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산책/창세기

주은총목사/ 창31/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

주은총목사 2024. 10. 25. 11:14

https://youtu.be/qYya08BxupM

 

그림설명

 

표지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은총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 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

성경 : 28:10-19

 

얼마전에, 석은옥 권사님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석 권사님은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의 박사이자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1944~2012) 박사님의 부인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배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평생 실천했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시각장애인을 돕는 동아리에서 시각장애인이었던 강영우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두 분은 결혼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사랑하는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유학 후 귀국해 취직을 시도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왔어도 시각장애인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미국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았고 백악관까지 진출했습니다. 장남은 세 살 무렵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임을 알게 된 후 안과의사가 되는 꿈을 품었고 그 꿈을 이뤘습니다. 차남은 법학을 전공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의 특별입법보좌관이 됐습니다.

 

권사님은 이 모든 과정을 실명이라는 절망으로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하나님께서 다른 문, 더 좋은 길로 가는 문을 열어주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에게 붙여주셨던 육체의 가시처럼, 육체의 질병을 안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장애 또는 정신적인 질환과 인생의 실패를 가진 자식을 통하여 매일 그분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기가 막힌 환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없는 연약한 자신을 발견하죠.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안가려고,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십자가를 바라보며,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죠. 나는 죽었거든요.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 중의 가장 큰 것은 기도의 감동입니다. 누구나 광야에 서면 기도할 수밖에 없죠. 누구나 야곱처럼 광야에 서면 외로운 돌베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고 얍복강의 처절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는 결핍의 땅이요, 가난과 굶주림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루스광야에 와서 홀로 밤을 지내게 될 때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들판이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야곱은 외롭고 쓸쓸한 밤을 보냅니다.입니다.

 

야곱이 잠들었던 곳의 지명은 루스광야입니다. ‘루스의 뜻은 길을 잃다라는 말이죠. 성경은 하나님을 잊고 두려움 속에서 길을 잃은 야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형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고 아버지 이삭에게도 상처를 주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 역시, 상처투성이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그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자들이 되었죠.

 

욥이 그렇고, 요셉이 또한 그러합니다. 애굽의 종으로 팔렸고, 강간범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형제들로 인하여 괴로웠습니다. 가족들로 인하여 치를 떨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성한 곳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상처투성이 인생이 아닌가요? 아무것도 없이 집을 나와 들에서 누워 있는 루스는 참으로 험한 광야입니다. 굶주린 늑대와 하이에나, 사자, 곰 같은 육식성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울부짖고 있으며 땅에는 뱀과 전갈과 같은 독충들이 있습니다. 죽은 시체를 찾아 맴도는 독수리들도 있죠.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 외로움, 절망과 가난에 떨고 있습니다. 그 무섭고 외롭고 추운 광야에서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잤습니다. 어쩌면, 입이 돌아가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깊은 밤 홀로 우는 그대여 그대 눈물을 내가 아노라

그대 눈물은 가슴을 적시고 발을 적시고 땅 위에 내린다

그대 아픔을 내가 같이하노라

그대 슬픔에 내가 기쁨 주리라

그대 눈물을 내가 다 마시노라

깊은 밤 홀로 기도하는 그대여 그대 기도를 내가 듣노라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잤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그가 척박한 현실에 내던져졌다는 의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ar)는 그의 저서 時間存在(Sein und Zeit)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 내던져진 피투성이 존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척박한 현실에 내던져졌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감싸주던 <헬리콥터> ‘어머니인 리브가도 없었습니다. 따뜻함을 주는 사람, 따뜻함을 주는 환경이 없었다는 말이죠. 그는 돌로 베개를 삼고, 차디찬 바닥에 홀로 누워 잠들었습니다. 그의 주위엔 그를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야곱의 외롭고 두려움에 떨며 초췌한 모습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학생들은 공부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사업가들은 불경기와 빚, 은행이자, 카드돌려막기, 사채에 쫓기며 빚 독촉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직장인들 역시, 매일의 삶이 출퇴근 전쟁이죠. 때론 출퇴근에 한두 시간은 걸립니다. 그뿐이 아니죠. 계속된 무한경쟁의 반복에 버겁게 살아가죠. 평생 직장의 개념도 없어졌습니다. 갖가지 에서들로부터 쫓기며 살아가고 있죠.

