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총목사/ 당신의 성탄절은 어떻습니까?
https://youtu.be/NdZMFKv7Ua0?si=BAH8Pddy-7Jp7jfW
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순복음교회/ 주은총목사
당신의 성탄절은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1:26-38
성경 전체의 개요를 보면, 신구약 성경 66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장차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는 것을 기록하였으며,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다는 구원완성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이 사실을 가리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하였죠.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후손(마귀)을 이기실 것을 예언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창 3:15).
또한, 아브라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를 해 주었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창 12:3). 이 말을 이해한 아브라함의 신앙이 대단하지 않은가요?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오실 예수를 가리킨 것이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마을에서 태어날지도 정확하게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는 처녀 몸으로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사 7:1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에 대한 예언은 미가서 5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 족속 중에서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내게서 나아올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베들레헴이란 단어의 뜻은 떡집입니다. 참, 기가 막힌 하나님의 유머가 담겨있죠.
이는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오심을 나타내는 거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셨습니다.(막10:45) 또한 베들레헴은 '열매'라는 말로 예수가 우리 부활의 첫 열매임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첫 열매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 외면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은 이렇게 말하죠.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도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속국으로 인해 혼란하고 시끄럽고 암담하였습니다.교회 안에도 흑암이 덮쳤습니다. 종교계의 기득권을 차지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말을 듣고도 저들에게는 감동이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뛰어가지도 않았죠. 결국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안은 닫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졌죠. 파괴되고 황폐해진 내면의 땅, 거기엔 상처만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 불순종하며 죄악 가운데 걷는 자들, 그들은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였습니다. 그리고 연약함으로 가득한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들의 그 연약함 속에 감춰진 고통을, 죄악에 묶인 채로 몸부림치는 그 심령을. 그분의 눈물은 아픈 사랑이었죠. 그 사랑은 단순히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해 흐르는 사랑이었습니다.(눅19장)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로마서 5장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죽음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그분의 눈물은 죄인을 향한 절망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고자 하는 소망이었죠.
해마다 성탄절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느라 술집이나 호텔, 여행지 등에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술집과 음식점에는 고기를 굽고 노래를 부르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기분이 들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들은 즐겁고 흥겨운 행사들로 요란합니다. 곳곳마다 아름답게 장식을 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과연 성탄절로 인한,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있나요? 아니면, 그저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성탄을 지키는 것은 아닌가요? 당신에게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감격이 남아 있나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하는것에 지치고 메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았나요?
예수님의 눈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성탄절을 맞이하여 당신을 부르십니다. 당신의 어둠 속에 빛을 비추고, 당신의 죄악을 덮은 그 십자가의 보혈로, 당신을 살리고자 하는 그 눈물은 그리스도의 아픈 사랑입니다.
1.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간주중)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마리아와 목자들의 반응,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 나사렛의 한 평범한 처녀인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가르켜 "계집종의 비천함"(눅 1:48)이라고 표현하였죠. 겸손의 말이지만 별로 특출한 것이 없는 한 시골 처녀에 불과하다는 거죠.
이렇게 예수님은 어떤 왕족이나 귀족 여인의 몸을 빌어 오시지 않고, 나사렛 촌동네의 시골 처녀의 몸을 통하여 오셨습니다. 흔히 어떤 인물의 전기를 쓸 때는 그 생애를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예수님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로 일부러 낮고 천한 탄생을 강조하고 있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한 평범한 시골 처녀였지만 그에게는 겸손한 마음과 순종할 줄 아는 마음이 있었고, 또 놀라운 인내력이 있었습니다. 약혼자가 있었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하며 너무나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하였죠.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천사의 말을 듣고 이내 태도를 바꾸어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처녀가 아이룰 임신했다는 사실을 받아 드린다는 것은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무거운 십자가였습니다. 당시 유대의 관습과 율법에 따르면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죄에 해당됩니다. 또한, 사랑하는 약혼자와의 파혼을 각오해야 하죠. 아니, 이러한 사항을 누가 이해를 한단말인가요? 더군다나, 마리아가 살아가던 그 사회에서는 발붙일 수 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십자가를 감수할 각오로 하나님의 아들의 수태를 수락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8)
마리아는, 당시 사회관습으로는 가장 저주받은 여자일 수밖에 자신의 처지를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야말로 가장 복이 있는 자라고 노래하죠. 마리아는 그의 조상 아브라함적부터 약속된 구원의 역사가 실현될 단계에 이르렀음을 깨닫는 놀라운 성경의 통찰력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번, 눅1:46-48까지의 마리아의 찬가를 음미해 보십시오. 다같이 읽습니다.
