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총목사/ 창세기7/ 노아1-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 교회/ 주은총목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한 어린 소녀가 들에 핀 예쁜 꽃을 보았습니다. 소녀는 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지저분한 흙더미 위에 그 꽃이 피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소녀는 그토록 예쁜 꽃이 그 지저분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마치 정의의 용사라도 된듯 가차 없이 그 꽃을 뽑아 흐르는 맑은 물에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는 물기가 마르도록 깨끗한 수건에 싸서 햇볕이 드는 창문가에 두었습니다. 결국 그 꽃은 하루도 안 되어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더러운 세상을 등지고픈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진정 아름다울 때는 세상을 이기고 세상 가운데서 고고 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한 송이 꽃을 피울 때입니다.
혹, 당신은 당신이 처해 있는 영혼이 열악한 환경, 패역하고, 험담하고 불평하는 그런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생각을 갖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노아의 이야기>로 부터, 하나님이 당신을 향한 뜻을 깨달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눅17:22) 고 하셨고 [노아의 때에된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눅17:26).
눅17: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창6:5-8)
2. 노아가 살던 당시 상황은 어떠 하였는가요?
(1) 죄악이 관영 하였습니다(5)
관영 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바인”데 이는 <넘쳤다> <범람하였다> 라는 뜻입니다. 온 세상 어디를 보아도 죄악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 곳을 보아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2) 생각이 악하였습니다(5)
창6;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생각하는 것마다 선하지 못 하고 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전국적이었습니다.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땅에 가득하였다는 히브리어는 “티말레인”데 이는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지역적이거나 국부적인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것입니다. 큰 자든, 작은 자든, 사람들이 ....모든 혈육 있는 자가 다 패괴하였습니다.
3.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가?
(1)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6) 그리고 마침내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2) 쓸어버리기로 하셨습니다(7)
쓸어버리다라는 원어의 뜻은 이러합니다.
① 더러운 쓰레기를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처넣다. ② 저자가 글을 쓰다가 틀린 글씨를 지워 버리다. ③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주민등록에서 제하다 입니다.
이 모두는 미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심정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속상하셨던지 육측과 기는 짐승까지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의 악을 보며 한탄하시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라 하시며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3. 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비결은 무엇인가?
이같이 죄의 흐름이 가득 찼고 넘쳤고 강했고 끊임없이 없었기에 쓸어버리고 작정하셨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 한 사람만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1) 의인이었습니다(6)
성경에서 챠다크라는 의인이라는 말은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의인]이란 말은 흠없고 무죄한 자라는 뜻이아니라 여호와께서 노아를 흐뭇하게 보셨고 정직하며 덕이 있고 경건한 성품을 의미합니다.
창6;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노아는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롯은 그들의 사상에 물들었습니다.
창13: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19: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They called to Lot, 'Where are the men who came to you tonight? Bring them out to us so that we can have sex with them.'(창19:5)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보십시오. 아무리 물이 짜더라도 물고기는 물들지 않고 살아 고기 맛이 짜지 않습니다. 노아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퇴비 더미 위에 맨드라미 꽃이 피듯이, 쓰레기 더미에 민들레꽃이 아름답게 피듯이, 지저분한 늪위에 수련화가 청초하게 피는 듯이 노아는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2) 완전하였습니다(9)
완전하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성실하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성실하였습니다.<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잠 28:18)
(3)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9)
노아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조류와 함께 걷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죄악이 관영한 세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랐고 하나님과만 동행하였습니다.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4) 준비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 인생의 최고로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는 다면 당연 “쇼생크 탈출”이다.
주인공 앤디의 역할을 한 팀 로빈스의 성실함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따뜻한 영화이다.
그 영화중에 앤디의 친구로 등장한 한 흑인배우가 눈에 띈 적이 있었다.
바로 “모건 프리만”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최고참 죄수 역으로 생애 세 번째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마침내 이 영화로 그 상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쉰 살이 되기까지 그는 초콜릿 바로 저녁을 때워야 할 정도로 가난했고,
몇 년째 일이 없는 개점휴업 상태의 배우였으며,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해야 했고,
술 때문에 생긴 아내와의 잦은 다툼은 결국 이혼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인생의 굴곡이라 할 만한 모든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때마다 연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야 했지만,
그는 끝까지 연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0년간의 무명 배우 시절을 거쳐,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독한 가난과 싸우고
그로 인한 이혼의 아픔과 알콜 중독 등을 이겨내어 마침내 58세에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다. 인생에서 롱런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성실성이다.