 

<2024104일 연합뉴스에 박원희 기자>가 이러한 글이 실었습니다.

10대 사망자, 유일하게 늘어자살률, OECD 국가 중 1

 

(세종=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에 지난해 사망자 수가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자살률은 2년 만에 높아졌다. 자살률 상승에 10대 사망자 수가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4일 이런 내용의 '2023년 사망원인통계 결과'를 발표했죠.

코로나 사망자 수 76% 급감하였지만, 자살률 2년만에 상승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10대와 20, 30대에서 사망 원인 1순위는 자살입니다.

 

학생들이 이만큼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창자를 꺼내서 자살하는 상상을 하거나, 한강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 학업 스트레스가 아무리 유능한 부모라도 자녀의 공부 문제를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업의 문제,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는커녕, 나의 문제를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인생은 저마다 홀로 서야 하는 투쟁입니다.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누우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었고, 옷도 없었고, 장래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야곱의 돌 베개 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듣지만 별로 깨닫는 것이 없나요? 성경을 읽어도 별 감동이 없고 잠이 안 올 때 복용하는 수면제 같은 역할을 할 뿐인가요? 성경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지금 내 마음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실종되었죠.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지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치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충격으로 말씀이 다가올 때가 있죠.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나를 찌르고 마음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전혀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지냈는데, 믿음 생활도 그냥 편안하게 적당히 했는데, 남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전달되던 하나님의 말씀만 의존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인가 고압 전류처럼 내 몸속을 흐르는 엄청난 충격이 느껴집니다.

 

내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눈물이 마구 흐르죠. 이전에는 나와 별로 상관이 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꿈틀거립니다. 운동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죠. 이제는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려움과 험한 사건들을 통해 가면들이 벗겨지고,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 67)

 

지금까지 그가 알았던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때에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입니다.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길바닥에 누워 돌을 베고 자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노숙자처럼, 아무것도 없이 땅바닥에 누워 자고 있을 때, 그의 가면이 벗겨졌죠. 그리고 마침내, 피조물 야곱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조금이라도 가진 것이 있으면 자기가 대단한 줄로 착각합니다. 조금만 미모가 뛰어나도, 조금만 좋은 조건의 결혼을 했어도, 심지어 빌딩 하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하죠.

 

그전에는 내가 최고인줄 알고 살았는데,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아니하거나 실패하고 무너졌을 때, 자신의 가면이 벗겨집니다.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살아 있는 분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전과는 다르게 들리죠.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하나님은 아직도 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세상에서 답을 찾지 말아라.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가 있다.

기도를 쉬지 마라. 찬양을 멈추지 마라.

하나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다.

예배에 집중하라. 말씀을 붙잡아라.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가는 길 멈추지 마라. 뒤를 돌아보지 마라.

하나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다.

의심을 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면 끝난 것이다.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사닥다리의 꿈(=십자가의 꿈)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가는 어느 날, 해는 이미 기울어져 버리고, 두렵고 고독한 밤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밤에 자기가 입었던 겉옷으로 몸을 덮고, 하늘을 지붕 삼고,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곤한 중에 잠이 들었죠.(28:11). 그가 잠들었던 그곳은 푸른 초원도, 아늑한 호수도, 그늘진 계곡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그의 마음 같은 불모의 한 산기슭,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밤에 거기에서 잠들고 있는 야곱에게 그의 꿈을 통하여 찾아 오셨습니다. 그 꿈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뜻을 알려 주는 계시 수단의 꿈이었습니다.

 

야곱은 꿈 속에서 자기 생전에 처음 보는 길고도 또 긴, 끝없는 한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그 사닥다리는 땅에서 시작하여 하늘 꼭대기까지 닿은 것이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28:12)

 

사닥다리가 하늘 꼭대기까지 닿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줄까요?우리가 척박한 현실에 내던져진 바로 그곳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죠.

