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산책/딸아 너의 결혼은 지금 행복하니?

주은총목사의 사랑4/ 무엇때문에 싸우는 것일까?

주은총목사 2024. 3. 9. 13:47

https://youtu.be/v9cDHAxtrok

그림설명

 

(위의 그림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81살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Gretina가 주은총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Gretina는 평생에 화가로써 살아오면서 자신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제가 화실에 들어 오는 순간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Gretina는 두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으로써, 루시퍼의 영에 의해 죽은 줄 알았던 주은총이

 

하나님의 기운에 점점 흘러 나와서 루시퍼(흑암의 세력)을 장악하는 그림입니다.

 

첫번째 작품(루시퍼의 영에 의해서 주은총이가 죽어가는 그림)은 영국에 사는 Gretina가 가지고 있고, 두번째 작품인 이 그림을 Gretina는 한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딸아 너의 결혼은 지금 행복하니?저자주은총출판쿰란출판사발매2011.05.30.
 
딸아, 너의 결혼은 지금 행복하니?저자주은총출판유페이퍼발매2013.03.18
 

꿈이있는 미디어 교회/ 주은총목사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일까?

-배우자의 모든 것을 내 마음에 들게 바꾸고 싶어요. -

 

39 세 된 두 아이의 엄마가 속초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며칠 전에 남편과 다투고 술 병 몇 개를 남겨 둔 채 그녀는 바다에 뛰어 들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의 출발이 결코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직장에서 만나 열렬하게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부부싸움의 연속이었고, 결말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 여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으로 만나, , 격렬하게 싸우는 것일까? 그것은 서로의 결혼의 틀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의 틀이 무엇일까? 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간 두 남녀가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여자도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전에는 잘 몰랐던 부분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사회는 남편이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함께 하고 시장도 함께 가는데 도대체 이 사람은 전혀 거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도 정리하지 않고, 부엌에서 아내가 땀 흘리면서 일해도 구경만 하고,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신문보고 TV보면서 아내를 도와 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는 도무지 이런 남편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하고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예수를 믿기 때문에 참고 어느 정도 견뎠다.

 

그러던 차에 시아버지 회갑에 시댁에 가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시아버지가 자기 남편과 똑 같은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농촌의 유지였기 때문에 몸집이 풍만하고 체구가 좋은 반면에, 시어머니는 왜소하고 허리가 굽었다. 그런데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 체구 좋은 시아버지는 밖으로 쏙 빠져나가고 허리가 굽은 시어머니가 이불을 개는 것이다.

 

또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일해도 시아버지는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의 남존여비가정이었다.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신랑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을 고치려 해도 싸울 뿐이지 해결이 안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정 주간에 부부 세미나에 같이 갔다가 거기에서 남편이 치유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떠나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가 조금씩 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들 부부가 이렇게 싸움이 끊이지 않았을까? , 사랑으로 만난 결혼이 이런 위기에 이르게 되는 걸까?

 

거기에 관하여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우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요인으로는 남녀의 지위가 서로 다른 가족문화권에서 각각 성장했다는 점이다.

 

자기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면 몸만 밖으로 쏙 빠져 나가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해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버지상과, 어머니로부터는 남편에게 말 한 마디 못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아내 상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결혼해서도 이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한 것처럼, 자신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자신의 부인이 자기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순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기대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 남자의 결혼생활의 틀이 된다.

 

또한 남자의 경우와는 달리, 아버지는 말없이 어머니의 주장에 따르고, 어머니는 활동적인 성격인 가정에서 자란 여인은 어머니로부터 남편을 다스리는 아내 상을 모방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아내 상은 결혼해서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투영될 것이다. 또 이 여인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부인에게 순종하는 남편 상을 결혼해서 자기의 남편에게 기대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여인의 결혼의 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자주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도와주셨고, 자녀들과도 놀아주시며 배려해주셨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늘 둘 사이에 싸움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너 네 집안은 대체 왜 그러냐.”하면서 서로의 집안에 대한 흠을 잡기가 일쑤였다.

