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총목사의 사랑6/ 공허한 마음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꿈이있는미디어교회/ 주은총목사
1. 이젠 사람에게 지치다.
사람은 누구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이 전적으로 달라진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꺼져 가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장밋빛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된서리를 맞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정말 사람 잘못 만나면 고통 속에서 한숨과 눈물로 평생을 지내게 된다.
가슴에 피 멍이 든다.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얼굴은 자신의 나이보다 최소한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사는 것 자체가 지옥이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은 어디를 다니고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아프게 살아온 날들이 모두
돌아볼 수 없도록 참담하고
흔들리는 인간이
흔들리는 나무보다 약하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느낌이
모두 같을지라도
바람 부는 날
홀로 굳건할 수 있다면
내 속에 자라는 별을
이제는
하늘로 보내 줄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쓰러져 있는
그를 위해
나는 꽃을 들고 있다.
흔들리는 사람,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
어떤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디볼스 케어 ‘(Divorce Care) 모임’에 찾아 갈 때 마다 울었다. 자신에게 밀려드는 처절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으로 사회적으로는 그래도 부족함이 없는 그녀였지만, 자신은 혼자라는 생각에 끝없이 우울증에 빠졌다.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싶었지만, 예전의 남편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였다. 그런 상처 때문에 남자들에 대해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누군가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마음속에 끝없는 혼란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나는 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 수업을 듣는 중, 그때 당시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혼자들을 케어 하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 전도사님을 만났는데, 그 교회에서 이혼자를 이끄는 모임을 담당하는 ‘한 간사님’에 대해 소개해주셨다. 그 분은 실제로 이혼가정에서 성장한 경험과 자신이 직접 이혼한 경험을 토대를 바탕으로 디볼스 케어 (Divorce Care) 모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음은 바로 그 간사님의 고백이다.
“이혼 과정 속에서 고통과 상처로 힘들어하던 나는 한때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머물러 있었던 적이 있었다. 별거가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혼자서 외로움과 절망에 시달렸다.
그 때 나는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이런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했었다. 외도를 하는 남자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 때 나도 그런 심정이었으니까.
이혼의 고통에서 몸부림치던 나는 마음의 공허감을 이기기 위해 헌신의 확신도 없는 이성 관계에 잠시 나를 내몰았다. 그 관계는 나와 상대방의 정서적 공허감을 일시적으로 무마시키는 것일 뿐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
다행히 나는 그 관계가 건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대방과 나를 파괴하는 병리적 관계라는 것을 깨닫고 즉시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결혼생활이, 실망감으로 좌절되었을 때, 사람들은 도피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충동적이고 중독적인 삶이다. 술, 도박, 인터넷, 쇼핑, 일, 사람 등에 몰두하는 것이다.
한 여성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유부남과 서로 책임질 수 없는 관계에 빠지기도 했다. 우울증은 사랑을 하면 치유된다는 말이 있던가.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방황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관해 택시 운전을 하시는 어느 집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이 분은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들을 태우는데, 기회만 있으면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특별히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많이 타는데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물어보면 “저 집사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더군다나, 자신은 집사, 평신도라고 고백하면서 자기가 간음죄를 짓고 있는 사실을 고백하시기도 한다고 한다.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죄를 지으며, 그들은 남몰래 괴로워하고 있었다.
☺Insight in Story
남자(여자)쇼핑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배우로서의 명성만큼 결혼 경력도 다채롭다. 일흔이 넘은 그녀는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하고, 30여세의 트럭기사에 이르기 까지 8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생리적으로 1년 반 정도가 지나면 식기 시작하고 3년이 자나면 거의 소멸되며, 6년이면 완전히 냉랭해진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로 보아, 평균 6년에 한번 꼴로 결혼한 리즈 테일러는 본능에 순종한 여자이거나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며 이상적인 남자를 찾아 끝없이 방황한 여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체로 남자보다 대개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의미를 찾는다. 즉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매달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그리고 인생의 목표와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론 사랑의 감정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 실제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절실한 외침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당당하게 인생을 꾸려 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기 위해 사람을 붙잡는다.
책임감이 없고, 손찌검과 언어폭력이 심한 남자에게 조차 진절머리를 느끼며, 서서히 지쳐가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가끔씩이라도 잘해주는 남자의 사랑이 그립고, 외로움을 견디기가 힘이 들어 다시 남자 곁으로 돌아간다.
‘끝내야지, 끝내야지 하면서’ 다시 그 남자 곁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바뀔 희망이 없는 그 남자를 위해 온갖 기분을 맞추려고, 자신의 속까지 뒤집어서 그 남자를 행복하게 만들려 한다.
‘그 사람이 한번 웃어주면 나도 행복하고, 그 사람이 한번 잘해 주면 세상은 바로 내꺼’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기쁨과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의존적인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자부심을 다른 사람에 대한 예속을 통해서 획득하려고 한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어떤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고 그리고 얽매이고 또한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이것은 너무나도 불쌍한 자기 존재의 방식이다.
유혹의 자리를 피하라.
어렸을 적 컴컴한 밤 산길을 따라 걷다가 가로등 주위를 맴 돌고 있는 수많은 불나방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불나방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불만 보면 돌진을 한다. 그들은 다른 벌레들이 죽는 것을 보고도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죽음의 늪을 향해 뛰어들고 본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불나방처럼, 죽을지도 모르고 덫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조금만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죽지 않아도 될 일을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죽음의 덫에 자신의 운명을 내던진다.
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오랜 세월 동안 닦아온 정치생명을 한순간에 잃게 되고, 잠시 누릴 성적인 충동을 참지 못해서 쌓아올린 명예가 하루아침에 실추되는 사람들을 본다.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삼손 역시 그랬다. 삼손은 얼마든지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능력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삼손은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일에 인생을 탕진하고 말았다. 그렇게 자기의 욕망을 그대로 내어놓음으로써 무너졌다.