 

이 세상에 있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닥다리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닥다리, 그분이 바로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죄인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2:12-16)

 

예수 그리스도는 땅과 하늘, 우리와 하나님을 잇는 사닥다리가 되신거죠. 죄인들이 예수의 십자가를 믿고 부활을 받아 마침내 하늘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열렸습니다. 십자가상에 한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그는 예수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 나라에 올라 갔습니다. 당신의 심령에 예수를 모십시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십시오! 오직 예수로 예수로 충만할지어다!

 

참으로 엄청난, 스펙터클한 장면이었습니다. 하늘이 땅을 덮어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늘의 열린 문이 땅의 문을 비추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가 죄인 야곱을 감싸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1:35)

 

야곱은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라고 부르고 말았습니다(28:17).

 

야곱은 그 길고 긴 사닥다리, 멀고도 먼 사닥다리, 높고도 높은 그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음을 보았습니다(28:12).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야곱이 움직이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그가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졌죠. 하나님이 증거됩니다. 내 안에 살아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증거 되는 것, 그것이 곧 전도요 선교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3:17)

 

야곱이 하란 땅 라반의 가정에 갔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죠. 20년만에 귀향할 때에 세일 땅 에돔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세겜 땅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선대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역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단순한 세대의 대물림이 아니라 <전도와 선교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손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죠. 이제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은 더욱 크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번져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정말로 원하시는 삶은, 우리가 이 땅에서 대충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실은 아주 작은 부분이죠.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핵심이라면, 믿자마자 죽어야 하지 않을까요? 천국이 그렇게 좋은데유! 그런데 왜 안 죽고 살아 있을까요? 그것은 사명이 아직 남아 있으니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15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5-18)

 

너의 푸른 가슴속에 십자가의 흔적 있다면

주 위해 이제 일어나 너의 믿음 주께 보이라

너의 뛰는 가슴속에 하늘의 불 타고 있다면

그나라 그 영광 위해 너의 삶을 주께 드려라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나라 이제 곧 오도록

우리 주의 은혜의 강 이땅 휩쓸며 흐르도록

하나님의 눈물을 가진자 일어나 주님을 따르라

 

너의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면 온세상 주 영광 보겠네.

너의 삶을 불태워 주를 섬겨라 주의 영광 나타나겠네.

오래 황폐한 이 땅 꽃을 피워라 주의 향기 가득 하겠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부터 정말 원하시던 것이 무엇입니까? 야곱이 그저 복을 받고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랬을까요? 하나님이 야곱에게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가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야곱은 열정이 있고 집념이 대단했으며, 모략과 지략이 남달랐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야곱으로 살던 때와 이스라엘로 살던 때입니다. 야곱은 땅의 사람, 육의 사람이요, 이스라엘은 하늘의 사람, 영의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를 이루어 나가는 삶입니다. 꿈 속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 축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야곱의 성격이 한 번에 확!!! 화끈하고 알싸하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실망스런 남편, 여전히 변하지 않는 아내였죠. 어떤 분은 말을 합니다. “아이구! 목사님. 내 남편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 맞나요? 만났는데, 어떻게 저렇게 행동을 하는 가요?” 야곱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바로 왕에서 고백합니다.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라고. 당신은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신뢰하며 차분히 그분에게 맡기는가요? 아니면 당신의 성질머리가 앞서나가서 손가락질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나요?

 

야곱은 그저 간접적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들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물론 아직 야곱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무슨 꿈 하나 꾸고 온전한 믿음이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죠. 하지만 처음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작이 되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다급할 때마다 인본주의가 불쑥불쑥튀어나왔죠.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보다 더 야비하고 속임수에 능한 라반을 붙이셔서 그의 자아와 인본주의, 그리고 불신앙을 철저히 꺾어 놓으셨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처절한 고통을 받았죠. 라반은 20년간 열번 이상 야곱의 품삯을 떼어먹기도 했고, 끝까지 야곱을 속였습니다. 조카면 사랑해 줄만도 한데 철저하게 이용만 했죠.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이 하나님만 바라보며 성실하게 일했을 때 그에게 보상해 주셨습니다. 그 고난의 과정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성취하는 과정이었죠.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루스인가요, ‘벧엘인가요?