 

결혼의 틀에 관하여는, 크리스찬 치유목회연구원에서 나온 위기와 상담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 책에서 정태기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아니면 갈등을 겪게 될 것인지는 이 두 사람의 결혼의 틀, 즉 사랑의 궁합에 맞추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의 궁합이 어긋날 경우, 남편은 아내에게 자기 아버지처럼 독선적으로 나오면서 부인은 절대 순종하기를 기대할 것이요, 부인은 반대로 남편이 자기에게 순종하면서 자기주장에 따라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간에 양보하지 않으려는 심리적인 전쟁이 시작 된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에는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기가 죽지 않으려는 싸움을 하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것이다.

 

부부간의 만남에도 어느 기간 동안 이런 심리적인 기()싸움이 계속되다가, 어느 한 쪽이 포기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화도 어느 정도 사랑의 궁합이 맞아야 이루어지는 것이지, 서로 사랑의 궁합이 지나치게 어긋날 때는 싸움은 치열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치닫는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이 이러한 서로 다른 결혼을 바라보는 틀에서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극단적인 데까지 나아가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남자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부인한테 이 정신병자야”, “미친년아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그 부인은 신혼 초부터 마음고생을 하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결국은 나한테 까지 와서, 병원에서 남편과 같이 오라는 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힘들어 하며 상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보면, 꽤 괜찮은 직업의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참 험악하게 싸웠다. 이처럼 결혼의 틀이 어긋난다고 해서 그 인격 자체가 병든 것은 아니다. 다만 자라면서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태도를 모방하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태도가 자기도 모르게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습득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상대방 편에서 바라보고, 상대방의 행동을 용납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된다.

 

Christian insight

 

부모를 떠나는 것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2:24)

 

부모를 떠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결혼의 법칙이다. 안식일과 결혼은 하나님께서 창세시대부터 정하신 두 가지 예식이다. 안식일은 교회를 보존하기 위하여, 결혼은 인류를 계속 보존하기 위하여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의 법이 무엇인가? 한 인간에게 있어 자식을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와의 관계보다 더 깊고 가까운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아내와 연합하기 위해서는 그 부모를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 명령을 어기고 부모를 떠나지 않을 때부터 부부관계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부모를 떠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칼빈은 이에 관하여 남편은 아버지보다 아내를 더 사랑해야 하며, 떠나라는 말은 부모를 버리고 효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결혼이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침해가 될 수 없는 성결한 것을 나타내는 의미이다.”라고 말한다.

 

경제적인 떠남 vs 지리적인 떠남

 

안산의 어느 건물에 두 개의 개척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개척교회는 처가댁에서, 쌀이며, 김치이며, 생활비며 다 대주었다. 게다가 장모님으로부터 기도의 후원까지 받았다.

 

그러나 옆에 개척교회는 기도는 고사하고 어느 것 하나 처가댁에서 도와주지를 않았다. 오히려 딸의 부모가 가난한 신학생한테 시집을 간 것에 관하여 여간 서운해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남편 역시 내심 여자 집에 대하여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

 

내가 신대원에 다닐 적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목회자에게도 성골과 진골이 있다는 것이다. 전도사님들이 배우자감으로 안정된 목회자나 물질적으로 후원해 줄 수 있는 딸을 1순위로 원한다는 것이었다.

 

즉 안정된 목회자의 딸이나, 장로님 딸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이 세상에 나는 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막말로, 부모가 돈이 없으면, 결혼해서 떠난 자식들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

 

부모의 유산 때문에 싸우고 있는 형제들, 며느리가 혼수를 적게 가지고 시집 왔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은근히 처갓집 도움을 바라는 남편과, 그 속을 들여다보면서 괴로워하는 아내…….

 

이러한 것들이 모두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의 단면들이다.