조금 하다가 말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이다. 낙심되어도, 지칠 대로 지쳤어도, 마음을 추슬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꾸준히 쉬지 않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상의 노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결코 청춘이 아니었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식구들의 도움을 받을 정도였다.
노아는 첨단 건축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고독하게 거대한 방주를 지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 차근차근 방주를 지었다.
재료를 하나씩 준비했고, 기초를 만들었고, 꾸준하게 오랫동안 지었던 것이다. 무려 120년이나 걸렸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에 이르렀다.
방주를 완성하였던 것이다.
당시 노아가 산 위에 방주를 짓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아마 “어리석은 노아,”
“미련한 놈”,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라고 조롱하며 비꼬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매일 매일 진행해 나갔다.
노아가 일을 해 나갈 때 만일 마음만 급했더라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그 일을 차근차근 성실하게 진행해 나갔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에 동참했던 것이다.
창6: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신실하게 진실하게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생
인생은 언제나 ‘큰 선택’들이 행복과 불행을 판가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의 지속성이 오히려 사람의 인생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는 전환점이 된다. 사람의 일생은 작은 선택이 반복되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이어진다. 조금씩 오랫동안 선택한 것들이 쌓여서 우리 인생의 큰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되어서 나타난다.’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
하나님이 처하게 하시는 하루하루의 상황 속에서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하며 일어서려고 노력한다.
그런 내게,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귀한 감동을 준 할머니가 있다.
하루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나가서 전도지를 돌리는데, 어느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전도사님이유, 나도 교회권사에요. 전도지줄때, 전도지만 주지 말고 사탕도 같이 줘요. 그러면 더 잘 받을거유.”
나는 그 할머니를 찬찬히 돌아서서, 마주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할머니의 얼굴이 거칠고 주름진 것이, 기가 막히게 고생을 한 얼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니, 마음에 이상하게 뜨거움이 올라왔다.
이 할머니는 점포나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터미널 앞에 있는 신호등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김밥과 떡을 팔았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올해로 30년째라고 한다. 그렇게 떡을 파는 세월동안,
자식 3명을 다 키워, 장가를 보내었다.
다 큰 자식들이 나가지 말고, ‘제발 좀 쉬라’고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습관이 붙어, 이제는 안 나오면 몸이 더 아프다면서, 기어코 떡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메고 나오신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그래 나도, 저 할머니처럼, 30년을 한결같이 내 전도의 자리로 나아가리라.’
하고 다짐을 하였다.
이제 우리도, 일상생활의 작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말자.
하나님은 생활의 준비가 없는 사람을 들어 쓰시거나 축복하시지 않는다,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자신을 이기고, 헌신하는 생활을 한 다음에야 큰일을 맡기시는 법이다.
저도 지난 수십년의 세월을 뒤 돌아보면, 나는 이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 길은 눈 덮인 산이요, 물 없는 사막 같은 길이었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지난 수십여년의 세월동안,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0, 12)
정말,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셨고,
그 분만이 내게 생명을 주셨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 1;10)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 역시 그를 의지하여 달려갈 것이다.
내 생명마치는 그 날까지.
매일의 삶가운데서, 노아처럼, 롯처럼... 당신의 영혼이 괴롭고 상할정도로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음란하고, 하나님을 믿되 헌신하지 않고, 자기의 소견과 고집대로 믿으며 불평과 불만이 많으며 강포가 땅에 충만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들을 것입니다.
영혼이 지칠대로 지치고 때론, 울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몸부림 칠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노아의 때와 방불한 시대감각을 예민하게 느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켜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당신에게 명하신 <노아의 방주>를 묵묵히 지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믿음] 으로 살았던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짓는데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매일처럼 영혼이 상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인생의 방주를 혼자서도 묵묵히 짓고 마무리 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옵소서.
[은혜]라는 말은 [굽히다][숙이다]라는 뜻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류를 멸하시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방주를 건설하게 하셨습니다. 매일매일 믿지 않는 자들의 비웃음을 참아야 했고 심판의 홍수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노아의 방주는 교회를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노아는 믿음을 간직하기 힘든 때 혼자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도덕적인 성실함에서 [완전하다]는 이름을 얻었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살았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