46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1:46-48)
마리아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뛰어넘는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비난과 조롱, 핍박과 사회에서의 단절, 파혼, 그리고 돌로 맞을 죽을 각오를 하였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모든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살았던 그 당대에는 조롱과 비방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예수님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신들렸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하물며, 인생이랴. 요한복음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얼마나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느니. 예수님께도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요 8:32),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요 10:20)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죠.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눅 :29-30)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도바울 역시, “미쳤다. 이단의 괴수이다. 전염병이요. 소요케 하는 자이다.”라는 소리를 당대에는 듣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쳐도 오직 예수,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들을 위한 거”다. 라며 그가 살고 있는 문화와 시대를 이겨버렸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었죠.
문득, 웨슬레가 생각이 납니다. 웨슬레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서 조금은 진부합니다. 웨슬레와 그의 동생 찰스와 조지 휘트필드는 영국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막은 사람들로 현대 역사학자들에 의해 평가되고 있습니다. 웨슬레의 설교는 영국의 거리와 뒷골목의 압제를 받으며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성직자들은 그를 이단이라 불렀고 때로는 교회 밖으로 내쫓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감리교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유명한 웨슬레이지만. 당대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웨슬레에 대한 온갖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그는 온갖 죄목이 붙여진 고소를 당하기도 했죠. 또한 그는 수십 번이나 그를 반대해서 일어난 폭도들에 의해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웨슬레는 이와 같은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즉 자신이 그 사역 안에서 하나님을 순종하고 있는 것의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루는 웨슬레가 말을 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즈음의 지난 3일 동안, 어느 한 사람도 벽돌이나 계란을 자신에게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말을 멈추고 내려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내가 죄를 짓고 타락한 것은 아닌가"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혹시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반대쪽 울타리 한쪽 끝에서 그의 기도를 듣고 있던 한 사나이가 바로 웨슬레임을 알아보고는 "잘됐다. 저 감리교 목사를 내가 이번에는 손 좀 봐야겠군."하고는 벽돌 하나를 집어 그에게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짝 빗나갔습니다.
그때 웨슬레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 괜찮았군요.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임재하심 가운데 있었군요." 라며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벽돌을 던진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만일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당신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따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에는 비난과 조롱, 핍박과 사회에서의 단절, 파혼, 그리고 돌로 맞을 죽을 각오를 하였던 마리아처럼,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뜻에 순응’하기 위하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과 결단력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신앙은 진정 놀라운 순종을 통해 얻은 것 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거운 십자가일지라도 그것을 순종함으로 지는 자에게는 오히려 축복으로 변하죠. 주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따른다면 그 나머지 일들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1)정혼한 처녀에게 주 천사 나타나
두려워 하지 말라 참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사람에게 나 전파 하노라
(2)주 은혜받은 자여 큰 복이 있으라
주님이 함께하니 큰 영광이로다
주 너를 택하시사 큰 복을 주셨네
(3)천사의 말을 듣고 엎드린 마리아
떨리는 마음으로 그 말씀
주 천사 전한 말씀 그 맘에 새겼네
(4)무서워 하지 말라 너 잉태하리니
그 탄생하는 아기 예수라 하리라
온 세상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라
(5)마리아 말하기를 이런 일 있을까
전능한 주님께서 너 함께 하시며
그 크신 권능으로 널 덮으시리라
(6)주 말씀 듣고나서 마리아 엎드려
나 주의 종이오니 뜻대로 하소서
나 이몸 주께 맡겨 그 말씀 따르리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율법과 예언을 밤낮으로 연구하며 지키는 종교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율법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목동들이 제일 먼저 영광스런 영적인 체험을 하였죠. 그것도 천사를 통하여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직접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목자라는 신분은 아주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서 양 떼를 이끌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했죠.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율법을 가르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비하면 성전에 잘 나오지 못하고 종교 의식에 잘 참여하지 못한 그들은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죠. 더군다나 목자란 직업은 천민 취급을 받았기에, 그들은 법정에서 증언하는 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자들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의 높은 초원에는 잠을 자지 않고 양떼를 지키고 있었죠.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 목자들은 하늘의 별을 쳐다보곤 하면서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남들보다 먼저 온 인류를 구원하실 구주 탄생 소식을 듣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눅2:9) 목자들은 너무도 두려우나 영광스런 영적 체험을 했죠. 그러자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하며 말을 하였습니다.(눅2:10-14)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홀연히 허다한 천군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천상의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목자들과 같이 이러한 영적으로 기이한 경험들이 있으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였죠.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그들은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여 주었습니다.그러자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겼죠.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20)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가 아니라 인간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리, 어떤 직업, 어떤 일이냐를 문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느냐를 보시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의 마음가짐이란,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사랑하는 마음의 중심과 진실되고 충실한 마음입니다.