그러나 요셉은 참기 어려운 유혹을 과감히 거절하는 용기를 가졌다. 남녀가 둘도 함께 있는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다. 음란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다.
요셉은 남녀가 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하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하였다. 당신은 어떠한가. 찰나를 즐기는 인생인가. 그렇지 않으면 멀리 내다보는 인생인가.
순간적인 쾌락에 자신을 던지므로 말미암아 죽음의 늪으로 달려가는 불나방처럼, 자신의 충동을 다스리지 못해, 죽음의 덫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김유신장군이 있다. 김유신은 그의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다시는 기생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활쏘기 연습에 지쳐 말 등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이 기생의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보자 화가 솟구쳐 그만 칼을 빼어들고 말의 목을 쳐버려 두 동강을 내었다. 삼손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인 여자를 끊어내지 못하였지만, 김유신은 기생집으로 향하는데 길들여 있었던 말의 목을 베어가면서 까지 끊어 내었다. 김유신도 그러 할진데, 우리는 더군다나 그리스도인이다.
우리 주님은, ‘눈이 범죄 하면 빼어내고, 손이 잘못하면 잘라내라’(마 15:30) 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자는 없다. 바로 위대한 결단이 위대한 자를 만든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젠 눈을 빼어내고, 손발이 잘리 우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유혹의 자리를 거절하자.
공허한 마음은 위험하다.
남편과 사별한 어느 중년 여인이 외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인의 새 남편은 바람둥이였다.
그녀 말고도 내연의 처가 둘이나 더 있었던 것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았고, 문화는 낯설기만 하였다. 여인은 공허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뜨개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뜨개질을 하면서 쉬지 않고 음식을 먹어댔다.
5년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비대해졌다. 이런 그녀를 보고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태복음에 이러한 말씀이 나온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으로 채우지 않으면, 귀신은 빈 마음에, 우울함과 자살하고 싶은 마음, 자신감 없는 마음, 음란에 중독되게 하는 등 전 보다 더 악한 귀신들이 일곱이나 들어와서 빈 마음에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마 12: 43-45)
우리는 빈 집, 빈 마음으로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채워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 공허한 마음, 빈 마음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게 된다.
특히 기도생활이 불규칙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입지 못한다. 사탄의 역사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면 우리는 금방 유혹에 넘어지고 만다.
영적인 사람이 방심하여 기도를 쉬면 생활과 삶 속에 신령한 에너지가 소멸됨을 느끼게 된다.
나는 기도를 쉬면 어떤 위기감이 느껴진다. 마음이 허전하고 텅 빈 것 같다. 몸살이 나서 몸이 아파 교회에 가서 엎드려 있더라도 기도시간을 채우고 오면 마음이 든든하다. 배가 고프면 배의 공허함을 음식으로 채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음악가는 연습을 하루를 쉬면 자신이 알고, 3일을 쉬면 남이 안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쉬면 생활과 삶이 금방 껄끄러워진다. 삶이 조화롭지 못하다. 기계를 돌아갈 때 기름을 치지 않으면 빡빡한 것처럼 영적인 사람은 이것을 쉽게 느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낮에는 전도하시고, 밤에는 다시 영적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가셨다. 우리도 이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요 7:53)
저 별을 잃으면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한밤중에 작은 배 한척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런데 풍랑이 일어 배가 위태로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파도가 배를 삼킬 듯 무섭게 달려든다.
그러나 항해자는 캄캄한 밤하늘에 뚜렷이 빛나는 하나의 별, 북극성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내가 저별을 잃어버리면 나를 잃어버린다.”
그렇다. 절망의 바다, 인생의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자가 그 별, 내 인생의 참 동반자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인간의 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 가장 건강하고 생명력이 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활력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영이 생명력을 잃게 되면 정신도 함께 활력을 잃게 되고 육체도 따라서 활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순간, 인간의 영이 흔들리면서 위기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마음 가운데서 하나님을 내보내고 대신 다른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순간 즉,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 대신 사람과 물질, 명예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힘을 잃고 위기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 중심은 근본 하나님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이 들어와 역사하시도록 마음을 비워둘 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이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될 수 있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
이제 삶에 지치고 무기력해질 때는 하나님께 나아가자. 핸드폰 밧데리를 충전하듯이 방전된 우리 영혼을 충전해보자.
그러면 새롭게 깨어나는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위대한 다윗 역시 지칠 때 마다, 힘들 때 마다 하나님을 찾았다.
우리도 힘들 때일수록, 새벽 성전에 나가서 울든, 강원도 골짜기로 가서 기도를 하든, 하나님을 찾아 한번 실컷 울어보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편 63:1)
내 영혼아,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 아버지
혼자 있다는 것은 늘 두려운 일입니다.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고독이 나를 압도하여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이제 나는 고독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어떤 관계를 맺거나 음식을 먹어대거나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순간적으로 나의 고통을 잊게 하는 듯해도, 오히려 더 큰 공허로 내게 다가오고, 인생의 길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인생에서 일어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음을 느끼며, 더 큰 좌절로 빠져들었습니다.
주님, 오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나는 내 자신이 주님과 함께 하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불러만 봐도
사랑하는 딸아!
딸아, 이제 너는 내면에 평강이 넘치도록 하라. 내면에서 들리는 염려의 소리를 잠잠케 하라. 나는 너에게 위로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다.
큰소리로 자신에게 말하며 따라하세요.
오늘 나는 어두운 공허감 속에서 용기와 믿음의 햇불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이 여행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매 순간 동행할 것이며 그분은 내 인생의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욥 10:12)
매일 스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