무 작고 제가 한 번도 들어 본적도

가본 적도 없는 교회였습니다.

 

저도 그 교회를 모르고 교인들도

저를 본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보내셔서 목회가 시작되었습니다.

 

200명의 교회가 몇 년 만에 1,000명이 되었습니다.

은혜의 모험이었습니다.

버리면 하나님이 채워 주시고,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역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족한 학벌을 보충하기 위해,

혹은 명예나 권력,

혹은 교회건물을 크게 짓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데 써야 할 에너지가

부족하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합리화하지만,

이런 일에 골몰하다 보면

정작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에너지는 모두 고갈되어 버린다.

그래서 결국은 생명이 없는

마른 막대기 같은 인생을 산다.

 

그러므로, 내 신경을 온통 빼앗아 가는 것이

있다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과연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인가?

정말 내 에너지를 여기에 써도

아깝지 않을 만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