밤새워 임무를 수행하던 목자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 최대의 희소식인 구주 탄생 소식을 먼저 들었을 뿐만 아니라, 남보다 먼저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천사들에게 들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산과 들이 기뻐서 메아리쳐 울린다
한밤중에 목자들 양떼 지킬 때
아름다운 노래가 청아하게 들린다
베들레헴 달려가 아기 예수께
꿇어 경배합시다 탄생하신 아기께
구유 안에 누이 신어린 아기 예수께
우리들도 다 함께 기쁜 찬송부르자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님께
끝으로, 아기 예수를 찾아온 뜻밖의 손님인 동방박사죠.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성극을 맞이하였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기다렸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통하여 한 위대한 아기의 탄생을 알게 되었고, 아기를 찾는 순례의 길을 떠나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 동방박사 이야기는 마태복음에 기록되었죠. 원래 마태복음의 독자들은 유대인입니다. 마태가 동방박사의 기사를 다룬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이루어진 복음의 역사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세계 열방의 민족들까지 포함된 역사임을 암시하고 있죠.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이상한 별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보았죠. 짙은 어두움으로 억제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이 뚜렷한 징조로 나타났습니다.
분명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탄생할 징조라고 판단한 동방박사 세 사람은 이 별을 따라 길을 떠났죠. 그들에게는 결단력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행동은 어리석게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하지 아니않았죠. 막연한 징조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주저하지 않았죠. 두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었고, 확신과 기쁨 속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놀라운 통찰력과 결단력이 이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된 요인인 것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마태복음 4장 16절)
큰 빛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죠.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시대는 정치적, 종교적, 영적인 흑암의 시대였습니다, 오직 하나의 소망, 메시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때였습니다. 성탄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주님, 비천한 자 속에, 겸손한 자 속에, 가난한 자 속에, 통찰력과 결단력이 있는 동방박사 세 사람에게 오신 예수님. 나의 흑암 가운데도 찾아오셔서 빛을 비춰 주소서. 성탄의 감격과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소서. 비난과 조롱, 핍박과 사회에서의 단절, 돌로 맞을 죽을 각오를 한 마리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과 결단력을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먼저 이게 하옵소서.
동방에서 박사들 가사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
베들레헴 임금께 나는 황금 드리네 영원토록 모든 백성 다스려 주소서
거룩하신 구주께 나는 유향 드리네 만국백성 찬송드려 만유 주 섬기세
주의 죽을 몸 위해 나는 몰약 드리네 세상 모든 죄인 위해 십자가 지셨네
다시 사신 구주님 왕의 왕이 되시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모두 다 부르세
<후렴> 오 탄일 밤의 밝은 별 아름답고 빛난 별 아기 예수 계신 곳에 우리 인도하여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하여라
구세주탄생했으니
다 찬양하여라
이 세상의 만물들아
다 화답하여라
다 화답하여라
다 화답화답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