아까도 말했다 시피, 야곱이 잠들었던 루스의 뜻은 길을 잃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두려움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곳 루스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죠. 벧엘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에요. 길을 잃고 헤매던 곳이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집이 된 거예요.

 

돌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분이 있나요? 입이 돌아가고 있습니까? 추위로 인하여 몸이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까? 지금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가정은 해체되어서 돌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분이 있는가요? 지금 어떠한 <에서>에게 쫓기고 있습니까? 어떠한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이 당신을 태워 죽이려 하는가요?

 

세상의 편견과 사람들이 당신을 수군수군하고 왕따를 시키는가요? 살다보면 인생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을 만큼 얽히고설키고 비참하게 될 때가 있죠. 누가 봐도 회생 불가능한 상황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갈 길을 잃어 버린 거죠. 그러나 거기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시궁창과 같은 인생에도 꽃은 피어납니다.

 

욥은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재산을 날려야 하는지? 왜 열 남매나 되는 자식들이 하루아침에 다 죽어야 하는지? 왜 몸은 병들어 몸에서 구더기가 나게 하시는지?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죠. 심지어, 그의 아내마저, 그의 숨결조차 싫어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고 소리쳤습니다. 더군다나, 친구들이 찾아와서 위로한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굴욕처럼, 때로는 모욕처럼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괴로웠죠.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그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가 막힌 시련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광야에 있으면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경제적인 고통등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합니다. 이스라엘 역시 기근을 당했을 때 겸손을 배웠죠. 이스라엘은 고센이나 가나안에서 그러한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기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태양이 작열한 광야에서 아무리 먹을 것을 찾아도 찾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정신적인 절망 상태에 빠지고 궁핍은 도를 더했죠. 그러나 그런 상황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낮아짐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이죠.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다고 깨닫습니다.(16) 그리고는 기도하죠.

 

주님, 이 세상에서 자살하지 않고 죽음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나를 지켜 주옵소서. 먹을 양식을 구합니다. 입을 옷을 구합니다.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을 구하게 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28:20-21)

 

70이 넘은 어느 아들 목사가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하러 갔습니다.

몸은 늙어도 정신은 건강하시다 생각했는데,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물었을 때 아직 70이 안 되었어. 80인가?’라고 대답해서 그 아들 목사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사실은 93). 어머니는 당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던 거죠.

 

사람들은 젊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젊거나 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겠죠. 누구나 젊음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간다 해도 그 견뎌내기 힘든 젊음의 고통과 싸워야 하니, 꼭 돌아가야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추락하기 전, 아래를 향해 천천히 내려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죠. 석양에 붉게 물든 낙조가 아름답듯, 인생의 끝자락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기쁨이 있고 행복도 있죠.

 

젊을 때는 필요한 것을 찾아 동분서주했으나, 나이가 들면 그래도 하나님을 닮아가십시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더 남아 있는 힘을 부지런히,,,하나님이 세우신 몸된 성전에 따뜻한 온기가 되어 드려 보십시오. 젊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평생에 기억하며 힘을 냅니다. 언젠가 우리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한 것이지요.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날, 인생은 하루 하루가 선물이었다는 것, 지금 내게 붙여준 사람들이 천국에서 볼 소중한 하늘가족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당신의 눈동자에 담아보세요. 그리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6)

 

우리는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사람이 늙어서 죽든지 병이 들어 죽든지 무슨 사고로 죽든지 죽으면 심장이 멈추고 그때부터 썩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예쁘거나 유명한 사람도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육체의 가죽이 썩을 때 육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영혼인데, 사람의 영혼은 육체 밖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5)

 

인생에서 버림받고 홀로 있을 때, 나를 붙잡아 주신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떠나가지 마옵소서. 이 땅에서 살아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또 어디로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항상 나를 지켜 주시며 함께 하시어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되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서원의 기도를 올려 드리며, 아마도 이런 찬양을 부를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곡입니다. 심령에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서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서서

좋은 이길 진리의 길 주님가신 그의 길

힘이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말게 하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주신 성령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