 

결국 이러한 경제적인 종속은 부모가 돈이라는 끈으로 자식들을 움켜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자식이 자기의 손안에 있다는 생각으로 안심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내들은 경제적인 안정을 시부모가 아닌, 남편으로부터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손 벌리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아내로부터 존경심을 얻게 된다.

 

또한, 떠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떠남은 물론 지리적으로 떠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오래전, 한국 가정에 시집 온 여인들은 3-4대가 모여 살아가니, 마음 놓고 애정을 받을 수도 없고 쏟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남편에게서 좌절된 사랑의 한을 쏟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 자녀들을 택했다. 고독과 애증과 한의 유일한 도피처가 아들이었다.

 

이렇게 아들은 남편이자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빼앗아 가는 한 여인이 나타났으니 어찌 시어머니의 마음이 편하였으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끝없는 갈등이 계속 되었다.

 

당신 부모가 더 중요해, 내가 더 중요해? 이제 분명히 선택해. 만약 당신이 나보다 당신 부모님이 더 중요하다면 난 더 이상 당신과 함께 안 살 거야!”

 

당신에게 아직도 이러한 갈등이 존재하는가? 남편이 아내의 편에 서지 못하고 부모에 휘둘려 자기 주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피곤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2;24)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개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어 하는 아들과, 처갓집 식구들이 자주 드나드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남편...

 

아들 집이라고 자주 와서 부부의 일에 간섭하려고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 이것들은 떠남의 문제를 둘러싼 부부 갈등의 일면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끓을 수 없는 관계라고 할지라도 일차적인 관계는 당연히 부부관계이다. 부부관계를 파괴시키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부모와 의존적인 관계의 틀을 깨트리지 못하고서는 부부의 연합을 이룰 수 없고, 부부의 진정한 연합을 이루지 않고서는 결코 부모를 공경할 수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 떠나라는 말을 부모와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에, 부모가 거동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자녀 된 도리로 부모를 모시거나 돌보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런, 불신자보다 더 악한 놈 같으니라고(딤전 5:8)

 

이처럼, 우리는 부모로 부터 떨어져 있을지라도 돌아봄에 있어서는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필요를 민감하게 채워 드려야 한다.

 

 

기도

내 영혼아, 하나님을 바라라.

주님, 오늘 나는 빛나고 강한 빛을 내며 나의 독립을 선포하고 자 합니다.

돈 때문에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속박되는 삶을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지고 있는 자원과 능력을 통해 부모를 섬기겠습니다. 아내(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가정이 회복되고, 자녀들이 자라나는 것처럼, 나의 소망 또한 찬란한 햇빛 속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수많은 천사들의 응원소리와 함께 나의 삶을 시작할 수 믿습니다.

 

주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이 찬양을 교회에서 부부가 특송으로 부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딸아!

잠시, 너를 힘들게 하는 인간관계들을 잊고, 너 자신에게 집중해 보아라. 그리고 가만히 너는 삶 속에서 들리는 모든 사랑의 소리를 들으라.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빌딩사이에 부는 바람, 즐거운 아이들의 웃음소리들이 그런 것들이다.

 

또 너는 접촉하면서 그 사랑을 느끼라. 너의 얼굴을 핥는 강아지의 혀의 감촉, 따뜻한 햇살이 그런 것이다. 너는 눈을 뜨고 만나는 모두의 얼굴 속에 있는 사랑을 보라. 오랜 만에 숨을 쉬는 것 같지 않니?

 

이제 딸아, 그 사랑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렴, 남편을 믿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해 보렴. 그는 너의 편이 되어서 너를 이해하며, 든든한 너의 후원자가 될 거란다. 가정이 평안하게 회복될 거야.”

 

큰소리로 자신에게 말하며 따라하세요.

나는 나 홀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그 분의 힘과 능력으로 멋지게 가정이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평안함을 마음껏 만끽 할 것이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 5;16)